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2 도다리가 본 예봉산 시산제
[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08)
2008-01-24 12:37:55
도다리가 본 예봉산 시산제
2008. 1. 24. / 박모철
작년 유월 삼각산 산행 이후, 대머리가 함 오라꼬 그리도 노래를 불러 �던 30산우회 등산 모임에 두 번째로 참석했다. 팔당대교 건너편 예봉산에서 시산제를 한단다. 지난주 동해로 1박2일 출장 갔다가 돌아오는 귀경길에 대머리로부터 걸려온 핸폰을 받은 것이 이번의 이 대단한 30산우회에 참석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전부터 입만 열면 오라꼬 그리도 노래를 불러 �길래 ‘담에 담에’ 하면서 넘겨왔던 터였다. 거절도 한두 번이지 미안한 맘이 안 생길 리 없고, 이라다간 좋은 친구 하나 잃어 버릴 것 같아(?) 우짜든지 함 가긴 가야겠다고 여러 번 속 다짐도 해 오던 차였다.
대머리란 놈은 내 중학교, 고등학교, 경남학원, 대학교 꽈 동기다. 문어꽈는 아니고… 게다가 대학 신입생 때는 기숙사 룸메이트인데다가, 3학년 때에도 휘경동 하숙집에서 함께 합숙을 하였으니, 대학시절에는 한 이불 밑에서 잠 잔 날이 딴 이불 덮었던 날보다 더 많은 놈이다. 이렇게 1970년부터 오늘까지 근 40년 동안 오랜 정분(?)을 이어 온, 아마도 나 없이는 못살 놈이 바로 대머리인 것이다. 뒤집어 보면 대머리도 날 지 없이는 못 살 놈이라고 주장해도 무방하다. ㅋㅋㅋㅋ
* 하나 찾았다. 도다리와 대머리, 중간에 항선달...
일마가 가자면 기름을 지고 불로 뛰어 든다케도 ‘그래 가자’ 하고 두말 없이 가는 기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포도청만 먼저 챙기다 보니 ‘담에 담에’만 연발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 놈 핸폰을 받고 등산 예기를 꺼내자 마자 단 번에 ‘그래, 이번에는 같이 가자’며 시원하게 동의를 해 준 것이었다.
(윗줄의 ‘가자’는 원래 ‘자자’로 잘 못 쳤다가 고친 것임. 혼자 마이 웃었다.)
얄라구진 쌕에 마누라가 챙겨준 김밥 한 줄, 토막 낸 사과 한 봉다리, 땀 닦을 수건, 아이젠을 챙겨 넣고 집을 나섰다. 경호, 그리고 후배 명훈이를 먼저 태우고 온 광호 차를 얻어 타고 거의 9시 정시에 팔당대교 건너 재봉이 사무실 앞마당에 닿으니, 먼저 온 친구 예닐곱이 우릴 반긴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 악수와 새해인사로 안부를 대신하고 얼른 담배부터 하나 얻어 입에 물었다. 금연이라고 우기는 광호를 반 강제로 달래어 명훈이에게 얻은 담배를 차 안에서 한 대 피우긴 했지만, 이제야 맘 편하게 제대로 식후 연초를 피우는 셈이다. ‘食後 不煙草면 早失父母하고, 門前乞食하며 子子孫孫 鼓子續出하고 死後 地獄行이라’ 했거늘, 어찌 비좁은 차 안에서 광호 눈치 보며 숨어 피운 담배 맛을 여기에 비하랴.
먼저 온 친구들과 재봉 사무실에서 자작한 커피를 홀짝거리는 동안 나머지 친구들이 삼삼오오 들이 닥친다. 작지도 않은 사무실 앞 마당이 시커먼 승용차와 50줄이 넘은 등산 차림의 중년들로 가득하다. 멋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다 본다면, 서울 인근의 조직이 외곽의 창고(?)에서 등산복으로 위장하고 무슨 비밀 모임이라도 하는 것으로 오해 할 만도 하다.
* 도다리 모철이... 저 담배는 참 맛있게도 핀다... 이제 난닝구는 입고 오지 마래이....
