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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의 민속의례와 마당극, 단군제를 모시는 의례
제6회 부천시민화합대동제 및 단군제
☞일시: 2004. 10. 3(금, 개천절) 12:00 ~ 18:00
☞장소: 중앙공원 야외음악당
☞주최: (사)부천역사문화재단 부천전통문화보존위원회,
창극단 사랑채
☞주관: (사)부천역사문화재단, 대한신불교 천우종 경기서부본원, 드림씨티방송
☞후원: 경기문화재단, 부천시, 부천상공회의소, 도원일식, 경인문고, (주)경인여행사, 부천타임즈, 중동신문, 세종병원, 천우종교신문, 한마음교통봉사대, 부천관광호텔, (주)손가, 유명숯불갈비, (주)장원입시전문학원, 탑웨딩홀․부페
ꁰ 제6회 부천시민화합대동제와 제2회 단군제를 개최하면서 ꁰ
『부천의 민속의례를 발굴 재현하는데 앞장서고 있는』사단법인 부천역사문화재단 산하 전통문화보존위원회에서는 부천민속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제6회 부천시민화합대동제】와 개천절을 맞이하여 국조 단군 왕검을 기리는 제2회 단군제를 준비하였습니다.
【부천시민화합대동제】는 1999년 부천역사연구소에서 자료 보완하여 제9회 전국무속예술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조마루도당굿>을 근간으로 하여 매년 개최하고 있는 우리 지역의 소중한 민속의례를 담고 있는 행사입니다. 조마루도당굿은 이미 조마루도당제란 명칭으로 1980년대 본 역사문화재단 최현수 소장에 의해 자료가 발굴된 바 있습니다. 조마루도당굿을 위주로 구성된 시민화합대동제는 도시화된 지금은 쉽게 접할 수 없는 부천의 민속의례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우리 고장에는 부천들 일대에서 행해진 ‘농기고두마리’와 중동 장말의 ‘장말도당굿’, 상동의 ‘사래이도당굿’, 오정구 원종동에서 행해지고 있는 ‘도당우물 대동제’, 소사동과 역곡동에서 행해지고 있는 산신제(산치성제), 원미동에서 행해진 ‘조마루도당제 등 우리 고장에서만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민속놀이와 의례가 있습니다.
특히 조마루도당제는 자료 보완을 통해 모든 시민이 감상할 수 있는 조마루도당굿으로 재구성하여 1999년부터 부천시민화합대동제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이러한 민속의례를 통해 부천의 정체성을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천의 정체성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부천의 정체성은 부천의 역사·문화를 체계적으로 인식하고, 현재 생활에 대한 긍지를 바탕으로 21세기 정보화·지방화시대의 이상을 구현할 수 있는 생산과 소비메카니즘이 결합되고, 주거와 산업이 공존하며 환경친화적인 도시시스템이 복합된 인간의 얼굴을 가진 도시를 만드는데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정체성을 밝히는 한 가지 방법으로 우리 고장 사람들이 예전부터 행해왔던 민속의례들을 살펴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천시민화합대동제는 시민과 함께 하는 행사로 매년 거행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작년부터는 대동제 날자를 개천절인 10월 3일로 고정화시켜 행사를 진행합니다.
