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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송정공원에서 ~ 제덕사거리까지 14.80km를 걷는
남파랑길 5코스 구간 입니다
남파랑길 <5코스 2부> 입니다
제3외성에서 바라본 웅천안골왜성의 본성 입니다
제3외성에서 조망되는 안골포
주차장으로 가는 계단
터널위로 진행 합니다
터널위에서 뒤돌아 보고~
터널위에서~
안골포에 접근 합니다
뒤돌아 보고~
진해유치원은 초등학교가 이전한 건물이라 합니다
내부만 유아의 눈높이에 맞게끔 <리모델링remodeling>하였지요
옛 초등학교 운동장 모습 그대로이지요
안청무궁화공원 입구 앞
진해유치원 곁에는 무궁화나무들로 빼곡하게 가꿔저 있는 안청무궁화공원 입니다
여기서 맛나게 요기를 하였지요
나는 끼니 대신 크다란 양푼에 탁주를 따뤄 원샷 하였습니다.
아딸딸하게 몽롱해진 정신으로 지금부턴 남파랑길 걷기를 이어 갑니다
어~ 주논개 상이 여기에~
아하, 그렇군요
25년전 쯤인가
주논개 사당과 생가 탐방을 하였지요.
영취산 ~ 육십령 구간 백두대간을 걸을 때 주논개 생가를 마루금 아래로 내려다 볼 수 있기도 하지요
주논개 사당을 찾았을 그땐 비가 억수로 쏟아저
탐방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였지요
주논개 생가 입니다
2012년 2월 19일 오늘 걷게되는 덕운봉, 북바위, 구시봉을 영취산 정상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마루금 입니다
북바위 암봉에서 주논개 생가가 내려다 보이지요
백두대간 마루금이 지나는 북바위 암봉에서 조망되는 주논개 생가 입니다
전북 장수군 계남면 주논개가 태어난 동네 입니다
비가 많이 쏟아지던 그날 한번 답사 한적이 있는 주논개 생가 입니다
2017년 6월 25일 금남호남정맥 2코스를 걸을 때
밀목재에서 출발하여 논개활공장에 이르니 장수군 읍네에 있는 논개사당이 조망되드라구요
금남호남정맥 2코스는 구간은
밀목재를 출발하여 ㅡ 덕산마을 ㅡ 논개활공장 ㅡ 960.9봉 ㅡ 사두봉 ㅡ 882봉으로 이어집니다
금남호남정맥 마루금이 지나는 논개활공장에서 장수읍네에 위치한 논개사당까지
직선거리는 2.6km 입니다
논개활공장에서 내려다 보이는 장수군 소재지 입니다. 논개사당이 있는 위치도 내려다 보이는군요
그라고본께 왜 논개활공장이란 명칭를 붙였는지 알겠군요
22년전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날 논개사당에 와보았는데, 논개사당 위치가 어딘지 모르도록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논개사당 위치를 보니 22년전의 기억이 퍼뜩 떠오르네요
그당시 구전으로 얻어들은 얘기거리가 논개는 술집 기생으로 전해지고 있었는데 지금 여러 자료를 뒤적어 보니
논개의 삶과 가계는 대개 이러하였습니다
논개의 성은 주씨이며 전라도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마을에서 훈장을 하던 주달문, 어머니는 밀양박씨이다.
나름 양반가의 딸이었던 것이다.
논개가 5세 되던 해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는 딸과 자신의 생계를 시동생 주달무에게 의탁한다.
주달무는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논개를 마을부자이던 김풍헌의 집에 민며느리로 팔아먹고 달아났다.
딸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논개의 어머니는 친정으로 도망을 갔다.
돈을 낸 김풍헌은 논개 모녀를 관아에 고발하였고 이들의 재판을 맡은 것이 당시 장수 현감이던 최경회였다.
최경회는 논개 모녀의 딱한 사정을 듣고 무죄방면했으며 모녀가 살 길이 막연하자 관아에서 잔심부름하며 살게 하였다.
최경회는 해주최씨로 전라도 능주 사람이었다.
