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람]
밖은 위험해!
1.
책 읽는 내내 마음이 아렸다. 눈을 감고 귀를 닫았던 현실을, 꾸깃꾸깃 구겨서 한 쪽 귀퉁이에 밀어두었던 현실을 쫙쫙 펴서 눈 앞에 들이밀었다. 나는 환자다. 내 아픔이 커서, 삶이 고단해서 다른 사람의 아픈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이야기만 듣고 싶었고, 그런 이야기에 파묻혀 살았다. “그냥, 사람”(홍은전 저)은 구름 위에 둥둥 떠다니는 나를 현실이라는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장애인의 삶을 몰랐다. 장애시설에서 있으면 먹여주고, 필요한 것을 챙겨주고, 치료해주니 편하게 살겠구나 생각했다. 눈 앞에 보이지 않아서 이런 생각조차도 안하고 살았다. 시설에 사는 장애인들의 실상을 정말 몰랐다.
“송국현은 2013년에 꽃동네를 나왔지만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했고, 2014년 혼자 있던 시간에 집에 불이 나서 죽었다. 꽃동네의 어떤 직원들은 송국현의 죽음을 이 이야기의 결말로 삼았다. ‘자유는 위험한 것이다. 너희에게 자유를 주겠다는 사람들은 무책임한 사람들이다.’”(186)
장애시설 꽃동네에 살면 편할 건데, 왜 나오려고 했을까. 장애시설 안은 안전한 곳인데, 굳이 나와서 사고를 당했을까. 나는 꽃동네 직원의 말에 동의했을 거다. 시설 밖은 위험하고, 시설 밖으로 나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무책임하다고.
꽃동네에서 20년을 살았던 스물다섯 최영은도 송국현의 죽음을 들었다. 듣고 겁이 나지 않았을까. 꽃동네 직원이 한 ‘자유는 위험한 것’이라는 말도 들었다. 그 말에 주저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녀는 꽃동네를 나왔다. 안전이 보장된 시설을 탈출했다. “자신도 불타 죽을까봐 두려웠지만, 그녀가 더 두려운 건 통제된 시간 속을 살다 천천히 죽어가는 것이었다.”(187)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시간이 길고 짧은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통제 아래 서서히 죽어가는 게 아니라 한 인간으로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거다. 목숨을 걸고 자유를 선택했다.
시설 밖에는 희망찬 미래가 아니라 끔찍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서는 결코 살 수 없다. 꽃님 씨는 중증장애인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40년은 방안에 살았다. 가족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시설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녀는 3년을 버티지 못했다. “살 곳이 못돼”(53). 그녀는 인권활동가에게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사회는 그녀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녀 혼자서 시설 밖으로 나가는 건 위험천만하다. 활동가들은 이 점 때문에 고민했지만 부딪혀보기로 했다. 그녀는 활동가들을 따라 서울로 갔다. “자유의 대가는 혹독했다.” (54) “그녀는 그 모든 시간을 부딪쳐 살아냈고, 힘들게 얻은 자유를 사랑했다.”(56)
꽃님 씨의 탈출과 자유를 위해 버텨낸 삶과 그녀를 도운 활동가들 덕에 사회 안전망이 점점 생겨났다. 탈 시설 운동은 계속되었다.
우리 사회는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돌”(195)리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경쟁하는 세계에서 연대하는 세계로, 적응하는 세계에서 저항하는 세계로, 냉소나 냉담보다는 희망을 더 정상적으로 보는”(247) 사람들도 있다.
2.
어느 사회나 공동체든 ‘안전’은 중요하다. 사회 안전망이 구축되지 않은 사회는 위험하다. 하지만 때로 사회는 ‘안전’이 자유를 빼앗기도 한다. 통제하려고 한다.
유현준 교수의 책,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학교 교육은 교도소다”라고 단언한다. “한국에서 담장이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을 꼽자면 두 가지가 있다. 학교와 교도소다.”
