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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론 스크랩 1부. 구원론(성령론) 강의내용 소개, 성령사역, 유형 / 박혜근 교수
한아름 추천 0 조회 244 12.08.14 23:5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부. 구원론(성령론) 강의내용 소개, 성령사역, 유형|다시읽고싶은글
keeper77 | 조회 233 |추천 0 |2006.07.25. 13:35 http://cafe.daum.net/keeper77/17Ia/3

 

 

 

2005년 2학기

성령신학


 구원(성령)

The Doctrine of Salvation

박혜근 교수 / 총신대학교 학점은행제 강의안



        강의(감수) :  칼빈신학대학교 박혜근 교수(조직신학)

        자료(작성) :  총신대학교 학점은행제 수강생(typed by)



       본 자료는 총신대학교 학점은행제 2005년 1학기 성령론 강의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므로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목  차


강의과목 : 구원(성령)



<교수소개>


                                   박혜근 email : hyaekun@naver.com

                                          전공 : 조직신학 칼빈신학대학교

                                          직급 : 조교수장(외국인학생처장)

                                   학위 및 경력

                                          영남대학교 전자공학과(B.E.)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Th.M.)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Ph.D.)

                                   저서 및 역서

                                          Salvation in Moltmanns Trinitarian Theology

                                          The Cross and Praxis



학기동안 반드시 정독해야 할 관련도서(圖書)


   구분 : 주교재, 부교재 및 보충, 참고교재


   ① 개혁주의 구원론(기독교문서선교회)/ 주교재

     : 안토니 A.후크마(Anthony A.Hoekema,1913~1988/ 미국의 칼빈신학교 교수역임)

   ② 조직신학 2권(크리스챤 다이제스트)/ 부교재

     : 죤 머레이(John Murray,1898~1975/ 웨스트민스터신학교 교수역임)

   ③ 벌코프 조직신학 하(下)권(크리스챤 다이제스트)/ 부교재

     :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 칼빈신학교 교수역임)

   ④ 구원론(기독교문서선교회)/ 부교재

     : 밀라드 J.에릭슨(Millard J.Erickson, Bethel 신학교 교수)

   ⑤ 죄죽이기(The Mortification of Sin)(SFC), 성령론(여수론)/ 보충교재

     : 존 오웬(John Owen,1616~1683

   ⑥ 성령신학(총신대학교출판부)/ 보충교재 : 서철원 교수

   ⑦ 성신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성약), 그리스도의 지체로 사는 삶(성약)/ 참고교재

     : 신학박사 김홍전

   ⑧ 영혼의 의사(부흥과개혁사)/ 참고교재 : 피터마스터스(Peter Masters) 목사

   ⑨ 육신의 소욕이냐, 성령의 소욕이냐(This I say then, Walk in the Spirit)

      (그리스도의 편지)/ 참고교재 : 장수민 목사



구원론(성령론)

The Doctrine of Salvation


1. 소개(Orientation) 및 학습목표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의 조직신학 하(下)권은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성령론이 없는 이유는? 구원론(성령론)을 조직신학자들이 구원론1.과 구원론2.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구원론1.은 그리스도의 지상의 생애인 사역에 관한 내용인데, 예수님께서 믿는 택자들을 위한, 즉 우리를 위하여 십자상에서 이루신 지상의 사역이다. 구원론1.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역인 죽으심과 부활에 관한 내용의 전부이다.


  구원론2.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부활, 승천하시고, 이미 이루어 놓으신 그 예수님의 사역을 개인의 각 신자들에게 적용하시는 성령의 (적용)사역이다. 따라서, 성령론은 구원론2.의 한 부분에 속한다. 성령론을 구원론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시면 보다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한다. 다시 강조하면, 성령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취된 사역을 한 개인에게 적용하시는 사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성령론에 대한 오해가 많은 것은 이 성령론을 은사론으로만 이해하고 있는데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성령론의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성령의 사역은 근본적으로 기독론적 사역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취하신 사역에 근거하여 바로 그것을 각 개인에게 적용하시는 성령의 사역이고 그 성령의 사역을 다루는 것이 바로 성령론이다. 따라서, 그 성령론은 구원론에 속해 있는 것이다. 다시말하여 독자적인 성령의 사역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은 수업제목을 우리가 이번학기에 배우는 성령론을 구원론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구원론1.을 먼저하고 구원론2.을 공부하였으면 좋겠으나, 학교 커리큐럼 형편상 부득이하게 구원론2.을 학습진행 하면서 구원론1.에 관한 중요한 내용들을 수업시간에 조금씩 언급하면서 진행하도록 할 예정이다. 아울러, 구원론2.에 관한 강의의 세세한 부분을 전부 다 할 수 없으므로 중요한 주제를 한 학기에 9~10개정도를 발췌하여 강의할 것이다.


