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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하나님 내가 누구죠? 원문보기 글쓴이: 隸僕
수사학비평
수사학비평, 55-87쪽 / 배경을 확대하기
트리블의 책 [수사학비평] / 유연희 박사 역
고전수사학, 문학비평 이론, 성서의 문학적 연구, 양식비평은 마일렌벅 방식의 배경 역할을 하였는데 이들 요소는 계속해서 성서 수사학비평이 벌어지는 문맥을 제공한다. 이 장은 제 1 장과 같이 다시 이 주제를 다룸으로써 수미쌍관법(inclusio)을 형성한다. 이것은 전경(foreground)에 대한 논의를 감싸는 구성이다(ABA').1 그런데 위의 각 방법론에 아이디어 폭발이 있었고 그래서 수사학비평의 상당히 복잡한 배경이 되고 사실 조절이 불가능하다. 방언과 방언의 혼동이 소란을 고조시킨다.2
A. 고전수사학과 그 이후
1. 서론
지난 1960년대 말(마일렌벅이 자신이 그 동안 해오던 방법에 이름을 붙인 것과 같은 시기)에 고전수사학 분야가 확장되기 시작했다. 주요 자극/추진력는 10년 전에(1958) 유럽 철학자인 Chaim Perelman과 L. Olbrechts-Tyteca의 연구에서 나왔다. 원래 불어판의 영역이 1969년에 The New Rhetoric: A Treatise on Argumentation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3 이 수사학은 사실 옛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재현한 것이다. 이 책은 설득과 설득 수단에 초점을 두었다. 두 저자는 논쟁(argumentation)이라는 영역의 철학적 근거를 설명했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논쟁은 의견이 일치된 원칙을 통해 문제점을 논쟁하고 동의를 얻음으로써 생각 공동체를 형성하고자 한다고 했다. 그들은 고전수사학의 다섯 요소 중 인벤티오(inventio)와 디스포시티오(dispositio)를 중시했고, 엘로쿠티오(elocutio)를 논쟁 내에서 기능하는 것으로 종속시켰고, 현대 문화에 적용할 수 없다고 하여 메모리아(memoria)와 악티오(actio)를 뺐다. 또 이들 저자는 의사소통의 모든 행위에 관여된 세 요소(연설가, 연설, 청중) 중에서 연설가와 청중의 관계를 중시했고 그래서 수사학의 사회사적인 문맥을 중시했다. 그들은 연설의 세 종류인 (the epideictic), (the deliberative), 사법적 (the judicial)는 모두에 대해서는 호소했다. 각 비록 그들은 수사학이 모든 인간의 담론discourse을 특징짓는다고 주장했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논쟁의 제 기술을 구분하고 설명하였다.4 그들은 결론에서 논쟁이 사회사적인 공동체들의 언어가 될 가능성에 대해 강조했다. 고전수사학은 (새 수사학)이 강제하거나 독단적이지 않고서, 이성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한다고 재진술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자유를 늘린다.
수사학비평 분야는 계속 발전하고 있기에 "새 수사학"이란 마지막 말이 될 수 없다. 버나드 브락(Bernard Brock), 라벗 스캇(Robert Scott), 제임스 체스브로(James Chesebro)가 편집한 원문과 주석을 모은 책을 보면 관점이 끝없이 전개하는 것을 알 수 있다.5 수사학을 "상징을 사용하여 협조를 이끌어내는 인간의 노력(the human effort to induce cooperation through the use of symbols)"이라고 정의함으로써6 이 지은이들은 엄밀히(by imprecision) 과정과 산물을 포괄하고자 했다. 그런데 수사학의 목적은 그들의 정의 이상으로 확장되었다. 협조를 유도하는 목적(설득 the persuasive)과 더불어 사물에 대해 배우려는 동기(교육 the pedagogical)가 있고 또 통찰을 낳고 시험하는(이론 the theoretical) 목적이 있다. 이처럼 다양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사학비평은 묘사와 해석과 평가라는 세 과제를 수행하였다.7
이 지은이들은 토마스 쿤(Thomas Kuhn)의 작업을 적용해서8 수사학비평이라는 분야가 20세기에 성장했다고 지적하면서, 건물을 하나씩 쌓듯이 점차로 통찰을 축적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제안과 프로그램이 건물의 기반을 이동시키는 것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관찰하였다.
옛 패러다임인 전통적인 실제(reality)모델이 점차로 자신의 약점의 무게로 무너지고, 새 패러다임이 서로 충성을 다짐하였다. 따라서 이 지은이들은 먼저 전통적인 관점을 다루었고 그런 다음 전통적 관점에 반대하는 네 관점을 다루었다. 그들은 각 관점의 방향, 가정, 일치/동의(consensus)를 설명했다. 주석이 들어있는 이 책은 주제의 폭발과 혼동에 대해 설명하였다.
2. 다섯 관점
a. 전통적인 관점
20세기 전반부에 재형성된 전통적 관점은 문학과 수사학을 구분하였다.9 문학은 담론(discourse)의 영구적 가치에 관심을 가졌고, 수사학은 듣는 이들에게 주는 효과에 관심을 가졌다. 이 차이를 고려할 때 방향(orientation)은 화자의 전문성에 중점을 두었다. 가정(assumptions)은 먼저 역사상 이미 수립된 범주의 담론이 적용하는 안정된 상황을 가정하고, 그런 다음 수사학을 추정된 실재를 반영하고 묘사하고 모방하는(mimetic) 것으로 이해했다. 동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기본 프로그램을 형성했다고 주장했다고 보는 것인데, 특히 수사학을 "어떤 주제에 관해서든 가능한 설득 수단을 발견하는 기능/능력"이라고 정의한 부분에 대해 그러하다.10 전통적인 관점은 두 부류로 나타났다. 신아리스토텔레스파는 완전한 고전수사학을 고수했고, 역사학파(the historical)는 초점을 화자와 연설과 시대로 좁혔다. 이 두 학파는 수사학비평의 과제로 해석과 평가보다는 묘사를 강조했다.
1960년대에 이 관점에 대한 주요 도전이 나왔다.11 종합성은 실제로 불가능했고, 화자를 강조하는 경향은 수사학 담론을 형성하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영향을 설명하지 못했다. 한편 의사소통 행위에서 독자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관심이 실로 화자와 연설과 청중과 상황과 사회의 복잡한 상호관계로 확대되었다. 전통적인 관점이 남아있기는 하나 더 이상 주도권을 갖고 있지 않다. 주도권을 갖고 있지 않기는 다른 어느 관점도 마찬가지이다.
b. 경험적인 관점
경험적인 관점은 조직적인 프로그램과 화자 중심의 태도에서 벗어나 평가하고 통찰을 경험하고 논점을 제시하는 비평가를 강조한다.12 여기에는 두 부류가 있다. 먼저 절충학파(the eclectic)는 비평가의 능력을 강조하는데, 최상의 표준과 원칙과 사상을 선택하고 정해진 체계없이 그들을 분류하고 또 수사학 행위 속에서 작용하는 다양성을 보여주는 능력을 말한다. 그리고 인식론학파(the epistemic)는 지식을 강조하는데, 객관적이기 보다는 상호주관적 지식을 강조한다. 그 어느 것도 고정되거나 최종적이지 않고 순간순간 언어가 세계관을 발전시킴에 따라 변한다. 그 어느 출발점도 관점의 방향을 정하지 못한다. 즉, 비평가가 정하는 선택에 달려있다. 사회는 과정 중에 있고, 사상과 방법과 태도가 무한히 섞여서 공공의 담론을 형성하며, 그 어느 분석체계도 기본적으로 임의적이라고 가정한다. 담론은 계속 새로운 연구가 필요하다고 동의한다.
c. 연출의 관점
"연출(dramaturgical)"이라는 말 뒤에는 역사가 있다. 이 말은 Perelman과 Olbrechts-Tyteca의 (영어와 불어) 책 제목인 "새 수사학"에서 시작한다. 때를 맞추어 복수인 "새 수사학들"이 단수를 대체하여 다양성을 나타냈다. Brock과 Scott이 자신들의 책 첫 두 판에서 이 변화를 반영하였다.13 이제 제 삼판에서 "새 수사학들"은 연출의 관점과 사회학적 관점이라는 두 가지 뚜렷한 관점으로 자리를 양보했다.14
각본 관점은 수사학의 핵심으로서 상징에 초점을 둔다. 이 관점은 세 접근을 통합한다. 극작가의 접근은 수사학의 강조점을 설득에서 동기로 이동하여 심리적 요소를 강조한다.15 환상 주제라는 접근은 화자-청중의 드라마를 탐구하여 "수사학적 비전"을 일으킨다.16 설화(narrative) 접근은 설득과 심미라는 두 수사학적 강조점 사이에 변증법적 종합을 이룬다.17 그 어느 단일 이론도 각본/극작/연출 관점을 지배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교제 이해를 위한 안정된 관계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는 과정 중에 있으나 안정된 관계가 인간 상호작용을 지배하고, 공공 담론을 연구하기 위해 융통성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고, 구체적인 상징이 인간의 현실 이해를 돕는다고 가정/전제한다. 수사학비평은 생산적인 연구를 하기 위해 통일된 윤곽이 필요하다고 동의한다.
d. 사회학적 관점
사회학적 관점은 "새 수사학들"을 밀어낸 둘째 관점으로서 사회와 의사소통의 상호관계에 중점을 둔다.18 여기에는 네 가지 주요 접근이 있다. 사회언어학적 접근은 언어를 사회와의 관계성 속에서 연구한다. 일반적(generic) 접근은 상투적인 의사소통 형식이 사회에서 어떻게 기능하는가를 탐구한다. 사회적 접근은 선택과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이동(movements)의 담론을 연구한다. 페미니스트 접근은 성의 수사학을 사회 제도와 계급과 과정과 결정을 설명하는데 "안정된 변수(stable variable)"로서 조사한다. 이 관점의 경향은 사회와 의사소통 사이의 계속적이고 상호적인 작용을 강조한다. 이 관점의 전제는, 사회는 안정성을 추구하고 변화를 경시하고 사회의 가치와 방법이 의사소통의 경계를 정하며 사회의 상징이 개인의 수사학적 가능성을 결정하고 사회가 말-사상-사물의 관계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여러 이론을 허용하지만 동의는 수사학비평의 기초가 사회를 조사하는데서 온다고 한다.
e. 현대 이후의/ 탈현대적 관점
1980년대 초기 동안에 두드러지게된 탈현대적 관점은 사회의 본질에 대한 주요 변화가 세계적으로 생겼다고 주장한다.19 이 변화는 적어도 다섯 분야를 대조하는 데서 알 수 있다. 첫째, 현대 비평가는 정보가 개인에게는 외부적인(extrinsic) 것이고 개인이 별도로 정보와 연관을 갖는다고 본다. 탈현대 비평가는 개인이 정보를 선택적으로 다루어서 정보를 만든다고 본다. 둘째, 현대 비평가는 양식, 즉 창조의 예술적이고 상징적인 산물을 비평 즉, 형식에 대한 반응으로부터 분리한다. 탈현대 비평가는 형식과 비평을 구분하지 않고 그 둘을 설득의 방식이나 사회적 힘으로 본다. 셋째, 현대 비평가는 객관성과 주관성의 이분법을 가정한다. 탈현대 비평가는 모든 견해는 이데올로기적이며 객관성은 없다고 주장한다. 주어진 시간과 장소에서 개인의 편견이 묘사를 결정한다. 넷째, 현대 비평가는 사회가 보편성으로 질서잡혀 있고 전문가들이 통제한다고 본다. 탈현대 비평가는 사회가 대중을 반영하여 모순투성이라고 본다. 다섯째, 현대 비평가는 사회를 설명하는 이론들을 정립하려고 노력한다. 탈현대 비평가는 모든 상황의 독특함 또는 특수성을 강조하고 그래서 이론을 회피한다.20
사회의 본질 이해에 대한 이러한 주요 변화는 다른 수사학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탈현대 비평가는 "본문(text)"과 "작품(work)" 개념 사이를 결정적으로 구분한다. 작품은 물리적 대상일 뿐이고, 본문은 작업에서 나온 반응 또는 경험으로 확대된다. 즉, 작품에 대한 반응이 본문을 만든다. 본문 분석의 한 방식인 수사학비평은 원작을 새 환경(settings)으로 가져오고 그럼으로써 원작을 바꾸거나 대체하기까지 한다. 거꾸로 수사학비평 자체는 원작이 되고 본문 분석을 겪게 된다. 그렇다면 비평은 이데올로기적 구조물이다. 비평은 편견에서 나오며, 다양하고 또 모순되는 여러 의미를 낳는 실제 독자를 필요로 하는데 그런 의미란 본래적이고 불가피하다. 의미의 다양성 및 작품과 본문의 분리가 탈현대 수사학비평을 정의한다.
