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시사뉴스에서는 늘 독도문제를 다뤄왔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중점으로 알찬 내용을 독자여러분께 바르게 알리기 위해서 노력 하던 중 이번에 전 국민에게 애국심을 심기위해 새롭게 말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이런사람’을 통해서 애국자(독립운동가)를 소개해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특별기획 독립운동가 열네 번째 이야기
독립운동가 윤봉길 독립 위해 산화한 영원한 청년 의사 -1
출생 - 사망
1908. 6. 21. ~ 1932. 12. 19.
19세의 나이에 이미 농촌계몽운동에 뛰어든 윤봉길 의사는 야학당을 개설하여 한글 교육 등 문맹 퇴치와 민족의식 고취에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계몽운동만으로는 독립을 이룰 수 없다는 한계를 인식하고 중국으로 망명길에 오른다. 그곳에서 백범 김구를 만난 윤 의사는 의열투쟁에 뜻을 모으고 한인애국단에 가입, 김구와 함께 홍구공원 거사를 계획한다. 윤 의사의 의거는 널리 알려져 중국의 한인 독립운동 지원과 임시정부의 활성화 등 이후 독립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25세의 나이로 순국한 윤봉길 의사. 짧지만 강렬했던 윤 의사의 생애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과 그가 꿈꾸었던 나라를 살펴보자.
19세의 나이로 농촌계몽운동에 뛰어들다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 1908. 6. 21~1932. 12. 19) 의사는 1908년 6월 21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부친 윤황(尹墴)과 모친 김원상(金元祥) 사이의 5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우의(禹儀), 봉길은 별명이며, 호는 매헌이다. 11세 때인 1918년 덕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19년 3ㆍ1독립운동의 함성과 함께 학교를 자퇴하고, 이후 1921년 매곡(梅谷) 성주록(成周錄)의 문하에 들어 오치서숙(烏峙書塾)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전통 교육을 받으면서도 윤 의사는 당시 민족잡지인 [개벽] 등을 구독하며 민족운동의 방향을 정립하여 갔다.
1926년 서당에서 수학하던 중, 윤 의사는 산책길에 건너편 공동묘지에서 여러 묘표(墓表)를 뽑아들고 선친의 무덤을 찾아달라고 간청하는 한 무지한 청년을 만나게 된다. 이때 의사는 묘표를 뽑아 무덤의 위치조차 알 수 없게 만든 그 청년의 무식이 나라까지 잃게 한 적(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농촌계몽운동에 뜻을 두게 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19세였다. 윤 의사는 자신의 집 사랑방에서 인근 학동들을 가르치다가 학생들이 늘어나자 야학당을 개설하여 한글 교육 등 문맹 퇴치와 민족의식 고취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농민 계몽은 야학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윤 의사는 1927년 [농민독본(農民讀本)] 3권을 저술하여 본격적으로 농촌계몽운동을 벌였다. [농민독본]의 구성이 ‘낙심말라’, ‘백두산’, ‘조선 지도’, ‘자유’, ‘농민과 공동정신’ 등이었던 것만 보아도 당시의 농촌계몽운동이 단순히 계몽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민족 얼의 부흥을 목적으로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독립운동을 위한 망명길, 백범 김구와의 만남
1930년 3월 6일, 윤봉길 의사는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대장부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비장한 글을 남긴 채 정든 가족을 뒤로하고 중국으로 망명의 길에 오른다. 망명에 이르기까지 그의 고뇌와 결단은 중국 청도(靑島)에서 어머니에게 보낸 ‘사랑하는 어머니에게’라는 서신에 잘 드러나 있다.
보라! 풀은 꽃이 피고 나무는 열매를 맺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 저도 이상(理想)의 꽃이 피고 목적의 열매가 맺기를 자신합니다. 그리고 우리 청년 세대는 부모의 사랑보다도, 형제의 사랑보다도, 처자의 사랑보다도 일층 더 강의(强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각오하였습니다.
윤 의사에게 있어 그 사랑은 곧 민족애였다.
백범 선생과 윤 의사는 의열투쟁의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던 중 “1932년 4월 29일, 일왕(日王)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일본군의 상해사변 전승 축하식과 합동으로 상해 홍구공원에서 거행할 예정이다”라는 <상해 일일신문>의 보도를 접하게 된다. 이 얼마나 간절히 기다리던 기회였던가. 오로지 자신의 몸을 던져 독립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천리 먼 길을 달려온 윤 의사였다. 윤봉길 의사와 백범 선생은 드디어 그 기회를 맞은 것이다.
발췌
[네이버 지식백과] 윤봉길 [尹奉吉] - 독립 위해 산화한 영원한 청년 의사 (독립운동가, 이달의 독립운동가)
제공처 국가보훈처 http://www.mpv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