  성령론 공부하면서 또는 그 후에 가져오는 신앙의 기대효과는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교회안에서 다루고 있던 중요한 설교의 주제, 성경공부의 내용이나, 혹은 신앙의 어려움이나, 실생활의 신앙적인 체험 등과 같은 모든 것들이 성령론과 필연적으로 깊은 관계에 있다는 것은 깨닫게 된다. 학생 여러분들께서 나름대로 대단히 유익한 시간이 되리라 기대된다. 일단, 오늘 강의 순서는 성경에 있어서의 성령의 사역을 소개함으로써 강의를 시작하도록 하겠다.

 

 성경에서의 성령의 사역


  구원론의 내용을 무엇으로 정의하느냐? 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신학적으로 구원론의 내용이 완전하게 통일된 의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구원론의 한 부분은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나누고 또 다른 한 부분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개인에게 적용시키는 성령의 사역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보편적일 뿐만 아니라, 개혁주의 신학에서 일반적인 입장이다.


  신론에서는 지금까지 구원론을 다룰때, 구원론1.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즉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인격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다만, 그리스도의 인격 문제를 신론에서 다루고 신론을 전개할 때, 하나님 아버지에 관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다루고 성령의 신성을 다루는 것이다. 신론을 할 때 삼위일체의 인격의 전부를 다루는 것이다. 신론에서만 삼위의 인격에 관한 부분만을 다루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구원론1,에서만 하고, 구원론2.은 성령의 각 개인에게 적용 시키는 성령의 사역을 다루고 있다. 성령론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신학자들이 성령론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어느정도 자신의 윤곽이 들러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앞으로 조직신학 또는 기타의 구원론에 대한 책들을 볼 때에 저자가 그 내용을 어떻게 기술하고 있느냐 하는 다루는 방법에 관한 내용만 잘 살펴보아도 그 저자가 어느 신학적인 입장을 밀접하게 견지하고 있는 지를 잘 알 수 있다.


구원론을 다루는 역사적인 방법의 유형은,


  가장 보편적인 첫 번째는‘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그리스도인 됨과 생애를 분리하여 다루는 방법’이 있다. 예를들면, 구원론을 표현하는데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어떻게 살아가는 문제에 있어서, 즉 성화론인 것인데, 믿는 사람의 삶이 어떻게 거룩하게 되느냐?(성화론), 어떻게 의롭게 되느냐?(칭의론),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느냐?(양자론) 어떻게 거듭나느냐?(중생) 이러한 믿는 사람들의 삶에 관한 문제를 다루지 않고,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만 집중적으로 먼저 다루고 난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다루는 것을 그 다음의 순서로 하는 그리스도인의 됨과 생애를 분리하는 방법이 있다. 다시말하여, 예수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문제는 일체 다루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만을 다루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하심의 사건적 의미속에 성부 아버지와 성자, 성령의 사역의 언약의 문제를 주로 다루는 것이다.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이슈, 그러한 일은 다루지 않는다. (James Garrett, William Shedd ⇒ 구원 > 성령)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삶과 연관되어 있는 문제를 다루는 방법이 있다. 성령이 그리스도인 됨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도록 사역을 하시는 분이다. 다시말하면, 성령의 하나님께서 각 개인에게 적용하시는 사역과 같은 말인데, 즉 성령 하나님은 믿는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사역을 하는 것이다. 성령은 믿는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한 사역을 감당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므로, 구원론1.에서 다루는 곧, 성자의 사역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양자되고 영광에 이르도록 선택하고 예정하며, 계획하고 집행하시는 사역이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사역이 각각 다르다. 이것을 신학적인 전문용어로 Salutics Pactum, 또는 Pactum Salutics (팍툼-계약,언약, 살룩티스-구원) 즉,‘구원의 협약(구속언약)’이라고 한다.


