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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명님이 쓰신 "가운(gown)에 대한 이해"에 글에 감사드리며, 또한, 목사의 가운과 평상복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과 성경적으로 참고하기 위함이니 양해를 바라면서 예배 집례와 성찬식에 목사의 가운을 입는 문제와 평상복(정장)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2~3. 가운의 유래와 제사장의 복장에 대하여
구약성경 출애굽기와 레위기를 보면 하나님이 지시한 성막과 모든 예전, 예식, 예복 등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선민 이스라엘이 순종하여 진행하였다. 그런데 이방종교에서 가져왔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과 그 당시의 역사 배경을 모르거나 호도하거나, 또한 하나님의 진리와 역사를 왜곡시키거나 흐리게 하는 것이다.
사실, 구약성경을 보면 모든 예전과 예식과 예복들은 하나님이 계시(명)하였고, 이 명에 의하여 이스라엘이 진행한 것들이다. 이것을 이방인들이 보고 이방종교를 만들었고 모방하여 유사품(발명품)을 만들어 이방 우상종교를 섬겼다. 그런데 이방종교에서 이스라엘이 가져와 모방하였다고 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어리석은 말, 비성경적인 말에 조심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에덴동산에서 범죄 타락한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하나님이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림으로 저들의 죄를 용서하고 가죽옷을 입히므로 의롭다 하시는 은혜를 덧입게 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아담과 하와는 그의 자녀, 가인과 아벨에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식을 가르쳤을 것이다. 그때에 인간의 구원의 대표적으로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하는 모습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 당시 세상에는 종교도 없고, 종교의식도 없었다. 오직 여호와의 신앙 그 자체가 종교이며 제사이다. 그 후에 가인과 그 후손들이 하나님을 떠나 불신앙하는 자들에 의하여 제사를 모방하여 우상을 만들고 제사 의식이 생기고 우상종교가 나타난 것이다.
5. 목사 가운의 찬성하는 주장과 그에 대한 반론에 대하여....
(찬성1) 목사의 가운은 제사장의 복장을 계승한 것이다.
(반론1) 제사장 직분을 행할 제사장 제도가 없어졌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과 부활하심으로 구약시대에 선민 이스라엘이 섬기던 국가종교였던 유대교에서 신약시대의 택자 구원을 위한 우주적 교회가 탄생되었다. 그러므로 구약의 제사 제도와 제사장 제도가 상실되었기에 제사장 예복은 자연 소멸이 되었다.
그러나 신약교회를 지도하고 리더 할 지도자를 하나님이 세웠으니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 혹은 복음전도자,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심이다”(엡 4:11~12)고 했다. 하나님은 신약교회를 5가지 직분(은사)를 통하여 몸된 교회를 세워 나가게 하였다.
그리고 신약성경 27권을 완성하면서 초대교회에서 섬기던 사도, 선지자는 단회적인 직분으로 종료가 되었고, 목사와 교사는 현재 진행되어 오고 있다(장로, 집사 직분도 계승되고 있다). 또한 복음전도자는 목사와 교사와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나 신약의 모든 신자로서 교회 밖에 나아가 전도하여 많은 영혼들을 구령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 책임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지어다”고 울부짖었다. 그래서 교회는 복음전파와 영혼구령을 해야 한다. 이것이 교회가 세워진 목적이다.
예수님이 자신이 십자가에서 제단이 되시고, 제물이 되었으며, 대제사장으로서 단번에 하나님께 드렸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구속을 이루고 완성하였다. 그리고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신약교회가 탄생하면서 구약의 제사장 제도는 없어졌으나 신약의 목사는 하나님이 세운 직분으로서 교회를 목양하며 교육과 지도해야 할 사명과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구약의 제사장이 아닌 신약의 목사이다. 그러나 목사의 가운으로 제사장을 계승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찬성2) 목사는 영적 지도자로 구별됨이 합당하다.
(반론2) 목사 가운이 무슨 영적 권위의 상징인양 여기는 것은 큰 잘못이다.
목사가 영적지도자로 구별되는 것은 무엇으로 되는가? 목사는 목사의 권위와 상징으로 가운을 입는 것은 아니다. 목사는 목사의 자격과 소명과 사명, 그리고 인품과 성도들로부터 받는 존경과 섬김의 영적 권위이다. 목사가 가운을 입는다고 해서 구별되는 것도 아니며, 또한 목사 가운이 영적 권위의 상징은 더욱더 아니다. 목사 가운은 예배 집례를 위한 하나의 옷이다.
(찬성3) 가운을 입으면 경건하고 거룩하게 보인다.
(반론3) 옷을 가리워 경건하고 거룩하게 보이게 하는 자체가 잘못이다.
목사가 평상복을 입는다고 해서 신자들의 시선이 설교 시간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과 목사가 가운을 입고 설교하면 집중할 수 있다는 말은 어느 정도 수긍하나 결코 그렇지 않다. 설교는 설교자가 성경을 어떻게 선포하고 전하느냐에 따라 예배 분위기가 달라지고 성도들이 말씀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더 나아가는 은혜가운데 거한다.
