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 인터뷰] 처절한 기타맨, 김일안 당원

[황혜원]

뜯어먹기 좋은 식빵같은 노래를

큰 키에 숱이 적은 머리를 길게 묶은 김일안 당원. 닉네임 ‘처절한 기타맨’ 만큼이나 쓸쓸한 느낌을 주는 사람, 집회 현장에서 여성보다 더 가느다란 목소리로 마치 음유시인이 읖조리듯 ‘명바기’를 향해 시원하게 욕설을 퍼붓는 모습에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워 음악에 눈을 뜨게 되었고, 중고등학교 시절엔 평범하게 지내다 대학에 가서야 자신의 끼를 발견하게 됐다고 하네요. 철이 들면서 갑자기 어려워진 가정경제에 보탬이 되려 일본에도 다녀왔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경험이 김일안 당원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었고 음악인의 길을 걷게 만든 원천인 것 같습니요. 거기에 영상과 다큐, 칼라TV와 진보신당을 만나며 삶을 더 탄력 있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봅니다.

인터뷰 : 황혜원

정리 : 이효성

장소 : 합정동 칼라 TV 사무실

‘처절한 기타맨’과 ‘칼라TV’는 어떤 관계인가요?

제가 한때 게임에 빠졌던 적이 있는데 제 리니지 게임 기사이름이 처절한 기타맨이예요. 그땐 정말 처절했죠. 지금은 평범한 김일안이나 상냥한 기타맨으로 이름을 바꾸려고요. 그래도 그 게임 덕분에 제가 다큐를 하게 됐어요.

칼라TV는 2008년 초 진보신당을 창당하고 4.9 총선을 준비하느라 만들었는데 이름을 진보신당 칼라TV로 붙이고 활동하던 중 촛불이 터지면서 크게 활약했어요. 6월부터 8월까지 석 달 동안 피크였어요. 그때 HID 집회와 충돌해 젊은 친구 한 명이 코뼈가 부러지고 그래서 거기서 천막을 치고 한 달 넘게 살았어요. 그때는 촛불에 미쳤다고 봐야죠. 거기서 공연도 하고, 좋았죠. 말 그대로 전성기였죠.

칼라TV 한참 잘 나갈 때 이야기 좀 해 주세요

5년 동안 칼라TV 하면서 이 당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온통 칼라TV에 몰입해 이명선 앵커, 정태인 선생, 20대 젊은 당원,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불러다 리포터 맡기고... 그땐 정말 신났어요. 촛불이 주춤했을 때 칼라TV 진로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지속시키기로 했어요. 2008년도 촛불부터 2009년 용산까지 모든 집회 현장의 모습은 그대로 같아요. 저는 프레임으로 보는데 그게 모든 현장 다 똑같아서 생방의 한계를 느끼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죠.

합정동 칼라TV 사무실 입구 앞에서 김일안 당원

만화책인가요. ㅋㅋ

 그동안 촬영한 수많은 테이프들

기타는 어렸을 때부터 쳤나요?

엄마가 음악을 좋아하셨어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1까지 피아노를 배웠죠. 그 땐 집안이 좀 살만했지요. 고3때 짝이 성악을 했는데 저보다 피아노를 못 치더라고요. 그 친구 덕분에 자극도 받고 기분도 좋고... 제가 음악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었어요. 청소년기는 특별한 것 없는 것 같아요. 책 읽기 좋아하고 평범했죠. 고등학교 졸업하고 아빠가 경품으로 기타를 받아오시면서 기타에 미치게 됐어요. 제 인생이 바뀐 거죠. 머리는 대학 때 부터 길렀고요, 기타 치고 술 마시고 그러다 집안이 어려워지기 시작했어요. 노가다 뛰고 공장에서 일도 하고... 우리 집에서 개장사를 했는데 새끼 나면 팔고 제가 아르바이트 한 걸 합쳐 등록금을 마련했어요.

