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해랑길 11코스
가치마을-금노마을-금노항-보전항-하보전마을-보전호-대흥포방조제-소포방조제-쉬미항
20220913
1. 비 내리는 진도 초록빛 낙원길과 소포만 풍경
비가 내린다. 진도 초록빛 낙원길에 가을비가 내린다. 초록이 지쳐 그 싱싱한 빛을 잃고 시들해지는데 가을비는 초록빛의 마지막을 쓰다듬으며 초록과 헤어질 결심을 하는 것 같다. 서해랑길 11코스 시작지점 가치마을을 출발할 때 날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가치방조제를 건너 검망산을 돌아 빼족산 아래 금노마을까지 왔을 때도 비는 살짝 흩어져 날릴 뿐 우산을 받칠 정도는 아니었다. 칡꽃 향기 은은히 날리는 금노길을 걸어 해산봉 아래 금노항 입구 진도 초록빛 낙원길에 들어서자 빗줄기가 굵어졌다. 바다에는 안개가 피어올라 섬들의 모습을 희부연하게 실루엣으로 보여준다. 찾고 싶은 가사도는 실루엣으로도 보이지 않고, 손가락섬 주지도와 발가락섬 양덕도가 기묘한 형상으로 바다에서 손짓한다.
우산에 떨어지는 달콤한 빗소리 음악을 들으며, 비에 씻긴 초록빛이 흘러가는 초록빛 낙원길을 걸었다. 내 몸도 초록빛 낙원길에서 비에 씻겨 흘러간다. 시간의 발자국이 큰 소리를 내고 초록빛 낙원길을 흘러간다. 내 몸은 초록빛 향수에 젖어 뒤뚱거리지만 시간의 굉음을 따라 초록빛 끝나는 낙원길을 향해 걸었다. 불어오는 해풍 속 갯내음이 시간의 감각을 살짝 밀쳐낸다. 시간의 쫓김에서 벗어나, 그 흐름을 잊는다. 내가 풍경 속을 걷는 것인가? 풍경이 나를 스쳐가는가.
보전리 드넓은 간척지 들녘에 비가 내린다. 벼이삭은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완전히 여물지 않아 가을볕을 그리워하는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보전방조제와 보전둑방에 이중으로 둘러싸인 넓은 보전호는 적막의 안개를 피어올린다. 보전둑방에 고여있는 보전호의 민물은 보전방조제에 가로막힌 바닷물에 대한 그리움으로 끝없는 안개를 피어올리며 깊이 잠겨 있는 듯하다. 햇볕 쨍쨍한 날 그리움에 사무친 보전호 민물은 햇볕에 몸을 태워서 방조제 너머에서 마음껏 몸을 뒤채는 바다로 날아갈 것이다. 방조제와 둑방에 갇혀있는 보전호의 아픔이 비 내리는 풍경 속에 안개의 슬픔으로 번져나간다.
소포만의 비내리는 운무 풍경이 흐릿한 몽상을 자아낸다. 소포만은 안치방조제, 대흥포방조제, 소포방조제, 세 개의 방조제에 의해 내륙으로 깊숙하게 들어가야 할 바닷물이 닫혀 소포만의 아기자기함은 사라졌다. 방조제가 없었다면 소포만은 다양하게 굴곡진 모양을 형성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소포만은 서해 바다에서 내륙으로 깊숙하게 들어와 동그란 원을 그리며 아름답다. 소포만 입구는 좁다. 소포만의 동북쪽 산월리 곶과 서북쪽 소포리곶이 가까이 마주하여 소포만의 입구를 지켜주며, 그 안쪽으로 드넓은 바다가 자리한다. 소포만의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다.
소포만 동쪽에 자리한 쉬미항이 소포호의 고요함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쉬미의 뜻이 무엇일까? 수염을 뜻하는 사투리일까? 쉬미항의 여객선이 좁은 소포만 입구를 빠져나가 평사도, 율도, 저도, 광대도, 혈도, 양덕도, 주지도, 가사도로 수염을 휘날리듯 날아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수염은 손질하지 않아 단정하지 않다. 수염은 짧지 않고 길다. 긴 수염을 바람에 날리듯 여객선이 떠가는 쉬미항의 모습은 고요한 소포만 호수를 출렁인다. 비 내리는 소포만, 운무가 짙게 깔리는 잔잔한 소포호, 배들이 출렁출렁 호면을 흔든다. 소포호 위로 날아가는 백로떼가 짙은 운무를 헤친다. 소포만 풍경은 정중동의 느낌을 자아내는 수묵화 같다.