양응정, 기대승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1567년 과거에 급제하였다.
장성한 논개는 최경회의 첩으로 들어갔고 이윽고 임진왜란이 터지자 전라도 지역에서 의병장이 된 최경회를 뒷바라지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1차 진주성싸움에서 혁혁한 공을 쌓아 경상도우병사가 된 최경회를 따라 진주로 가게 되었다.
당시 전황에서 진주성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진 성이었다.
진주는 왜병들이 많이 주둔해있던 경상도의 주요성일 뿐만 아니라 곡창지대인 전라도로 넘어가는 관문에 위치하고 있었다.
진주성은 일본입장에서는 꼭 차지하고 싶은 성이었고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내어주면 안 되는 성이었다.
1592년 10월 왜군의 1차 진주성 공격은 김시민(金時敏, 1554~1592)을 중심으로 관군과 민간인, 의병들까지 합세해 이를 물리쳤다.
이를 진주대첩이라고 부른다.
조선에 들어와 매 전투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던 왜군으로서는 진주에서의 패배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들은 1차 진주성 전투의 패배를 만회하고 호남으로 통하는 관문을 확보하기 위해 집요하게 진주성 공략을 준비하였다.
그리하여 1593년 7월 조선에 나와 있는 거의 모든 일본군을 동원한 10만 병력과 800척의 선박을 동원하여, 함안, 반성, 의령을 차례로
점령하고 진주성 공격에 다시 나섰다. 그러나 1차 진주성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던 의병들과 민간인들은 다시 한번 똘똘 뭉쳐 왜군의
공격을 막았다. 전투는 7일간 계속되었고, 결국 진주성은 7월 29일 왜군의 거대한 병력이 휩쓸고 들어와 함락되고 말았다.
성이 함락되던 날 논개의 남자였던 최경회는 김천일 등과 함께 남강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성에 진입한 일본군은 보복이라도 하듯이 성안의 민간인과 살아 있는 동물을 모두 학살하고 주변을 약탈했다.
그리고 왜장들은 승리에 도취되어 남강 변 촉석루에서 술판을 벌였다.
이때 논개는 관기들 틈에 끼어들었다. 논개는 술에 취한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를 꾀어내어 남강의 바위 위에 올랐다.
그리고 그를 안고 그대로 강물에 투신하였다.
왜장을 끌어 안고 남강에 투신한 의로운 여인이 논개이다(인물한국사에서 옮긴 글)
오랑캐의 바다를 동으로 바라보며~
숱한 세월 흘러
붉은 누각 우뚝이
산과 언덕을 베고 있네
그 옛날 꽃다운 물위론
가인의 춤 추는 모습 비추었고
단청 매긴 기둥엔
길이 장사가 남아 있네
전장터로 봄바람 불어
초목을 휘어감고
황성에 밤비 내려
안개 낀 물살에 부딪히네
지금도 영롱한 영혼이
남아 있는 듯
삼경에 촛불 밝히고
강신제를 올리네~
1779년(정조 3년=사도세자의 아들) 진주 남강 변에
논개(論介, ? ~ 1593)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의기사(義妓祠)를 보수하면서
당대 뛰어난 학자였던 정약용이 쓴 추모 시 입니다(정양용의 촉석루 회고록에서)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 동안 두 차례에 걸처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는 전쟁을 일으켰지요
1593년 임진왜란 중 일본군이 진주성을 함락시킨 왜장을 유인하여
왜장을 끌어안고 함께 진주 남강에 투신한 의로운 논개(論介)는 진주 관기(官妓)로 알려저 있습니다
