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 세계에서 치매 발병률이 가장 낮은 나라에서 온 음식
글 박태균 중앙일보 식품의약전문기자
인도 요리의 대표는 뭐니뭐니해도 카레다.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는 건 잘못된 말이다. 카레가 없는 것이 아니라, 카레라이스가 없다. 우리가 즐겨 먹는 카레라이스는 일본에서 개발한 음식이다. 인도 식당에서는 빈디 사브지(아욱과 식물인 오크라를 넣은 카레), 알마타르(채소카레), 차나 다르(콩을 넣은 카레), 코르마(양고기를 넣은 카레), 키 마커리(저민 고기를 넣은 카레) 등을 주문해야 인도 고유의 카레를 맛볼 수 있다.
'카레’라는 음식명은 남인도, 스리랑카의 ‘카리(kari)’에서 유래했다. ‘여러 종류의 향신료를 넣어 만든 스튜(stew)’라는 뜻이다. 실제로 카레는 녹차, 고추처럼 한 종류의 식품이 아니다. 15~20개 향신료(강황, 후추, 계핏가루, 겨자, 생강, 마늘, 박하잎, 칠리 페퍼, 사프란, 베이잎, 정향, 육두구 등)를 섞어 만든 복합 향신료다. 우리가 자랑하는 건강식인 비빔밥처럼 믹싱(mixing) 음식이다. 카레의 웰빙 효과도 다양한 향신료의 ‘약성’에서 나온다.
노인에게 특히 이로운 식품
그 중 주원료는 강황(카레의 30~40%)이다. 강황의 색이 바로 카레의 색(노란색)이고, 강황의 맛이 카레의 맛이다. 카레는 석가모니가 고행할 때 즐겨먹은 음식으로 유명하다. 카레는 노인에게 특히 이로운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유는 이렇다.
카레는 흔히 노망이라고 부르는 알츠하이머병(노인성 치매)의 예방과 치료를 돕는다. 알츠하이머병에 미치는 카레의 긍정적 효과는 동물실험에서는 이미 상당 부분 입증됐다. 사람에게서는 아직 딱 떨어지는 증거가 없다. 카레를 즐겨 먹는 인도인의 알츠하이머병 유병률이 미국인의 4분의 1에 불과하다는 간접증거 정도다. 인도는 치매 발병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국가이며, 일부 지역에서는 65세 이상 노인의 치매 발병률이 1%에 불과하다. 싱가포르에서 6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치매검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여기서도 카레를 즐겨 먹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정신 상태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카레의 어떤 성분이 알츠하이머병 예방을 돕는 것일까. 카레의 주성분인 강황에 풍부하게든 커큐민(curcumin, 노란색 색소 성분)을 치매 예방 성분으로 꼽는 전문가가 많다. 커큐민이 항산화(유해 산소 제거)와 항염증작용을 통해 치매환자의 뇌에서 발견되는 플라크(베타아밀로이드)를 제거한다는 것이다(‘프로 시딩스 오브 내셔널 아카데미 오브 사이언스’, 2007년 7월).
미국 UCLA그레고리콜 교수는 알츠하이머병을 인위적으로 유발시킨 쥐에게 커큐민을 직접 주사해 봤다. 이 연구에서도 커큐민이 뇌세포를 파괴하는 베타아밀로이드(알츠하이머병의 주범)를 분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생화학저널’, 2004년 12월 7일). 연구팀은 우리가 흔히 복용하는 소염진통제인 이부프로펜, 나프록센보다 오히려 커큐민의 항염증효과가 더 뛰어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카레의 치매 예방과 치료효과는 아직 가설이다. 병원에서 치매환자에게 커큐민을 치료제로 처방하지는 않는다. 예방 차원에서는 카레를 권할 만하다고 본다. 인도 전통의학인 아유르 베다에서는 카레를 염증을 가라앉히는 약으로 써 왔다.