개천절은 국조 단군 왕검이 우리나라를 개국하신 날로서 우리 민족에게는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올해 대동제는 경기도의 유일한 창극단인 사랑채가 마당극 뺑파전으로 참여하여 볼거리를 제공해줄 것입니다. 마당극과 대동굿가 함께 하는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2004. 10
사단법인 부천역사문화재단 소장 최 현 수
부천전통문화보존위원회 위원장 황명연
ꁰ 프로그램 및 출연진ꁰ
■ 프로그램
Ⅰ부(60분)
단군제: 제주,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축문
대감놀이(임과산과 그 문하생)
Ⅱ부(4시간)
첫째 마당: 장승돌돌이(참석자 전원)
둘째 마당:
1. 주당물림(경관만신: 김계순) 2. 부정거리
셋째 마당: 단군제(참석자 전원)
넷째 마당:
1. 산천거리(경관만신: 김계순) 2. 부근거리 3. 성황거리
다섯째 마당:
1. 칠성거리(만신: 홍세영) 2. 불사거리(팔선녀 포함)
3. 선녀거리(팔선녀 전원)
여섯째 마당:
1. 성산거리(만신: 오귀녀) 2. 별상거리 3. 신장거리
4. 대감거리(대감들 전원) 5. 대신거리
일곱째 마당: 성수장군거리(작두거리- 경관만신: 김계순)
여덟째 마당: 1. 창부거리(만신: 오귀녀) 2. 마당거리- 화합의 장(참석자 전원)
Ⅲ부(30시간)
민요
Ⅳ부(1시간)
마당극 뺑파전(임과산과 그 문하생)
■ 출연진
● 총사회: 김진우 (사)부천역사문화재단 기획실장
● 음향: 권고섭 부천연극협회 지부장
● Ⅰ부 단군제 진행: 황명연 위원장
대감놀이 출연 지도: 임과산(창극단 사랑채 단장)
● 임과산
● 안금순
● 고수 - 안광숙
● Ⅱ부 민요 출연 지도: 임과산
● 민요: 이제니, 이진솔, 헌재은
● Ⅲ부 총지휘: 황명연 위원장
● 출연 지도: 김계순
● 부정, 주당물림: 김계순(주무)
● 산천거리: 김계순
● 부근신장 대감거리: 김동원(조무)
● 칠성거리: 노경수
◇ 팔선녀: 김순금, 김헌자, 김미숙, 조혜정, 방숙희, 김영숙, 박금람
● 악사
◇ 피리: 고장욱 ◇ 장구: 한숙자 ◇ 징: 김교식 ◇ 제금: 김순금
● Ⅳ부
● 총지휘: 임과산 단장
● 뺑파 - 임과산 ● 심봉사 - 조연희 ● 황칠이 - 손은경
● 주모 - 안금순 ● 고수 - 여승구 ● 심청 - 여단비
● 무대감독 - 김윤
● 음향 - 조일선
● 진행 - 이
ꁰ 이해 돕기 ꁰ
■ 단군제와 개천절
중국 진수가 쓴 <삼국지 위서>에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단군 왕검이 있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개국하였으니 그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하였다. 그 때는 중국 요나라 때였다' 고 씌어 있다.
남아 있는 우리 역사서 중 단군에 대한 기록은 1280년께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에 가장 먼저 실려 있다.
이 책은 단군이 조선을 건국했다는 사실은 "비단 중국 사서뿐 아니라 우리의 옛 기록(古記)에 더 자세히 기록돼 있다" 고 쓰고 있다. 이보다 몇 년 뒤인 1287년에 나온 이승휴의 <제왕운기> 에도 건국시조로서 단군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 두 책이 나온 때는 고려가 몽골의 침략으로 위기를 맞고 있을 때다.
마땅히 단일민족으로서의 민족의 정체성과 통합이 절실해져 단군의 재인식이 필요했을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나라의 운이 기울던 구한말 대종교 등 민족종교들이 단군을 내세웠으며, 1919년 상해임시정부는 개천절 날 경축행사를 벌였다. 이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48년부터 개천절은 국경일로 정해졌다.
한편 북한에서는 1993년 평양 강동군에서 단군릉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1530년 편찬된 서거정 등의 <신증동국여지승람> 에는 "주위가 4백척이나 되는 대총이 있는데 단군릉이라 전해온다" 는 기록도 있다. 북한은 발굴한 능을 복원하고 1994년부터 단군제를 성대히 치르고 있다.
평양 근교에 있는 단군릉 발굴 발표 때 우리의 입장은 냉소적이었다. 유골 연대측정 방법이나 청동기. 신석기 연대에도 맞지 않으니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또 고조선. 고구려로 이어지는 정권의 정통성 선전을 위한 조작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비단 단군릉 발표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고조선의 건국과 통치자 단군과 그 강토에 대한 해석이 주류. 비주류, 강단. 재야 사학자에 따라 제각각이다.
그러다 보니 개천절 유래에 대해 수긍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연구나 설명 없이 우리는 오늘 또 단기 4333년의 개천절을 맞아 (사)부천역사문화재단에서는 두 번째 단군제를 지낸다.
전 세계의 시선을 모았던 시드니 올림픽에서 우리는 개. 폐회식 남북한 동시입장으로 감동을 자아냈다.
홍익인간을 내세운 단군이 세운 나라의 단일민족임을 세계에 보여주면서도 우린 아직 國祖가 누구라는 것을 제대로 못 밝힐 정도로 이해관계에 의해 흩어져 있다.
단군시대를 향한 빗장도 못 풀면서 그 이전 우리 조상들이 누볐을 '철의 실크로드' 그 광대한 북방대륙을 꿈꾸고 있다.
단군에 관한 이해는 문헌과 고고학적 방법을 연결시켜 단군신화를 분석하는 것이 합리적임을 보여준다. 즉, 단군신화가 포용하고 있는 역사의 시대가 과연 고고학적으로 어떠한 문화를 내포한 시대인가 하는 문제이다.