저자의 원작과 비평가의 본문 사이의 차이를 밝히기, 이 차이의 이데올로기 기초 또는 세계관을 설명하기, 이 차이의 사회적 암시를 찾아내기, 저자의 작품과 비평가의 본문에서 나오는 정치 또는 역학 관계를 평가하기 등 네 가지 전략이 탈현대 수사학비평의 작업이다. 건설주의(constructionist)와 해체주의(deconstructionist) 등 두 방법론이 위 전략을 수행한다. 건설주의는 상이한 청중이 단일 작품을 향해 보이는 모순되는 반응을 드러낸다. 해체주의는 어떻게 힘의 상징들이 작품 안에서 스스로를 훼손하는지를 드러낸다.
탈현대적 관점의 경향은 본문의 힘과 모순을 탐구하는 비평가에게 초점을 둔다. 이 관점은, 현대 산업사회가 상징적 구성물(본문)을 사회 통제의 형식으로 사용하고, 비평가는 이 구성물을 밝혀야 하고, 비평가는 사회운동가로 기능하고, 말-사상-사물의 연결은 지배와 복종의 힘 관계를 지지하려고 임의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 관점이 동의하는 것은, 보편적인 의미를 거부하는 대신 배경, 가치, 시간, 공간, 성, 인종, 계급과 같은 구체적인 상황이 인간이 상징을 어떻게 만들고 사용하는가를 결정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요약. a. 고전수사학과 그 이후. 브락과 스캇과 체스브로는 현대 수사학비평을 무패러다임이라고 묘사한다.22 많은 사상이 언어의 모호하고 임의적인 본질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서로 경쟁하고 결합하고 겹치고 분리한다. 다원주의가 지배한다. 그런데 이들 저자는 제안하기를, 많은 관점 간의 차이가 멀지 않아 서로 결합하여 광범위한 분야간 교류식(interdisciplinary) 내지는 초월적이기까지 한 수사학의 정의를 낼 것이라고 한다.
b. 성서 수사학비평. 현대 수사학비평의 다원주의가 성서학계에 있다는 사실에 놀랄 것도 없다. 제 2 장에 나온 여러 예가 이 점을 말해준다. 기태이(Gitay)는 전통적인 관점을 사용했다.23 런드밤(Lundbom)은 사회학적 관점의 모델이다. 크래븐(Craven)은 경험적이고 연출적 관점을 반영한다. 패트릭(Patrick)과 스컬트(Scult)는 경험적 관점을 보여준다. 클라인스(Clines)는 탈현대를 대표한다. 이러한 다원주의는 마일렌벅의 공헌을 역사적이고 사회학적으로 생각하는데 도움이 된다. 수사학비평이 확장하기 시작했던 1960년대 동안에 마일렌벅은 재형식/공식(reformulation)을 제공했다. 관점이 확산되던 시기에 그의 공헌은 여러 갈래로 발달하게 되었다. 달리 말해서 그의 "작품(work)"은 많은 "본문(texts)"을 불러일으켰고 그럼으로써 그의 프로그램에 대한 제 비평을 상대화시켰다. 다원적 입장은 성서 수사학비평이 단일 모델에 들어맞아야 한다는 가정을 제거한다.24 또한 수사학비평이 "문학비평과 구분이 안된다"는 부정적 판단을 무시하며,25 수사학 분석이 연설을 정치적 힘으로 보지 못한다는 비평을 누른다.26 이러한 탈현대적 판단은 수사학을 한 현상으로 제한하거나 아니면 거꾸로 그 현상에 수사학을 제한하는 넓은 의미를 붙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간에, 큰 주장은 자신이 험담하는 좁은 견해가 된다. 그러나 다원적인 상황에서는 모델은 변하고 분야간의 경계는 열리고, 힘이 꿈꾸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 수사학 관점의 과잉은 마일렌벅의 방식에게 한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명령하지 않고 존재할 자리를 허락한다.
B. 문학비평 이론
고전 수사학비평과 마찬가지로 문학비평은 1960년대 이후로 폭발했다. 전에 아브람스가 제안했던 모델인 지속되기는 했지만 모방, 실용, 표현, 객관 이론은 상당한 수정을 겪었다. 이 개관은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1. 서론: 경계에 대한 프라이(Frye)
1957년에 나온 프라이의 Anatomy of Criticism은 20세기 전반부를 지배했던 객관 이론으로부터의 결정적인 전환이 되었다.27 프라이는 신비평(New Criticism)의 분리주의(isolationist) 경향을 유감으로 여겼다. 그는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이라는 말을 비난했고, 종합적인 분석 체계가 없는 정독(close reading)은 헛된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는 또한 개별 저자를 높이는 표현(expressive) 이론을 거부했고 그래서 실용적 또는 정서적 경향으로 옮겨갔다. 문학은 일관성 있는 문학적 맥락에 있는 "말의 질서(order of words)"이다. 비평가는 구조 원칙, 상투적 형태, 원형적 분류법, 기초 법률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는 틀을 설명해야 한다.
프라이가 체계적인 문학 연구를 위해 기획한 네 개의 논문 중 하나는 "Rhetorical Criticism: Theory of Genres(수사학비평: 장르 이론)"이다. 그는 수사학에는 장식적인 연설과 설득적 연설 등 두 가지 전통적 의미가 있다고 했다. 전자는 문학과 불가분리하고 후자는 문학에 적용할 수 있다. 그는 두 가지 의미를 수용하면서 문학은 "문법과 논리의 수사학적 조직(the rhetorical organization of grammar and logic)"이라고 묘사했다.28 말이 행동되고 말해지고 씌어지든 간에, 장르는 발표(presentation)의 수사학을 만든다. 그는 희곡(drama), 서사시(epic), 서정시(lyric) 등의 고전 분류에 "인쇄된 쪽의 장르(the genre of the printed page)" 즉, 임의로 부른 "허구(fiction)"를 첨가했다. 장르의 목적은 구분하는 것만이 아니라 많은 수의 문학적 관계를 명료하게 하려는 것이다.
성서 연구에 있어서 프라이의 작업은 약식비평의 문학적 측면에 해당하는 듯하다. 그는 규칙/판박이 문구(conventions), 원형(archetypes), 문학의 역사를 신봉한 반면, 개별 본문의 힘을 축소하였다. 그러나 예술적 연설인 수사학이 문학과 불가분리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은 마일렌벅 방식에 맞는다. 문학이론 연구에서 프라이의 공헌은 야누스와 같은 출현이었다. 뒷모습은 신비평(New Criticism)같았고 앞모습은 새로운 발전같았다.
2. 네 가지 전개
시학, 구조주의, 독자반응비평, 해체주의 등의 네 가지 전개를 다룸으로써 가속적으로 폭발하는 이론들의 예를 보여주고자 한다.
a. 시학(Poetics)
프라이는 시학을 문학 유형과 그 기능과 관련해서 정의하였다. 구성(plot) 설립, 전체를 이루는 요소 및 관련 문제 등.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에 근거해서30 시학을 시의 학문이라고 불렀고 그래서 시학을 시 자체와 구분하였고 또한 시 경험과도 분리하였다. 그러나 프라이의 연구 이래 시학연구는 원래의 분류에서 현대 언어학으로 옮겨갔다. 시학연구는 개별 작품을 지배하는 체계적인 이론을 고안하기보다는 담론의 구조와 법칙과 conventions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문학의 문법이 시학의 목표이다.
이 이질적인 작업의 대표인 토도로프(Tzvetan Todorov)는 먼저 시학을 해석과 구분하였는데 즉 개별 본문의 의미에 대한 관심과 구분한 것이다.31 문법연구가 문장의 의미와 분리된 것과 같이 문학의 문법(시학)이 문학의 의미와 구분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석과 시학 사이에 보완관계가 있다. 개별 작품은 일반 문학구조의 예이다 (그저 예일 뿐이다). 개별 작품은 추상적인 properties가 부상되게(emerge)한다. 그런 다음 토도로프는 언어학과 시학을 설명하였다. 언어학은 문장 요소를 연구하고 시학은 문학단위의 합성물인 문장들을 연구한다.32 문학단위는 서로 결합되어 인물, 구성, 주제의 구조를 낳는다. 이런 특성을 연구하는 것은 규범(norms)과 결과를 설립한다. 결과적으로 나오는 지지학(topology)은 문학장르를 낳는데 이 장르는 규정하는 규범도 아니고 서술적인 목록도 아니다. 장르는 문학의 산출된 의미들을 설명하는 일정 수의 형식(? 판박이 문구 conventions)을 가리킨다. 이 의미들은 언제나 일반적인 것으로, 즉 문학의 문법으로 움직인다.33 그렇다면 시학의 목표는 "구조와 문학 담론의 기능에 대한 이론을 제안하는 것"이다.34
프라이의 프로젝트가 그랬듯이 시학은 성서의 수사학비평보다는 형식비평에 더 가깝다. 관례/판박이 문구/형식과 규범에 기초해서 문학 학문을 내는데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본문의 특수성을 강조한 마일렌벅보다는 히브리어 장르의 역사를 쓰는 것이 목표였던 궁켈에 더 가깝다. 또한 문법을 의미와 분리한 것은 형식과 내용과 의미의 불가분리성을 주장한 점과 반대된다. 이런 차이점은 토도로프가 "읽기(reading)"라고 부른 활동을 할 때 줄어들 수도 있지만 시학과 수사학비평 사이의 상이점은 여전히 존재한다.35
b. 구조주의(Structuralism)
구조주의는 19세기 스위스 학자 페르디난드 드 소쇠르(Ferdinand de Saussure)의 언어학연구에서 나왔는데 인간의 모든 사회현상36 - 정해진 법칙이 있는 의사소통의 모든 체계37 -을 체계화하는 방법이다. 구조주의는 복잡한 구조, 즉 부분 위에 있는 전체를 구성하는 상호관계들의 그물망/총괄을 연구한다. 이들 구조는 표면이 아니라 실재의 뒤에 또는 아래에 놓여 있다. 심층구조(deep structures)는 표면구조와 대조되는 것으로서 특정 활동을 낳고 또 제한한다. 그들은 역사적 과정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생명/죽음, 남성/여성과 같은 상호 배타적인 쌍인 이원적 반대들(binary oppositions)의 내부관계의 그물망/네트워크에 관련되어 있다. 이들 관계를 연구하는 것인 통시적(diachronic)이 아니라 공시적(synchronic)이다. 구조주의는 원인과 결과 개념을 거부한다. 그보다는 변화의 법칙, 즉 한 구조가 다른 구조로 바뀌는 것을 인식한다.38
구조주의는 문학방법으로서39 (표면적으로는) 프라이와 신비평의 강조점을 이어가려고 나타났다. 이 방법은 문학을 가능하게 하는 형식/통용구(conventions)과 상황을 추구한다. 또한 내재적(intrinsic) 읽기를 하고, 역사적 해석을 피하며 저자의 의도를 거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르의 해석에 관심하지 않고, 모든 언어를 지배하는 본래의 원칙에 관심을 기울인다. 또 심미적인 대상 (개별 본문)에 관심이 있지 않고, 의사소통의 체계에 관심이 있다. 프라이의 원형(archetypes)이든 신비평의 정독(close readings)이든 간에 구조주의는 심층구조에 들어있는 추상적인 메시지를 발견하기 위해 표면구조를 해독한다.40
구조주의는 1970년대에 성서학계에 도입되었다.41 본문을 읽는 한 방법으로서 구조주의는 수사학비평과 표면상 유사점을 보인다. 두 방법은 "구조(sturcture)"라는 말을 쓰고 본문을 분석할 때 도표와 도면을 사용하며 공시적 해석을 강조하고 내재적 읽기를 추구한다. 그러나 이 유사점은 가짜이다. 구조주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수사학비평은 심층구조가 아니라 표면구조만 다룬다. 수사학비평은 문학적 상용구(conventions)의 체계를 이루는 관계들에 초점을 두기 보다는 본문의 특수성에 초점을 둔다. 수사학비평은 형식(구조)과 내용과 의미를 분리하지 않는다. 이 두 방법은 기본에서 서로 다르다.
