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팔자(八字)가 상팔자
병술년(丙戌年) 새해가 밝았다. 개띠 해가 시작된 것이다. 사람과 개는 아주 친숙한 사이이다. 이를테면, 아이들이 태어나서 제일 먼저 흉내 내는 동물의 소리가 개소리이다. 그 만큼 가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개와 인간이 가까운 만큼 어느 동물보다도 개에 얽힌 단어나 속담이 유달리 많다. 개띠 해인만큼 개에 얽힌 속담이나 몇 개 풀어보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제 집 개도 밟으면 문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 ‘개 팔자가 상팔자다.’ 등과 같이 개에 얽힌 속담만 해도 수십 개에 달한다. 그런데 ‘개’라는 글자가 들어가면 개살구 ․ 개판 ․ 개똥참외처럼 거의가 좋지 않은 의미이다. 그러나 개만큼 인간에게 충실하며 이로운 동물도 드물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좋지 않은 것들을 모두 개 취급할까? 그리고 개에 얽힌 속담이나 ‘개’자가 든 단어는 모두 나쁜 의미를 띌까? 아마도 인간과 개가 너무 가까이 있고 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자가 들어 간 말과 속담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중 ‘개’자가 들어가는 글자는 대부분 인위적이 아닌 자연그대로의 의미를 띄고 있다. 개똥참외는 인간이 밭에 씨를 뿌려서 재배한 참외가 아니라, 참외를 먹고 난 씨가 똥과 같이 밭에 떨어져서 자연히 발아하여 열매를 맺은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살구나 개복숭아(가칠복숭아)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개판이라는 말도 실상은 개들이 노는 판, 곧 장소를 말한다. 그것이 인간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무질서하게 보였을 것이다. 물론, 개꽃(철쭉)과 참꽃(진달래) 같이 인간이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개’자가 들어갈 수도 있다.
개가 들어가는 속담 중에 그냥 인간과 가깝기 때문에 다른 동물 대신에 들어간 경우도 있다.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등과 같은 속담이 이에 해당한다. 이 속담은 ‘지나가던 돼지가 웃겠다.’라고 해도 상관없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 ‘개 팔자가 상팔자다.’ 같은 속담도 다시 음미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물을 때 답을 하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사람마다 다른 답을 한다. 그 중에 필자는 ‘열심히 일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답하고 싶다. 그렇다면 일을 할 때 남의 눈치나 보면서 있는 멋 없는 멋 다 부려가면서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일해서는 아무도 이룰 수가 없다. 당연히 개처럼 일해야 한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동분서주하면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만 충실을 기해야 빠른 시일 내에 일을 마무리 할 수 있다. 열심히 일한 다음에 땀방울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을 맞는 느낌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번 것을 쓸 때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정승처럼 느긋하게, 그리고 꼭 써야할 곳을 가려 품위 있게 써야할 것이다.
물론 개 나름이겠지만, 요즘 개들은 그야말로 상팔자를 누리는 개들이 많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품에 안겨 인간보다 비싼 음식을 먹으며 아프면 언제든지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한다. 그런데 원래 ‘개 팔자가 상팔자다.’라는 말이 나온 의미는 다르다. 알다시피 개들은 낮 보다는 밤에 집을 지키는 일을 한다. 그래서 언제나 낮에는 양지바른 곳에서 햇볕을 쬐면서 늘어지게 배를 드러내고 잠을 잔다. 반대로 인간은 밤에 잠을 자고 낮에 일을 한다. 인간이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논밭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배고픔도 참고 일을 하다가 기진맥진한 상태로 집으로 들어올 때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개이다. 주인이 왔는데도 눈만 슬그머니 떴다가 감을 뿐 반기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인간들의 눈에는 개가 얄밉고 부러울 것이다. 그때 인간들은 개를 향해서 “저 놈의 개새끼. 아주 팔자가 폈구먼. 개 팔자가 상팔자지.”한다. 인간의 눈에는 개가 아무런 일도 않은 채 먹고 낮잠만 자는 존재로 비쳤을 것이다. 개와 인간의 처지가 다를 뿐이다. 개는 남이기 때문에 고민도 없고 일도 하지 않으면서 팔자가 좋아서 마냥 먹고 노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인간과 개가 공생관계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우리 인간들은 가깝고 친할수록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과 개가 그렇게 오랫동안 가까이 지냈는데도 그야말로 개의 속성도 모르면서 ‘개 취급’ 하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