단군을 중심으로 볼 때 웅녀의 존재는 곰(熊)의 자손이라는 사상이 중심이 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신화내용을 동북아시아지역과 연결시켜 고려할 때 고아시아족(Paleo Asiatic)의 존재를 주목하게 된다. 고아시아족의 시조신화가 곰숭배사상을 지니고 있고 그들은 곰의 자손이라고 믿고 있다. 또한, 고아시아족은 곰숭배와 함께 샤머니즘이라는 종교적 요소를 보유하고 있는데, 최고의 샤먼을 지칭하는 텡그리(tengri)와 ‘단군’과의 관련성 및 그 기능과 관련된 世系木관념이 신단수 등으로 나타나고 있어, 단군신화의 내용을 고아시아족과 연결시켜 파악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우리의 신석기문화가 시베리아지역과 관련되며, 시베리아 신석기문화의 담당자가 고아시아족이라는 사실은 단군신화의 시대적 성격이 신석기문화와 연결되고 있다고 이해하게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빗살무늬토기가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로 변화한다는 사실이 곧 종족과 문화의 변화에서 결과한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둘 때, 우리의 청동기문화를 담당한 종족이 알타이계통의 예맥족이다. 이와 함께 단군의 개국연대가 중국의 요임금과 연결되어 있으나 이 점도 더 연구를 필요로 한다. 최근 이 시기의 문제와 관련하여 요령 지역의 풍하문화(豊下文化:夏家店下層文化)가 청동기문화로서 단군의 개국연대와 연결된다는 견해가 있으나, 이 문화는 우리와 직접적 관련성이 약한 것으로 이해된다.
▶ 단군신화의 의의
한편, 단군신화를 시대적 변화를 계기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이해한 견해가 있다. 즉, 첫째 단계에서는 씨족사회에서의 단순한 씨족토템이 생겼고, 둘째 단계에서는 ‘군사 민주주의 단계’로 이행하는 시기에 ‘군사수장’으로서의 단군이 등장하였고, 셋째 단계에서는 계급국가형성 후 고조선 국왕으로서의 단군이 등장한 것으로 보았는데, 보다 철저한 검증이 요구된다.
또, 단군관계 문헌을 분류하여 <삼국유사>를 佛家 계통의 사서로, <제왕운기> 등은 儒家 계통의 사서로 보고, 道家 계통의 사서로서 <규원사화>·<환단고기> 등을 제시하여 단군조선의 역사가 47대의 마지막 왕에 이르기까지 실사(實史)였음을 강조한 견해가 제시되기도 하였다.
원래 신화는 역사적인 사실 바로 그 자체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 속에 내재된 역사성을 중시하여야 하며, 어떤 맥락에서든 신화의 의미는 풀려야 한다. 그러나 단군의 개국신화를 그대로 왕조사인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무리한 점이 많다. 어쨌든, 이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이 수난을 당하고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족의 단합을 요구하는 구심체 구실을 하여왔고, 계속 그와 같은 의미와 가치를 유지할 것이다.
■ 대감놀이와 마당극 빵파전, 그리고 민요
경기도 유일의 창극 극단 사랑채(단장 임과산)의 34번째 공연이다.
■ 조마루도당굿은?
도당제가 행해졌던 조마루는 1973년 부천시가 되면서 원미산 아래 있는 동네이므로 원미동이 되었다. 이곳은 400여 년 전부터 창령 조씨, 청주 한씨, 전주 이씨, 은진 송씨, 원주 원씨 등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던 곳이다.
제일 먼저 정착한 창령 조씨로 인해 이곳의 마을 이름이 정해진 것인데 즉 이 마을은 ‘창령 조씨가 종가를 이룬 마을’이기 때문에 처음 曺宗里로 불리다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朝宗里 로 한자가 바뀌고 이를 풀어 조마루라 하였다.
원미동에는 두 개의 당이 있었다. 고비골(춘의아파트 남쪽 아래. 소신여객 차고가 있는 부근)에서 부일초등학교 쪽으로 넘어오는 현재 춘의주공아파트가 있는 산등성이에 서낭당이 하나 있었고, 이곳에서 마주보이는 남쪽 산마루에 또 하나의 서낭당이 있었다.
부일초등학교 북쪽에 있는 서낭당을 할배당이라 하고, 마주 보고 있는 당을 할미당이라 불렀다. 이곳에서 매년 2회 도당제를 지냈다.