c. 독자반응비평(Reader-Response Criticism)
프라이의 Anatomy 이래 나온 또 하나의 방법은 독자반응비평이다.42 이 방법은 객관이론(objective theories)에서 떠나 독자(청중)를 강조하고 본문보다는 읽기를 강조한다. 에이브럼스(Abrams)의 모델에 비교하자면 이 방법은 실용적이거나 정서적인 경향에 속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에이브람스가 삼각형의 가운데에 두었던 문학작품을 왕좌에서 내리고, 에이브럼스가 삼각형에서 오른쪽 모서리에 두었던 독자를 왕좌에 올림으로써 그 모델을 동요시킨다.43 나아가서 독자란 아직까지 인식되지 않았던 개념인 암시된 독자, 원래의 독자, 이상적인 독자, 잘 아는 독자, 흥미를 가진 독자, 실제 독자 등의 목록을 가리킨다.44
수잔 설레만(Susan Suleiman)은 독자반응비평 안에 있는 여섯 가지 접근을 다음과 같이 나눈다. 즉 수사학적, 기호언어와 구조주의적, 현상학적, 주관적이고 심리분석적, 사회학적이고 역사적, 해석학적 독자반응비평.45 설레만은 이렇게 구분할 때조차도 비평가 스탠리 피쉬(Stanley Fish)의 부유하는 이론을 정박시키기 어렵다고 했다. 피쉬는 신비평을 반대하는 것에서 문학적 항해를 시작했다.46 "의미"는 형식적 구조를 분석하는 작업의 끝이 아니라, 독자가 본문을 경험함에 따라 발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피쉬는 시간적 경험 속에 있는 독자를 취임시키기 위해 공간적 경험 속에 있는 본문을 쫓아냈다. 이러한 이동을 위해서는 감정적이고 지적인 다양한 해석을 선행한 공통 수준의 독자 경험을 가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공통 수준이라는 말이 피쉬를 다시 한번 독자의 경험을 통제하기 위해 본문의 안정성을 가정하게 만들었다.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독자가 본문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해석공동체의 일원이라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47 이 해석공동체의 일원들은 본문을 읽는 방식에 동의하지만 다른 공동체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본문은 철저히 안정감이 없다. 간단히 말해서 공동체가 문학을 "만들고," 해석 전략이 본문을 형성한다.48
이런 사고방식은 피쉬로 하여금 비평이 설득이라고, 즉 "끝없이 협상하는" 정치적 행위라고 이해하게 만들었다.49 그는 "수사화하는(rhetoricizing)" 본질, 즉 해석이 계속 변하는 것에 대해 개진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은 독자가 더 이상 본문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피쉬의 항해 말엽에는 독자는 별로 반응하지 못하고 "수사화하는" 작업의 뱃속으로 사라질 뿐이었다.50
설레만의 여섯 가지 접근 중에서 수사학적이고 현상학적인 독자반응비평이 성서의 수사학비평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수사학적인 독자반응비평은 본문을 지은이가 독자에게 보낸 공유된 의사소통(shared communication)이라고 이해한다.51 거꾸로 독자는 본문이 암호로 담고 있는 것을 해독한다. 예를 들어 웨인 부쓰(Wayne Booth)는 암시된 저자(implied author)와 이상적인 독자(ideal reader)라는 개념을 설정했다. 암시된 저자는 모든 문학적 가공품에 내재하는 가치와 책임/헌신/서약commitments를 가리키며 실제 저자에게는 "둘째 자아(second self)"로 관계한다.52 이상적인 독자는 암시된 저자가 만들어내고 문학이 addresses to 하는 그 독자이다.53 성공적인 읽기는 실제 독자가 자신의 생각을 본문의 가치와 헌신에 종속시켜서 암시된 독자가 되기로 동의해야 한다. 암시된 저자와 이상적인 독자에게 바람직한 합일은 본문의 수사학을 통해 생겨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여러 전략을 써서 의미를 전하고 의도한 효과를 성취하도록 애쓴다. 전반적으로, 본문의 수사학에 내재하는 암시된 저자와 암시된 독자의 순환은 구체적인 읽기가 지속하게 만드는 해석적인 구성이 된다. 이 과정에서 저자와 본문과 독자가 합쳐진다.
이 수사학적 접근이 성서 수사학비평의 일부 측면과 잘 어울린다. (적어도 독자가 그렇게 해석한다.) 마일렌벅은 실제 저자라는 개념을 갖고서 연구했지만 그의 초점은 암시된 저자 개념으로 가게 했다. 그는 적합하게 읽는 방식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본문에 내재하는 가치에 종속시켰다. 그러므로 그는 암시된 독자라는 개념을 기대/예상했다. 전 과정이 수사학, 즉 의미의 전달을 통해 벌어졌다. 그러나 부쓰의 접근과는 달리 마일렌벅의 방법은 단일 본문의 특수성에 집중하였지 일련의 본문을 그다지 많이 다루지 않았다. 성서 수사학비평의 정독(close readings)은 신비평의 절차(신비평의 전제는 아니고)와 매우 가깝다.54
현상학적 접근에는 대표하는 두 명의 학자가 있다. 로만 인가든(Roman Ingarden)은 "그 자체 속에 있는 객관?(an objectivity in itself)"인 문학 작품과 그것의 구체화 즉, "읽는 동안에 형성되는 것(what is constituted during the reading)"55 사이를 구별하였다. 후자는 주관적인 경험과 혼동되어서는 안되고, 부분적이긴 하나 작품의 현실화를 나타낸다. 유기적 전체인 작품이 독자의 마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단일하고 조화로운 해석을 산출하는데 작품을 유용할 목적으로 독자가 작품 및 작품의 미결정성에 굴복한다. 볼프강 이저(Wolfgang Iser)는 인가든에 의해 영향을 받긴 했지만 독자가 의미를 결정하는데 더 큰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56 그는 읽는 과정을 "본문과 독자간의 역동적인 상호작용"57이라고 묘사했다. 독자는 여러 겹으로 서로 연결되는 관점을 파악하기 위해 본문 속을 거닌다. 서로 다른 독자들이 "서로 다르고 모두 타당한 방식으로"58 본문을 실감한다. 그 어느 단일 해석도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로 본문이 지닌 "간격(gaps)"은 독자로 하여금 다양하게 채우도록 자극한다. "독자가 간격을 메울 때 의사소통이 시작된다."59 이저는 이 불균형적인 과정에 한 가지 제동을 건다. 독자는 읽는 행동에서 내적으로 일관성이 있게 본문을 해석해야 한다. "거닐기(wandering)"(읽기)를 하는 동안 충실하게 일관성을 지키면 본문의 형태를 드러낼 수 있고, 독자가 본문을 실제 사건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한다.60
다양한 읽기와 일관성 만들기를 결합한 것은 이저의 논리에 풀리지 않는 모호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61 이러한 모호성은 본문과 독자의 경계에서 작업하는 다양한 성서 수사학비평이 지닌 사실이기도 하다. 현상학적 접근과 성서 수사학비평에서 독자는 본문에 굴복하며, 내적인 일관성을 파악하기 위해 본문의 특수성 사이를 거닌다. 독자는 본문을 유기적인 전체로 인식하고 유용한다.62
d. 해체비평(Deconstruction)
프라이의 Anatomy 이후 발달한 또 하나의 분야는 해체비평이다.63 복잡하고 어리둥절케 만드는 개념인 해체비평은 어떤 철학적 입장, 정치 전략(?), 지적 게임, 문학 프로젝트를 다양하게 일컫는 현대이후의 관점을 말한다. 조나단 쿨러는 문학 프로젝트를 두고 말하기를, "담론을 해체한다는 것은 그 담론이 주장하는 철학 또는 담론이 의지하는 위계질서적 반대급부들을 어떻게 그 담론이 스스로 훼손시키는지를 본문 안에서 작용하는 논점의 가정된 근거나 주요 개념이나 전제를 산출하는 수사학적 운행(operations)을 밝혀냄으로써 보여준다"64고 설명한다. 해체비평은 주로 프랑스 철학자 자끄 데리다(Jacques Derrida)를 통해 구조주의의 비평이 되었다. 간혹 구조주의이후라는 깃발아래65 나타나는 해체비평은 구조가 본문에 내재한다거나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해체비평은 마음의 깊은 차원 즉, 의미의 한계를 결정하는 차원을 반영한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또한 해체비평은 글 위에 갖는 말의 우위를 거부하고, 글이 언어의 기원을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글은 그저 문자를 써놓은 것이 아니다. 글은 모든 형태의 명료함과 차별화를 포함한다. 글은 모든 의사소통에 있는 미결정성의 요소, 즉, "자유로운 놀이(free play)"의 요소를 구현한다. 글은 글이 말하는 바를 전복시키며, 언어는 내재적으로 불안정한 채로 남는다.
해체비평은 읽기 활동으로서 본문에 묶여있지, 독립적인 체계가 되지 않는다. 상호관련된 두 전략이 나름의 체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첫째, 비평가는 한 체계를 그 체계에 대항하여 사용한다. 그 체계 안에서 읽으면서 해체비평가는 그것에 거슬려서 읽으며 설정된 위계질서를 바꾸어버린다. 둘째로 비평가는 그 체계 밖으로 움직여나가며 그 체계를 불연속과 차이/다름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그래서 그 체계를 제거한다. 데리다는 이중의 읽기(double reading)라고 하는 이 전략을 주장하면서 본문 안에서 우선하는 것들의 질서를 해체할 뿐만 아니라 질서를 산출하는 개념상의 반대의 체계도 분해한다.
이중읽기는 본문의 중심을 없애고 의미를 지연시킨다. 본문의 중심을 없앤다(decentering)는 말은 곧 본문 밖에는 본문의 경계를 결정할 장소(구조, 의미/signifier)가 없다는 뜻이다. 실로 고정된 본문은 없으며, 읽기 활동을 통해 다양해지는 본문이 있을 뿐이다. 지연시키기(deferring)는 변칙적이고 불안정한 불어 differance와 작용한다. 이 말은 다르게 하고(differ) 지연시킨다(defer)는 뜻을 내포한다. 비슷한 본문까지도 포함해서 모든 본문에는 기본적인 상이성이라는 특징이 있는데, 유사성은 다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본문을 읽고 형성할 때의 기초적인 차이가 의미를 계속에서 지연시킨다. 자유로운 독서는 단일하고 동일하게 읽지 못하게 한다. 의미를 고정시키는 일은 열려있고 비결정적인 본문의 본질을 해치는 것이다.
해체비평의 복잡성을 쉽게 요약할 수는 하지만, 고전 문학 이론들(모방, 표현, 정서, 객관)과 비교해 보면 기본 특성을 알 수 있다. 모방이론과의 관계는 모호하다. 일부 학자들은 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본다. 어떤 학자들은 본문이 본문 외부의 무언가를 지시한다고 하는 지시성(referentiality)이라는 개념으로 연관시키려고 한다.66 이 개념이 우주와 예술적 표현 사이, 그리고 오리지널과 가짜 사이의 계급적 반대를 포용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반대를 해체비평이 뒤집고 대체하려고 한다.67 모방이 오리지널보다 우월하든 못하든 중립적이든지 간에 모방은 본문의 전략(textual strategy)이 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전통인 표현이론은 해체비평과 연관될 것이 별로 없다. "저자"의 의미와 역할이 주요 논쟁거리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68 본문을 상황과 떼어서 구성하려는 시도는, 저자가 죽었다는 주장에서 불연속이라는 근본적인 문화적 기능으로서의 저자로 재정의하게 했고, 다시 저자를 비평가(저자가 없는 주체)로 대체하게 했다.
