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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감리교회 로마서강해⑯ 2024년 5월 26일
사랑, 사랑, 사랑!(8:35∼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5∼39)
오늘 설교 제목이 이색적입니다.
사랑, 쉼표, 사랑, 쉼표, 또 사랑 하고서 느낌표를 했습니다.
오늘 본문이 사랑을 강조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렇게 정했는데요, “사랑 사랑 사랑”하니까 대중가요 제목 같습니다.
실제로 이런 제목을 가진 대중가요가 있습니다.
나중에 그 가사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설교 제목을 정할 때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설교제목을 보고 ‘아, 이 설교 정신 차려 들어야 하겠다’하는 마음을 생기는 제목을 만들 수 있겠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번 주 설교 제목도 그런 마음으로 이렇게 정했습니다.
함께 읽은 오늘 본문에 사랑이라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35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7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마지막 절인 39절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만일 사랑이라는 말이 네 번 나왔으면 제가 설교제목을 “사랑, 사랑, 사랑, 사랑!”이라고 정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로마서강해 열일곱 번째 순서입니다.
성경에 붙여진 소제목들을 따라 로마서를 공부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8장 31절에서 8장의 끝절인 39절까지를 살필 차례입니다.
소제목이 무엇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담임목사님이 여러 번 말씀 하셨지요.
교회에 올 때에는 성경과 찬송을 가지고 와서 찬송가를 보고 찬송을 부르고, 설교 시간에는 성경을 펴놓고 보는 것이 좋다고 말입니다.
그 말씀에 누가 제일 잘 순종하고 있는지 아세요?
바로 접니다.
예전에는 설교시간에 설교자가 “몇 장 몇 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하면 성도들이 그 말씀을 찾느라고 성경 넘기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렸습니다.
아름다운 소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상은 보조수단입니다.
소제목이 “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중국어성경에는 “불능격절적애(不能隔絶的愛)”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절적애(絶的愛)’라고 했습니다.
’절대적인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불능격절적애(不能隔絶的愛)”,‘ 우리를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에서 격리시키는 것은, 떼어놓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뜻입니다.
로마서를 산에 비유할 때 8장은 로마서의 정상이라고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로마서에는 ‘의인산(義認山)’, 의롭다 인정을 받는 산 또는 ‘득구산(得救山)’, 구원을 얻는 산이라는 이름을 부칠 수 있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이 산은 믿음이라는 길을 통해서만 정상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산 정상에 올라가면 “야호”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의인산, 득구산의 정상에 올라와서 무엇이라고 외쳐야 할까요?
‘사랑!’이라고 외쳐야 합니다.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는 외침입니다.
산 정상에 올라와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분이 백두산에 처음 올라갔는데 애국가가 그렇게 부르고 싶어지더랍니다.
애국가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고 시작되니까요.
우리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까요?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가 부르기에 적합한 찬송 가운데 하나입니다.
설교 뒤, 봉헌 시간에 부르시겠습니다.
성경에는 잘 알려진 사랑의 찬가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입니다.
퍽 오래 전의 일, 1960년대의 일로 기억되는데 어느 분이 고린도전서 13장에 곡을 붙여 발표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일반 상업방송에서도 이 노래를 많이 내보냈습니다.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거부반응이 없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이 수평적인 사랑을 노래한 것이라면 로마서 8장은 수직적인 사랑의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무슨 새로운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이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하십시오’.
‘다시 한 번 느끼십시오’.
사랑은 이론적인 설명보다 느끼는 것이 중요하지요.
‘다시 한 번 깨달으십시오’.
‘그 사랑에 힘입어 구원 얻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십시오’.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로마서 8장 31절에서 36절까지를 보면 질문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을 개역개정이라고 하는데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문장부호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성경을 쉽게, 현대적인 감각을 가진 말로 번역한 성경이 여러 종류 있습니다.
담임목사님이 설교하실 때 가끔 “쉬운 성경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라고 하시지요.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표준새번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문장부호들이 잘 들어 있습니다.
『표준새번역개정판』으로 로마서 8장 31절에서 35절까지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물음표가 몇 번 나오는지 세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두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당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소하겠습니까?
의롭게 하여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셨을 뿐 아니라, 오히려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하여 주십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핍박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물음표가 몇 번 나옵니까?
일곱 번이나 나옵니다.
여러분 이 질문들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31절 앞부분의 질문,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무리가 무슨 말 하리요”
(“그렇다면, 이런 일을 두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신 사랑에 대해(2절)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를 부르셔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그 사랑에 대해서(28절)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를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그 사랑에 대해(30절) 우리가 무엇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할 말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31절 뒷부분의 질문,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국제관계에서 강대국이 뒤에 있으면 함부로 손대지 못하지요.