원미산 서쪽 끝 봉우리에 해당되는 원미동 산 5번지에 있던 노송나무에 도당할아버지신이 모셔져 있었고, 원미산 중앙 끝 봉우리에 해당하는 원미동 산 15-24번지에 있던 박달나무에 도당할머니신이 모셔져 있었다.
그리고 동서남북에는 장승이 세워져 있었다. 동방에 해당하는 원미동 29-10번지에는 250여 년 수령의 엄나무가 있어 이곳이 동방청제축귀대장군이 되고, 남방에 해당하는 원미동 153번지에 200여 년 수령의 가죽나무 세 그루 중 중앙에 있던 나무가 남방적제축귀대장군이며, 원미동 58-2번지에 있는 수령 300여 년 된 참나무가 서방백제축귀대장군이 되었다.
도당제는 봄(음력 3월 1일에 길일을 택함)과 가을(음력 10월 1일에 좋은 날을 택함)에 걸쳐 행해졌다. 다른 곳에서 행해지는 도당제가 거의 추수감사제적 성격이 강한데 비해 조마루도당제는 풍년을 기원하는 예축제와 한 해 풍년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때 마을의 안녕과 대풍을 기원하는 봄의 도당제와 한 해 농사에 감사하는 가을의 도당제를 매년 지냈다. 도당제에 임하게 되면 이장은 동네유지들의 뜻을 물어 마을에서 덕망 있는 사람을 골라 앉은 당주 한 사람과 선 당주 두 사람을 선발한다. 이들은 도당제에 필요한 물자와 제수를 준비하여 도당제를 올린다.
제사의 절차는 안반고사, 시제, 장승고사, 3당주 재배, 초헌, 축문, 아헌, 종헌, 첨잔, 음복 등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이어져 오던 도당제가 단절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 마을이 도시화되면서 당나무들을 베어버렸기 때문이다.
제사를 지내고 나서 도당굿이 이어진다.
도당은 경기도 지방에서 쓰이는 말로 ‘마을사람이 함께하는 것’을 의미하며, 대동의 뜻으로 쓰인다. 즉 ‘도당’이란 마을의 신을 모시고 제사하는 단을 뜻하며, 일반적 동제와는 달리 무속인 이 주재하는 것이 특징이다. 굿은 신과 인간의 중간에 있어 사제와 영매의 역할을 하는 무당이 제물(굿상)로써 신을 대우하고, 춤과 노래로써 신을 즐겁게 하여 복, 수. 운(運), 재 및 건강 등을 청원하는 의뢰인(제가집)에게 끊임없는 축원과 덕담을 주고, 굿판에서 바로 신의 대답(공수나 신탁)을 전달해 주는 무의식(巫儀式)이다.
경기도 지방의 도당굿(지역적 특정에 따라서 고창굿 혹은 성황굿이라고 부르며, 경기도 지방에서 마을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그 마을의 洞神에게 마을의 안녕을 비는 굿)은 정월과 10월에 마을의 안녕과 家內의 安過太平을 기원하고 생업의 형태에 따라서는 풍농이나 풍어를 기원하며 대동이 모두 참여하는 굿이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보면 [옛날 우리나라에는 호랑이나 범에 의한 피해가 많아 밤에는 집 밖으로 출입을 하기 어려웠다. 백성들이 돈을 모아 제물을 마련하여 동리의 진산에 있는 신당에서 제를 올렸는데 무격들이 분으로 단장하고 북을 두드렸는데 이를 도당제라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옛날 당신굿 즉 각 고을, 주, 부, 군, 현 등 서울과 시골을 가리지 않고 거주하는 곳에 있는 큰 산이나 주산에 있는 신당에서 그 산의 산신에게 마을의 호환을 피하기를 기원하며 올리는 제나 굿을 의미하는데 이를 도당제, 도당굿이라고 했다고 한다. 지금의 도당굿은 매년 혹은 몇 년에 한 번씩 온 마을 주민이 대동으로 합심하여 돈을 거두어 무속인으로 하여금 도당에 모시는 신에게 마을의 안녕 또는 풍농이나 풍어를 비는 대동굿의 성격을 띠고 있다.