과거와 현재의 정서이론은 해체비평과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으로 상호작용한다. (정서이론의) 한 공식은, 주체인 독자가 객체인 본문에 행동한다(acting upon.the text)는 것이다. 여기에는 독자가 본문을 만들고 더 나아가 본문의 뜻을 지연시키기까지 한다는? 이론도 들어 있다.69 어떤 학자는 본문을 조사하고 객관성을 무시하고 자유로운 독서를 강조하는 독자반응비평의 해석학적 경향을 인용한다.70 그러나 한 공식은 독자반응비평과 해체비평이 서로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71 독자반응비평은 독자를 여러 유리한 입장에서 탐구하는 반면 해체비평은 독자보다는 본문을 탐구한다. 또한 독자반응비평은 본문의 비연속성을 합리화시키는 반면, 해체비평은 포용한다. 이처럼 모순되는 부분은 두 이론 사이가 불안정한 관계(와 불안정한 학문)라는 것을 증명한다. 객관 이론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객관이론처럼 해체비평은 정독(close reading)을 추구한다. 또한 본문중심적이고 그래서 문학언어에 특권을 부여한다.7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체비평은 객관적인 독서를 반박한다.73 해체비평은 본문의 자율성에 반대하고 철저한 비결정성을 주장한다. 불안정성이 지배한다.
해체비평은 본질에 충실하게 불안정한 방식으로 성서의 수사학비평과 연관을 맺는다. 고정된 구조가 없다는 것, 저자의 의도가 그리 중요치 않다는 것, 의미가 계속해서 지체되어야 한다는 견해는 마일렌벅의 입장을 해체한다. 그런데 수사학적 분석 자체는 해체비평가가 실행하는 것이다. 수사학분석은 본문의 옷을 벗기고 언어의 설득력을 (또는 설득력 결핍을) 조사하고, 수사 어구와 비유(tropes and figures)를 찾고 본문의 특수성에 (유사성이 아니라) 초점을 두고 정독을 한다. 뚜렷한 차이는 있지만 (마일렉벅 방식의) 수사학비평과 해체비평은 본문을 지배하는 종합적인 체제를 회피한다.74
요약: 프라이가 신비평을 해체하기 시작한 이래 문학비평의 이론과 전략은 급격히 늘어났다. 위에서 살펴본 네 가지 -시학, 구조주의, 독자반응비평, 해체비평- 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고전 수사학이론의 재형성에서와 마찬가지로 문학비평이론에서도 다원주의가 꽃피운다. 언어의 혼동은 땅에 널리 흩어져서 가능성을 향상시키고 어려움을 증대시키고자 성서 수사학비평의 배경을 넓힌다.
C. 성서의 문학적 연구
문학비평이론들이 1960년대 이래 활발하게 늘어난 것과 같이 이들 이론이 성서의 문학적 연구에 적용한 것도 성행하였다. 이 분야의 학술지와 책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온 것은 곧 수 없이 많은 방법과 늘 변하는 관점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러한 발달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76 성서연구는 역사적 경향에서 문학적 경향으로 이동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성서 연구의 긴 역사를 살펴보면 역사적 관심 자체가 최근의 현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보여준다.77 그렇다면 문학으로 이동하는 것은 이 분야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라, 마일렌벅의 말로 하자면 "제롬과 그 이전 시대부터 랍비들이 계속했고 현대까지" 이르는 활동으로 필요한 수정을 가해서 돌아가는 것이다.78
성서비평가와 세속 문학비평가가 이 문학 작업에 참여했다. 각 그룹은 학문적 훈련에 따라 서로 다른 기술과 지식과 입장을 이 작업에 사용했다. 어떤 학자들은 경계를 넘어서 유능하게 작업하기도 하지만 차이점이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79 또 하나의 차이가 이 경계를 가로지르는데 그것은 신자들과 불신자들의 관점이다.80 성서 및 세속 비평가 할 것 없이 이 차이를 느끼는데,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마일렌벅이 암시했던 바, 상대적으로 안정된 전통이 일반적으로 해체되었다. 다음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연구 경향을 정리한 것이다.81
1. 1960년대
1960년대에 출판한 두 성서학자가 문학연구가 적은 점에 유감을 표했는데, 그들의 작품이 정작 문학적 관심의 재개를 나타냈다.82 스페인 예수회 신부인 루이스 알롱소-쉐켈(Luis Alonso-Schoekel)은 히브리어 시의 문체 현상학을 연구했다.83 그는 나중에 논문에서 자신의 접근을 신비평과 비교하면서 심미적인 독서와 비심미적인 독서를 접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85 미국학자 에드윈 굿(Edwin Good)은 풍자(irony)를 신학과 신항을 형성하는 문학적 고안으로 보고 연구하였다.86 그는 사울 설화와 창세기, 이사야, 요나, 전도서, 욥기에 나오는 의도적인 부조화를 찾아내었다. 그는 자신의 분석을 특정 문학이론 학파와 비교하지 않았다.87 이 두 학자는 마일렌벅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2. 1970년대
1970년대에는 네덜란드의 성서학자 제이 피 포켈만(J. P. Fokkelman)이 창세기 설화에 관한 책을 출판했다.88 그는 자신의 분석방식이 문학사와 성서학계의 통시적 접근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설정하고, 본문이 저자와 독자 사이에 있는 기둥/장대(pole)이라고 했다. 저자(종종 오래 끈 과정의 코드/부호?)는 본문을 창조하고 독자는 해석하면서 본문을 재창조한다. 본문의 창조에 대한 지식은 본문의 재창조에 의존한다. 독자는 본문을 본문의 종결로서 분석한다.? 이 예술적 작업은 신학적 결론을 내는 것을 포함한다. 그런 후에야 독자는 본문을 투명한 것으로, 다른 끝/종결들/결론들로 가는 수단으로 탐구한다. 포켈만의 책의 부제, "Specimens of Stylistic and Structural Analysis (문체와 구조 분석의 예)"는 엘로쿠티오(elocutio)와 디스포지티오(dispositio)라는 고전 분류를 떠올리게 했다. 그가 정독하는 공시적 방법은 신비평과 비슷했고 그의 전체적인 접근은 성서 수사학비평과 유사했다.89
이야기를 멋지게 들려주는 분야에서? 또 하나의 연구가 이스라엘 학자 제이콥 릭트(Jacob Licht)에게서 나왔다.90 그는 성서 화자는 거의 모든 경우 역사적인 목적(정보 전달)과 심미적인 목적(예술 만들기) 등 두 가지 목적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심미적 측면은 독자적으로 연구해야지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된다. 이 주장은 아주 명백한 것 같지만 "유식한 토론에서 빠지는 나쁜 습관이 있다."91 릭트는 이 습관을 깨고, 주어진 이야기에 나오는 심미적 특징들을 분석하였다. 심미적 특징이란 장면, 기본 구조, 반복, 이야기 속의 시간, 복잡한 설화 단위들 등을 말한다. 그는 옛날부터 현재까지의 세속 문학연구와 성서 문학연구를 사용하였다. 그의 작업에는 수사학비평과의 유사성이 많이 보인다.
3. 1980년대
1980년대는 문학 분석이 꽃을 피웠다. 1980년대 초반에 미국의 문학비평가 라벗 얼터(Robert Alter)는 The Art of Biblical Narrative를 썼다.92 그는 성서학 연구를 "골동품 연구"요 "발굴 작업"이라고 부르면서 성서의 풍부한 문학적 연구사를 묵살했는데 사실 본인의 관점은 이 연구사를 반영하였다. 그는 제안하기를, 성서는 그 최종 형태에서 상호연결된 단일체라는 충분한 특질/완전한 구조(full texture)을 가진 예술적 문서라고 했다. 정독 (close reading)은 의도된 의미를 펼쳐낸다. 정독은 일관성을 낳는 conventions, 기교, 인물묘사, 문학 유형 등을 밝힌다. 얼터는 양식비평을 축소했지만 그가 쓴 "유형장면(type-scenes)"은 양식비평과 비슷했다.93 그는 수사학비평을 무시했지만 그의 분석은 수사학비평을 반영했다.94
이스라엘 학자 메이어 스턴벅(Meir Sternberg)은 성서 설화 이해를 위한 종합적은 체제를 출판했다.95 이 책은 읽기가 어려운데 교의적/교리적 경향이 있는 시학, 후기구조주의가 닿지 않은 시학을 다루었다. 얼터와 마찬가지로 스턴벅은 성서학계에 심한 평을 내렸고 자신의 담론(discourse) 중심의 분석과 성서학계의 자료(source) 중심의 연구를 대조하였다. 그는 세 가지 기능적 원칙이 성서 담론을 규정한다고 보았다.96 이데올로기 원칙은 유일신론과 윤리,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인간의 한계에 반하는 신의 전지전능 등을 단언한다. 역사적 원칙은 본문의 진실성 주장 (진실성 가치가 아니라)을 묘사한다. 심미적 원칙은 본문의 문학적 특징, 예술적 특징을 의도적이고 설득력있게 사용할 것을 강조한다.
스턴벅은 심미적 원칙을 발전시키면서 두 가지 주요 전략을 분리했다.97 첫째, 모든 것을 아는(omniscient) 화자는 본문에 간격(gaps)과 생략(omissions)과 불연속성(discontinuities)을 집어넣었다. 이들은 신과 인간 사이의 인식적 구분을 뜻한다.98 독자는 간격을 메우기 위해 책임적으로 작업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독자는 윤리적으로 성장한다. 둘째로, 모든 것을 아는 화자는 얼핏 보기에 모순되고 그러면서도 사실 보충적인 구조를 넣었는데, 이것은 곧 반복법으로서 정보를 중복하는 전략이다. 반복은 단어에서 구성과 주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원에서 나타나고, 축자적 반복에서 변화있는 반복에 이르기까지 유형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생략(ellipsis) 기법과 마찬가지로 중복은 나름의 간격이 있다. 동시에 반복은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닌 다른 간격을 메운다. 이 두 전략 하나하나가 비일관성의 기둥을 가리키지만 이들은 함께 network을 형성해서 독자가 "어려운 일관성"을 찾을 수 있게 한다.
수사학은 스턴벅의 시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99 그는 의사소통(communication)의 넓은 의미를 인정했지만 설득의 의사소통이라는 좁은 의미에 초점을 두었다. 성서는 "과거를 신앙의 수사학으로 조직함으로써(by organizing the past into a rhetoric of faith)" 설득한다.100 그는 본문이 독자들의 반응을 형성하게 하는 15가지의 수사학 기법을 찾아냈다.101 그의 시학과 수사학비평과의 유사성은 이론/사상ideology의 차원이 아니라 주석의 차원에서 나온다. 스턴벅이 본문의 특수성을 읽을 때 보여주는 기술은 형식과 내용과 의미의 상호작용에 풍부한 통찰을 제공한다.102
프라이는 Anatomy of Criticism(비평 해부학)을 다루면서 성서의 예술에 대해 썼다.103 그는 언어와 신화와 은유와 유형론이라는 분류 하에 신구약성서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설화구조를 제시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본문을 자세히 주석하지는 않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영국의 비평가 개브리엘 조시포비치(Gabriel Josipovici)가 선정 본문의 주석을 전체 구조와 결합하였다.104 그는 "특수하게 단편적이고 생략적인 설화 형태"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성서의 단일성을 추구했다.105 더욱이 그는 성서 언어를 사용했고 성서학 연구를 활용했다. 이 두 학자는 신학적 의미에 민감했고 헌신까지도 보였으나 수사학비평과의 연관은 없었다.