그래서 러시아와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지원을 더 많이 받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 뒤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대적할 세력이 없습니다.
저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이 말은 바울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로마시민권을 생각하며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 당시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함부로 손댈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빌립보에서 전도하다 체포 당해 많이 맞고 갇혔지요..
상관들은 뒤늦게 바울이 로마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두려워 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서를 기록한 다음의 일이지만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결박당하고 채찍을 맞았습니다.
그 뒤에 천부장은 바울이 로마시민권자인 것을 알고 두려워했다고 사도행전 2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정부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말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입니다.
로마 정부가 보호하는 것도 그런 효과가 있는데 우리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위하심,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33절 앞부분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소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고발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사람들이 고발장을 들고 경찰서나 검찰에 가서 접수시키는 장면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고발장이 들어있는 봉투에는 무엇에 대해서 고발한다고 큼직하게 쓴 종이가 붙어 있지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 대한 마귀의 고발장은 접수가 되지 않습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33절 뒷부분에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믿음으로 의로워진 사람이야! 구원 받은 사람이야!‘하셨습니다.
대법원에서 ’이 사람 무죄!‘ 선언을 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경찰도 다시 손대지 못합니다.
검찰도 다시 손대지 못합니다.
그런데 대법원보다 더 큰 권위를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예수 믿고 있는 우리를 보고 ’이 사람은 의로워!‘ 선언하셨습니다.
누가 손대겠습니까?
34절도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로마서 8장에는 이 질문의 답이 이미 나와 있습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1절과 2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1945년 8월 15일에 우리나라가 일본의 통치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일본법을 가지고는 ’이 사람, 이런 잘못을 저질렀어‘, 정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일본 사람들이 우리를 괴롭히려고 법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독립운동 하는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해 치안유지법을 만들었습니다.
사립학교 규칙이라는 것도 만들었는데 이 사립학교규칙 때문에 기독교 학교들이 타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해방이 되어 그런 법들이 다 무효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장 31절 이하에 나오는 질문들은 답이 이미 정해진 질문들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질문을 만들어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설의법(設疑法)이라고 하지요.
지금까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러 질문을 말씀드렸는데 찬송가 가운데에도 한 절마다 질문으로 끝나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311장, “내 너를 위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주제로 한 찬송입니다
1절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2절
아버지 보좌와 그 영광 떠나서
밤 같은 세상에 만 백성 구하려
내 몸을 희생했건만 너 무엇하느냐
내 몸을 희생 했건만 너 무엇하느냐
3절
죄 중에 빠져서 영 죽을 인생을
구하여 주려고 나 피를 흘렸다
네 죄를 대속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
네 죄를 대속 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
4절
한 없는 용서와 참 사랑 가지고
세상에 내려와 값 없이 주었다
이것이 귀중하건만 너 무엇 주느냐
이것이 귀중하건만 너 무엇 주느냐
주님은 ’너 무엇 주느냐‘ 묻고, ’너 무엇 하느냐‘고 반복해서 묻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께 무엇을 드리시겠습니까?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35절은 질문을 던지는 방법, 설의법과 함께 여러 가지를 죽 늘어놓는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 여러 가지를 쭉 나열하고 있습니다.
나열법(羅列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8절과 39절에서도 나열법이 쓰입니다.
사망, 생명, 천사들, 권세자들, 현재 일, 장래 일, 능력, 높음, 깊은, 다른 어떤 피조물,
바울은 지금 자기의 문장실력을 자랑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렇게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무엇일 것 같습니까?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 이거, 바울이 모두 겪은 것들입니다.
추상적으로, 관념적으로, 이론적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에는 바울 사도가 당한 일이 여러 가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회심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온 것이 생명의 위협이었습니다.
바울은 밤에 광주리를 타고 다메섹 성을 탈출해야 했습니다(행 9:23∼26)
루스드라라는 곳에서는 돌에 심하게 맞았습니다.
돌을 던지던 사람들은 바울이 죽은 줄 알고 시외로 끌어 내쳤습니다.
사도행전 14장 19절의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빌립보에서 많이 맞고 갇힌 일,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실제로는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고린도후서 23절 중간에서 27절까지의 말씀을 봅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디모데후서 4장 17절에는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이것이 무슨 뜻인가, 바울이 혹시 사자굴에 들어갔던 것이 아닌가 여러 가지로 추측합니다.