2.탐방 과정
걸은 전체 거리 : 22.97km
소요 전체 시간 : 5시간 22분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가치재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가치(加峙)라 하였다. 가치리에 처음 들어온 성씨는 경주 김씨이며, 이후 경주 이씨와 경주 정씨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지산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치에서 가치리가 되었다. 전체적으로 구릉성 산지로 서쪽, 북쪽, 남쪽은 석적막산(石積幕山)으로 둘러싸여 있다. 남쪽으로 가학재, 동쪽으로 가치재가 각각 위치한다. 산지 아래로 논과 밭이 펼쳐져 있다. 가치리 중앙에는 가치저수지가 있다. 북쪽은 바다 건너 와우리, 서쪽은 가학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지산면에서 이어진 4차선 도로가 지산서초등학교 근처까지 연결되어 있다. 진도대교를 건너 18번 국도를 타고 진도읍을 지나 801번 지방도를 따라 가면 된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93세대에 18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현재 주요 성씨는 경주 이씨와 경주 정씨이다.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은 쌀과 대파이다. 마을 공동 재산으로는 앞산, 마을회관, 가치보건진료소 대지가 있다. 주요기관 및 시설로는 지산서초등학교, 가치보건진료소, 가치교회가 있다. 유적으로 유인 이천 서씨 열효비가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남서쪽 석적막산 줄기인 듯. 그 뒤 오른쪽 동쪽으로 암릉의 명품 동석산이 있을 것이다. 10코스 방향이다.
뒤쪽은 가치마을을 에워싼 석적막산 줄기인 듯. 11코스는 가치마을을 오른쪽으로 가로질러 북쪽 방향으로 이어간다.
서해랑길 11코스 안내도는 가치마을 버스정류소 맞은편에 세워져 있다.
서해랑길 11코스는 진도군 지산면 가치리 가치마을에서 북쪽으로 이어가서 진도군 진도읍 산월리 쉬미항에서 마친다. 22.2km 거리, 7시간이 걸린다고 안내도에 적혀 있다.
왼쪽 팽나무 옆 전봇대에 서해랑길 11코스 시작점 표지가 붙어 있으며, 서해랑길 11코스는 버스정류소 옆 골목길을 통해 가치리회관과 가치보건진료소 방향으로 이어간다.
인정이 살아 있는 우리 가치마을은 속명이 가재이고 원지명 가치는 멍애재라는 뜻인데 마을 주산을 마체로 보고 붙인 이름으로 알려졌다. 17세기 이전부터 밀양 손씨가 입도조로 형성되어 현재까지 많은 성씨들의 삶의 터전이 되어왔다. 또한 60여 년의 전통으로 지역 인재들을 길러낸 지산서 초등학교가 근동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으로 있었으나 이제는 그 추억들만 남아 있다. 금번 가치마을의 보금자리인 복지회관을 지역 주민과 향우들이 뜻을 모아 건립하면서 그 숭고한 애향심을 이 비에 새긴다.
이 지역의 주 생산물이 대파인 것 같다. 11코스를 걸으며 드넓은 대파밭을 여러 곳에서 보았다. 중앙에 우뚝 솟은 산이 지력산인 듯. 지력산 정상에 레이더를 설치하는 것에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는 알림막을 10코스 탐방 때 확인하였다.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은 크게 지력산지, 급치산지, 삼당산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지력산은 지산면 중심에서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해발 328m로,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경관이 매우 수려하고 계곡이 맑은 산으로 정상에서 보는 서해 일몰이 장관이다. 지력산의 명칭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1895년(고종 32)에 지방관제 개정에 의해 이곳에 있는 지력산의 이름을 따서 지산면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지력산은 지금으로부터 1억 년의 중생대 백악기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높지는 않지만 정상부의 북서 방향으로 약 328m에서 20m의 암봉들이 연달아 있다. 북쪽으로는 빼족산과 해산봉과 함께 금노 저수지로 빠지는 계곡을 형성하고 있다. 이 계곡은 동서 방향의 단층선으로 이루어진 계곡과 단애로 칠선녀 폭포, 폭포 형태의 선녀탕 등 화강암 산지가 경관을 이루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서해랑길은 가치리들판을 거쳐 세방낙조로를 가로지른 뒤 앞에 보이는 검망산을 오른쪽으로 돌아 금노마을로 향한다.