30산우회 고문이라는 허 선생을 포함하여 총 스물여덟이 모였다. 대박 이란다. 허 고문이란 분은 우리와 염색체 하나가 살짝 달라 기중 눈에 띄었는데, 날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 익히 알고 있는 눈치였다. 허허 이럴 줄 알았으면 대머리가 오랄 때 진작 오는 긴데 그랬네? 짜~식 말을 하지 말을 해. 날 40년 정분을 쉽게 버리는 그런 놈인 줄 알았나?
9시15분에 줄을 지어 산행을 시작하는데, 그 산행 대열이 거의 십 리까지 뻗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나올 법한 상황이었다.
대박을 맞아 작지도 않은 입이 귀 밑에 까지 찢어진 이번 산행 대장 재봉이를 필두로,
허 고문이 준비했다는 시산제에 쓸 시루떡판을 배낭 위에 걸머진 상국이,
산행 시작에서 끝까지 일행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카메라에 담기 바쁜 경호, 재일이,
벌써 댓 번을 봤으면서도 만날 때마다 ‘모철이? 니는 첨 보네’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인식,
(이름은 모를 수 있지만, ‘첨 보네’는 좀 심하더라. 별명을 와 펭귄이라 했는지 모르지만 다른 좋은 별명이 있긴 있는데……)
삼성 댕길 때 함 보고 정말 오랜만에 보는 규홍이,
언제 어디서 봐도 즐겁고 신나는 경남이,
군기반장이라고 폼 잡으며 나 더러 30산우회 ‘쫄’ 하라고 윽박지르던 병욱이,
껌을 자주 씹는 내가 머리에 박혀, 직원에게 껌 하나 달란 소리를 엉겁결에 도다리 달라고 했다는 나와 같은 한산도 촌놈 덕영이,
고이즈미 헤어스타일로 예술가 느낌을 주는 3-6회 신임회장 섬훈이,
키가 유난히 커 멀쑥한, 머리는 허얘도 동안인 해정이,
수술 후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여 열공 아닌 열등에 앞장 선다는 인섭이,
‘후라 경고’가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인, 그러나 이번에는 그냥 넘어간 부종이,
산에 와서도 먼 사무가 그리 바쁜지 핸폰 잡고 씨름하던 세우,
묵직한 체격으로 30산우회에서 맡은 뭔지 모르지만 상당한 감투를 부담 없이 감당하는 듯한 문수,
이번 산행에 고맙게도 무료로 대리 기사해 주고, 차 안에서 담배 한 대 피우게 특별히 허락해 준 광호,
동기 모임에서 여러 차례 만나도 제대로 술 한잔 권하지 못한 택술이와 진운이,
타고난 인물에 갈수록 풍채가 나는 진홍이,
아직도 고등학생 티가 묻어 나 한 참 후배 같은 은수,
시산제 집사 전문이라는 바지런한 길래,
예나 지금이나 작은 체구답지 않게 다부지고 깡 좋은 상호,
아직 말 한 마디 서로 붙여 보지 못한 정호, 병효,
그라고 마지막으로 선배들 모임에 부담 없이 참석해 준 명훈 후배.
이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군데군데 눈이 덮인 예봉산을 헉헉대고 올라 가니 과연 경고 30회의 단결력에 예봉산 산신령님도 감복할 정도라. 더러는 중간중간 깔딱고개에 걸터앉아 발 아래 먼 발치 딴 세상처럼 보이는 속세를 내려다 보며 가쁜 숨을 몰아 쉬기도 하고, 더러는 땀에 젖은 가슴팍을 열어 젖히고 호방한 자세로 사진을 찍어 대기도 한다. 등산로 주변은 눈이 쌓였건만, 등산객이 줄을 선 등산로는 흙 먼지가 날릴 정도다. 혹시나 해서 쌕에 챙겨온 아이젠은 꺼낼 필요도 없다.
쉬엄쉬엄 발을 옮기다 보니 어느 듯 정상이다. 해발 683미터. 출발한 지 한 시간 반이 채 못되었다. 10여분 전에 먼저 도착했다는 1진이 정상 한쪽에 웅성웅성 모여 챙겨온 커피를 마시다가, 헐떡거리며 합류한 우리에게도 한 잔씩 권한다. 산에서 땀 흘리고 마시는 커피 맛이 그만이다. 나도 담에 올 때는 딴 건 몰라도 따끈한 커피는 챙겨 와야겠다.