바울은 ’내가 이런 것들을 겪었지만 그런 것이 나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나를 끊지 못했다‘라고 체험담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체험한 것을 쓰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간증이기 때문에 오늘의 외침이 강하게 우리에게 와닿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간증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7절을 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승리의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넉넉히 이기느니라”를 신약성경의 원어인 헬라어로는 ’휘페르니코멘(ύπενικϖμεν)‘이라고 하는데 신약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강한 표현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압도적 승리‘를 말합니다.
’정복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를 『표준새번역』은 “이기고도 남습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공동번역성서』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새한글성경』은 “거뜬히 이겨냅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며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어려움들을 이렇게 이겨내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 시절에 폴리캅이라는 교회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서머나교회의 감독을 오래 지냈습니다.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요한은 사랑을 강조했기 때문에 ’사랑의 사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박해할 때 폴리캅도 체포되어 형장에 끌려갔습니다.
폴리캅이 어떤 사람인지 이미 들어 알고 있고, 또 그의 덕스럽고 평화가 넘치는 얼굴을 본 관리들은 폴리캅을 살려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한번만 모른다고 하면 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폴리캅은 "예수님은 나를 86년 동안 사랑하며 한 번도 모른다고 한 적이 없는데 내가 어찌 예수님을 한 번이라도 모른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했습니다.
그는 화형을 당했습니다.
폴리갑은 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깨닫고 그 사랑을 지키며 순교한 사람으로 아름다운 이름이 길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본문의 끝부분, 38절과 39절을 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신약의 원어인 헬라어성경에는 38절과 39절이 한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결론적인 말을 제일 앞에 두었습니다.
아까 수사법 이야기를 했는데 이렇게 중요한 말을 제일 앞에 나오게 하는 것을 두괄법(頭括法)이라고 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장래 알이나” 라는 말에 마음이 끌립니다.
’지금까지도 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며 이기며 살아왔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는 선언으로 들립니다.
실제로 바울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38절에 “칼이랴”라는 말이 있지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사형을 당할 때 다른 사도들은 대개 십자가형을 당했는데 바울은 칼로 목을 베는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잘려진 목이 세 번 튀었는데 그 자리마다 분수가 솟았다고 합니다.
그곳에 지금 수도원이 세워져 있는데 이름이 ’세 분수 수도원‘입니다.
한자로 삼분천(三噴泉)이라고 적기도 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장래에 당할 일을 예견하고 “칼이라”라는 말을 넣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주일입니다.
우리는 주일을 잘 지켜야 합니다.
주일성수는 신앙생활의 기초입니다.
주일에 예배, 잘 드려야 합니다.
주일을 특히 경건하게 보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런 것들과 함께 주일에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가 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사랑, 사랑, 사랑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일입니다.
아까 “사랑 사랑 사랑”이라는 대중가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김현식이라는 가수가 30여 년 전에 작사하고, 작곡하고 부른 노래라고 합니다.
참고하기 위해 인터넷에서 그 가사를 찾아보았습니다.
가사 가운데 “철부지 어렸을 땐 사랑을 몰라”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오더군요.
누구나 한번쯤은 사랑에 울고
누구나 한번쯤은 사랑에 웃고
그것이 바로 사랑 사랑 사랑이야
철부지 어렸을 땐 사랑을 몰라
세월이 흘러가면 사랑을 알지
그것이 바로 사랑 사랑 사랑이야
여기 화면에 올려달라고 부탁할까 하다가 대중가요 가사를 올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만 두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면 철부지 믿음입니다.
’그 사랑을 입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는 하는 질문을 가져보지 않았다면,
그저 ’이것 주십시오, 저것 주십시오‘하는 일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도 철부지 믿음입니다.
우리는 철부지 믿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주일은 한 주일의 시작입니다.
여러분, 주일은 한 주일의 끝이 아닙니다.
시작입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나온 달력에도, 심지어는 북한에서 나온 달력에도 일요일, 주일이 제일 앞에 나와 있습니다.
주일은 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사랑을 다시 한 번 깨닫고 한 주일을 그 사랑을 입은 자로서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을 채우는 날입니다.
삼위일체 주일인 오늘이 그런 날이 되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번 주간을 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로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우리에게 절대적인 사랑, 압도적인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그 사랑을 잊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그 사랑을 입은 자로서 합당하게 살게 하여 주옵소서.
그 사랑을 베풀어주신 주님께 무엇을 드려야 하나,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물으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용산교회가 그 사랑을 입은 공동체로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둔지산(屯之山)의 종소리[山鍾 유관지 글모음]](http://t1.daumcdn.net/cafe_image/cf_img2/img_blank2.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