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저는 평산신씨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고
오해하는 평산신씨平山申氏와 고령신씨高靈申氏와의 관계를 서술하겠습니다.
고령신씨와 평산신씨 사이의 오해로는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열거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평산신씨와 고령신씨는 뿌리가 하나이고, 兄(평산)弟(고령)지간이다.
2.고령신씨의 시조는 신숭겸 장군(평산신씨의 시조)이다.
평산신씨와 고령신씨는 한 뿌리가 아니며 형제지간 또한 아닙니다.
고령신씨의 시조는 신숭겸 장군(평산신씨의 시조)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특히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평산신씨와 고령신씨를 한 뿌리요,
兄弟지간으로 보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고려 개국 일등공신이신 평산신씨의 시조 신숭겸 장군의 '신숭겸申崇謙'이라는
이름은 태조 왕건께서 하사하신 이름으로, 본명은 삼능산三能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평산신씨의 조상들은 신라 말까지만 하더라도 성이 三氏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령신씨의 시조는 고려시대에 군기감검교軍器監檢校를 지낸 신성용申成用이십니다.
시조 신성용 이전의 조상 즉 고령신씨의 조상은 신라시대 귀족이요 호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평산신씨와 고령신씨는 시조도 다르고 그 연원도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1.왜 많은 분들이 평산신씨와 고령신씨를 한 뿌리요,
형제지간으로 오해를 하고 있을까요?
2.정말 평산신씨와 고령신씨는 아무관계도 없는 건가요?
평산과 고령을 한 뿌리로 오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같은 '신'자에 한자도 같은
'申'자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申氏에 많은 본관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사람 수가 많고 명문인 본관은 크게 2가지입니다.
평산신씨(신씨중 70%)와 고령신씨(신씨중 20%)이지요.
그러니 평산과 고령을 형제지간으로 생각하거나 오해를 했을수도 있겠지요.
위에 봄과 같이 고령신씨와 평산신씨는 本이 다릅니다.
그러나 평산신씨와 고령신씨가 정말 아무 관련이 없는 남남은 아닙니다.
먼저 예전에는 가문과 혈통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그러므로 가문이 끊기는 것을 원치 않았지요. 그러므로 부부 슬하에 아들(子)이 없으면
양자를 들이고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양자를 아무데서나 데리고 오지는 않았습니다.
가장 선호하는 양자는 같은 가문의 사람이었고, 두번째로는 같은 가문은 아니되 성姓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즉, 고령신씨인 부부에 자식이 없으면 먼저 고령신씨 내의 사람들을 찾아보고
다음으로는 같은 '申'자를 쓰는 평산신씨 중에서 데려오는 것이지요.
평산신씨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 평산신씨의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이 고령신씨의 족보에 올라가기도 하고
고령신씨의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이 평산신씨의 족보에 올라가기도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평산신씨와 고령신씨를 남남으로는 볼 수 없지요.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평산신씨와 고령신씨끼리는 왠만해서는 서로 혼인을 禁했습니다.
비록 동성동본은 아니지만, 동성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또평산신씨와 고령신씨는 같은 本은 아니더라도 같은 신씨라는 이유로 다른 성씨와 비교해서
서로의 유대감이 강했을 것입니다.
서울에서 경남 사람이 경북 사람을 만나면 같은 경상도라며
반가워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말이 길어졌습니다. 지금까지 서술한 글을 요약하자면 평산신씨와 고령신씨를 같은 뿌리로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같은 뿌리가 아니며 서로 다른 시조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평산신씨와 고령신씨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평산과 고령이 서로 양자를 주고 받는 일이 많았으며 동성(申)이라는 이유로 서로의 혼인을
금했고 타성에 비해 서로의 유대감이 강했습니다.
이상으로 제 미흡하고 부족한 글을 마칩니다.
볼품없는 낙서조각들을 읽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모든분들이 항시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