  그 내용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구원을 위한 성부, 성자, 성령의 세 하나님의 기능적인 역할에 관한 언약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선택하고, 그 선택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계획을 수립하고 그 계획대로 집행하시기 위한 분이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이 예정하시는 행동에 있다. 즉, 우리가 보통‘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할 때, 그 사랑은 해와 달과 별들이 있기도 전인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불러 주시는 바로 그 행위가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런데 그 사랑은 시간을 초월한다. 영원전에 그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바로 그 사랑을‘영원한 사랑’이라고 부른다. 또한, 그 사랑은 이 세상의 종말이 완성된 뒤에도 계속되는‘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다. 독생자 아들을 그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예정하신 사람들을 위한 구원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하여 아들이 직접 자신의 피를 쏟아 죽으셔야 만 했다. 구원의 근거를 마련한다는 것은 독생자 아들이 자기의 피를 흘리셔야만 하기 때문에 친히 사람이 되시었고 그 작정한 바대로 영원 전에 예정해 놓으신 사람들을 구원하게 하기 위하여 예정되어진 바, 그 계획에 의해 자신의 몸을 기꺼이 찢어 피를 쏟음으로써 그 근거를 나타난 것이었고 자신의 사랑을 확증케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의 구원의 모든 것을 만드신 이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이 우리 구원의 객관적인 모든 근거를 다 성취하신 분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구원의 저자’라 부르기도 한다. 그분이 없으면 구원도 없는 것이다. 바로 그 분이 구원을 성취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성령은 그렇게 만들어진 구원의 근거, 즉 성취된 구원의 효과를 하나님이 작정하신대로 한사람 한사람에게 적용하고 그 구원의 열매를 맺어 양자의 영광에 들어가는 날까지 쉬지 않고 우리들의 삶에 함께하고 사역하시는 바로 그 하나님을, 우리들은‘성령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축도할 때에 반드시 제일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 은혜는 우리를 위해서 이 구원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 자기의 피를 쏟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만들어 주시고 그 구원을 값없이 나누어 주시는 하나님의 행위가 바로 은혜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 그 작정하시고 예정하시는 사랑에서 출발된 것이다. 성령의 충만과 교통하심이 - 우리 속에 충만하게 거하시는 것으로써 충만하게 거하실 때, 우리의 마음의 마음의 문이 열리고 우리의 영으로 죽어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반응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충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요! 아버지의 사랑이요! 성령의 충만과 교통하심!이다. 이것이 바로 “Salutics Pactum”이다. 이것은 영원전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약속하신 것이다. 각자의 역할을 하시는 삼위 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여기 첫 번째 구원론에서는 그리스도인 됨과 사역을 구분한다. 이것이 제가 강의 진행의 목표를 두고 있는 방식이다.


  두 번째 방법은 그리스도인 됨과 사역을 함께 다루는 것이다. 이 방법은 챨스 핫지, 어거스틴 스트롱, 버스 웰 등이 주장하고 있는 방법이 있다. 세 번째 방법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구원론에서 제외하고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리스도인 됨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구원론이라는 제목하에서 모두 다루는 방법이 있다. 즉 그리스도의 인격을 제외하여 버리고 나머지 예수님의 사역 그리스도인 됨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구원론이라는 제목하에서 전부를 다루는 방법이 있는데, 윌리암 쉐드(William Shedd) 라는 신학자가 이러한 방법을 취하고 있다. 네 번째 방법은 그리스도 인격과 사역을 그리스도의 인격과 생애보다 먼저 다루되, 후자를 성령론 이라는 제목으로 다루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면, 구원론2.이라고 하지 않고‘성령론’이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방식이 있다. 이 방법은 윌리암 클락(W. Clark)이 주장한다. 다섯 번째로는 그리스도인 됨과 삶을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으로 나누는데, 그리스도인 됨과 삶을 먼저 다루고 그리스도의 사역을 나중에 다루는 방법이 있는데, 데어 무디(Dale Moody)라는 신학자 이러한 방법을 취한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로 그리스도인 됨과 삶은 아에 다루지 않고 지나치는 유형이 있는데, 구스타프 아우렌(Gustaf Aulen)이라는 루터파의 신학자가 이 방법을 사용한다. 독일의 신학자 햄믈릿 틸리케(성윤리의 저자)도 같은 방식을 사용한다. 이러한 방식들이 있는데, 가장 바람직한 방식은 첫 번째 유형인데, 이 유형의 대표적인 경우는 제임스 가레트(James Garrett) 신학자이다.


