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2:1-10
찬송가 255장 ‘너희 죄 흉악하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루살렘 성전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에게 성전은 건물 이상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약속이자, 자부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했던 성전이 주님의 진노로 잿더미가 되었고, 장로들은 땅에 앉아 침묵하며 재를 뒤집어 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극의 원인을 예레미야는 단 하나로 지적합니다. 바로 이스라엘이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의지하고, 여전히 죄를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망하게 하려고 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의지하던 허탄한 우상을 깨뜨리시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려고 이 아픈 징계를 허락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진노(1-5절)
(1) 슬프다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사 딸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는가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을 하늘에서 땅에 던지셨음이여 그의 진노의 날에 그의 발판을 기억하지 아니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에 진노하시며 이스라엘을 구름으로 덮으셨습니다. 구름으로 덮인 이스라엘에는 한 점의 햇살도 비치지 않기에 온 땅이 어둡게 변하고, 시온의 모든 것을 뒤덮으며 시각적으로 심판이 올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아름답고 영화로운 도성이 이제는 하늘에서 땅에 던져지면서 산산조각이 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진노의 날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발판을 기억하지 않겠다고 하시는데, 여기서 여호와 하나님의 발판이란 이 표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땅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지만(사 66:1),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상징하는 특별한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따로 구별하여 거룩하게 여겨지는 곳까지 철저하게 심판하시겠다 하실 만큼 분노에 가득차 계십니다. 이 분노는 어디까지 영향을 끼치게 됩니까?
(2-3) 주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들을 삼키시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셨음이여 노하사 딸 유다의 견고한 성채들을 허물어 땅에 엎으시고 나라와 그 지도자들을 욕되게 하셨도다 맹렬한 진노로 이스라엘의 모든 뿔을 자르셨음이여 원수 앞에서 그의 오른손을 뒤로 거두어 들이시고 맹렬한 불이 사방으로 불사름 같이 야곱을 불사르셨도다
하나님의 진노는 야곱의 모든 거처들을 삼키게 되며, 유다의 견고한 성채들까지도 무너지게 됩니다. 결국 범죄한 이스라엘은 국가의 3가지 요소인 국민과 영토와 주권을 모두 상실하며 모든 성읍이 황폐해지고, 모든 나라의 지도자들이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이들에게 임한 진노는 모든 뿔이 잘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물리적인 힘과 능력을 제압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철저한 패배를 안겨주십니다. 그런데 더 절망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원수 앞에서 그의 오른손을 뒤로 거두어 들이신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여호와의 오른손은 강한 능력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는 아무리 강한 대적이 와도 여호와의 오른손으로 모든 대적을 멸하셨지만 이제는 이러한 능력이 없이 원수에게 멸망할 순간만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로 향하게 됩니다.
(4-5) 원수 같이 그의 활을 당기고 대적처럼 그의 오른손을 들고 서서 눈에 드는 아름다운 모든 사람을 죽이셨음이여 딸 시온의 장막에 그의 노를 불처럼 쏟으셨도다 주께서 원수 같이 되어 이스라엘을 삼키셨음이여 그 모든 궁궐들을 삼키셨고 견고한 성들을 무너뜨리사 딸 유다에 근심과 애통을 더하셨도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창조주이시며,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시고, 목자이시고, 남편이시며, 인도자이며,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는 용사이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의 오른손을 뒤로 거두어 가신 것을 넘어 오히려 그 손으로 활을 당겨 그 화살이 이스라엘로 향하게 됩니다.
이는 오랫동안 우상 숭배에 빠져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 말씀을 무시하였던 이 백성의 죄악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대 위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 죄악을 회개하지 않고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선포하신 말씀을 끝까지 대항했던 이 백성은 결국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하나님의 원수가 되며 하나님께서 대적하시는 위치에 서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회개 하지 않는 것은 그저 심판만 임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적으로 돌리고, 나의 삶에 불화살을 쏘시는 하나님을 마주해야 합니다. 이미 우리 곁에는 원수들이 많지만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마저 나의 원수로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전쟁으로 인해 멸망하게 되는 것도 슬픈 일이지만 더욱 슬픈 것은 언제나 나를 지지해주고, 사랑을 주던 존재가 적으로 돌아서는 것을 마주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남는 것은 결국 근심과 애통 뿐입니다. 주님의 진노는 군사적인 멸망에만 미치지 않고 확장됩니다.
성전을 허무시는 여호와(6-10절)
(6-7) 주께서 그의 초막을 동산처럼 헐어 버리시며 그의 절기를 폐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절기와 안식일을 잊어버리게 하시며 그가 진노하사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도다 여호와께서 또 자기 제단을 버리시며 자기 성소를 미워하시며 궁전의 성벽들을 원수의 손에 넘기셨으매 그들이 여호와의 전에서 떠들기를 절기의 날과 같이 하였도다
우리는 하나님과 어떤 방법으로 교제를 하게 됩니까? 각자의 삶에서 묵상을 하며 만나기도 하고, 규칙적인 예배를 드리며 만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통로는 성소에 나가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 마지막 통로마저 헐어버리시고, 절기마저 폐하십니다. 이러한 탄식은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교제의 제의가 이루어진 성전이 부패하고 타락하여 하나님께서 성전에까지 가혹한 심판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자기 제단을 버리시고, 이제 성소를 미워하시는 모습까지 보이게 됩니다. 결국 타락한 이스라엘에 있던 장막, 성소는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고, 신앙적인 관계가 끊어진 껍데기와 같은 성소는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묵상하며 각자의 성소, 제단은 제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타락한 이스라엘의 제단과 성소는 더 이상 거룩한 성소로서의 기능을 감당하지 못했고 오히려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커다란 이유를 제공했습니다. 또한 모두가 모여서 하나님 앞에서 기쁨을 나누던 절기는 이제 사라지고, 절기가 없어졌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모일 수 있는 신앙의 구심점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살펴보면 나라가 멸망하는 것보다 애통한 것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이들의 예배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돌이키시면 그 누구보다 강하게 반응하십니다.