* 도다리 모철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몇몇을 뒤로 하고, 일행은 시산제를 지낼 장소를 찾아 자리를 옮겼다. 바로 아래 철문봉 쪽에 좋은 자리가 있단다. 시산제보다 젯밥에 관심이 더 많은 나야 어디서 제를 올리나 상관 없는 일이었지만, 꾼들은 그기 아닌 모양이다. 내겐 양지 바른 여기도 좋고 납작하게 풀이 누운 저기도 좋아 뵈건만 더 아래 시산제 지내기에 그만인 데가 있단다.
이왕 내려 갈 길, 가잔 데로 가보니 다소 음지긴 해도 동네 청년회가 감히 이곳에서 경거망동 하지 말라는 경고성 팻말까지 세워놓은 괜찮은 자리가 있다. 돌탑이 사람 키 높이로 정성 들여 쌓여있고, 옆에는 신령한 장소임을 표시하듯 늙으막한 소나무도 한 그루 섰다. 돌 탑 아래에는 돌로 된 제단 위로 제법 그럴싸한 제상이 차려졌다. 힘 겹게 지고 올라온 시루떡 한판, 사과, 귤, 꽂감, 마른 명태, 삶은 문어까지 제법 구색을 갖춘 모양새가 장난이 아니다. 일행이 많으니 출발도 시간이 걸리고, 다 모이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뒤로 쳐진 일행이 도착하길 기다려 시산제가 시작되었다.
일부는 제단 앞으로 둥글게 섰고, 일부는 나처럼 멀찍이 서서 딴짓거리 하는 사람은 있어도 무슨 선서 인지를 할 때는 그래도 한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돌탑 위로는 미리 준비해 온 플래카드도 붙었다. <天祥雲集>이라……온갖 상서러움이 구름같이 모인다는 뜻이렸다. 간략한 격식에 따라 축문도 외고, 차례로 절도 하고 술도 따른다. 한데 재밌는 것은 ‘인간 퇴주잔’이란 것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정말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조어다. 제상에 올렸던 술과 음식은 남김없이 다 나눠 먹었다. 격식을 다 차린 행사는 아니었겠지만, 올 한해도 건강하게 산에 오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우리의 뜻은 예봉산 산신령님께 제대로 전달 되었을 것으로 믿는다.
* 재일이가 빠진 단체사진
하산길은 눈이 없을 법한 철문봉 쪽으로 다시 올라갔다가 양지 바른 쪽으로 가는 게 낫겠다고 허 고문이 길안내를 한다. 미끄러운 하산길, 아이젠이 없는 사람을 위한 경험자의 배려로 생각된다. 이 나이에 다리 뿐질러 목발 짚고 다니느니 좀 돌더라도 안전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생각이다.
원래 시산제 후에 각자 준비한 점심을 해결하고 하산하여야 했지만, 제상 음식으로 간단한 요기는 되었고, 날씨도 춥고 하니 내려가서 함께 식사하자는 산행대장의 제안에 대부분 불만 없이 발길을 옮긴다. 일부 경처가(?)들은 싸온 도시락을 그냥 가져가면 담에 마누라가 도시락 안 싸 줄 지도 모른다며 굳이 먹고 내려 오겠단다.
삼삼오오 재봉이 사무실 앞에 세워 둔 차를 몰고 하산길에 재봉이가 미리 예약한 식당으로 몰려 갔다. ‘촌야’라 했던가? 일요일은 쉬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단골 재봉이의 압력 때문인지 그 놈의 돈에 눈이 어두워 그랬는지 몰라도 특별히 문을 열었단다. 아마 30명이 몰려 가 매상 왕창 올려 줄 테니 잘 좀 부탁한다고 반 사정했을 테고, 쥔장은 설마 서른 명이나 올까 반신반의하면서도, 노니 장독 깬다고 여느 때같이 여나무 명이 와서 소주 두어 병씩 팔아 줘도 손해 볼 것 없다는 생각으로 문을 열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식당은 우리 일행이 앉으니 빈 테이블이 하나도 없이 꽉 찼다. 이 집도 대박이나 다름없다. 맥주로 목을 축이는 동안 족발, 빈대떡, 두부 김치가 푸짐하게 상에 오르고, 소주에 복분자까지 권하고 마시니, 대박 30산우회 시산제가 마지막 열기를 한껏 불태운다.
30산우회 모두에게 무자년 새해에도 ‘天祥雲集’하길 바라며……
2008. 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