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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요한계시록 4-5장 : 천상 보좌에 대한 환상의 계시(1)
Ⅰ. 서론
요한계시록을 대하는 사람들 중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책에서 장래에 있을 예언적인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 일에 대해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하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이 책을 대한다. 그렇다 보니 여기에서 날짜를 계산하는 사람도 나타나고 장소를 찾는 사람과 징조를 구하는 사람도 나오는 등 기독교 2000년의 역사 속에는 계시록으로 인하여 많은 일들이 발생했다. 이는 앞으로도 역시 그럴 것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그런 관점에서 볼 책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은 성경에서 마지막 권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첫 권인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계시해 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성취될 것인지를 알게 해 주시고 있는 것이다.1)
요한계시록 4-5장은 이 중에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보좌에 계신 하늘 세계의 모습을 계시해 주시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경우‘천상 보좌’란 살아계신 하나님 자신께서 영원한 왕권을 가지고 만유를 통치하시는 엄위로운 영광의 대주재권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 보좌는 거룩하고, 공의로우며, 영원하며, 불변부동하다. 그곳은 전 우주와 전 역사의 주축이 되는 곳이니 그곳은 바로 천국이요 천국의 중심이다. 본 글에서는 사도 요한이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 이곳의 광경을 본 것을 고찰하고자 하는데 각 장의 서론을 언급한 후 해석적 의미를 통해서 사도 요한이 본 것의 진정한 의미의 이해를 하고자 하며, 또한 각 장의 결론을 통해서는 종합적인 해석의 의미를 제시하고자 한다.
Ⅱ. 요한계시록 4장
요한계시록 4-5장은 2-3장의 일곱 교회에 주시는 계시에 이은 두 번째 계시로서 천상보좌에 대한 환상 계시이다. 이 환상 계시에서는 천상보좌 앞에서 펼쳐지는 하늘 예배 광경과 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두루마리의 봉인을 뗄 어린양에 대해 알려주시고 있다. 천상보좌에 대한 환상은 앞서 2-3장의 일곱 교회에 주시는 메시지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2-3장은 주님의 약속 속에서 보존되고 있는 지상 교회에 초점이 있는 반면에 4-5장은 교회에 주어진 그 약속의 실행이 천상 교회의 중심인 보좌에서 되어지고 있는 것에 초점이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런 까닭에 4-5장은 3장 21절에 나타난“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게 하는 것과 같이 하리라”는 보좌 이미지에 의해서 연결된다. 이 두 조화의 연결은 그 다음에 등장하는 내용들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예감하게 해 준다. 지상에 존재하는 교회에 상응하는 천상적 교회의 모습을 제시함으로써 영적 전투와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서도 능히 살아남을 수 있는 교회의 안전성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또한 4-5장은 하늘에 존재하는 교회를 소개함으로써 21장 2절에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그리스도의 신부, 새예루살렘에 의해서 상징되는 교회의 위치를 구체적으로 설정해 주고 있다. 이처럼 4-5장은 뒤로는 2-3장과 앞으로는 21-22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전체를 조망해 준다.
4-5장이 천상보좌에 대한 환상 계시이나, 이 두 장은 그 강조점에 있어서 계시해 주시는 내용이 각각 있다. 4장은 만물을 창조하신 주 하나님을 강조하지만, 5장은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면서, 4장은 주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는 하늘 광경을 보여주고 있으며, 5장은 주 하나님으로부터 두루마리를 받으신 어린양은 그 봉인을 떼기에 합당하신 분이심이 찬양되는 광경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4-5장에 뒤이어지는 두루마리의 봉인이 떼어짐으로써 일곱 재앙 시리즈가 전개되는 것의 암시를 준다.
이 중에서 4장의 해석적 의미를 먼저 설명하고자 한다. 4장은 하늘 예배 광경에 대한 환상의 계시를 주제로, (1) 하늘 보좌에 대한 환상(1-3절) (2)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에 대한 환상(4-8절) (3) 하늘의 찬양(9-11절)이라는 구조로 되어 있다.