문학 분석의 일람표가 1980년대 말에 나왔다.106 얼터와 영국의 문학비평가 프랭크 커모드(Frank Kermode)가 편집한 이 책에는 미국과 유럽과 이스라엘의 24명의 남성 학자와 한명의 여성 학자의 기고가 들어있다. 이들은 일반적인 논문은 물론 유대인과 개신교인의 정경에 있는 각 책에 대해서도 논문을 썼다. 어떤 이들은 성서 학자로서, 또 어떤 이들은 문학비평가로서 일부는 둘 다로서 기고했다. 많은 학자들이 신앙인으로서 글을 썼고 일부는 그렇지 않았다. 이 책은 한정사 "the"를 써서 결정적인 안내서라고 했지만, 일부 선정된 경향만을 다루었다. 이 책은 수사학비평을 다루지 않았다.107
4. 1990년대
1990년대 초에 세속 문학비평가들은 성서에 대해 다양한 책을 출판했다. 헤럴드 블룸(Harold Bloom)의 작업은, 보통 문학 연구에서 하듯이 본문의 최종형태를 다루지 않고 역사적 연구에 기초한 가설 자료를 다루었기 때문에 주목할 가치가 있다.108 프라이는 앞에서 출판한 책의 후속편으로 계속해서 원형비평(archetypal criticism)을 연구했다.109 그는 시인의 권위가 시 언어의 권위와 묶여있다고 보았고 ?(axis mundi)의 네 가지 성서 형태인 산과 뜰과 동굴과 용광로를 연구했다. 신화와 은유가 독서를 이끌었다. 얼터는 블룸과 프라이에 반대하여, 구체적인 본문에서 떠나 글쓰기의 세계가 어떻게 변하고 어떻게 그리고 왜 그게 문학적인가 시도한 책을 출판했다.110
이러한 작업 이외에도 얼터와 커모드가 편집한 책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다루고자 한 문학 분석 일람표가 나왔다.111 이 책은 영문학 교수인 럴랜드 라이켄(Leland Ryken)과 성서학 교수인 트렘퍼 롱맨(Tremper Longman)이 편집한 것인데, 미국의 27명의 남성 학자와 3명의 여성 학자가 기고한 것으로서 학자들은 문학과 성서 분야에서 고루 선정되었다. 학자들은 대부분 보수적인 기독교 배경을 대표하였다.112 그런데 1990년대 또 하나의 발전은 Biblical Interpretation(성서 해석)이라는 학술지가 나왔다는 사실이다.113 이 학술지는 다양한 문학 접근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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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프라이는 성서에 관심있는 문학 비평가들과 문학비평에 관심있는 성서학자들이 많다는 것을 괸찰했다..114 앞의 개관은 이런 경향의 깊이와 넓이를 보여줄 뿐이다. 발(Bal), 댐로쉬(Danrosch), 푹스(Fuchs)와 같은 문학비평가들과115 액커만(Ackerman), 벌린(Berlin), 콘래드(Conrad), 크랜쇼(Crenshaw)와116 엑섬(Exum), 퓨얼(Fewell), 그린스틴(Greenstein), 건(Gunn),117 그리고 자블링(Jobling), 크젤만(Kselman), 오코너(O'Connor), 폴진(Polzin) 과118 같은 수 많은 성서비평가들이 있지만 역사 기록자는 시간을 따라잡을 수 없다?(time fails) 이렇게 이름을 열거해도 북미에서 성행하는 토론을 다 포괄하지는 못한다.119 마일렌벅이 1968년에는 예상할 수 없었을만치 현재 성서 연구에 문학 패러다임이 팽배하긴 하나 이 현상은 전혀 새로운 풍조는 아니다. 이런 연구 경향은 이미 기원전에 시작된 길고 풍부한 유산의 작은 일부일 뿐이다.
D. 양식비평
1. 양식비평의 평가
성서 수사학비평의 배경 중 네째 요소인 양식비평은 마일렌벅 시대 이후 주요 변화를 겪었다. 마일렌벅이 회장 연설을 출판한 지 오년 후에(1974) 과거의 결과를 점검하고 현재의 문제를 살펴보려는 목적으로 한 논문집이 나왔다. 편집자인 잔 헤이스(John Hayes)는 양식비평을 방해한 문제들을 다음과 같이 열거했다. 전승의 구전단계에 너무 집착한 것, 가장 짧고 분명한 양식이 가장 오래되고 순수한 단계를 나타낸다는 잘못된 가정, 전승과 본문의 연대를 결정할 때 양식비평이 잘못 쓰인 것, 장르의 배경을 지나치게 재창조한 점, 장르 요소와 완성된 장르와의 혼동 등이다. 마틴 부스(Martin Buss)는 양식의 연구를 고전 이론부터 추적하여 초기와 중세의 성서학 연구를 거쳐 18세기까지 다루었다. 100년간의 침묵 기간(1775-1885) 후에 새로운 관심이 일어나 궁켈을 선두로 하는 현대 양식비평이 나왔다.
부스는 다른 학자들이 이야기(narrative), 법, 예언, 시편, 지혜 등 두드러진 장르에 대한 연구를 평가할 수 있도록 구조를 설정했다. 이 학자들은 양식비평을 통해 얻은 바를 보고하는 한편, "양식(form)"이라는 말의 혼동스런 용법, 문체와 내용의 분리, 장르(Gattung)와 삶의 자리(Sitz im Leben)의 부정확한 정의, 장르와 불확실한 연결, 통일된 용어의 결핍 등의 어려움에 계속 부딪혔다. 헤이스가 열거한 문제와 더불어 이처럼 어마어마한 목록은 양식비평을 위협했다. 이들 논문에 대해 서평을 쓰면서 라벗 윌슨(Robert Wilson)은 이들 역시 양식비평의 궁핍함을 보였고, 신학적으로 유용할 수 있는 본문의 의미를 밝혀주지 못한다는 것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를 날카롭게 제기하면서 양식비평의 진보를 보고하려는 원래 의도와는 달리 이 책이 사망 기사가 아닌가 의문했다.
2. 양식비평의 개정
다가오는 죽음의 심판이란 사실 과장된 것이다. 헤이스가 편집한 책이 출판되기 직전에 Interpretation이라는 학술지는 양식비평의 새 발달에 대해 전면으로 다루었다. 랄프 크니림(Rolf Knierim)의 프로그램 논문이 양식비평의 개정을 개괄했는데, 민간설화(folklore) 연구, 구조주의, 언어학, 어형론 등 광범위한 분야를 다루었다. 이 글은 전통적인 양식비평의 단순한 특징을 유감으로 여기면서 장르와 배경, 그리고 이 둘의 관계를 유연하고 다양하게 이해할 것을 제안했다. 이 글은 또한 전형적인 것(typicality)이 본래 본문의 성질(구성, 구조 makeup)을 결정한다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전형적인 것을 윤곽짓는 작업보다 먼저 개별 구조를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글은 결론짓기를, 양식비평을 모든 본문에 적용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개정된 양식비평은 주석작업을 계속 풍부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이 글과 다른 비슷한 관점은 일련의 양식비평 주석이 나올 것을 예고한 셈이었다. 크니림과 진 터커(Gene M. Tucker)가 편집한 포틀(FOTL, The Forms of the Old Testament Literature) 시리즈가 1981년부터 출판되기 시작했다. 편집자들은 구조, 장르, 배경, 의도라고 하는 네 가지 연구 과제를 정했다. 구조란 개별 특징과 달리 전형적인 것을 구별짓기 위해 본문을 요약하는 것을 말한다. 이 절차는 문학 양식(장르)을 밝히는 작업으로 이어진다. 그런 후 양식은 사회문화적 문맥(배경)과 연결된다. 배경 안에서 장르의 기능을 식별하는 일은 장르의 의도를 밝히게 된다. 양식비평가는 상호관련된 이 요소들을 먼저 최종 편집 단계에서 조사하고 그런 다음 해당될 경우에는 구전 단계를 연구한다.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전체 책에서 책의 개별 단위로 분석하는 것이 순서이다.
궁켈에서 나온 현대 양식비평의 관점에서 볼 때 개정판의 네 가지 특징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다. 첫째, "양식"이라는 모호한 단어는 이제 구조와 장르라고 하는 두 가지 뚜렷한 용어로 바뀌었다. 구조는 본문의 요약을 말하고 장르는 문학의 유형이다. 둘째, 개정 양식비평은 본문의 모든 단계를 다루지만 특별히 최종 편집 단계를 연구한다. 그리고 구전 역사와 짧은 단위들을 가정하거나 집중하지도 않는다. 셋째, 장르와 배경의 관계가 확장되었고 복잡하게 되었다. 배경은 사회 제도 말고도 언어 환경, 문학적 연결, 심미적 특징, 심리학적 구성, 구체적인 상황, 어느 시간과 장소의 일반적인 분위기에 이르기까지 포괄한다. 제도적 현상만이 아니라 이 모든 변수가 장르를 만들 수 있다. 더 나아가서 특정 배경은 특정 장르를 결정짓거나 하지 않는다. 한 장르는 여러 배경을 가질 수 있고, 한 배경은 여러 장르를 나타낼 수 있다. 넷째, 개정 양식비평은 표준 용어체제를 추구한다. 전에는 양식비평가들이 장르라는 동일한 단어에 서로 다르거나 모순되기까지 하는 의미를 부여했다. 거꾸로 동일한 문학을 두고 다른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용어의 혼동이 군림하고 있었다. 포틀 시리즈는 이 문제를 바로잡고자 한다.
이 개정 양식비평은 마일렌벅이 비평한 바를 인정하는 것이다. 개정 양식비평은 본문의 특수성을 전형성에 종속시키기는 하지만 특수성을 고려한다. 달리 말해서 개정 양식비평은 수사학비평을 포함한다. 그렇지만 수사학비평은 자기 나름의 삶을 산다.
* * * * * * *
제 1 부 요약. 제 1 부는 수미쌍관(ABA')으로 배열되었는데 성서 수사학비평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문맥을 제공했다. 제 1장에서는 이 방법의 배경인 고전수사학, 문학비평이론, 성서의 문학적 연구, 양식비평 등의 네 분야를 개괄했다. 이들은 모두 마일렌벅의 회장 연설과 연결되었다. 제 2 장에서는 마일렌벅의 구상을 소개하고 수사학을 작문의 기술과 설득의 기술로 다룬 몇 가지 예를 점검함으로써 전경인 성서 수사학비평에 대해 설명하였다. 제 3 장에서는 다시 배경으로 돌아가 위의 네 가지 분야가 마일렌벅 이후에 발달한 부분에 대해 보고하였다. 제 1 장과 3 장은 구조와 주제 면에서 같고 (길이가 같지는 않지만) 제 2 장을 둘러싸는데 그럼으로써 제 2 장에 주의를 집중하게 한다.
제 1 부에서는 수사학의 법칙이 줄곧 지배적이었다. 먼저 주제(subject)에 관련된 자료(material, inventio) 수집이 나왔다. 가운데에 교차대구법(chiasm)이 있는 수미쌍관 형세로 이 자료를 배열함으로써 구조(dispositio)를 정한 셈이다.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간결하고 단순한 것부터 길고 수려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체적 고안이 쓰였다. 이 글은 세 가지 목적으로 씌어졌다. 가르치고자 하는 지적인 목적이 우선적이긴 했지만 느낌에 닿으려고 하는 정서적인 목적과 기쁘게 해주려는 심미적인 목적 역시 작용하였다. 다른 말로 해서 제 1 부는 다루려고 하는 주제인 수사학 자체가 되고자 했다. 문맥을 쓰는 일은 설득하려는 노력이 되었다. ?