세방낙조산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표석에 '낙조와 어우러진 시닉드라이브 도로' 문구가 적혀 있다. '시닉'이 생소하다. 'scenic'을 '풍경이 아름다운'이라고 고쳐 적으면 좋지 않을까? '낙조와 어우러진 풍경해안길'
뒤쪽에 해산봉과 금노항이 보인다. 서해랑길은 검망산을 오른쪽으로 빙 돌아서 해산봉 아래 금노항으로 이어진다.
서해바다가 가치리 들녘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 서해랑길은 방조제길을 빙 돌아서 검망산 자락을 오른쪽으로 감아돌아 나간다. 지산면 가치리에서 방조제길을 건너 맞은편 지산면 와우리로 넘어가 금노마을 방향으로 진행한다.
중앙 뒤에 희미하게 보이는 주지도(손가락섬), 오른쪽에 솟은 해산봉, 그 왼쪽 아래 금노항이 보인다.
건너편 가치방조제 길을 따라오다가 와우리 해안으로 넘어왔다. 가치마을과 뒤편에 석적막산 산줄기가 들어온다.
지산면 와우리 검망산 산자락길을 오른쪽으로 돌아 금노길로 나와서 검망산 동쪽의 금노길을 따라 금노마을로 향한다.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조선시대 때 목장의 문 안쪽이 되므로 들문안, 또 소를 놓아 길렀으므로 와우, 와우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금노리를 병합하여 와우리(臥牛里)가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서해랑길은 해산봉 아래 참전복로를 따라 진행한다.
서해랑길은 빼족산 남쪽 아래 금노(金老)마을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금노항 방향으로 이어간다.
태극기가 게양된 금노리복지회관이 보인다. 서해랑길은 왼쪽으로 꺾어 금노항 방향으로 이어간다.
금노마을은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와우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이다. 1600년 경 전주 최씨가 입향하여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쪽에 있는 지력산(智力山)[328m]의 줄기가 남북으로 걸쳐 있어 200~300m의 산지를 이루며, 북쪽으로는 해산봉(海山峰)[251m] 등의 산이 있다. 그 사이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지산면의 서쪽 끝에 있어 바다와 가까이 있으며, 동쪽은 고야리, 서쪽은 바다, 남쪽은 가치리, 북쪽은 보전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37세대에 58명(남 32명, 여 2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은 쌀, 대파 등이 생산되고 있다. 마을의 공동재산으로는 마을회관이 있으며, 조직으로는 애사시에 상부상조하는 공동계가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왼쪽에 검망산이 솟아 있다. 서해랑길은 갈림목에서 금노길 왼쪽 농로를 따라 우회한다. 11코스 시점에서 3.3km 지점, 18.7km가 남아 있다. 단축하고자 하면 오른쪽 금노길을 따라가면 된다. 길손은 정코스 왼쪽으로 진행한다.
이 들녘을 아랫들녘이라 이르는 듯. 서해랑길은 아랫들녘으로 우회하여 참전복로가 시작되는 지점으로 이어진다.
참전복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초록빛 낙원길 진도낙원해안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참전복로는 진도 낙원해안로 중 보전리 고갯길까지 동행한다. 오른쪽에 해산봉이 멋지다.
건너편은 세방낙조로가 돌아나가고, 오른쪽 뒤에 희미하게 보이는 섬은 장도인 듯.
진도개가 그려진 진도 낙원해안로 안내도, '그림 같은 동산 위의 초록빛 낙원길' 표현이 좋다.
낮지만 당당한 검망산이 빼족봉과 해산봉 사이에서 바다를 가로막고 있다. 오른쪽 끝 지산면 가치리 해안에서 검망산을 뒤쪽으로 돌아 금노마을 앞을 거쳐 진도 낙원해안로로 나왔다.
와우리 금노마을에서 아랫들녘을 오른쪽으로 빙 돌아서 금노길 끝 지점 방조제 입구의 참전복로 시작점으로 나왔다.