  이러한 나누는 방식의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됨과 사역의 삶의 문제를 서로 나누고 그것을 구원론이라는 통합된 틀에서 다루는 것은 만약 성령론 이라고 별도로 다루게 되면, 그리스도의 사역과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지 않는다는 암시를 주게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성령론을 그리스도의 사역과는 독자적인 분리를 가져올 수 있는 상존적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국교회는 성령론을 은사론으로만 취급하여 왔다. 성령받으면 예언하고 방언하고 신유의 은사를 갖게 되는 것이 성령체험의 기본적인 요건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것은 성령론에 대한 위험한 탈선이다. 성령의 사역의 제일 주된 목적인 그 사역의 본질은 방언에 있는 것도 아니고, 신유에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어떠한 은사적 체험에 있는 것도 아니다. 성령의 가장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한 한 사람의 구원에 있다. 환언하면 성령받은 가장 최후, 최고의 증거는‘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것’에 있고, 구원 받아 아들의 영광에 들어가는 것에 있다. 따라서 에언, 방언, 신유 등은 확고부동한 성령 받은 증거가 될 수 없다. 성령의 임재의 증거는 특별한 은사를 받을 수는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은사가 반드시 성령임재의 증거는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전적으로 성령의 사역은 원칙적으로 이러한 은사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혁주의 구원론은 인간의 생명이나, 힘 그리고 행복에 전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다는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을 가장 근본적 원리로 전제(Presupposition) 한다. 인간의 행복, 구원, 힘, 이 모든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다는 이 성경의 가르침을 전제 하여야 개혁주의 구원론이 제대로 전개되는 것이다. 전제는 반드시 있어야 하고 전제가 없는 주장은 있을 수 없다.


  개혁주의 구원론에도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바로 이 전제(Presupposition)는 인간의 구원, 행복, 힘 이 모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다는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을 전제하는 것이다. 즉 관계의 전제성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나의 인격적 관계(Relationship)의 전제이다. 다시말하여 누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가? 에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맺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고 나는 그 분의 자녀가 되어야 구원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원수되었던 것이 풀렸다는 것은 관계의 개선을 말하고 있다. 이 관계의 변화는 우리들이 의식하고 있던 것의 이전 것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즉 우리들이 감지하고 느끼고 있었던 것보다, 소위 사람의 인식 이전보다 휠씬 더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리 개인의 삶과 구원과 행복에 절대적인 조건이라고 하는 이 전제하에서 보면, 두가지 강점이 있는데, 첫째는 긍정적으로 말하면, 구원은 하나님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밝은 면이 있다. 그러나, 어두운 면은 그런 관계를 추구할려고 하는 인간이 죄인이라고 하는 어두운 측면이 있다. 관계에는 동전의 앞 뒷면과 같이 두가지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있다. 긍정적인 측면으로서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고, 가치중립적인 태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반면에 부정적인 측면은 그러한 관계를 맺으려고하는 사람이 죄인이라는 속성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개혁주의 구원론에서의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이러한 대립적인 이해는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은 적극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반드시 요구되는 것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야 하며, 아버지라 부르며, 그 분을 순종함으로써 적극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구원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구원의 명령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간은 이러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너무나 타락한 죄인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런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멀리하려고 하고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속성을 보유하고 있다. 어떻게 이 두 가지가 양립할 수 있는 것일까? 이 구원론의 문제에서 바로 이 두 가지 대립사이에 개혁주의 구원론이 서 있는 것이다. 개혁주의 구원론은 언제나 이 두 가지 원리하에서 움직인다. 첫째는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서 적극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언제나 강조하고 있다. 또 한편은 인간은 하나님을 언제나 멀리 하려고 하는 자연적 속성, 육체적 원리를 갖고 있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항상 유지되고 말해져야 하는 것이 개혁주의 구원론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을 해석할 때, 즉 우리들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명령을 해석할 때에도 이 두 가지 원리가 그 말씀아래 전제되어 있다. 따라서 이 성령론에서는 구원의 성취(구원론1.) 또는 구원의 획득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성취된 구원이 성령님을 통하여 어떻게 각 개인에게 적용되고 사용되어지느냐? 를 다룰 것이다. 그리고 그 성령의 사역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 에 있어서 이번 학기의 강의의 주요 초점을 맞출 것이다.