또한, 목사의 가운을 입는다면, 경건하고 단정하게 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상실된 마당에 잘못하면 목사의 가운이 위선이 될 수 있다. 요즘 목사의 가운이 너무 화려하고 사치성을 가미하여 심각한 문제성이 있다. 더욱이 영대(목에 둘러 무릎까지 내려오게 한 좁은 띠)는 절기마다 어떤 의미가 있겠지만 이것으로 인하여 로마 카톨릭화 되어가는 모습 같아서 보기가 안 좋다. 만약 목사가 가운을 입는다면 가운은 단아하게 단순하고 색채와 무늬가 없는 검정 가운이 되어야 한다. 물론 영대도 없어야 한다.
(찬성4) 성찬식에는 가운을 입어야 한다.
(반론4) 설교와 성찬예식을 차별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예배나 성찬식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며, 예배의 행위이다. 그래서 예배(설교)와 성찬식을 구분하면 안 된다. 예배와 성찬식은 하나의 예배와 예식이다. 그러나 신자에게 은혜의 방편은 말씀과 성찬이다. 예배(설교)를 매주한다. 그러나 성찬은 매주하거나 오랜만에 한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성찬을 영원히 기념해야 할 예식으로서의 그 자체가 중요하다.
그런데 기도는 은혜의 방편이 아니다. 이유는 성부와 성자 하나님의 계시로서 교회가 지켜야 할 영원한 것은 말씀과 성찬이다. 말씀과 성찬은 영원히 기념하고 지켜야 할 것이다. 그 말씀과 성찬예식을 지킬 때에 은혜를 받는다. 그러나 기도는 인간이 하나님께 올리는 것으로 하나님이 신자에게 명한 은혜의 방편이 아니다. 이유는 말씀과 성찬은 하나님이 신자에게 계시하신 것이요 하늘에서 명하신 것이다. 말씀이신 성자가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와서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실체로 보여 주신 구속사역이기 때문에 순종하고 영원히 기념해야 할 것이다. 그 명을 순종하고 행할 때에 그 말씀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 땅(현장)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혜의 방편이다.
그러나 기도는 하나님이 명했으나 인간이 하나님께 올리는 것이다. 물론 기도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있으나 인간이 하나님께 올리는 것이기 때문에 기도는 은혜의 방편이 아니다. 그래서 말씀과 성찬예식에 은혜를 덧입고자 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배와 성찬에서 목사가 가운을 입는 것과 입지 않는 것, 그리고 평상복(정장)에 대하여 잠시 뒤에 설명하기로 하겠다.
결론적으로
목사가 예배 집례와 성찬예식에 목사 가운을 입어야 하는가? 또 평상복을 입고 예배 집례와 성찬예식을 해야 되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상식과 성경으로 접근해야 한다.
구약의 제사장 제도와 제사 집례는 신약의 예수님이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구약교회에서 신약교회로 승화됨으로 옛 언약에서 새 언약으로 바뀌었다. 구약의 유대교에서 신약의 기독교로 전환이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대제사장으로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림으로 완성하였고, 또한 목사를 세워 예배를 진행하였다.
오늘날 세상과 교회의 성도들이 목사에 대하여 함부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불경죄이다. 그 이유는 목사제도와 목사를 세운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사의 잘못된 인격과 교회의 질서를 훼손하는 일로 인하여 일어난 문제는 목사직보다 그 목사의 인격과 성품과 자격의 대한 문제이다. 그런데 목사 개인의 문제를 교회의 문제로 목사직을 거론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문제가 된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가 영적개혁을 하여 다시 교회 회복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1. 목사가 가운을 입는 문제
① 예배와 성찬예식에서 목사가 가운을 입고 집례를 한다면, 목사는 검정 가운을 입어야 한다. 이유는 검정은 장례식의 예복이다. 또한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이다. 그래서 목사가 검정 가운을 입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을 상징하여 예배 집례 때에 입음으로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목사 자신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혈과 육이 죽고 영이 살아서 사명 수행을 하는 영적인 사실을 인식하고 그 예배 집례 시에 자신을 드러내는 일(교만과 탐욕)과 생각(인본주의)를 배제하고, 예배 전에 강단에서 엎드려 철저히 자신을 회개하고 교회의 목사로서 공적으로 예배 집례를 해야 한다. 이유는 목사는 예배의 청지기이기 때문이다.