중앙에 보이는 섬은 장도, 그 오른쪽은 소장도일 것이라 추정한다.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가사도리에 속해 있는 섬 주지도는, 섬의 중앙에 있는 바위가 마치 상투, 손가락같이 생겼다 하여 상투섬, 손가락섬이라고도 한다. 인근에는 양덕도(발가락섬)가 있어 두 섬이 멋진 한 쌍이 된다. 1600년께 파평 윤씨가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
양덕도는 조도면 가사도와 진도군 지산면 사이에 있는 섬으로, 취락은 섬 좌우의 봉우리를 배후로 북사면에 위치한다. 가사도에 딸린 섬으로 주지도(손가락섬)와 쌍을 이루고 있다. 섬 정상부가 발가락처럼 생겨서 발가락섬이라고도 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해안로에 조성된 문구 '여행과 장소의 변화는 우리 마음에 활력을 선사한다.' 바다에는 주지도와 양덕도가 떠있다.
뒤쪽에 해산봉이 우뚝하다. 서해랑길은 해산봉 뒤 금노마을에서 금노항을 거쳐 빙 돌아서 북쪽으로 이어간다.
청담수산 앞을 거쳐 지산면 와우리에서 보전리로 넘어왔다. 뾰족하게 솟은 앞산 뒤에 선동산(銑銅山, 206m)이 살짝 보이고, 바다에 보전항 방파제, 오른쪽 낙원해안로 산기슭에 도서지역 산림생태관리센터 건물이 보인다.
바다에는 참전복양식단지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그 뒤로 양덕도가 보이고, 그 왼쪽에 주지도가 흐릿하다.
오른쪽 바닷가에 청담수산 건물이 보인다. 낙원해안로의 조형물의 문구 '보고자퍼 죽것당께'가 눈길을 끈다.
'여까지 오느라 욕봤소', 가치마을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는데 정말 욕봤는데, 조형물의 문구가 더 맛깔스럽기 위해서는 '여까지 오느라 욕봤소, 잉!'이라고 적어야 할 것 같다. 바다의 참전복양식단지 시설물 뒤에 주지도와 양덕도가 흐릿하게 보인다.
왼쪽에 참전복양식단지가 펼쳐져 있으며, 오른쪽 끝 해안길을 따라서는 보전리 갈두마을로 이어지는 듯.
왼쪽에 보전항, 뾰족한 앞산 오른쪽에 선동산, 앞의 건물은 보전전복영어조합법인 건물, 앞산 왼쪽 해안길은 갈두선착장과 갈두마을로 이어지는 듯.
보전항은 보전참전복양식단지로 출입항하는 배들이 머무는 곳인 듯.
'그림 같은 동산 위의 초록빛 낙원' 조형문이 적혀 있는 진도 낙원해안로. 앞에 보이는 전봇대에서 참전복로는 지금까지 동행한 낙원해안로와 헤어져 왼쪽으로 꺾어 해안으로 나가 갈두선착장 방향으로 이어간다.
진도 낙원해안로는 보전마을까지 이어지는데, 서해랑길은 이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농로를 따라 하보전마을로 향한다.
밭에서는 비가 내리는데도 김장배추를 모종하고 있다.
진도의 주 농산물은 배추, 고추, 대파인 듯. 대파밭에 대파들이 무성하고, 배추밭에서 농군들이 김장배추를 모종하고 있다.
고추밭과 대파밭이 펼쳐져 있는 농로를 따라간다. 오른쪽에 빼족산이 우뚝하고 그 뒤쪽에 있을 지력산은 보이지 않는다.
중앙 뒤에 하보전마을이 보인다. 대파밭에 대파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서해랑길은 오른쪽으로 들어가 하보전마을을 들러서 보전로로 나온다. 단축하고자 하면 왼쪽 길로 나가면 된다.
농로를 확장하는 길이 자신의 밭 한가운데를 통과하는데, 마을 주민들을 위하여 이를 승락한 서동섭씨를 기리는 비석이다.
서해랑길은 오른쪽으로 하보전마을을 돌아서 보전리 염전들을 돌아 보전호로 나간다. 단축하고자 하면 왼쪽으로 나가 보전호 보전양수장으로 바로 나가면 된다. 길손은 오른쪽 정코스를 이어간다.
