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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남도학숙에서 도곡온천 방향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에 30여호의 작은 마을이 보인다. 이 곳이 바로 앵무촌(鸚鵡村)이다. 남쪽에는 앵남역이 있다.
마을 인근에 앵무봉충형(鸚鵡逢蟲形·앵무새가 벌레 먹이를 만난다는 형국)의 음택명당이 있어 그 혈명에 따라 마을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옥토망월형 망월동의 경우와 비슷하지만 지역이름이 아니라 마을이름으로 한정된 점이 다르다. 여기서 독자들이나 필자가 궁금한 것은 이곳 명당의 물형을 하필이면 앵무새의 형국으로 봤을까 하는 점이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잠시 명당의 물형론에 대해 살펴본다.
물형론이란 묘터나 집터의 참된 혈을 간직한 명당과 그 주변의 산세를 보고, 그 지형적 특성을 어떤 사물의 형상에 비유해 도식의 이름을 가상해 지어 부른 명칭을 의미한다.
형국론이나 갈형이라 하고 화명(花名)이라고도 한다.
풍수지리에서 물형론이 크게 일반화 돼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중국의 유명한 유학자 주자선생이 지리학에 능통해 많은 풍수이론을 밝혔는데 그 중 산능의장이라는 저서가 물형론에 관한 내용을 매우 소상하고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이 저서가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물형론이 폭넓게 알려졌고 특히 사대부 사이에서 더욱 깊게 인식됐다고 한다.
명당터를 어떤 사물에 비유해 이름 붙여 부르게 되면 흥미도 있고 잊혀지지도 않아 빠르게 전파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물형론을 많이 알고 들먹이면 일반인들은 풍수지리에 관한 지식이 풍부한 것으로 받아 들이기도 한다.
물형의 유형에는 사람의 형상을 상징하는 인물형, 용과 뱀의 형상을 표방하는 용사형, 날짐승에 비유되는 비금형, 소나 말의 형상을 상징하는 우마형 등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산소나 집터를 지세의 물형으로 분류하는 그 자체가 곧 명당의 대소경중을 가리는 척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물형에 비유되는 상제봉조형이 화순지역 어딘가에 있는 것으로 결록에 나와 있지만 지금 소개되고 있는 날짐승에 비유된 앵무봉충형보다 그 규모나 격이 낮은 것으로 평가 돼 호남 8대지지의 반열에서 빠져있다.
그러나 앵무봉충형은 화순 동복면 연화리에 소재한 연소형(제비집 형), 화순 능주 금곡의 반룡농주형과 함께 호남의 대소 명당의 목록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호남 8대 큰 묘터 명당은 8개의 큰 자리로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그 품격으로 분류해 1품부터 7품까지 나눠지고 매 품격마다 위상에 해당되는 명혈이 각각 8개의 대지로 구성된다.
호남 대소대지는 8개의 명혈에 그치지 않고 모두 56대 명터(7×8=56)로 형성되고 그 순위도 결정됐다는 얘기다.
행정 구역 등 한정된 지역에 따라 지역마다 나름대로 또 다시 손꼽히는 대혈로 나눠져 있다.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호남 56대혈 중 전남지역에 소재한 대지는 30개소, 전북 25개소,
광주는 본량의 만월괘서형 단 한군데 뿐이다. 또 앵무봉충형은 5품 2위에 자리잡고 있음도 알 수 있었다.
결국 물형은 그 지역 어디쯤에 명당대지가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그 혈형에 따른 지형을 참고 삼아 정혈을 찾아가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물형론에만 의존해 혈터를 정확히 정하기란 매우 막연하고 정확성도 믿기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다.
예컨데 옥토망월형은 옥토끼가 떠오르는 달 모양의 안산이나 그 너머의 조산을 바라보는 형국이고 보면, 분명 토끼의 눈에 정기가 모일 것이고 그 곳이 정혈이 될 것이다.
맞는 말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넓은 산과 지역에서 토끼의 눈을 찾는 묘책이 너무 어설프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토끼의 눈을 정확히 짚어내는데 따른 견해도 백인백색이다.