  개혁주의 구원론에서는 원래 3가지 분야를 다룰 예정인 바, 첫 번째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성취된 구원에 적용의 문제(구원론2.)를, 둘째는 성령에 의하여 각 개인에게 주어진 구원의 가시적 적용으로 보여주는 성례전에 관한 문제를, 세 번째로는 구원의 종말론적인 완성을, 즉 육체의 부활, 영광, 영생과 같은 주제를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학습시간 여건상 첫 번째 까지에서 멈출 것이다.


  웨슬리안 신학자로서 윌리암 버 포프(William Burt Pope) 라는 분이 있는데, 이 분은 ‘구속사역의 적용’이라는 말을 매우 회피하였다.‘적용’이라는 말 속에서 예정론의 오류 혹은 은혜에 따른 선택이라는 보증된 목적에 따라 개인에게 적용된다 하는 주장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아,‘적용’이라는 말을 예정론과 결부되어 있음으로 이‘적용’이라는 단어 사용을 거부하였다.‘적용’이라는 단어는 쉽게 예를 들면, 영화관의 영화 표가 한정되어 있는데, 여러 사람이 있는 가운데, 이 극장표를 한정된 사람에게만 나누어 주는 것을 나타내는 말로, 선택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적용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예정론 자체도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모든 사람이 모두 구원받게 되어 있다면 굳히 적용이라는 말 자체의 의미를 상실하기 때문에 웨슬리안은 원래적부터 예정론을 믿지 않으므로써 성령의 적용을 극구 부인하였다. 성령의 적용이라는 결과로 믿고 회개하고 중생하고 거듭나고 의롭게 되고 양자의 영을 받고 성화되고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까닦에 웨슬리안적인 즉 알미니안은 이러한 예정된 적용을 믿지 않는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전에 선택되어진 예정적 작정하시는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잘 알 수 있다. 에베소서 1장 4절1)에서와 같이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는 사랑인 것이다. 창세전에 우리를 자녀 삼으신 하나님의 사랑은 요한계시록에서도 확연히 알 수 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그 사랑이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전에 작정된, 우리 인간의 어떠한 행동도 있기 전의 그 사랑이 바로 이 선택적 사랑인 것이다. 이 예정은 창조보다 먼저 있는 것이고 이 처음 사랑은 우리보다 하나님께서 먼저 있어진 그 위대한 사랑인 것이다.


  펠라기안니즘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실 근거를 마련하였음으로 이제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하는 순간에 그는 구워네 들어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전적으로 구원은 결단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펠라기안니즘의 최고의 슬로건은‘결단하라’이다. 이와 비슷하게 알미니안도 자유의지를 강조하는데, 구원의 방식에 있어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하나님께서 영원전에 구원받을 사람들의 집단을 만들었고 그 집단으로 예정하였다고 주장한다. 무슨말인가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 몇몇을 한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지 정체(indentify),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즉 구원받을 택자의 각각을 예정하지 않고 단지 집단으로만 예정되어 있으므로 그 집단에 속해있는 사람이 믿기로 작정한다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집단에 속해있는 사람이라도 믿기를 거부하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펠라기안주의와 알미니안주의가 약간의 차이점이 있지만, 자유의지를 강조한다는 면에서는 동일한 것이다.