강황 등 15~20개 섞어… 몸 속 노폐물도 제거
카레의 커큐민은 녹차의 카테킨, 고추의 캡사이신과 함께 기억해둘 만한 웰빙 성분이다. 셋 다 폴리페놀계열의 항산화 성분이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유해(활성) 산소를 없애 노화와 성인병을 막아준다. 그 중 커큐민의 항산화력이 가장 높고 다음이 카테킨, 캡사이신 순서다. 일본에서는 커큐민만을 따로 추출해 건강기능식품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카레는 또 유방암, 대장암, 전립선암, 피부암 등 각종 암 예방식품으로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역시 커큐민 덕분이다. 국내 연구진은 카레에서 전립선암과 신경교 아세포종(뇌종양의 일종)을 억제하는 효과를 밝혀냈다.
삼성서울병원 비뇨기과 최한용 교수팀은 실험용 쥐를 커큐민 투여 그룹과 위약(僞藥)그룹으로 나눠 10주간 실험했다. 그 결과, 커큐민 투여 그룹에서 전립선암의 전이가 억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 교수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아시아 남성은 서구 남성에 비해 전립선암 발병 위험이 훨씬 낮다”면서 “콩과 녹차 등을 즐겨 먹는 식습관에 그 비결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여기에 카레를 추가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영국레스터 대학 의대 윌 스튜어트 교수는 아시아계 주민이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레스터시에서 대장암 진단을 받은 환자 500명을 조사한 결과, 아시아계는 2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아시아계 주민이 즐겨 먹는 카레에 암을 억제하는 성분이 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 텍사스대학 MD앤더슨암센터 연구진은 생쥐를 이용한 동물실험을 통해 커큐민이 유방암전이를 막아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커큐민은 심장 주변에 유해 산소가 쌓여 생기는 심장병을 예방하는데도 유용하다. 카레 재료 가운데 하나인 시나몬(육계)은 고지혈증 환자의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심부전 환자나 심장병 고위험군이 커큐민에만 전적으론 의존해서는 안 된다.
<Cinnamon | CC, photographer: Anders Björk>
카레의 커큐민은 위산 분비를 억제하고 조절하는데도 도움을 준다(포항공대). 위-식도 역류, 위산과다 등으로 속 쓰림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카레를 추천하는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너무 많이 먹으면 오히려 위궤양이 유발될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체중감량에도 유익하다. 이는 카레 속에 든 다양한 향신료가 위장 움직임을 도와 소화와 신진대사가 촉진될 뿐 아니라, 우리 몸 속에 쌓인 지방과 노폐물, 독소를 없애주기 때문이다.
커큐민은 지용성(脂溶性) 물질이므로 아마씨유 등 식용유에 섞어 먹거나 기름에 튀기면 흡수가 더 잘된다. 카레는 당뇨병 예방에도 유익할 것으로 여겨진다. 재료 가운데 하나인 시나몬은 2형(성인형) 당뇨병 환자의 혈당을 낮춰주고 정향과 베이잎, 강황 등도 당뇨병 예방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는 식물들이다.
단점도 있다. 치아를 금세 노랗게 물들인다는 것이다. 싱크대에 떨어진 카레 얼룩은 바로 닦아도 꽤 오래간다. 카레를 먹은 뒤 설거지를 미루면 식기에 노란색이 남는다. 치과의사들이 카레를 먹은 뒤 즉시 양치질을 하라고 강조하는 것도 그래서다. 외식 후 양치질이 어렵다면 맹물로라도 입안을 헹구는 것이 좋다.
박태균 중앙일보 식품의약전문기자
국내 유일의 식품의약전문기자. 중앙대학교 의약식품대학원 겸임교수, 서울대학교 초빙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한국 기자상, 올해의 의과학 기자상, 한국천식알레르기협회 언론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음식과 건강』, 『100% 신종플루 예방법』, 『아이의 완벽한 식생활』 등이 있다.
[2011-03-01]
<출처: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첫댓글 아하 ~~그렇군요^^카레 지금보다 더 먹어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