1. 천상보좌에 대한 환상(1-3절)
1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요한은 유배지 밧모 섬에서 환상 중에 사람들에게 감추어져 있는 비밀을 통찰할 수 있는 하늘에 열린 문을 보게 되었다.“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는 에스겔이 본 환상의 모습과 같다.“하늘이 열리고 내가 하나님의 이상을 보았더라”(겔 1:1). 이러한 유사점은 요한이 본 환상이 선지자에게 임한 계시적 차원인 것임을 말해 준다.
요한이 본 것은 하늘에 열려 있는 문이었다. 여기서‘열렸다’는 하나님의 활동을 나타내는 완곡한 표현으로 사용되어서 요한을 위해 하늘의 문을 여신 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요한이 하늘을 바라보니 거기에 열린 문이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한을 위해 하늘의 문을 여시고 그에게 보게 해 주신 것이다. 요한은 열어 주신 하늘의 문을 통해서 거룩한 성전과 영광의 보좌 위의 지존자를 보았다. 이렇게 요한이 하늘에 열린 문을 볼 수 있게 하는 것과 그 열린 문을 통해서 하늘 성전과 보좌의 광경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을 연결해 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요한에게 한 음성을 들려주신 것이다. 그 음성은 요한이 처음에 들었던, 곧 요한에게 말씀하시던 나팔소리 같은 음성으로,“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라고 말씀한 그리스도의 음성이었다.2)
“이리로 올라오라”는 초청은 요한을 그가 보게 될 환상의 광경이 펼쳐지는 하늘의 세계로 실제 올라오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 마땅히 될 일을 마치 가까이 눈앞에서 보게 하듯이 확연히 보게 하시는 표현의 묘사이다. 이는 이 음성이 있고 나서 요한이‘성령에 감동하였더니’라는 말에서 잘 알 수 있다. 이 말은 직역하면‘그 영 안에서’라는 것으로, 요한은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을 듣는 중에 자기가 성령 안에 있었다는 것을 느꼈으며, 이것은 1장 10절의“내가 주의 날에 성령 안에 있어”와 관련된 경험의 연속, 또는 그것과 관련된 의식을 지칭하는 것으로 요한이 계시를 받는 동안 내내 성령 안에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요한은 이제 성령 안에서 하늘 성전의 보좌에 대한 환상의 계시를 주시는 주의 음성을 들을 뿐만 아니라, 성령 안에서 그 환상의 현장에 있는 자가 되어 그 광경을 확연히 보게 되었다.
요한이 본 보좌의 광경은 참으로 장엄한 것이었다. 요한계시록 4장에는‘보좌’란 말이 무려 14번이나 나오는데, 같은 절에 2-3번씩 반복하여 나오고 있다(4:2, 3, 4, 5, 6, 9, 10). 보좌란 말은 5장에도 3번이나 나온다(5:1, 7, 13). 여기서 보좌는 왕이 좌정하는 왕도의 권좌를 의미하는데, 한 분이 그 보좌에 앉아 계셨으며, 그 모습은 마치 벽옥과 홍보석과 같아3) 찬란한 빛이 나고 있었다. 그리고 녹보석4)처럼 빛나는 무지개가 그 보좌를 에워싸고 있었다. 이러한 묘사는 요한이 보좌에서 다스리는 분의 뛰어나신 영광과 그 장엄한 장면을 이 세상의 제한된 언어로서는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를 묘사할 수 있는 가장 근사한 이 세상의 유비를 사용한 데 따른 것이다. 그래서 하늘의 실체가 지상의 상징들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2.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에 대한 환상(4-8절)
4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5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6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7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세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네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 데, 8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하늘 보좌에 대한 광경을 본 요한은 그 보좌에 둘려 있는 스물 네 개의 보좌와 거기에 앉아 있는 장로들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흰 옷을 입고 머리에는 금면류관을 쓰고 있었다.“이십 사 장로들”에서 이들이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들이 있다. 천사의 여러 왕이라는 해석이 있는가 하면(Ewall, Russ), 24반열의 제사장(대상24:1-19, Welhausen, Ewall), 이스라엘의 24장로들(출24:11), 바벨론의 24성좌(Moffat), 공중재림 때 들려 올릴 교회들(Walvord) 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런가 하면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전 교회의 대표들(Bleak, Swete), 대소 선지자들이란 해석도 있다. 