논개의 순국 사실은 임난 직후에는 민간에서만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1620년경에 가서야 마침내 문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논개에 대해 처음으로 기록한 문헌은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문자화된 것이었다 합니다
1954년장수군내 각계 각층에서 성금을 모아 남산공원의 아래봉우리 꼭대기에 창건한 논개사당은 1974년에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장수리 현위치에 이건하였다. 장수삼절(長水三節)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의암(義岩) 주논개(朱論介)의 영정은
이당(以堂)김은호(金殷鎬) 화백이 그렸으며 당시의 부통령 함태영(咸台永)이 친필로 휘호를 내려 현판을 각자(刻字)하여 걸었다
의암사가 창건된 뒤에 주논개가 순절한 1593년 7월 7일을 택하여 추모대제(追慕大祭)을 모셔오던 중 1968년부터 장수군민의 날로
지정하고, 군민의 날 행사와 겸하여 대제(大祭)를 모시는 것으로 결정되어 계속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금남호남정맥 3코스 구간을 하던 2017년 7월 06일 촬영하였습니다)
창원시 진해구 안청무궁화공원의 주논개 상
무궁화공원 앞 입니다
위 이정표와 동일한 위치 입니다
무궁화 공원이 내려다 보이는 인도길에서
다온님, 미리내님, 노랑님
안청무궁화공원의 놀이시설
안골포해전
안골포해전
임진왜란 초기인 1592년 7월 10일(음) 조선 수군함대가 창원(진해구)안골포에 있던 일본의 정예 수군 함대
42척을 공격하여 승리를 거둔 거둔 해전이다
1592년 7월 8일의 한산도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조선 수군은 7월 9일 안골포에 적선이 주둔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안골포 선창에는 도요토미 직속의 <구키 요시다다>와 가토 요시아키가 이끈 정예수군
총42척(대선21척, 중선15척, 소선6척)이 정박해 있었다
거제 칠전도에 머물던 총 58척의 조선 수군은 7월 10일 새벽에 출전하여 전라좌수군이 선두에서 전진하고
경상우수군이 그 뒤를 따르며 전라우수군은 외곽 경계를 하다가 공격할 때 합류하도록 하였다
조선 수군은 여러 번 유인작전을 펼쳤지만 일본 수군은 포구 바ㄲ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에 조선 수군은 일종의 장사진을
구성하여 공격하였다. 그결과 조선 수군은 1척의 피해도 없이 적의 대선 20여 척을 분멸시켰다.
이때 적선을 모두 없애지 않은 것은 육지로 올라간 일본군이 우리 백성들을 해치지 않을까 염려해서 그들의 퇴로를 보장한
것이다. 한산도해전에 이어 일본의 정예수군을 안골포에서 연파함으로서 한산대첩의 한 축을 이룬
해전이라는데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안골해전의 상황도 1 : 접근단계
안골해전의 상황도2 : 공격단계2
왼쪽의 <부산신항 북컨테이너단지>와 오른쪽 웅동지구 서컨테이너단지를 연결해 주는
안골대교
이번 구간은 90%가 찻길 따라 걷습니다
안골포굴강은
경상남도 기념물 제143호로 지정면적 1,022㎡의 굴강의 석축이 허물어진 채 있으며, 본래 이 굴강은
고관들의 배나 국가적 중요성을 띤 배들이 하역작업을 하던 군사시설의 일종으로서 배의
수리나 보수 등을 맡았던 선박장의 구실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답니다
안골포굴강에서
약 20여m 떨어진 산 언덕에는 옛 객사 등이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말에 작성된 <웅천현고지도>를 보면, 이곳에 배 3척을 그려두고 있으며
임진왜란 때 이곳 굴강에 거북선을 매어두었다는 전설도 있다.