② 목사의 검정 가운은 장례복이라고 했다. 그런데 여름철에 입는 하복용 검정 가운이 있는데 검정 가운은 여름철에 목사와 성도들이 볼 때에 덥게 보이고 답답하게 보인다고 흰색과 기타 화려한 색으로 가운을 입고 칼라색의 영대(목에 둘러 무릎까지 내려오게 한 좁은 띠)를 하는 것은 예배와 집례하는 자신에 대한 상식과 신학적인 문제이다. 더구나 영대까지 한다는 것은 종교개혁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문제보다도 현대교회의 세속과 타락 되어가는 현상이다. 물론 교단마다 영대를 하는 곳과 안하는 곳, 그리고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약의 예배가 구약의 제사가 아니라는 사실 속에서 개신교가 종교개혁을 한 이유가 무엇인가? 를 다시 음미해 봐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일반 법정에서도 재판을 할 때에 판사와 검사도 검정 법복(가운)을 입는다. 법정에서 법복(가운)을 입는 이유는 개인의 사견보다 공적인 일(재판)과 객관적으로 법을 집행하여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기 위하여 철저히 개인의 사견이나 관계를 없애고 공인으로 객관적으로 재판하여 판결하기 위해서 검정 법복을 입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검정 법복(가운)을 입는 것은 법 앞에 법을 집행하는 판사나 검사도 법위에 사람 없고, 법 아래에 사람이 없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법에 평등하다는 사실 앞에서 개인보다 법으로 집행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법복(가운)을 입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 법정(재판)에도 판사와 검사가 검정 법복(가운)을 입는 것은 교회의 목사들이 가운을 입는 것을 보고 세상에서도 법을 바로 집행하기 위해 따라한 것이 유래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하물며 목사들이 가운을 입고 예배 집례와 말씀(설교)를 선포할 때에 임할 자세와 태도는 더 말 할 것도 없다. 그래서 목사는 설교의 청지기이기 때문이다.
③ 성찬예식에서 평상복보다 가운을 입고 집례 하는 것은 무리가 없을 것으로 사료된다. 개신교의 목사가 예배 집례는 예배의 중심이 설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찬식은 먹고 마시는 영원히 기념해야 할 예식이요 행사이다. 그러니 평상복을 입고 행하기보다는 목사 가운을 입고 행할 때에 그 성찬 예식의 뜻과 의미를 바로 행할 수 있다. 즉 목사와 성도들이 성찬예식을 행하므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한다면 성찬은 육이 죽고 영이 사는 영원히 기념해야 할 예식으로 행하기 때문에 성찬예식을 경건하게 행할 것이다. 그래서 목사가 성찬식에는 가운을 입고 해야 성경적, 신학적으로 바르게 행할 뿐 아니라 더 은혜스러운 예식이 될 것이다.
2. 목사가 평상복을 입는 문제
①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은 로마카톨릭의 교권과 제도권, 그리고 성경의 탈선과 변절로 인한 이단성 문제로 인하여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그래서 종교개혁 시에 교회는 강단이나 강대상, 피아노 등을 없애고 교탁을 놓고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여기에 신부와 주교들의 가운도 종교개혁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현대교회는 목사 가운이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와 권위 의식으로 변질되는 모습은 타락의 현상임을 보면서 목사가 가운을 입지 않고 종교개혁으로 돌아가는 심정으로 평상복을 입고 예배 집례하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그러나 평상복을 사치와 화려하게 입는 것을 배격하고 단아한 정장으로 성도들에게 본이 되는 경건한 모습의 경건의 능력을 드러내는 영적 권위의 예배와 말씀의 청지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목사들은 목사 가운이나 평상복을 입고 강단에 서서 잘못된 설교와 성찬예식을 거행한다면 그 죄에 대하여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그 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리고 이 모든 일에 동참한 성도들이 말씀과 성찬예식을 등한히 하는 죄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는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말씀을 유린한 죄에 대하여 말이다.
그래서 목사가 가운을 입는 것과 평상복을 입는 것에 대하여 폄론하거나 갑론을박 하는 것보다 목사는 자연스럽게 평상복을 입을 때는 입고, 또는 가운을 입고 예배 집례와 말씀을 선포할 때, 그리고 성찬예식을 행할 때에는 하나님 앞에서 신학의 경건과 순결한 생활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도들도 경건한 예배와 말씀을 경청하고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순결한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첫댓글 "가운" 착용과 평상복 착용의 문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으로 봅니다. 저는 평상복을 입고 설교하지만, 성례식에는 가운을 착용합니다. 님의 언급처럼 힌색의 가운은 시각적인 효과로 주어진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금은 아무런 장식이 없는 검정색 가운을 입는 것이 더 겸손한 시대일 것입니다. 현재의 평상복은 상당한 가격(가운의 가격과 비교가 되지 않는~)을 형성하고 있다고 봅니다.
평상복이 수트를 의미하겠지만,, 다른 캐쥬얼도 가능하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반바지 차림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것도 문제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기준으로 한다면 검정색으로 장식(선이나 후드)이 없는 가운을 선호합니다.
목사님의 말씀처럼 평상복 차림으로 예배와 성찬식은 검정 가운을 입고 진행하죠....^^
그러고 보니 가운이 오래되니 허름합니다. 그러나 감사하며 귀하게 여깁니다.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을 느끼니까요....^^
가운에 대한 2개의 자료를 <주제 토론방>으로 옮겨볼까요?
모든것이 중심이 중요한것 같습니다, 가운을 입는것도 그 중심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지는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