그래서 용진혈적이 풍수지리학에서 만고의 진리로 통하고 있는 것이리라. 용진혈적에 관해서는 다음회에 언급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물형론에 따른 앵무봉충형에 대해 알아본다.
앵무봉충형의 산도는 옛 명사들이 간산을 통해 남겨진 결록에서 원용한 것이라 현지의 지형과는 다소 차이점이 있지만 그림솜씨가 이 정도되면 정혈을 찾아가는데 매우 유익한 자료라고 믿는다.
이 산도는 중국 명나라 때 우리나라에 귀화한 조선 선조때의 무신 두사충에 의해 작성 돼 결록에 실린 것 중의 하나라고 한다.
두사충은 풍수지리학 연구에 정진하면서 전국 각처를 돌아보며 결록과 산도를 남긴 인물로 전해져 오고 있다.
두사충은 어떤 관점에서 제시한 산도의 혈형을 앵무새가 벌레를 만나는 물형으로 이름 지었을까.
물형은 단편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명당이 소재한 지형의 전체적인 꾸밈새를 봐서 이름을 붙인다.
그 중 혈이 있는 바로 뒷 봉우리가 둥그레한 금성체로 되면 날 짐승의 형상이 많고, 산봉우리가 우뚝솟거나 뾰족한 목성체 및 화성체의 아래쪽 혈의 물형은 인물형이 많다는 게 일반론이다.
앵무봉충형의 안산(산도의 라)이 되는 혈전의 산형이 마치 벌레가 꿈틀거리며 기어가는 형상인데다 그 안산에서 건너다 보이는 산은 영락없이 반월처럼 둥그레한 금성체였다.
(산도 마) 그 양쪽 내청룡과(산도의 나) 내백호(산도 가)는 벌레를 잡으려는 새가 부리를 벌리는 형세였다.
새의 부리가 뾰족하게 내 밀거나 길쭉하지 않고 둥글게 싸여 있는 형국이 틀림없는 앵무새의 주둥이로 보였다.
그리고 산도에 그려진 호화편용(풀꽃처럼 곁가지가 없이 일정한 넓이로 내룡한 용맥)은(산도 다) 앵무새의 목처럼 보였고 그 후룡의 삼봉은 앵무새 숫컷의 볏 같기도 했다.
안산이 무엇보다 살아서 기어가는 벌레 같으니, 앵무새가 벌레를 잡아먹으려는 형국이라 했을 성 싶다.
산도에 나와 있는 혈처가 형성되기까지 내룡한 용맥의 행태나 혈을 중심으로 짜여진 사방팔방의 수려한 산세,
그리고 혈을 중심으로 골짜기마다 흘러내려 한곳으로 모여 빠져나가는 물 등은 풍수지리에 문외한이라해도 빼어난 수혈임을 알 수가 있다.
그 혈을 짓기 위해 내룡한 용맥을 보면 무등산으로부터 발조된 산줄기가 화순 너릿재를 돌아 칠구재를 건너 분적산을 일으켜 세운 다음 큰 지룡맥은 광주시내 쪽으로 힘차게 내리 쏟아 꿈틀대며 흘러 간다.
다른 한 가닥은 노대마을로, 그리고 다른 큰 줄기의 산맥이 칠구재 터널쪽으로 위이, 기복, 박환의 생기있는 용맥으로 내룡하다, 한줄기의 지룡이 보다 일찍 종괘산쪽으로 그 머리를 틀어 뻗어 내리고 있다.
다른 한가닥의 지룡이 칠구터널을 건너서 좌선으로 회두한 후 낙맥, 종괘산쪽(땀재 방향)으로 흐르는 용맥과 나란히 남향으로 흘러가는데 그 양쪽 산맥사이 도곡온천으로 통하는 도로가 산을 따라 함께 하고 있다.
그 도로를 타고 앵무촌까지 가는 도중에 오른쪽 용맥의 나아가는 형세를 보고 있노라면, 그 생기있고 왕성한 형세에서 용맥이 마무리되는 어느곳에 명혈대지를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앵무봉충형의 명혈대지가 바로 지척간에 있어 앵무촌이라 이름 붙여진 마을은 진혈의 운기라도 받고 있을까. 아니면 인근에 명당이 있다는 것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