군대 갔다 오고 1년 정도 일본에서 불법체류를 했어요. 등록금 벌려고요. 고등학교 동창을 통해 일터를 소개 받고 건너간 거죠. 그 친구 말에 솔깃해서 일본까지 갔는데 완전히 사기를 당한 거예요. 일자리 연결이 안 되고 보름 동안 다른 사람 집에 살다가 친구네 아버지 공장에서 일했어요. 축산물의 부산물들을 사료로 만드는 공장인데요. 저는 돼지 껍데기에서 비계를 벗기는 일을 했어요, 6개월 동안 일하면서 빨갛게 된 거죠. ‘아,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구나.’ 소위 말하는 의식화가 자연스럽게 된 거죠. 자생적인 의식화... 그렇게 벌어서 기타 사고 동생 등록금 대주고 제 학교 마치고... 대학 졸업하고는 이벤트 회사 기획 맡았어요. 스물 아홉까지 3년 정도 일했지요.

영화도 하셨다고 하는데 음악에 대한 열정을 어떻게 이어가셨나요?

이벤트 일을 하다가 밴드를 만들었어요. 합정동 지하에 사무실 만들고 패션시티라는 프로그램에 FD 하기로 했다가 IMF가 터져서 벤드와 일이 모두 깨졌어요. 그 때 영화를 만드는 팀이 있었어요. 지하창작집단 ‘파적’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 관련 일을 했어요. ‘엄마의 사랑’이라는 영화를 찍었는데, 잘 나갔어요. 거기서 게이 역할을 했어요. 제 인생의 로망은 밴드예요. 음악은 하면서도 즐겁고 보면서도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영화음악 작업을 계속 했지요. 그러다 게임에 미친 거죠. 그게 서른세 살 때였을 거예요. 근데 그 때 그 시절이 좋았어요. ‘게임이 앞으로 사람들의 정신세계나 사람들의 일상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겠구나’라고 느꼈어요. 온라인게임의 경험은 하나의 세계예요. 그 세계를 경험하고 온 거기 때문에 하나의 중세시대를 사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거기서 악명 높은 왕이었던 거죠. 그런데 리니지를 가지고 다큐를 찍으면서 중독에서는 빠져나왔죠.   

오랫동안 함께 지내서 그런지 칼라TV가 집보다 더 편하다는 김일안 당원 

큰키에 어울리지 않게 수줍은 모습의 김일안 당원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잠깐 생각에 잠긴다.

식빵처럼 뜯어먹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은 김일안 당원 

원래 어떤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90년대 초반이었는데 정태춘이 노래를 하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래도 제가 이곳에 오니 사람들이 제법 모이지 않았느냐고... 학생들이 나를 잘 활용하면 좋겠다고... 그리고 ‘육만 엔이란다’ 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뽕짝 리듬에 실린 사회 비판적인 가사가 정말 탁월했어요. 노래의 형식과 가사 내용의 멋드러진 조화라 기가 막히더라구요. 그리고 하덕규의 경우 CCM으로 넘어가기 전에 쓴 노랫말들을 보면 그 당대의 암울한 분위기,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에서 상처받은 영혼이 스스로를 위무하기 위해 만든 노래라는 게 느껴져요 아주 개인적인 노래 말들이고 서정적인 멜로디인데도 불구하고 그 시대가 폭압적인 군부독재라는 것을 상대적으로 은유하고 증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급의식에 관한 부분은 정태춘의 영향을 받은 셈이고 노랫말은 개인적이지만 비유와 상징으로 시대에 관한 은유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공연을 하게 된 게 2007년인데 그 때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중간에 ‘딸기와 수박이 좋아요’로 표현했어요. 관객들의 반응은 정말 다양했어요. ‘이상하다, 재밌다, 저 친구 미친 거 아닌가’라는 거였죠. 공연이나 집회현장은 계속 다녔어요. 2008년 촛불시위 이후에 두리반 투쟁이 생기면서 음악과 현장, 투쟁과 결합한 촛불과 두리반의 역할이 생겼어요. 기륭에 거의 최초로 저 같이 약간 다른 음악을 하는 야마가타 트윅스터 같은 음악인이 등장하게 된 거죠. 자립음악생산협동조합이라고요.

앨범 냈다고 하셨죠?