(8-9) 여호와께서 딸 시온의 성벽을 헐기로 결심하시고 줄을 띠고 무너뜨리는 일에서 손을 거두지 아니하사 성벽과 성곽으로 통곡하게 하셨으매 그들이 함께 쇠하였도다 성문이 땅에 묻히며 빗장이 부서져 파괴되고 왕과 지도자들이 율법 없는 이방인들 가운데에 있으며 그 성의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묵시를 받지 못하는도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지키실 때 수많은 대적들을 파괴하시고, 자신의 자녀들을 지키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파괴의 대상이 이스라엘 백성이 되고, ‘무너뜨리는 일에서 손을 거두지 아니하사’라는 표현 속에 구체적으로 제시됩니다. 8절에서는 참담한 상황을 설명 할 때 성곽과 성벽을 의인화하여 ‘통곡하게 하셨으며 함께 쇠하였도다’ 라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깨어 있어야 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상태에서는 무엇보다 종교 지도자들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종교 지도자들이 올바로 지도하지 못한 이유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 어디서나 선포가 됩니다. 당시에도 분명 예레미야를 비롯해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은 끊임 없이 전해지고 있었으나 하나님께 계시를 받아 그것을 백성들에게 전해야 하는 선지자들이 묵시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철저한 관계의 단절을 보여줍니다.
이 모습은 우리의 삶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 삶 속에 은밀한 죄악들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면 결국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지 않고,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 치는 사람이라면 결코 죄악에 그대로 빠져 있지 않습니다. 매번 쓰러지더라도 다시금 회개하기 위해 힘쓰는 것이 올바른 신앙인입니다. 우리가 매일 새벽기도회를 드리고, 주일 예배를 빠지지 않더라도 그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나고 삶에 적용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점점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부모님의 잔소리처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자신의 주관대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울러 이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인 교역자들이 먼저 주님 앞에 통회하고 회개하며 깨어서 기도하고, 말씀을 연구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올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되고,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멸망 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멸망을 맞이하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마무리 됩니다.
(10) 딸 시온의 장로들이 땅에 앉아 잠잠하고 티끌을 머리에 덮어쓰고 굵은 베를 허리에 둘렀음이여 예루살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 숙였도다
본문에서는 장로들이 티끌을 머리에 덮어쓰고, 굵은 베를 허리에 둘렀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깊은 슬픔과 애도의 심정을 표하거나 현재 비참한 상황에 직면해 있음을 나타냅니다. 마치 이스라엘 나라의 장례식을 치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본문에 예루살렘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 숙였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이들이 처한 현실이 참담할 뿐 아니라 미래 역시 암울하다는 사실을 반영합니다. 심판이 임한 이스라엘은 현실적으로 유다는 무수한 장정들이 전쟁으로 죽임을 당하였고 그로 인해 그녀들은 누구와도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아울러 전쟁 후 그녀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서 처참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여전히 내가 회개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고 있는 죄악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 말씀을 읽고, 매 주 예배를 드리지만 내 삶이 세상의 신을 벗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목적 삼고 살아간다면 말씀을 들으나 행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또한 각자의 죄와 수치를 가리기 위해 무화과나무 잎을 덮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가죽옷 되신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며 각자의 삶을 에덴으로 경작해야 합니다. 오늘 함께 묵상한 말씀을 통하여 각자의 삶에서 무너진 부분이 있다면 회개하며, 다시금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모습으로 나아가는 모든 교우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 도
사랑과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 앞에 모든 안전지대가 허물어진 예루살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주님, 우리는 날마다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들으면서도, 정작 삶의 현장에서는 내 생각과 교만을 내려놓지 못한 채 회개 없는 신앙생활을 반복해 오지는 않았는지 정직하게 돌이켜봅니다. 내 삶에 은밀하게 자리 잡은 죄악을 깨뜨리지 못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영적 무감각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매일의 삶 속에서 말씀 앞에 스스로를 쳐서 복종시키며 회개함으로 나아가는 참된 예배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오늘 하루도 세상을 목적으로 살아가지 않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치열하고 간절하게 몸부림치는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무너뜨리셨습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거나, '이것이 있으니 안전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내 삶의 헛된 성벽(물질, 건강, 신앙적 타성 등)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2. 최근 말씀이나 묵상을 통해 깨닫게 하셨음에도 아직 끊어내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죄악은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3. 매일 드리는 새벽기도와 주일 예배가 그저 습관적인 껍데기만 남아있지는 않은지, 내 삶의 제단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일어나는 거룩한 통로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4. 오늘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부모님의 잔소리처럼 흘려듣지 않고, 내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순종하며 적용할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작성: 김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