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우리의 선물
아들아, 엄마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었는데, 일과 배움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30대 출근길 교통사고로 당했지
통증으로 병원에 다니며 환자 생활을 알게 되었지.
내가 바르게 살아도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일이 꼬인다는 걸 알게 되었어.
통증으로 호소하는 날들 속에 자연치유를 생각하게 되었고 혼자 사는 것이 세상사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 누군가를 만났다는 것 쉽지 않더라.
인생 중 여행하는 시간을 가졌지.
태어나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음이 올 수 있고
긴 병에 효자도 없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크다는 것
좋은 추억이 있어야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고 힘든 시간을 함께할 이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어느 날 한방병원 치료 받고 셔틀버스를 기다리는데 한 어른이 다가와 말을 걸더라.
젊은 나이에 왜 이리 병원을 자주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요.
내 딸은 전업주부인데 집안일 하다 쓰러져 8~9개월 혼수상태야. 사위 볼 면목이 없네.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은가.
이만 하늘나라가 줬으면 해. 감당이 안 돼.
친엄마 마음이 얼마나 찢어질까?
엄마는 후유증 있는 그 기간, 미용 봉사활동, 여행을 다녔지.
미용 봉사활동으로는 군부대, 요양원, 외국인 근로자 등
여행으로는 기차도 타보고 기차 안에서 시골 풍경을 보는데 복숭아꽃이 예쁘더라.
옆에 한 할아버지가 있으셔서 인생 중 가장 후회하는 것이 무엇이에요.
사랑하는 사람하고 결혼하지 않는 것이 가장 후회스럽소.
엄마는 그런 사랑 해 볼 수 있을까? 나 자신에게, 신에게 물어보았다.
귀촌 관심 있는 선배 제안으로 여자 친구들과 함양 지리산으로 여행하러 왔지.
그때 아빠가 여행 안내해주어. 그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했지.
서울에서 태어나 39년을 살아왔는데 이곳에서 어찌 살지 막막했지.
늦은 나이 결혼했는데 바로 너를 맞이했지. 감사한 일이지.
태몽으로는 도천마을 입구에서 친할머니 만나 일식집이 있어 들어갔는데 광화문광장이 펼쳐지고
작고 연한 초록빛 오이가 꿈속에서 보였지. 그래서 너 이불을 준비할 때 초록빛으로 준비했다.
네가 배 속에 있을 때, 공복이면 입덧으로 항상 먹을 것을 갖고 다녔지.
엄마는 클 때 경제적 어려움을 알기에 소일거리라도 일했지
함양에는 산부인과가 없어 진주 가야 하는데 일한다고 찾아오는 산부인과 이용했어.
출산 앞두고 병원을 정해야 하니 엄마 생일날 병원에 가서 너를 초음파로 처음 만났고 사진 기념했지.
널 임신 중일 때 스테이크를 먹고 싶었어,
함양에는 없다고 하더라. 노래를 불렀기에 갈 줄 알았는데 진주성 앞에 장어 집 데리고 가더라.
고모가 좋아하는 메뉴를 시키고 조카, 아빠랑 함께 먹었지.
엄마에 대한 우선순위가 없어 너무 서운해서 부부싸움 할 때 나오는 십팔번 노래지.
엄마, 아빠가 결혼이 늦었는데 넌 5월 8일 어버이날 태어났지. 많은 꽃다발을 받아보았단다.
네가 시댁과 친정에게 어버이날, 큰 기쁨의 선물이었지.
너를 모유수유 때 처음 만났네. 인상적이었던 것은 너의 큰 발,
아빠가 키 크니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주변 사람들은 말하지.
병원 생활 마치고 도천 시댁에서 지낼 때 고모부가 네게 젖병을 물어주고
아빠가 처음으로 기저귀를 갈아주려고 벗기자마자, 아빠 얼굴에 쉬를 했다고 훗날 말하더라.
신고식이 너무 인상적이네, 엄마가 답해줬지.
읍에서 엄마, 아빠가 볼일 보고 시댁에 오니 큰엄마랑 고모는 옹알이로 벌써 ‘엄마’라는 말을 했다고 웃음바다가 됐지‘.
