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가), (나)에서 밑줄 친 두 사건 사이 시기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로 옳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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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고구려는 요동에 천리장성을 축조하고 당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당 태종은 직접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공격해 왔지만, 고구려는 안시성 전투에서 당 군을 격파하였다.
(나) 고구려는 연이은 전쟁으로 국력을 많이 소모했을 뿐만 아니라 연개소문이 사망한 후 지
배층 내부에서 권력 다툼이 일어났다. 나·당 연합군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평양성을 함락하고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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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전기 가야 연맹이 성립되었다.
② 신라는 매소성과 기벌포에서 당의 대군에 승리하였다.
③ 고구려의 을지문덕은 살수에서 수의 대군을 격파하였다.
④ 왜는 백제 부흥군 지원을 위해 백강에 군대를 파병하였다.
⑤ 백제는 남으로 마한을 통합하고 북으로 평양성을 공격하였다.
정답: ④
* 안시성 전투(645)와 고구려 멸망(668) 사이의 역사적 사실
고구려를 침략하였지만 을지문덕에 의해 살수 대첩(612)의 패배의 후유증으로 618년 멸망한 수의 뒤를 이어 당도 태종 때에 직접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고구려는 국경의 여러 성이 함락되는 등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으나, 안시성을 중심으로 민·군이 협력하여 마침내 당군을 물리쳤다(645).
이후 당은 단독으로는 고구려를 굴복시킬 수 없고, 신라와 나당동맹을 체결하였다(648).
김유신이 이끈 신라군과 소정방이 이끈 당군은 먼저 백제를 공격하였다. 신라군은 황산벌에서 계백의 결사적인 저항을 물리치고 당군과 함께 사비성을 함락하였다(660).
백제를 멸망시킨 후, 신라와 당은 고구려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였다. 당군은 평양성을 공격하였으나, 고구려는 이를 잘 방어하였다. 그러나 고구려는 계속된 전쟁으로 국력이 약해진데다가, 대막리지 연개소문이 죽자 지도층 안에서 권력다툼이 벌어졌다. 이 기회를 틈타 나․당 연합군은 평양성을 함락하고, 고구려를 멸망시켰다(668).
① 낙동강 하류의 변한 지역에서 2세기 이후 여러 정치 집단이 나타나고, 3세기경 이들 사이의 통합이 더 발전하여 김해의 금관 가야가 중심이 전기 가야연맹이 형성되었다.
② 나당 전쟁 때에 신라는 매소성(675)과 기벌포(676)에서 당군을 섬멸하고, 평양에 있던 안동 도호부도 요동성으로 밀어 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삼국 통일을 이룩하였다(676).
④ 백제 멸망(660) 후 부흥 운동이 일어나고 왜의 수군이 백제 부흥군을 지원하기 위하여 백강(금강) 입구까지 왔으나 나・당군에 패하여 쫓겨갔다(663).
⑤ 백제 근초고왕(346~375)은 남으로는 마한을 통합하여 남해안에 이르고, 북으로는 고구려를 공격하여 평양성에서 고국원왕을 전사시키며 황해도 일대를 장악하였다(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