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세기 24장 67절, 전도서 4장 1절, 이사야 40장 1절, 로마서 12장 4~8절
이삭은 리브가를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그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리브가는 이삭의 아내가 되었으며, 이삭은 그를 사랑하였다. 이삭은 어머니를 여의고 나서, 위로를 받았다. <창세기 24장 67절, 새번역>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전도서 4장 1절, 개역개정>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너희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이사야 40장 1절, 새번역>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로마서 12장 4~8절, 개역개정>
아브라함은 어느덧 140세, 나이가 많은 노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는 일마다 복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나이가 많은 노인이 되었다.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는 일마다 복을 주셨다. <창세기 24장 1절, 새번역>
이 구절을 통해 우리는 '이삭'을 바치고 돌아온 후로부터 여전히 아브라함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믿음으로' 자신의 여정을 달려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여정의 마지막을 장식할 일을 행하고자 합니다. 바로 이삭의 아내, 믿음의 며느리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신이 살던 가나안의 딸들 중에서 이삭의 아내가 될 며느리를 찾지 않았습니다. 엘리에셀을 자신의 고향으로 보내 아브라함의 동생이었던 나홀의 아들 브두엘의 딸 '리브가'를 며느리로 삼게 됩니다. 리브가 역시 이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직감했는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파격적인 행보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것도 어제 처음 만난 엘리에셀을 믿고 따라나선다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일이었겠습니까? 하지만 리브가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로 길을 떠나게 됩니다. 분명하게 느낀 바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이 리브가를 불러다 놓고서 물었다. "이 어른과 같이 가겠느냐?" 리브가가 대답하였다. "예, 가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를 아브라함의 종과 일행에게 딸려보내면서, 리브가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우리의 누이야, 너는 천만 인의 어머니가 되어라. 너의 씨가 원수의 성을 차지할 것이다." <창세기 24장 58~60절, 새번역>
실로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 리브가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주신 언약을 이어가기 위해 이삭의 아내로 택함을 입은 리브가였습니다. 가족들의 배웅 인사만 들어봐도 왜 아브라함이 자신의 고향에서 며느리를 찾으려고 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잠시 산책길에 과거를 회상해 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섬기던 여러 교회에서 청년들과 오늘 본문을 함께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꽤나 거센 항의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왜 꼭 믿는 사람과 결혼해야 합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결혼해서 전도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이런 질문들을 저에게 던집니다. 저는 솔직히 아무 대답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해라, 저렇게해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결정은 본인 스스로가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방법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하는 바램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을 설명해 주는 것이 저에게는 정말 중요한 과업과도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창세기 50장 중에서 가장 길게(총 67절) 설명되어 있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보면, 당시에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살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이 다시 그두라와 결혼하여 자식을 더 낳게 되는 것도 이유가 될 것이고, 모리아산 '이삭을 드린' 사건 이후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대하는 방법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이삭은 이미 브엘라해로이에서 떠나서, 남쪽 네겝 지역에 가서 살고 있었다. <창세기 24장 62절, 새번역>
이삭도 어느새 40살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볼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갈 자녀가 아직도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의아할 수 있지만, 그만큼 신중하고 중요하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 것으로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도무지 가나안에서는 자신의 짝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이삭에게 지금 리브가가 아내가 되기 위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삭은 마흔 살 때에 리브가와 결혼하였다. 리브가는 밧단아람의 아람 사람인 브두엘의 딸이며, 아람 사람인 라반의 누이이다. <창세기 25장 40절, 새번역>
훗날 리브가를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어린 나이에, 이런 용기를 내어서 이삭의 아내가 될 수 있었는지 말입니다. 아무리 이해해보려고 해도 하나님의 개입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었다면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은 '의문 투성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이삭은 엘리에셀로부터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리브가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리브가는 이삭의 아내가 됩니다.