네가 모유 수유를 안 하는 거야. 유축기로 짜보니 젖이 안 나와 빨지 않았던 너를 이해했고
엄마는 모유를 위해 노력했지. 고모가 엄마에게 돼지 다리 고아 먹었는데 모유가 안 나와 스트레스 받았지
노력해도 안 되니 포기하고 병실에서 알게 된 젊은 엄마 모유가 많다고 냉동실에 보관한 것 받아서 먹였지. 모유를 백일은 먹이고 싶었는데 서로에게 안 좋을 것 같아 분유로 방향 잡았지. 시댁에서 잘해줘도 엄마는 감사하면서 불편했어. 친정이 멀어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엄마는 힘들었다. 어린이집을 일찍 신청했지.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뭐든 잡아당기는 시절 어느 날 커피포트를 잡아당긴 거야. 뜨거운 물이 널 덮쳤지. 병원에 가니 대구 화상 전문병원 안내해 줘 응급실로, 다른 보호자들이 너의 화상 부위를 보고 걱정해 주었다, 다른 응급환자랑 이야기 나눠보니 캠핑 가서 컵라면 먹으려고 하는데 바람이 덮쳐 컵라면 물로 응급실에 왔다고~ 부위에 이물질이 있는 거라 치료 방법이 어렵다고 넌 부위가 넓더라도 깨끗한 물에 화상 입은 것이 치료하기에 더 좋은 조건이라고 하더라.
엄마는 딸을 원했는데 아들이 태어난 거지. 시댁은 아들을 더 좋아하더라. 네가 어렸을 때 집에서 엄마랑 있는 때 여성스러운 색상 입혔더니 여아 같더라. 널 자세히 관찰해보니 입술이 매력적이야. 화상병원에서 병원 생활 중 딸처럼 자상한 아들이 있더군. 엄마는 희망을 갖게 되었어. 같은 병실을 사용했던 환자 중(초등5) 어릴 때 가마에 들어가서 온몸이 화상 입어 피부이식 수술을 조금씩, 방에서 방으로 연결되는 옛집 가마에 들어간 사건으로 그리됐다고. 아이에게는 환경이 중요하지.
퇴원하고 오니 어린이집에서 연락해 왔어. 자리가 나서 전화 드린다고. 퇴원하고 온 상황에서 보낼 수가 없었지. 독방육아로 힘들어 천장 보고 혼잣말로 푸념했어. 그때 옆에 네가 있었지. 엄마는 푸념한 것인데 네가 순해진 거야. 신기하더라. 어느 여름날 기저귀발진이 걱정되어 기저귀를 빼고 있다가 엄마가 잠이 든 거야. 자고 일어나보니 이불에서 떼굴떼굴 굴러 이불 밖에서 넌 자고 있고 장판 위에서 쉬 한 거야. 하하하. 넌 엄마를 생각해 준 아들이야,
시댁 식구들이 집으로 왔지. 이야기하는데 넌 우는 거야.
아기 왜 우니. 상황을 살펴보니 말하는 상황이 싸움하는 소리로 들리는 거야.
경상도 말투, 말 좀 부드럽게 해주세요. 시댁 식구들에게 부탁하니 부드러운 말투로 오가니 넌 웃고, 엄마가 시집오기 전 외할머니가 경상도 말투는 세고 말이 예쁘지 않다고, 시골에는 일자리도 없고 시골병원은 병을 키운다고 엄마가 십 년간 살아보니 그 말이 맞더라. 하여간 울음에서 웃음으로 바뀌어 시댁 식구들과 즐거운 시간 보냈고 넌 엄마랑 있는 시간이 많아 서울 말씨를 배운 거지.
육아로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널 돌보며 사전에 있는 단어 중 ‘행복’ 단어가 이런 감정이라는 것을 느꼈다. 네가 가장 예쁠 때는 잠잘 때였고 예방 접종하러 보건소에서 옆에 있는 할머니가 “다른 아이는 나보고 무섭다고 우는데 넌 웃어주니 고맙다.” 좀 커서 엄마수업 듣으러 갈 때 너랑 동행했지. 옆에서 엄마, 너, 아빠를 그렸는데 너무 잘 그려 엄마는 놀랐다. 신기하기도 하고.
올해 건강상 문제로 엄마는 서울에 넌 함양에서 지낸 적이 있지. 전화 안부 묻다가 “엄마 내 친구가 엄마 걱정 많이 해.” “왜” “그 친구 할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거든” 그 말을 네가 했을 때 네가 엄마 걱정을 많이 하구나! 느꼈단다.
앞으로 우리 좋은 추억 많이 만들며 지내자. 사랑해. 아들
22년 9월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