확대 주
주 41
Interpretation 학술지의 1974년 4월호(Int 28)는 구조주의와 성서라고 하는 주제를 다루었다. 또한 Semeia의 여러 권을 보라. 즉, Daniel Patte 편, Genesis 2 and 3: Kaleidoscopic Structural Readings, Semeia 18(1980). R. Barthes, et al., Structural Analysis and Biblical Exegesis. Alfred M. Johnson 역(Pittsburgh, Penn.: The Pickwick Press, 1974); Robert M. Polzin, Biblical Structuralism: Method and Subjectivity in the Study of Ancient Texts(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7); Polzin, Moses and the Deuteronomist(New York: Seabury Press, 1980): Polzin, Samuel and the Deuteronomist(San Francisco: Harper & Row, 1989); Polzin, David and the Deuteronomist(Bloomington, Ind.: Indiana University Press, 1993). David Jobling, The Sense of Biblical Narrartive: Structural Analyses in the Hebrew Bible, vol. 1, 2nd ed., and vol.2(Sheffield: University of Sheffield Press, 1986)를 보라. Pamela J. Milne, Vladimir Propp and the Study of Structure in Hebrew Biblical Narrative(Sheffeld: Almond Press, 1988)를 참조하라. 요나에 대한 구조주의 연구로는 "프랑스 레느(Rennes)의 한 그룹"이라고만 밝히고 쓴 "An Approach to the Book of Jonah: Suggestions and Questions," Semeia 15(1979): 85-96를 보라. 신약연구로는 주해 참고도서 목록이 있는 Daniel Patte, Structural Exegesis for New Testament Critics(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0)를 보라. Edmund Leach and D. Alan Aycock, Structuralist Interpretations of Biblical Myth(Cambridge, Eng.: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3)을 참조하라.
주 75
문학비평이론과 전략에 대한 참고문헌은 다음과 같다. T. V. F. Brogan 편, The New Princeton Handbook of Poetic Terms(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4); Lentricchia and McLaughlin 편, Critical Terms for Literary Study; Stephen Greenblatt and Giles Gunn 편, Redrawing the Boundaries(New York: The Modern Language Association of America, 1992); Philip Rice and Patricia Waugh 편, Modern Literary Theory(Longdon: Edward Arnold, 2nd ed., 1992); Makaryk 편, Encyclopedia of Contemporary Literary Theory; Groden and Kreiswirth 편, The Johns Hopkins Guide to Literary Theory & Criticism. 이 논의에 신역사주의(New Historicism)가 포함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Stephen Greenblatt, "Towards a Poetics of Culture," in The New Historicism, ed. H. Aram Veeser(New York: Routeledge, 1989), 1-14를 보라; LouisMontrose, "New Historicism," Redrawing the Boundaries, 392-418; Hunter Cadzow, "New Historicism," The Johns Hopkins Guide to Literary Theory and Criticism, 534-39.
주 102
스턴벅에 대한 비평적 서평으로는 Adele Berlin, Prooftexts 6(1986): 273-84; Naomi Segal, VT 38(1988): 243-39; Jeremiah Unterman, Hebrew Studies 29(1988): 194-205; Edward L. Greenstein, Conservative Judaism 42(4)(Summer 1990): 66-68; David M. Gunn, "Reading Right: Reliable and Omniscient Narrator, Omniscient God, and Foolproof Composition in the Hebrew Bible," in The Bible in Three Dimensions, JSOT Suppl. Ser. 87, Ed. David J. A. Clines et al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990). 53-64; 또한 Danna Nolan Fewell and David M. Gunn, "Tipping the Balance: Sternberg's Reader and the Rape of Dinah," JBL 110(1991): 193-211. 이 마지막 논문에 대한 스턴벅의 응답, "Biblical Poetics and Sexual Politics: From Reading to Counter-Reading," JBL 111 (1992): 463-88을 참조하라. 이 학자들을 관찰하고 스턴벅과 얼터(Alter)를 비평한 버크 롱(Burke O. Long)은, 현대 문학연구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고서 합법적인 연구를 제한하고자 했고, 객관주의를 내세워 이 학자들 나름의 이데올로기를 부정하려고 했다("The 'New' Biblical Poetics of Alter and Sternberg," JSOT 51[1991] : 71-84).
주 119
북미 이외 지역에서 행하는 성서에 대한 문학 비평적 연구는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에는 앞에서 소개한 Sternberg, Bar-Efrat, Licht 등이고 또한 Meir Weiss, The Bible from Within: The Method of Total Interpretation(Jerusalem: Magnes Press, 1984); 네덜란드 학자 Fokkelien van Dijk-Hemmes와 함께 Athalya Brenner, On Gendering Texts: Female and Male Voices in the Hebrew Bible(Leiden: E. J. Brill, 1993)가 있다. 영국은 제 2 장에서 소개한 Clines and Barton, 앞에서 언급한 Josipovici가 있다. 독일은 Wolfgang Richter, Exegese als Literaturwissenschaft(Goe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71); Gottfried Vanoni, Das Buch Jona: Literar-und formkritische Untersuchung(St. Ottilien: EOS Verlag, 1978); Hagia Witzenrath, Das Buch Jona: Eine literatur-wissenschftliche Untersuchung(St. Ottilien: EOS Verlag, 1978) 등이 있다. 남아프리카는 Gerald O. West, Biblical Hermeneutics of Liberation(Pietermaritzburg: Cluster Publications, 1991), 104-41; G. T. M. Prinsloo, "Two Poems in a Sea of Prose: The Content and Context of Daniel 2.20-23 and 6.27-28," JSOT 59(1993): 93-108이 있다. 아르헨티나는 J. Severino Croatto, Biblical Hermeneutics: Toward a Theory of Reading as the Production of Meaning, Robert R. Barr 역(Maryknoll: Orbis Books, 1987), 13-35. 코스타리카로는 Elsa Tamez, Bible of the Oppressed, Matthew J. O'Connell 역(Maryknoll: Orbis Books, 1982)를 참조하라. 일본은 Kiyoshi K. Sacon, "Isaiah 40:1-11: A Rhetorical-Critical Study," Rhetorical Criticism, 99-116를 보라. 한국은 Ee Kon Kim, "'Outcry': Its Context in Biblical Theology," Int 42(1988): 229-39을 참조하라. 홍콩은 Khiok-khn Yeo, "A Rhetorical study of Acts 17:22-31: What Has Jerusalem to do with Athens and Beijing?" Jian Dao 1(1994): 75-107을 보라.
주 129
FOTL 시리즈 이외에도 양식비평연구는 여러 방식으로 계속되었다. (1) 구전 산문과 이야기의 구조 연구. 즉 Robert C. Culley, Studies in the Structure of Hebrew Narrative(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6). (2) 해석을 목표를 하는 장르 연구. 즉 George W. Coats 편, Saga, Legend, Tale, Novella, Fable: Narrative Forms in Old Testament Literature, JSOT Supplement Series 35(Sheffield: JSOT Press, 1985). (3) 민간설화 연구의 의 재평가와 활용. 즉 J. W. Rogerson, Anthropology and the Old Testament(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78; reprint Sheffield, 1984); Susan Niditch, Underdogs and Tricksters: A Prelude to Biblical Folklore(San Francisco: Harper and Row, 1987); Niditch, Folklore and the Hebrew Bible(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3); Patricia G. Kirkpatrick, The Old Testament and Folklore Study, JSOT Supplement Series 62(Sheffield: JSOT Press, 1988). (4) 궁켈의 고전적인 1921년 연구를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한 것. Hermann Gunkel, The Folktale in the Old Testament. 제 1 장 주 74를 참조하라.
주
1. 수미쌍관(inclusio)의 중심에 있는 제 2 장에서 주제 내용(inventio)를 교차대구적(dispositio)인 구조로 다룬 것을 참조.
2. 이 부분에서는 많은 명칭을 포함해서 복잡한 표현(예를 들면, 연구에서 다음절 discourse의 확산/만연)들이 쓰일텐데 이것은 방언의 혼동 현상에 어울린다. 추상적 개념을 묘사할 때 저자는 명료성을 추구할 뿐이다. 참조. Joseph M. Williams, Style: Toward Clarity and Grace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0), 17-45.
3. Ch. Perelman과 L. Olbrechts-Tyteca, The New Rhetoric: A Treatise on Argumentation, John Wilkinson과 Purcell Weaver역 (South Bend, Ind.: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69). 짧은 평가를 보려면 Barilli, Rhetoric, 104-6를 보라. 추출한 것을 보려면 Ch. Perelman, The Realm of Rhetoric, William Kluback역, Carroll C. Arnold의 서론 (South Bend, Ind.: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82), 2를 보라. Perelman이 "Ch."라는 축약형 대신에 Chaim이라는 이름으로 곧잘 인용되지만 Olbrechts-Tyteca,는 루시(Luci)라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고 "L."이라는 대문자아래 숨겨져 있다. 루시가 여성 저자라는 것을 아는 독자가 많지 않은데, Perelman은 영어판 서문(v-vi)에서 루시를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그는 둘의 저작을 "내 생각"이라고 해버린다. 고전수사학 학계의 심한 가부장적 편견 및 잊혀진 과거를 회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조각하는 현재의 노력에 대해서는 Corbett, Classical Rhetoric for the Modern Student, 576-78을 보라.
4. Perelman과 Olbrechts-Tyteca, New Rhetoric, 185-508.
5. Bernard L. Brock, Robert L. Scott, James W. Chesebro, eds., Methods of Rhetorical Criticism: A Twentieth-Century Perspective, 3rd ed. rev. (Detroit: Wayne State University Press, 1989). 부적절한 부분도 있지만 이 책은 복잡한 주제를 잘 소개한다.
6. 앞의 책, 14.
7. 앞의 책 15-17.
8. Thomas S. Kuhn,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2nd ed.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0)
9. Brock, Scott, Chesebro, eds., Methods of Rhetorical Criticism, 24-31. 월너(Wuellner)가 문학 구조와 수사학 구조를 구분한 것을 참조. 제 2 장의 주 68을 보라.
10. Aristotle, Rhetoric, LCL, I.ii.2.
11. 특히 Edwin Black, Rhetorical Criticism: A Study in Method (New York: Macmillan, 1965; 새 서문으로 복쇄, Madison: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1978)을 보라.
12. Brock, Scott, and Chesebro, Methods of Rhetorical Criticism, 86-95.
13. 체스브로는 제 삼판의 편집에만 참여했다.
14. Brock, Scott, and Chesebro, Methods of Rhetorical Criticism, 172-82.
15. 즉, Kenneth Burke, A Grammar of Motives (Englewood Cliffs, N.J.: Prentice-Hall, Inc., 1945); A Rhetoric of Motives (Englewood Cliffs, N.J.: Prentice-Hall, Inc., 1950)를 참조.
16. 즉, Ernest G. Bormann, "Fantasy and Rhetorical Vision: the Rhetorical Criticism of Social Reality," Quarterly Journal of Speech 58 (1972): 396-407를 참조.
17. 즉, Walter R. Fisher, Human Communication as Narration: Toward a Philosophy of Reason, Value, and Action (Columbia, S.C.: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Press, 1987)를 참조.
18. Brock, Scott, and Chesebro, Methods of Rhetorical Criticism, 274-302.
19. 앞의 책, 428-40.
20. 브락, 스캇, 체스브로가 탈현대주의자는 이론을 "회피한다(eschews)"고 정확하게 보고하지만 이런 주장이 사실 이론을 내세우는 셈이 된다.
21. 다시 말하건대 "반이론적(antitheoretical)"이라는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구체적인 상황과 불안정하거나 임의적인 해석에 대한 보편적 의미를 거부하는 것이 곧 이론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비평을 보려면 Christopher Norris, What's ?Wrong With Postmodernism (Baltimore: The John Hopkins University Press, 1990)을 보라.
22. Brock, Scott, and Chesebro, Methods of Rhetorical Criticism, 502-14.
23. "새 수사학"을 포함하여 신약성서 연구에서 전통적인 관점으로는, George A. Kennedy, New Testament Interpretation through Rhetorical Criticism (Chapel Hill: The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1984)과 Mack, Rhetoric and the New Testament를 보라. 참조. Antoinette Clark Wire, The Corinthian Women Prophets: A Reconstruction through Paul's Rhetoric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0), 특히 1-38; 197-201.
24. 월너와 반대. "Where is Rhetorical Criticism Taking Us?" 451.
25. 앞의 글, 452.
26. 참조. Brueggemann, "At the Mercy of Babylon," 17-22.