ꁰ 조마루도당굿 순서 및 해설 ꁰ
경기도당굿의 절차를 보면 지역마다 약간씩 그 행위나 절차가 다르게 나타나며 굿을 주관하는 무격에 따라서도 변화가 오는데 일반적인 순서를 보면 굿을 하기 전날 당주의 집에서 하는 당주굿을 시작으로 부정청배→부정굿→당맞이(당굿)→돌돌이→장문잡기→시루굿→터벌림→제석청배→제석굿→손굿→군웅굿→당할머니굿→뒷전의 순으로 구성되고 있으며, 일반적인 집굿과 같은 경기굿의 형태를 보이고 있으나 당맞이, 돌돌이, 터벌림 등과 같이 집굿에서 보이지 않는 거리가 있고, 집굿에서 보이는 산바라기굿이나 서낭굿이 없는 것이 도당굿의 특징이다.
조마루도당굿도 다른 지역의 경기도당굿과 유사한 점이 많으나 내용면에서 상이한 점도 발견되고 있어 살펴보고자 한다.
1. 부정거리(10분): 굿청과 굿당 주위를 정화하며, 굿당에 참가한 모든 재가집들은 물론 무속인들 및 참관자들에게 붙어 있는 부정한 것을 물리친다. 오른손에 대신칼을 들고 왼손에는 부정한 것을 물리치기 위해 쟁반 위에 물 한 사발, 고춧가루 한 사발 그리고 굿당에 진설된 갖가지 음식들을 조금씩 담아 부정청배를 한 뒤 대문 밖 또는 굿당 밖에 버린다. 이 때 참관자 정원은 주당살을 피하기 위해 굿청 밖으로 나가 있어야 한다. 밖에 나가지 못한 사람은 칼이나 무구를 손에 들고 있으면 된다.
2. 주당물림: 마당에서 진행한다. 밖에 나도는 잡귀, 잡신들이 굿당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주당물림이 끝나면 굿청으로 들어와 본격적인 굿이 시작된다.
3. 산천거리(30분): 본격적인 굿이 시작되는 거리로써 일명 상산맞이거리 또는 산거리라고도 한다. 맑은 정기를 가진 산천의 신들, 즉 산신들을 굿청으로 모셔오는 거리이다.
4. 부근신장 대감거리(30분): 모든 대감님들을 불러 대접하고 놀린 후 재복을 달라고 하며 여러 신장님들을 모셔 위하고 놀린다.
5. 칠성거리(40분): 칠성님의 주기능은 命을 담당하기 때문에 이 거리에서는 무속인 자신은 물론 모든 사람들의 명을 기원한다. 칠성님을 모신 후 도령, 천문지리 풍수, 부인마마, 팔선녀 등을 불러들이기도 한다. 특히 이 거리에서는 경관 만신이 환쟁이로부터 만장발을 띄우기 위해 꽃, 개, 학, 잉어 등을 타기도 한다. 또한 칠성거리에서는 쌀을 주는 요미성수님도 강림한다. 재가집에서 올려놓은 명다래들을 놀리면서 만 단골들의 명을 빈다.
6. 장군거리(30분): 일명 작두거리라고도 한다. 장군복을 입고 작두 위에서 춤을 춘다. 작두를 타는 이유는 장군님의 위력을 과시하는 것이며, 모든 액을 작두날로 눌러 없애는 것이다.(세로 사진)
7. 마당거리: 일명 뒷전 또는 뒷풀이라고도 한다. 마당거리는 마지막 거리로써 마당으로 나가 집안에 들어오지 못한 모든 잡귀, 잡신들을 먹이고 놀려 보낸다. 마지막에는 무속인과 참관자 모두가 어울려 한바탕 춤을 춘다.
장말도당굿에서는 화랭이가 뒷전을 할 때 [의딩이]라고 하는 재담꾼으로 변한다. 뒷전은 바
지 저고리에 주렁모자, 그리고 오쟁이를 짊어지고 뒷전에서 함께 재담을 하는 깨끼꾼과 함께 놀이판을 펼친다. 먼저 깨끼꾼이 허튼 타령에 맞추어서 춤을 추다가 뒷전꾼인 의딩이가 당을 한바퀴 돌고 들어와서 깨끼꾼과 마주서서 춤을 추다가 서로 부둥켜안고 힘겨루기를 하는 시늉을 내다가 서로 재담을 주고받는다. 이때는 의딩이가 [날몰라타령] 등을 부르게 되며 중모리, 중중모리, 잦은모리 등에 맞추어서 판패개제 소리로 갖은소리를 한다. 삼현에 맞추어서 춤을 추다가 활을 쏘고 나서 [정업이]라고 하는 허수아비를 갖고 갖은 수비, 영산 등을 풀어서 수부를 막고 나면 정업이를 매로 때리는 집장가를 부르고 나서 재담을 하면서 정업이를 들고 나가 들 밖에 나가서 불을 사르고 도당굿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