오래전부터 마을을 지키는 수호석 독선대가 있었으나, 무슨 일로 없어졌다. 이에 마을의 노인회에서 이를 복원하기로 뜻을 모으고, 2004년에 다시 세우게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선동산이 우뚝하다. 지산면 하보전길 32 승화테크 한우석님 주택이 앞에 있다. 비를 피하여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미역과 다시마 종묘를 자동꽂이하는 기계를 특허 받은 한우석님이 친절히 맞아주고 선물한 맥주와 함께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한우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하보전마을 입구에 이름이 거창한 교회가 우뚝 솟아 있다.
처음에는 보점(保店)으로 불렸으나 1896년에 땅이 기름진 옥토라 하여 보전(寶田)으로 개칭되었다.
하보전리(下寶田里)는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보전리에 있는 행정리. 언제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이천 서씨가 처음 입향하였고, 이후에 해남 윤씨, 청주 한씨, 김해 김씨, 원주 이씨, 밀양 박씨, 청송 심씨가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보전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보상리, 보하리, 갈두리를 병합하여 보전리가 되었다. 서쪽의 해산봉(海山峰)[251m], 선동산(銑銅山)[206m]과 남쪽의 지력산(智力山)[328m] 등 여러 산이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산 아래에 있는 비석제(碑石堤)는 산에서 흘러온 물을 저장하였다가 이 지역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제공하여 농작물을 경작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마을 입구에 효행, 열녀 등 여러 비석을 함께 모아 놓았다.
하보전마을 앞 보전로에서 들녘으로 나가는 입구에 서해랑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서해랑길은 보하들과 염전들이라 불리는 보전리 들판을 가로질러 오른쪽 끝에 보이는 보전호와 거도 섬 방향으로 이어진다.
왼쪽 뒤에 솟은 산봉이 지력산이고 오른쪽에 뾰족한 산봉은 빼족산인 듯. 그 아래 하보전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오른쪽에 거도 섬이 보인다. 그 앞에 보전방조제와 보전호가 있다.
왼쪽으로는 보전리 갈두마을 가는 길, 서해랑길은 오른쪽 거제리 거제양수장 방향으로 이어간다.
서해랑길은 둑방 아래 수로길을 따라 거제리 거제양수장 방향으로 이어진다.
드넓은 보전호와 보전방조제, 방조제 넘어 왼쪽에 거도 섬이 보인다. 보전호 맞은편 오른쪽에 거제양수장이 있다.
보전호 둑방 왼쪽 끝 보전양수장에서 둑방 아래로 걸어왔다. 보전호 건너편에 지산면 보전리 갈두마을이 보인다.
지산면 가치리에서 거제리로 넘어왔다. 지금까지 11.1km를 걸어왔으며, 11코스 종점 쉬미항까지 7.9km가 남아 있다.
오른쪽 끝에 보전양수장이 보인다. 그 오른쪽으로 가면 갈두마을과 갈두선착장이 있을 것이다.
보전호 건너편 왼쪽에 보전리 갈두마을과 방조제 끝에 갈두선착장을 어림한다.
방조제 끝에 갈두선착장과 방파제가 가늠된다. 날이 맑았으면 양덕도(발가락섬)와 주지도(손가락섬)가 보였을 것이다.
거도 섬은 지산면 가치리에 속한다.
중앙에 보이는 섬은 저도, 그 오른쪽 섬은 소저도인 듯. 거제방파제 왼쪽에 튀어나온 섬은 거도.
서해랑길은 지방도 제803호선 서부해안로를 따라 지산면 소포리 대흥포방조제까지 이어간다.
거제방파제 앞에서 지방도 제803호선 서부해안로를 따라 고개로 올라와서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거제방파제와 거도, 보전방조제와 갈두선착장, 그리고 중앙 뒤에 선동산이 흐릿하게 확인된다.
왼쪽에 저도, 그 오른쪽에 소저도, 오른쪽 끝에 작도도일 것이라 추정한다. 이 섬들은 모두 진도읍 산월리에 속하며 쉬미항에서 이 섬들을 왕래하는 배들이 출항한다.
오른쪽에 저도, 그 왼쪽 뒤에 상방고도, 중방고도, 하방고도, 맨 왼쪽에 양덕도가 가늠된다. 이들은 조도면 가사도리에 속한다.
바다의 섬은 작도도일 것이라 추정한다.
서부해안로는 도로를 확장하고 포장하는 공사가 진행중인 듯. 이 고개를 경계로 지산면 거제리에서 소포리로 넘어간다.