지금은 음원만 맛보기로 보여 주고 있는데 성탄절 전에 나올 것 같아요. 반은 제가 노래를 부르는 거고 또 반은 콜라보레이션(협업음악)을 했어요, 제가 만든 노래를 다른 사람이 부르는 거죠. 녹음은 80% 이상 끝났어요. 락(rock)이예요. 이십대 때의 정서와 사십대 때의 정서, 그리고 계급적인 것들에 대한 비판과 평화적인 것들, 음악적인 측면에서. 사람들이 지치고 힘들 때 뜯어먹기 좋은 식빵 같은 노래가 되면 좋겠어요.

앨범을 많이 알려야 하잖는데 홍보 컨셉은?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는 노래, ‘민들레’라는 노래가 제 컨셉이예요. 고운 노래 같은데 가사에서 센 지점이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이 죽어가고, 사람들이 맞아 죽고 있는데 내가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워요. 괴이한 작품이 나올 것 같아요. 포지션이 재미있는 게 사람들은 저를 영상하는 사람으로 보지만 저는 음악으로 둘러싼 편견을 깨고 싶어요.

작곡은 어떻게 해요?

저는 노랫말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보통 떠오른 좋은 구절들을 계속 다듬어서 노랫말을 먼저 간단하게라도 정리를 해놓고 기타로 해요. 맘에 드는 코드를 골라 드르륵 치면서 즉흥으로 흥얼흥얼하다보면 악상이 완성이 되요.

진보신당에 어떻게 가입하게 된 거예요?

분당사태를 보면서 당 초창기부터 노심당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들어왔어요. 진보신당에서 나의 역할이라면 그래도 칼라TV에서 버텼던 게 큰 일 아니었나 생각해요.

당 문화예술위에서 어떤 역할을 하세요?

지금은 머릿수밖에 못 채우는 것 같아요. 당의 문화예술위원회인들을 도구적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소모되지 않게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문예위에서 당명에 대한 생각이 달랐는데, 다양한 의견 조율이 잘 안된 것 같아요. 당명 결정과정에서 약간의 비아냥거림 소리도 들었고요. 지금은 추스르고 있는 중이지요. 당도 그동안 지켜보면서 반쯤 기대를 접었어요. 그래도 당이 없어지기 전까지는 남아 있을 거예요. 첫사랑이 진보신당이기 때문에요.

용산당원 한지도 꽤 되었는데 지역 활동이나 당협에 하고 싶은 말?

다들 힘든 것 같아서 자주 보고 얘기 많이 하고 우리 당원은 대한민국 이 땅에서 그나마 생각이 가깝고 얘기하기 편하잖아요. 제가 양천에 사는데 양천에 서서울 호수공원이라고 거기서 버스킹을 해보려고 했는데 못하고 있어요. 로컬공연이요.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동네가 이 근처라 리어카 끌고 나와서 동네음악제를 해요.

거점공간이 있어야 뭐가 되는 것 같아요. 종로당협의 혁이네에서는 애들에게 기타를 가르쳐요. 매개체가 되는 거죠. 저도 사실 용산당협에서 기타 강습 하려고 했는데 당협 옆방이 기타 학원이라서 피해를 끼칠까봐 못하고 있죠, 여기에서 일렉 기타 레슨을 좀 할까 생각을 하고 있어요.

당이 앞으로 어떻게 갔으면 좋겠어요?

잘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서로 상처 주지 말고. 어쩌면 제가 제일 상처 많이 주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요. 저도 어쨌든 대의원하면서 느끼는 게 당원 한 분 한 분이 다 소중한 존재이기에 우리가 그냥 개인이다라고 생각하며 지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당에 대한 기대를 접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런 건 대부분 내부적인 문제예요. 문화예술위도 칼라티비도 도구적으로 많이 쓰였어요. 처음으로 촛불시위 현장에서 처음으로 칼라티비를 언급해 준 곳이 천주교 사제단이었어요. 그런데 가깝게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소모적으로 취급해요. 지금은 뭐 다들 헌신적으로 하는 친구들도 많은데 결정적인 순간에 떠난 사람들이 많아요. 남은 사람들도 다른 동지에게 상처주지 않았으면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묵묵하게 크게 사고 치지 말고 잘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기타맨_김일안]

정리하느라 수고하셨어용. 근데 으 사진이 주루루루루 ㅎ

[이효성]

인터뷰를 통해 선배님을 조금이나마 알게되어 좋습니다. 음반 나오기를 목이 빠져라 기대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