웅천안골포왜성은 왜적의 수군 본부였하지요
고개를 넘어니 웅동만이 내려다 보이네요
하늘누리는 전통찻집
사장님이 직접 만드는 수제 차 부터 다양한 커피 종류도 있는
하늘누리의 전통찻집
뒤돌아본 하늘누리의 전통찻집~
황포돛대노래비에서 흰돌메공원으로 이어지는 남파랑길
황포돛대노래비 -0.8km- 흰돌메공원
현위치 -3.8km- 황포돛대노래비
황포돛대노래비 석판에 새겨진 글을 옮겨 보면
1964년 이미자 가수의 히트곡 <황포돛대>는 진해시 대장동 237번지에서 태어난 작사가 이일윤(필명 : 용일)님께서
1963년 12월 경기도 연천의 육군포병부대에 근무하던 중 세모를 앞둔 12월 어느 눈오는 날 밤, 향수로 잠을 이루지 못하던 중
어린 시절의 고향 바다인 영길만을 회상하며 흘러가는 배에 슬픈 마음을 담아 <황포돛대>의 노래말을 지었다 한다
그 후 1964년 백영호 작곡, 이미자로 노래로 발포되어 국민애창곡으로 불리어지는 그 유래를 담아
<황포돛대 노래비>를 영길만 도로변에 건립하게 되었다 한다. <건립일 : 2003년 9월 01일 진해시>
작사 : 이용일
작곡 : 백영호
노래 : 이미자
고갯마루부터 지나왔던 도롯길을 뒤돌아 보고~
시루봉은 시루를 얹어 놓은것 같다 하여 시루봉으로 부르고 있다.
장복산의 안민고개에서 주능선에 이르기까지 등산로 좌우의 막힘이 없어 진해시가 한눈에 보이며 좌로는 창원시가 보인다.
진해와 멀리 바다를 함께 볼 수 있어 탁트인 조망이 일품이며 가을에는 잔잔한 억새와 상록수 편백의 군락이 볼 만하다.
시루봉 정상에 우뚝 솟은 거암 시루바위(곰 바위, 곰메바위라고도 함)는 높이가 10m, 둘레가 50m나 되며
조선시대 명성황후가 순종을 낳은 후 세자의 무병장수를 비는 백일제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쾌청한 날에는 멀리 대마도가 보이는 이 시루바위에는 조선시대 웅천을 일본에 개항하였을 때 웅천을 내왕하는 통역관을
사랑하게된 기생 아천자가 이 바위에 올라 대마도를 바라보며 기약없이 떠난 님을 그리워했다는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웅산(710m)은 진해의 명산으로 신라시대에는 나라에서 국태민안을 비는 고사를 지낸 산이기도 하며
조선 초까지 산신제가 올려진 곳이기도한 웅산
군부대가 점령한 화산 정상엔 갈 수가 없지요
신낙남정맥 할 때 정상 아래로 군사도로 따라 걸었지요
뷰~ 좋은 모텔이 쉬어 가라고 유혹하고 있지만 그냥
지나갑니다
굴암산에서 불모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신낙남정맥 마루금이죠
남파랑길은 대장천을 가로지르는 진철교를 지납니다
S-oil 앞에서 우회전하여 대장천을 건널 수 있는 진철(주)교를 건넘니다
뒤돌아 보고~
진철교에서 바라본 신낙남정맥 마루금
보배산 ㅡ 암봉(382m) ㅡ보배터널 위 안부 ㅡ 327봉
진철교를 건너자마자 직각으로 좌회전하여 이어지는 남파랑길
진철교 넘어 저멀리 신낙남정맥 마루금이~
지상 고압선이 여기부턴 지하로 매설되어 각 공단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뒤돌아본 지상 고압선
좌우로 철탑이 있는 산능선 넘어엔 이슈화됐던 <웅동학원>이 있습니다. 아리쏭하다구요,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관련된~
남파랑길은 황포돛대노래비가 있는 곳으로 이어집니다
3명은 남파랑길을 벗어난 영길교 위를 걷고 있군요
나는 화살표 따라 남파랑길 코스를 걷습니다
웅동119안전센터 앞을 지납니다
웅동119안전센터에서 100m 거리에 위치한 <사거리> 입니다
위 사진의 사거리에 설치된 남파랑길 표지판 입니다
부산시 강서구 송정동 송정공원에서 창원시 진해구 대덕사거리까지 중간 지점~
위 사진의 사거리를 뒤돌아 보고~
영길마을 입구 입니다
영길마을 입구의 입간판 황포돛대노래비에서 황포돛대 노래비가 세워진곳까지는
도롯길 따라 900m를 더 이동해야 합니다
영길마을 입구
남파랑길 <5코스 구간 3부>로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