이삭은 리브가를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그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리브가는 이삭의 아내가 되었으며, 이삭은 그를 사랑하였다. 이삭은 어머니를 여의고 나서, 위로를 받았다. <창세기 24장 67절, 새번역>
이삭은 리브가가 너무도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자신을 위해 이렇게 먼 곳까지 와 준 그 마음만으로 이미 사랑에 빠진 이삭입니다. 그리고 리브가를 통하여 어머니 사라가 떠난 빈자리를 잊어버리게 될 '위로'를 경험하게 됩니다. 실로 이스라엘판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의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으십니까?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여리고 어리숙했던 이삭과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렸지만 진취적이고 도전적이고, 열정적인 리브가의 만남은 정말 천생연분인듯 보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갈 부부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자연스럽게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는 '이삭과 리브가'로 이어져 갑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셨던 하나님은, 이제 이삭의 하나님이 되셔서, 이삭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가십니다. 그리고 이삭이 그 역사를 이루기 위해 옆에서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존재가 리브가입니다. 사라가 그저 아브라함의 옆에서 침묵하며 묵묵히 도운 조력자였다면, 리브가는 이삭을 리드하며 열정적으로 돕는 모습을 보인 조력자입니다.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하는 동역자 여러분, 오늘 '위로자' 리브가의 모습을 보면서 함께 이렇게 기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만약에 아들이 있다면 리브가같은 아내를 만났으면 좋겠다는 기도 말입니다. 만약에 딸이 있다면 리브가같은 여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도 말입니다. 결혼할 아들, 딸을 두고 계신 부모님이라면 더더욱 저와 함께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브라함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계속해서 이어져 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하나님이 맺어준 귀한 '천생연분'을 만나도록 꼭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리브가와 같은 '위로자'를 만날 수 있기를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위로자'가 되어줄 수 있도록, 가정에서부터 리브가를 만남으로 위로가 가득하여, 가정으로부터 시작된 위로가 이 땅에 넘쳐나기를 소망해 봅니다. 점점 더 이 세상은 '손가락질'과 '비판'이 가득한 척박한 사막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척박한 사막을 옥토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사랑을 기초로 한 '위로자'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로마서 12장 6~8절, 개역개정)
그렇기에 먼저 우리네 가정에 '위로자'가 꼭 있어야 합니다. 위로자는 보듬어 주기도 하며, 회복시키며, 인도해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에너지를 공급해주기도 합니다. 마치 성령님처럼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마땅히 우리 가정에, 우리 자녀의 가정에, 우리 교회에, 내가 속한 공동체에 이런 리브가와 같은 '위로자'가 오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면 우리가 '리브가'와 같은 위로자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아픔을 겪고 있는 수많은 이삭들을 위로할 '위로자'가 되어주는 존재가 그리스도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땅을 '회복'시킬 위로자, 이 땅을 사랑으로 '리드'할 위로자, 이 땅에 '공급자'가 될 위로자, 이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이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자. 이제 다음 창세기 산책에서는 아브라함과의 작별이 예고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삭과 리브가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스라엘을 형성하게 되는 '야곱'의 이야기로 산책 길이 이어집니다. 어떤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함으로 다음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위로자'라는 별명을 듣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마지막으로 말씀 한 구절을 나누고 갑니다.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너희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예루살렘 주민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일러주어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죄에 대한 형벌도 다 받고, 지은 죄에 비하여 갑절의 벌을 주님에게서 받았다고 외쳐라."한 소리가 외친다. "광야에 주님께서 오실 길을 닦아라. 사막에 우리의 하나님께서 오실 큰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계곡은 메우고, 산과 언덕은 깎아 내리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어라. 주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니,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함께 볼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이다." <이사야 40장 1~5절, 새번역>
https://www.youtube.com/watch?v=EtrePvBhvmk
https://www.youtube.com/watch?v=meSgxAy3RbY
https://www.youtube.com/watch?v=I2XWxrTkpBQ
https://www.youtube.com/watch?v=vnTShBf8jTc&list=PLAogYRb61YMgMFV12nZ-G6viJ1iSRT3oe&index=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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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aLxlEDEUYLg
https://www.youtube.com/watch?v=odk_0m8fmW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