기억을 더듬어 내가 다닌 고등학교 교정을 떠올려보았다. 높은 방음벽이 둘러치고 있었다. 학교 옆에 큰 도로가 있었는데, 큰 트럭들이 자주 지나다녔다. 차 소리가 시끄러워서 학생들이 공부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방음벽을 설치했다. 바깥 길을 접하고 있는 담장을 높은 방음벽으로 막았다. 학교와 밖은 그 방음벽 덕분에 완전히 차단되었다. 학교만의 안전한 공간이 되었다. 세상과 소통할 수 없는 단절된 공간이 되었다. 학교는 학생들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방음벽으로 막아준 것이다. 하지만 손쉽게 학생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 안에서(통제 아래서) 어느 정도 자유가 허락되었다. 학교 밖으로 나가는 자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학교 밖을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 담임 선생님께 허락을 받거나 수업이 다 끝난 후였다. 학교 안은 안전하고, 학교 밖은 정말 위험한 곳일까?
인천에서 전도사로 사역할 때다. 부모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사는 한 친구와 가깝게 지냈다. 괜히 마음이 쓰였고, 그 친구도 나를 잘 따랐다. 중학생 때 만난 녀석이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었다. 학교를 며칠 다니더니 도저히 못 다니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 친구를 만나러 서둘러 학교로 갔다. 공부하는 걸 싫어했던 녀석은 자기와 학교는 안 맞다며 그만두겠단다. 밥 먹는 시간 빼곤 하루종일 엎드려 자는 게 지겨웠던 모양이다. 그에게 학교는 자기를 통제하는 사회, 아무런 자유가 없는 곳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어른들이 흔히 하는 말이었다. ‘나와서 뭐할거냐, 고등학교라도 나와야지 뭐라도 할 수 있다. 학교 밖은 위험하다’ 내 말은 그 친구에게 가닿지 않았다. 견디다 못해 학교를 뛰쳐나왔다. 통제로부터 벗어난 거다. 자유를 찾아서.
학교 밖은 무제한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 있고, 다들 학교 가 있는 시간에 어디든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랐다. 학교 밖을 나온 십대 청소년을 위해 준비된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겨우 할 수 있는 건 일주일에 한 번 그 친구를 만나서 점심을 같이 먹고, 오후 시간을 때우는 거였다. 꽃님 씨의 탈출을 도왔던 활동가들처럼 함께 그 친구를 도울 사람도, 전문성도 나에게는 없었다. 그는 홀로 이 엄혹한 세상을 헤쳐나가야 했다.
첫댓글 아, 이 글은 두 편의 글로 나누어도 좋겠어요.
2는 더 이어서 쓰실 거... 죠? >.<
매우 궁금해요. 그 친구가 어떻게 되었을지, 지호 샘 마음 속에 그를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계실지
1의 마지막 문장이 2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는지도 궁금하고요.
2를 더 쓰고 싶은데, 더 쓸 수가 없어요ㅠㅠ 저 혼자 챙기다가 한계가 왔거든요ㅠㅠ 당시는 저는 너무 어리기도 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어요ㅠㅠ
@원지호 음.. 그렇게 있는 그대로를 쓰시면 될 거 같아요. 글에는 나의 부족, 나의 부끄러움을 담으셔도 됩니다. 그런 고백이 읽는 이들에게 더 가 닿을 수 있고요. 우린 모두 나약하고, 나약하니까 서로 돕는 거고요. 돕는 이의 한계 또한 충분히 짐작 돼요
제목이 확 끌리네요. 👍
냉큼 들어가 보게 되는 효과가~~
제목 칭찬이라니!! 넘넘 고마워요^^
"1."의 첫 번째 문단의 표현이나 선생님의 이야기로 풀어낸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의 첫 문단이 마음에 들으셨다니!^^ 잘한 건 여러 번 읽어봐야겠어요ㅎ
일주일에 한번 점심을 먹는 일은 '겨우'가 아닙니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 일 수도 있어요. 선생님께 제가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리 말씀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ㅠㅠ 여전히 제 안에는 그 친구에 대한 부채감이 남아 있어요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