27. Frye, Anatomy of Criticism. 비평적 평가로는 inter alia, Frank Lentriccia, After the New Criticism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0), 3-26; Vincent B. Leitch, American Literary Criticism from the Thirties to the Eighties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8), 136-44를 보라.
28. Frye, Anatomy of Criticism, 245.
29. 앞의 책, 246-51.
30. 앞의 책, 14-15. 프라이는 바이워터(Bywater)의 아리스토텔레스 번역판을 사용한다. 골든(Golden)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시의 예술, 그 자체와 그것의 종류를 논하기로 하자. 각 종류의 특징을 설명하고, 또 시 작문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 그리고 더 나아가서 부분의 수와 종류가 시 작품에서 보이고 그 밖의 다른 문제들이 연관을 갖게 하기 위해서 구성(plots)을 형성하는 것이 왜 필수적인가를 설명하자. 첫 원칙에서 시작해서 자연 질서를 따르도록 하자" (Aristotle's Poetics, I.1; Golden, 3).
31. Tzvetan Todorov, Introduction to Poetics, Richard Howard 역, Theory and History of Literature의 vol. 1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1), 특히 3-12쪽을 보라.
32. Tzvetan Todorov, The Poetics of Prose, Richard Howard 역 (Ithaca, N.Y.: Cornell University Press, 1977). 서문에 나오는 조나단 쿨러(Jonathan Culler)가 요약이 도움이 된다; 앞의 책, 7-13.
33. 앞의 책, 236.
34. Todorov, Introduction to Poetics, 7.
35. 시학이 본문의 특수성을 무시한다는 비난에 대한 토도로프의 대답과 "읽기(reading)"에 관한 그의 논의를 보려면 The Poetics of Prose, 234-46을 보라. 성서학에서 시학이 쓰이는 경우로는 아델 벌린(Adele Berlin), Poetics and Interpretation of Biblical Narrative(Sheffield: Almond Press, 1983)를 보라. 또한 허버트 브릭토(Herbert Chanan Brichto), Toward a Grammar of Biblical Poetics: Tales of the Prophets(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2)를 보라. 앞의 책, 67-87쪽에 나오는 주석적인 논문, "And Much Cattle: YHWH's Last Words to a Reluctant Prophet"을 참조. 책 분량의 연구로는 케넷 크랙(Kenneth M. Craig, Jr.)의 A Poetics of Jonah: Art in the Service of Ideology(Columbia, S.C.: University of South Carolina Press, 1993)를 보라. 이들 시학 분석은 제 2 부의 요나서 연구에서 참조하기에는 너무 늦게 출판되었다.
36. 로이 해리스(Roy Harris) 편주, 페디난드 드 소쇠르(Ferdiand de Saussure)의 Course in General Linguistics(London: Duckworth, 1983)를 보라. 프랑스어 원작은 1916년에 Cours de linguistique generale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의 소개를 보려면 조나단 쿨러(Jonathan Culler)의 Ferdinand de Saussure, Penguin Modern Masters, Frank Kermode 편(New York: Penguin, 1977)을 보라.
37. 주요 본문이 들어있는 좋은 책으로는 마이클 레인(Michael Lane) 편, Introduction to Structuralism(New York: Basic Books, 1970)이 있다.; Terence Hawkes, Structuralism and Semiotics(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7) 참조.
38. Lane, Introduction to Structuralism, 11-39.
39. Jonathan Culler, Structuralist Poetics(Ithaca, N.Y.: Cornell University Press, 1975)를 보라. 쿨러 비판으로는 Lentricchia, After the New Criticism, 103-12를 보라. 또한 Robert Scholes, Structuralism in Literature: An Introduction(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74) 참조.
40. 더 자세한 분석으로는 Leitch, American Literary Criticism, 238-66을 보라.
41. 이 장 끝에 나오는 확대주에 도서목록이 나온다.
42. 미국에서는 "독자반응비평"이라는 용어가 쓰인다. 독일의 수용이론(Reception Theory)과 비교한 것으로는 라벗 홀럽(Robert C. Holub), Reception Theory: A Critical Introduction(New York: Methuen, 1984)을 보라.
43. 에이브럼스 모델을 설명한 제 1 장을 참조. 이 모델로 시작하는 독자반응비평을 간략하게 소개한 것으로는 엘리자벳 프런드(Elizabeth Freund), The Return of the Reader(New York: Methuen, 1987)을 보라. 개괄과 평가로는 Leitch, American Literary Criticism, 211-37을 보라. 참조. 제인 탐킨스(Jane P. Tomkins) 편, Reader-Response Criticism: From Formalism to Post-Structuralism(Baltimore: The John Hopkins University Press, 1980).
44. Patrick and Scult, Rhetoric and Biblical Interpretation, 18-24, 134-39에 나오는 이상적인 독자에 대한 설명을 참조.
45. Susan R. Suleiman, "Introduction: Varieties of Audience-Oriented Criticism," The Reader in the Text: Essays on Audience and Interpretation, eds. Susan R. Suleiman and Inge Crosman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0), 3-45를 보라.
46. 이후의 요약은 스탠리 피쉬(Stanley Fish), Is There a Text in this Class? The Authority of Interpretive Communities(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80), 1-17을 요약한 것이다. 서평을 보려면 Richard Wollheim, "The Professor Knows,"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vol. 28(17 December 1981): 64-66.
47. Patrick and Scult, Rhetoric and Biblical Interpretation, 22-24에 나오는 해석 공동체에 대한 논의를 참조.
48. Fish, Is There a Text in this Class? 11.
49. 앞의 책, 17.
50. 그러나 그 항해는 끝나지 않았다. 항해는 피쉬를 독자반응비평에서 해체비평으로 날랐다. 아래를 보라. 피쉬에 대한 비평으로는 Lentricchia, After the New Criticism, 146-48과 Leitch, American Literary Criticism, 214-29를 보라.
51. Suleiman, The Reader in the Text, 7-11.
52. Wayne C. Booth, The Rhetoric of Fiction(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1), 특히 67-86과 여러 곳.
53. 앞의 책, 49, 50, 70, 136-40.
54. 성서와 관련해서 독자반응비평에 대해 도움이 되는 논의로는 (유감스럽게도 수사학비평을 빠뜨리고는 있지만) Edgar V. McKnight, Post-Modern Use of the Bible: The Emergence of Reader-Oriented Criticism(Nashville: Abingdon Press, 1988)과 Mark G. Brett, "The Future of Reader Criticism?" The Open Text: New Directions for Biblical Studies?, ed. Francis Watson (London: SCM Press Ltd., 1993), 13-31을 보라.
55. Roman Ingarden, The Literary Work of Art, George G. Grabowicz의 번역과 서론 (Evanston: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1973), 331-55. 독일어 초판은 1931년에 나왔다. 1960년과 1965년에 두 번의 재판이 있었고 1960년에 폴란드어 수정판이 나왔다. 40년 후에야 영어판이 나와서 1968년 이후 많은 독자들이 접할 수 있게 되었다.
56. Iser가 Ingarden을 비평한 것으로는 The Act of Reading: A Theory of Aesthetic Response (Baltimore: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78), 170-79를 보라.
57. Iser, The Act of Reading, 178.
58. 앞의 책, 169.
60. 앞의 책, 118 이하; 122-34. Patrick and Scult, Rhetoric and Biblical Interpretation, 85 이하에 나오는 일관성 성립(consistency-building)에 대한 논의를 참조.
61. Ingarden과 Iser에 대한 비평으로는 Eagleton, Literary Theory, 74-85와 Suleiman, "Introduction," The Reader in the Text, 22-27을 보라.
62. Patrick and Scult, Rhetoric and Biblical Interpretation, 특히 19-21 참조.
63. 해체비평을 아주 잘 소개한 책으로는 Christopher Norris, Deconstruction: Theory and Practice (New York: Routledge, 개정판 1991)를 보라. 달리 명시하지 않는 한 해체비평에 대한 요약을 이 책과 Lentricchia, After the New Criticism, 156-210과 Leitch, American Literary Criticism, 270-306에서 나온 것이다.
64. Jonathan Culler, On Deconstruction: Theory and Criticism after Structuralism (Ithaca, N.Y.: Cornell University Press, 1982) 86.
65. Jacques Derrida, Writing and Difference, Alan Bass의 서론과 번역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8)를 보라.; John Sturrock 편, Structuralism and Since: From Levi-Strauss to Derrida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1); Harold Bloom et al., Deconstruction and Criticism (New York: Seabury, 1979)를 참조. Madan Sarup, An Introductory Guide to Post-Structuralism and Postmodernism, 제2판 (Athens: The University of Georgia Press, 1993)
66. Culler, On Deconstruction, 185-87; Leitch, American Literary Criticism, 284 이하.
67. 이 문장에서 쓴 도치법 (anastrophe, 문자적으로는 "되돌아 가기" 즉, 어순을 바꾼 것)에 주목하라. 부록 B 참조.
68. Donald E. Pease, "Author," Critical Terms for Literary Study, 105-17.
69. Lentricchia, After the New Criticism, 185.
70. Suleiman, "Introduction," The Reader in the Text, 38-45.
71. Leitch, American Literary Criticism, 288 이하.
72. Joseph N. Riddel, "Response: A Miller's Tale," Diacritics 5 (Fall 1975): 56-65를 보라. Leitch의 American Literary Criticism, 279 이하에 나오는 Riddel의 논의를 참조.
73. Norris, Deconstruction, 특히 99-105; Leitch의 American Literary Criticism, 273-76을 보라.
74. 여기에는 기태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적용한 것과 패트릭과 스컬트의 작업을 포함하지 않았다. 보다 큰 문제에 대해서는 Michael La Fargue, "Are Texts Determinate? Derrida, Barth, and the Role of the Biblical Scholar," HTR 81 (1988): 341-57. 성서에 아주 잘 적용한 해체비평으로는 Edward L. Greenstein, "Deconstruction and Biblical Narrative," Prooftexts 9 (1989): 43-71.
75. 다양한 문학이론의 질서를 정립할 필요가 있는 동시에, 참고도서의 증대는 그 분야의 연구폭발을 입증한다. 도서목록으로는 이 장 뒤에 실린 확대 주를 보라.
76. Peter W. Macky, "The Coming Revolution: The New Literary Approach to the New Testament," in A Guide to Contemporary Hermeneutics, Donald K. McKim 편 (Grand Rapids, Mich.: William E. Eerdmans, 1986), 263-79를 보라. 패러다임의 전환에 대해서는 앞의 A 부분을 보라.
77. 역사비평방법은 18세기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성서연구를 지배했다. Edgar Krentz, The Historical-Critical Method, 특히 6-32, 73-88을 보라. 제 1장 C부분에 있는 논평을 참조. 역사비평을 새로운 문학 경향과 연결시키는 개관한 것으로 John Barton, Reading the Old Testament: Method in Biblical Study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84)를 보라. 역사 및 문학 패러다임을 결합한 성공적인 작업으로는 Jon D. Levenson, "I Samuel 25 as Literature and as History," CBQ (1978): 11-28을 보라. 최근 작업으로는 문학비평 내에서 발달한 신역사주의(New Historicism)를 참조 (아래의 확대 주 75 참조).
78. Muilenburg, "Form Criticism and Beyond," 8.
79. 즉, 두 성서학자의 작업을 보라. James Kugel, "On the Bible and Literary Criticism," Prooftexts 1 (September 1981): 217-36; Adele Berlin and James Kugel, "On the Bible as Literature," Prooftexts 2 (September 1982): 323-32. 또한 Leland Ryken and Tremper Longman, "Introduction," A Complete Literary Guide to the Bible, Ryken and Longman 편 (Grand Rapids, Mich.: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3), 20-29를 보라.
80. Patrick and Scult, Rhetoric and Biblical Interpretation, 22-24 참조.
81. 즉 Sandor Goodhart, "Biblical Theory and Criticism: Modern Criticism," The Johns Hopkins Guide to Literary Theory & Criticism, 84-90를 보라.