  죤 웨슬 리가 알미니안주의자로서 알미니안의 월간지를 편집하는 편집장까지 지낸 바 있다. 근본적으로 웨슬리안 주의는 이러한 선택된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특정한 예정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을 영원전에 아시고 영원전에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즉, 개인적인 구원의 예정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적용’이라는 말의 정확한 표현은 이렇게 개인적이고 구체적이며 인격적인 특정한 예정을 전제할 때, 적용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영원전에 지명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가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성취하고 난 후에, 바로 그 사람에게 적용할 그 구원의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예를 들어 표현하면, 크리스마스 선물때, 선물 꾸러미를 가족들에게 왕창 묶어서 준비하지 않고 각각 이름을 명기하여 큰애, 작은애 것을 표시하여 선물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개혁주의 예정론은 이처럼 개인적이고 특정적이며, 제한적이며 배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써, 하나님의 이 예정은 특별히 배타적으로 예정된 사람을 위한 특별 은총을 마련하여 놓으신 것을 성령이 주신다는 뜻으로‘적용’ 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성취된 구원을 나에게 적용해 주셔서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바란다. 윌리암 버 포프(William Burt Pope)는 이 적용이라는 단어 대신에‘구속의 시행’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시행이라는 말은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건전한 용어가 아니다. 오히려 적용이라는 말이 가장 바람직하다. 루이스 벌코프도 적용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교회론은 성령의 사역을 다룰때 반드시 논의 되어야 한다. 루터는 로마교회적 사제제도적 관점을 가지고 교회를 이해한 반면에, 개혁주의 관점는 교회를 구원의 연합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로마 카톨릭교회는 하이 아키(high-arcky)한 체계로써 교황, 추기경, 대주교, 신부 등의 계급적 서열(사제)제도에서 구성된 조직의 틀을‘교회’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로마 카톨릭교회는 가시적인 외형의 교회안에 참여하는 것이 구원의 방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유대주의와 로마교회는 유사한 교회의 구원론적 유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를들면, 로마교회는 성찬식에서의 은혜의 주입(gratia infusa)인 화체설의 견해를 가지고 있으므로 개혁주의 성찬식이 갖는 영적인 적용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과는 다른 것이며, 또한 성령의 구속의 적용인 것과는 다른 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사역을 다룰때 반드시 교회론을 다루어야 하는 이유는 칼빈의 개혁교회는 교회를 구원받은 각 성도(개인)의 모임을‘교회’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일체 건물을 교회라고 보지 않는다. 어떠한 조직체도 교회로 보지 않는다. 오로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교회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코람데요(Coram Deo)라는 말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은 개혁주의자들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 자신이 교회이기 때문이다. 건물에 들어가든지 나오던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요 그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 앞에 대면하는 성스러운 자리가 펼쳐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칼빈의 말에 따르면, 은밀한 곳에 누울때에도 교회는 거기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개혁주의자들이 하나님의 존전을 떠나 서는 살지 못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하는 일이 거룩하고 그 모든 일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성속(聖俗)과 교회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했다, 개혁주의 신앙인들은 자기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였다. 이러한 신앙적 삶의 태도는 개혁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성령의 올바른 이해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는 것이고, 바로 그 교회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순서상 왜 교회론을 성령론 아래의 한 부분으로 두어야 하는 이유는 구원받은 각 개인, 개인이 성령의 구속으로 말미암은 결과물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교회론 안에서 다루어야 할 부분이 은사론인 것이다. 이것은 은사가 구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단지 교회론적 은사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이 은사는 구원받은 자가 교회로써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기능과 선물에 불과한 것이다. 은사는 구원받은 자의 결과로써 나타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 예로써 방언은 구원받은 자의 필수 불가결한 필요충분 조건이 아닌 것이다. 다만, 교회로써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은혜로우신 선물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성령론 안에서 조직신학을 많이 다루지 안했음을 살펴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역사적으로 조직신학을 작성한 찰스 하지 또는 워 필드 같은 분들은 조직신학을 전개할 때 성령론안에서 교회론을 다루지 않했기 때문에 이러한 모순된 모습을 낳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교회론은 성령론 할 때 심도 있게 지적되고 다루어야 할 중요한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조직신학의 순서상 구원론, 성령론, 교회론, 은사론의 순서대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이어서 2부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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