중앙에 굽이도는 고갯길도 현재 공사 중. 왼쪽 앞에 안치방조제, 그 뒤 오른쪽에 대흥포방조제가 보인다.
앞의 방조제는 안치방조제, 그 맞은편은 소포방조제, 안치방조제 오른쪽 뒤 방조제는 대흥포방조제이다. 안치방조제-대흥포방조제-소포방조제가 오른쪽으로 빙 돌아 소포만을 가로막고 있다.
지산면(智山面) 소포리(素浦里)는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 소개 또는 소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안치리(鞍峙里)를 병합하여 소포리라 하였다. 마을은 구릉성 산지 아래에 입지하고 있으며 북쪽은 서해와 접하고 있다. 동쪽은 석교천을 경계로 진도읍과 접하고 있다. 소포방조제와 대흥포방조제로 간척된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안치리(鞍峙里)는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에 있는 행정리. 조선 명종 때 영의정을 지낸 노수신이 1547년 순천을 거쳐 안치리로 유배되어 기거하였으며, 1750년 경 그 후손이 이곳에 정착하였다. 그 뒤 1900년대 현풍 곽씨와 김해 김씨가 신안에서 살다가 안치리에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소개 또는 소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안치리는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에 병합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도로 공사 중인 고개를 넘어 내려와 왼쪽 안치마을 앞을 거쳐 다시 고개를 오르며 뒤돌아보았다. 오른쪽은 간척농지.
왼쪽 맞은편에 소포방조제가 길게 이어지고, 오른쪽에 대흥포방조제가 있다. 서해랑길은 대흥포방조제 끝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구릉지를 오른쪽으로 빙 돌아서 대흥포방조제로 이어진다.
맞은편 왼쪽에 소포방조제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소포만의 소포호가 펼쳐져 있고 건너편 왼쪽에 쉬미함, 그 오른쪽에 소포방조제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대흥포방조제 동쪽 끝에 배수갑문과 배수장이 있다. 서해랑길은 오른쪽으로 꺾어 영농조합법인 진도산들해 절임배추공장 방향으로 이어가서 구릉지를 빙 돌아서 다시 서부해안로로 나와 소포방조제 배수갑문교로 진행한다. 단축하고자 하면 서부해안로를 곧바로 따라가 소포방조제 배수갑문교를 건너면 된다.
영농조합법인 진도산들해 절임배추공장 방향으로 이어간다.
지산면 거제리와 소포리의 경계인 움푹 파인 고개를 넘어서 앞의 대흥포방조제를 건너서 오른쪽 절임배추공장을 왼쪽으로 돌아서 이곳으로 나왔다.
서부해안로로 나와서 오른쪽 소포배수장 위 서해랑길 이정목 앞에서 오른쪽 소포배수갑문교 방향으로 이어간다.
소포나루가 오른쪽에 있었으며, 이 위 왼쪽에 진도읍 산월나루가 있었다고 한다.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에 위치한 나루터. 진도군 내에서 주민끼리 가장 많이 이용했던 나루였으며, 소포리의 나룻배 삯은 1년에 벼 다섯 되, 보리 다섯 되였다. 소포리에서 진도읍 산월리 사이 500m 거리를 왕래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소포나루는 진도군 내에서 가장 번창했던 나루였으나 1975년 소포나루 하류에 소포방조제가 축조된 후,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진도읍과 지산군의 경계인 석교천 하류에 위치한다. 803번 지방도가 소포나루터 근처를 지난다. 소포나루터에는 옛 창고와 선착장이 남아 있으며, 주위는 간척으로 조성된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산월리 쪽 나루 끝에는 레미콘공장인 대신산업이 위치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오른쪽에 보이는 구릉을 돌아서 서부해안로로 나와 소포배수장 오른쪽 소포배수갑문교를 건너 이곳으로 왔다.
소포방조제(所逋防潮堤)는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와 진도읍 산월리 사이에 있는 방조제. 지산면 소포리 주민들은 소포리와 진도읍 산월리 사이를 나룻배로 건너다녔다. 그러나 소포방조제 축조 이후 소포리는 진도읍 교통권이 되었다. 바다는 간척지로 바뀌었고 간척지 근처에 백연동이라는 마을이 새로 생겼다. 소포만 연안의 염전은 매립되었다. 정기시장이었던 십일시는 임회면 장구포리와 지산면 앵무리 사이에 육로가 생기면서 활기를 잃었다.