82. 1960년대 직전에 계몽적인/빛을 비추는 illuminating? 연구인 Zvi Adar, The Biblical Narrative, Misha Louvish 역 (Jerusalem: Goldberg's Press, 1959)가 나타났다. 이 책은 문학 특징을 단편, 이야기의 순환, 장편, 책, 전체 성서 이야기 등 다섯 단계로 분석했다.
83. Luis Alonso-Schoekel, Estudio de poetica hebrea (Barcelona: Juan Flors, 1963); 영어 개정판, A Manual of Hebrew Poetics, Subsidia Biblica, 11 (Rome: Pontifical Biblical Institute, 1988).
84. Luis Alonso-Schoekel, "Narrative Structures in the Book of Judith," The Center for Hermeneutical Studies in Hellenistic and Modern Culture (Berkeley, 1975), 1-20, 45-47.
85. L. Alonso-Schoekel, "Hermeneutical problems of a Literary Study of the Bible," Supplement to VT, Congress Volume 28 (Leiden: E. J. Brill, 1975), 1-15.
86. Edwin M. Good, Irony in the Old Testament (Philadelphia: Westminster, 1965).
87. 제 2 판이 1981년에 나왔다(Sheffield: University of Sheffield Press). 굿은 수사학비평을 포함하는 절충적 접근을 굳건히 주장했지만 책을 개정하게 되면 문학비평을 신학과 연결하지 않겠다고 했다(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88. J. P. Fokkelman, Narrative Art in Genesis: Specimens of Stylistic and Structural Analysis (Assen, The Netherlands: Van Gorcum, 1975).
89. 참조. 최근에 J. P. Fokkelman, Narrative Art and Poetry in the Books of Samuel: vol. 1, King David (Assen, The Netherlands: Van Gorcum, 1981).; vol. 2, The Crossing Fates (1986); vol. 3, Throne and City (1990); vol. 4, Vow and Desire (1993). 볼륨 1의 서평으로는 James S. Ackerman, "Book Review," JSOT 25 (1983): 119-24를 보라. 1970년대의 다른 문학 연구를 소개하는 글로는 Edward L. Greenstein, "Biblical Narratology," Prooftexts 1 (May 1981): 201-8을 보라.
90. Jacob Licht, Storytelling in the Bible (Jerusalem: The Magnes Press, 1978).
91. 앞의 책, 23.
92. Robert Alter, The Art of Biblical Narrative (New York: Basic Books, 1981). Jon Levenson의 서평을 참조. 이 서평은 얼터의 지식이 부족한 부분을 지적했다. (Book Reviews, Biblical Archaeologist 46, Spring 1983, 124-25). 짝으로 나온 책으로는 Alter, The Art of Biblical Poetry (New York: Basic Books, 1985).
93. 참조. Robert Alter, "How Convention Helps Us Read: The Case of the Bible's Annunciation Type-Scene," Prooftexts 3 (May 1983): 115-30, 특히 118-19.
94. 이 점에 대해서는 JSOT 27 (1983): 75-117에 실린 R. N. Whybray, David Jobling, and Norman C. Habel의 논문들과 Alter의 응답을 보라.
95. Meir Sternberg, The Poetics of Biblical Narrative (Bloomington, Ind.: Indiana University Press, 1985). 스턴벅의 난해한 필체를 고려할 때 초학자는 먼저 다른 책을 보는 것이 좋겠다. 즉 Shimon Bar-Efrat, Narrative Art in the Bible (Sheffield: Almond Press, 1989). 참조. Michael Fishbane, "Recent Work on Biblical Narrative," Prooftexts 1 (January 1981): 99-104.
96. Sternberg, Poetics, 41-57.
97. 앞의 책, 186-229; 365-440.
98. 이저의 작품에 나오는 간격 개념을 참조. 앞의 주 59번을 보라.
99. Sternberg, Poetics, 441-515.
100. 앞의 책, 104.
101. 앞의 책, 475-81.
102. 스턴벅에 대한 비평적 서평으로는 이 장 뒤의 확대 주를 보라.
103. Northrop Frye, The Great Code (New York: Harcourt Brace Jovanovich, 1982). 서평으로는 Naomi Bliven, "The Good Book," The New Yorker (31 May 1982): 104-6. Susan Einbinder, "Alter vs. Frye: Which Bible?" Prootexts 4 (1984): 301-8.
104. Gabriel Josipovici, The Book of God: A Response to the Bible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88). 서평으로는 Michael Fishbane, JBL 110/2 (1991): 323-25을 보라.
105. Josipovici, The Book of God, 23.
106. Robert Alter and Frand Kermode, eds., The Literary Guide to the Bible (Cambridge, Mass.: Belknap, 1987).
107. 서평으로는 James L. Crenshaw, "What Does One Need to Know to Understand the Bible?" Book and Religion 16 (Fall 1989): 6, 9, 10, 24; Mieke Bal, "Literature and Its Insistent Other," JAAR 57/2 (1989): 373-83; Edgar V. McKnight, "New Criticism and Old," JAAR 57/2 (1989): 385-91; David Jobling, "A Discourse About the Meanings of the Whole," Int 46 (1992): 181-82.
108. Harold Bloom, The Book of J (New York: Grove Weidenfeld, 1990). 서평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 긴 논의로는 Iowa Review 21 (1991)에 실린 Richard Eliot Friedman, Jay Holstein, Carol Meyers, and Phyllis Trible의 논문들을 참조.
109. Northrop Frye, Words with Power: Being a Second Sturdy of "The Bible as Literature" (San Die해: Harcourt Brace Jovanovich, 1990). 비평적인 서평으로는 Robert M. Adams, "God and the Critics," The New York Times Book Review (31 March 1991): 14f; Denis Donohue, "Mister Myth," New York Times Review of Books 39 (9 April 1992): 25-28을 보라.
110. Robert Alter, The World of Biblical Literature (New York: Basic Books, 1992), xii. 얼터가 Bloom의 The Book of J를 냉혹하게 서평한 것이 이 책 153-69를 보라. 얼터의 책을 비평한 서평으로는 Stephen A. Geller, "Some Pitfalls in the 'Literary Approach' to Biblical Narrative," JQR 74 (1984): 408-15; Edward Greenstein, "Grasping the Meaning of a Peculiar Literature," Forward (15 may 1992): 10.
111. Leland Ryken and Tremper Longman, eds., A Complete Literary Guide to the Bible. 얼터와 커모드가 편집한 (앞의 주 106번을 보라) 책의 제목처럼 이 책의 제목 역시 크게 주장한다. 이 책은 "완전한(complete)"과는 거리가 멀다. 성서의 각 책에 관한 논문을 싣고 있지 않고 "대표적인 예"를 제공할 뿐이다.
112. 유대인 소설가 하임 포톡 (Chaim Potok)은 예외이고, 기독교인 소설가 프레더릭 부치너?(Frederic Buechner)가 또 한 예외이다.
113. Biblical Interpretation: A Journal of Contemporary Approaches, eds. J. Cheryl Exum and Mark G. Brett, vol. 1- (Leiden: E. J. Brill, 1993-)
114. Frye, Words With Power, xvi.
115. Mieke Bal, Death and Dissymmetry: The Politics of Coherence in the Book of Judge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8); David Damrosch, The Narrartive Covenant: Transformations of Genre in the Growth of Biblical Literature (San Francisco: Harper and Row, 1987); Esther Fuchs, "The Literary Characterization of Mothers and Sexual Politics in the Hebrew Bible," in Feminist Perspectives on Biblical Scholarship, ed. Adela Yarbo Collins (Chico, Calif.: Scholars Press, 1985), 117-36.
116. James Ackerman, "Joseph, Judah, and Jacob," in Literary Interpretations of Biblical Narratives, vol. 2, ed. Kenneth R. R. Gros Louis (Nashville: Abingdon, 1982), 85-113; Ackerman, "Who Can Stand Before YHWH, This Holy God? a Reading of 1 Samuel 1-15," Prooftexts 11 (1991): 1-24; Adele Berlin, The Dynamics of Biblical Parallelism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85); Edgar W. Conrad, Reading Isaiah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1); James L. Crenshaw, Samson (Atlanta: John Knox Press, 1978).
117. J. Cheryl Exum, "Promise and Fulfillment: Narrative Art in Judges 13," JBL 99 (1980): 43-59; Exum, "Of Broken Pots, Fluttering Birds, and Visions in the Night: Extended Simile and Poetic Technique in Isaiah," CBQ 43 (1981): 331-52; Exum, "The Tragic Vision and Biblical Narrative: The Case of Jephthah," in Signs and Wonders: Biblical Texts in Literary Focus, ed. J. Cheryl Exum (Atlanta: SBL, 1989), 59-83; David M. Gunn and Danna Nolan Fewell, Narrative in the Hebrew Bibl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3; Edward L. Greenstein, "The Riddle of Samson," Prooftexts 1 (1981): 237-60; Greenstein, "Mixing Memory and Design: Reading Psalm 78," Prooftexts 10, Part 2 (1990): 197-209; David Gunn, The Fate of King Saul, JSOT Suppl. Ser. 14 (Sheffield: JSOT Press, 1980).
118. David Jobling, The Sense of Biblical Narrative: Structural Analyses in the Hebrew Bible; John S. Kselman, "Semantic-Sonant Chiasmus in Biblical Poetry," Biblica 58 (1977): 219-23; Kselman, "Why Have You AbandonedMe? A Rhetorical Study of Psalm 22," Art and Meaning: Rhetoric in Biblical Literature, ed. Clines, et al, 172-98; Kselman, "Psalm 3: A Structural and Literary Study," CBQ 49 (1987): 572-80; Kselman, "Psalm 146 in its Context," CBQ 50 (1988): 587-99; Kselman, "The Literary Study of the Bible," America (31 October 1987): 297-99; 310f; M. O'Connor, Hebrew Verse Structure: O'Connor, "Pallelism," NPEPP, 877-79; Robert Polzin, 아래 확대 주 41번.
119. 북미라는 말은 다른 곳에 살고 있다 할지라도 미국과 캐나다 성서학 연구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문학비평가들을 가리킨다. 북미 이외의 상황의 예는 이 장 뒤에 나오는 확대 주를 보라.
120. 다음과 같은 예를 더 들 수 있다. Paul R. House, ed., Beyond Form Criticism: Essays in Old Testament Literary Criticism (Winona Lake, Ind.: Eisenbrauns, 1992). 도서목록으로는 Cecile G. Gray와 Melissa C. Curtis가 도와서 Mark Allan Powell의 정리한 The Bible and Modern Literary Criticism: A Critical Assessment and Annotated Bibliography (New York; Greenwood Press, 1992)와 Mark Minor, Literary-Critical Approaches to the Bible: An Annotated Bibliography (West Cornwall, Conn.: Locust Hill Press, 1992); Watson and Hauser, Rhetorical Criticism of the Bible 등을 보라.
121. John H. Hayes, ed., Old Testament Form Criticism (San Antonio, Tex.: Trinity University Press, 1974), xviii.
122. Hayes, "Preface," ibid., xviii. 이 문제들은 마일렌벅이 지적한 바와 같다. 제 2 장의 A 부분을 보라.
123. Martin J. Buss, "The Study of Forms," ibid., 1-56; 참조. Buss, "Form Criticism," To Each Its Own Meaning, 69-85.
124. Robert R. Wilson, "A Progress Report or an Obituary?" Int 30 (1976): 71-74.
125. Rolf Knierim, "Old Testament Form Criticism Reconsidered," Int 27 (1973): 435-68.
126. 이 출판사는 미시건주 Grand Rapids시에 있는 William B. Eerdmans이다. 1994년까지 개신교 정경 39권 중에서 14권을 다룬 8권의 책이 나왔다.
127. 예를 들면 "신화"는 다신 이야기, 기원이야기, 초자연적인 것 이야기 등으로 다양하게 정의되었다. Brevard S. Childs, Myth and Reality in the Old Testament (Naperville, Ill.: Alec R. Allenson, Inc., 1960), 13-16; J. W. Rogerson, Myth in Old Testament Interpretation (Berlin: Walter de Gruyter, 1974) 참조.
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