소포방조제는 1973년 축조하기 시작하여 1975년 완성되었다. 소포 간척 사업은 1982년부터 1985년까지 시행되었다. 진도읍 서쪽 바닷가에 위치하며, 803번 지방도가 소포방조제를 지난다. 소포방조제의 높이는 8.6m, 길이는 349m이다. 소포방조제 사업으로 매립 면적 1,323㏊는 육지로 변하고 그 중 743㏊가 농경지로 조성되어 진도의 논 면적이 10% 증가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소포방조제가 1975년에 완공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소포방조제 앞 안내문에는 1924년에 준공된 것으로 되어 있다. 안내문의 기록이 잘못된 것일까? 1924년에 준공된 것을 1975년에 보수확장한 것일까?
오른쪽 대흥포방조제 동단에서 중앙의 구릉을 빙 돌아서 소포방조제 배수갑문교를 건너 소포방조제를 걸어 지산면 소포리에서 진도읍 산월리로 넘어왔다.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산월리에 건설 중인 어촌정주어항. 쉬미항은 어장 개발과 어선 대피에 필요한 어업 근거지로 인정되어 진도군 서북쪽의 어촌정주어항으로서 현재 건설 중에 있다. 쉬미항은 진도군의 서북쪽 해안에 위치한 항구로 진도읍에서 801번 군도를 따라 해창리 방향으로 가면 된다. 쉬미항의 관리청은 진도군청이다. 쉬미항의 시설 계획은 계류 시설 335m 중 방파제 120m, 물양장 150m, 외곽시설 350m이다. 2005년 현재 계류 시설 80m, 물양장 52m가 건설되었다. 어선 수는 총 13척으로 1톤 미만이 6척, 1톤 이상이 7척이다.(2014년)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산월리 삼거리에서 왼쪽 쉬미항 방향으로 이어간다.
서해랑길 12코스 시작점 쉬미항까지 400m가 남아 있다.
비 내리는 소포만의 운무 풍경이 멋지다.
소포만으로 깊숙하게 들어온 바다를 막아 농경지는 넓어졌지만 그 풍경의 아름다움은 사라진 듯.
쉬미항은 봄철 유채꽃과 목련이 아름다운 마을에 위치한다. 한적하고 조용하여 부둣가에서 사색을 하기에도 좋다. 진도의 항구 중 주변 부속 섬으로 정기선이 다니는 곳은 진도항과 쉬미항이 있다. 진도항 다음으로 큰 항구가 바로 쉬미항이다. 쉬미항은 주로 진도의 북서쪽 섬들을 연결하는 포구로, 가까운 섬 중에는 가사도를 중심으로 다수의 섬들이 있다. 특히 최근에는 진도유람선이 출항하면서 이전보다 더 붐비는 포구가 되었다. 진도유람선의 운항 경로는 작도도-광대도-혈도-주지도-양덕도-방고도를 돌아온다. 하루에 4회 운행을 하는데 마지막 타임은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라고 한다.(대한민국구석구석에서)
진도경찰부대의 혁혁한 전과와 의신면 옥대리 돌창고에 갇혀있던 경찰가족 등 우익인사 50여 명을 구출한 공적에 대해 고마움의 표시로 1951년 9월 17일 의신파출소 앞 4거리에 진도군 의신면장 박봉수 등 주민들이 "경찰은덕비"를 세우고, 1951년 10월 5일 진도읍 동소포 선착장 앞산에 주민들이 세운 "경찰부대상륙비"가 소포만 간척지 사업으로 수몰되어 1993년 10월 5일 진도군에서 진도읍 산월리 김재준의 토지에 새로 건립하였다. 그러나 기념비가 산재되고 관리소흘 등으로 인하여 심하게 훼손되어 2011년 10월 5일 진도경우회는 기념비 건립추진워원회를 결성한 후 진도군, 진도군의회 등 각 기관, 단체에 새 기념비 건립의 필요성을 홍보하고 자금을 확보하는 등 적극추진하였다.
2013년 10월 4일 ‘진도경찰부대상륙 기념비’가 새로이 건립되어 진도경찰서 정원에서 개최됐다. 진도경찰서 정원에 건립된 새 기념비는 5평 규모 부지에 높이만 6m로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목포타임즈에서)
왼쪽에 서해랑길 진도12코스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쉬미가 무슨 뜻일까? 수염의 사투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