그러나 이십 사 장로에서 우선‘장로들’에 대한 가장 참된 해석은 이들이 신약과 구약 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대표하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래서 이들은 구원받은 사람 전체를 대표한다. 이는 장로들 앞에 붙는‘이십 사’(24)라는 숫자와 연계해서 가장 자연스러우며, 또한 예부터 내려오는 해석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숫자 이십 사에 대해서는 옛부터 내려오는 해석은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십 사는‘열 두 문들’과‘열 두 기둥들’로 상징되는 이스라엘의 열 두 족장들과 열 두 사도들의 대응어로서, 모두 신.구약의 성도들, 즉 보편 교회를 상징한다. 따라서 이십 사의 숫자에서 보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들로 이루어진 교회라고 할 것이다.5) 이들은“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었다”고 했는데,‘흰 옷’은 그리스도의 흠과 점 없는 거룩성을, 금 면류관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것을 상징한다. 따라서 5장 8-10절에 묘사된 것처럼 그들은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구속하시고 그와 함께 다스리게 하시려고“나라로 삼으신”어린양께 경배한다. 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쓴 자는 7장과 14장에서는 144,000무리로 표현된다. 이상에서 보는 바인‘장로’와‘이십 사’가 지닌 의미를 종합할 때‘이십 사 장로’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를 대표하는 자들이니, 이는 1장 20절에서 해석해 주고 있는 바인 '일곱 금촛대'가 상징하고 있는 '일곱 교회'의 '사자'인‘일곱 별’을 대응하는 용어라고 볼 것이다. 따라서 이십 사 장로는 일곱 별과 동의어로 쓰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십 사 보좌에 앉아 있는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있는 그들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인간이라는 것과 천사라는 두 가지의 논란이 있어 왔으며, 이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한데, 이는 참으로 무익하다.
그리고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났다. 이것들은 모두 중앙 보좌에 앉아 의로써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의 두려우신 엄위를 지시한다. 이 환상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수여할 때 동반했던“우뢰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출 19:16)의 신적 현현과 같다.
보좌의 앞(정면)에는 일곱 등불을 켠 것이 있었는데, 요한은 이를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설명하였다. 일곱 영은 1:4에서 언급되었으며, 3:1에서는 높임을 받은 그리스도를“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로 묘사하였다.6)
또한 보좌 앞에는 맑은 수정이 바다처럼 펼쳐져 있고 보좌의 네 모퉁이에는 앞 뒤에 눈이 달린 네 생물이 서 있었다. 보좌 앞에 있는 이 바다는 물로 된 바다가 아닌 유리 바다로서 수정 같이 맑은 것이다. 이것은 천상보좌가 있는 바닥을 묘사하는 것이다. 즉,‘수정과 같은 유리바다’는 천상보좌가 있는‘하늘의 바닥(the floor of heaven)’을 뜻하는데 유리 같이 맑은 수정의 아름다움과 순결함이 바다의 광대함 같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이것은 15장 2절을 보면 명백하다. 거기에는 짐승과 그것의 형상을 정복한 자들이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유리바다에 서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여기에서 유리바다에 서 있는 정복자들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후 자신들이 건넜던 홍해에 수몰되는 애굽 군대를 보며 서 있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승리자였던 것처럼 짐승과 그의 형상을 이기고 벗어난 자들도 역시 승리자인 것이다.
그리고 보좌 사이의 네 모퉁이에는 네 생물이 서 있었다. 이 네 생물은 앞 뒤에 눈이 달려 있는데, 첫째 생물은 사자 같았고, 둘째 생물은 송아지7) 같았고, 셋째 생물은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았다. 그리고 이러한 형상의 네 생물은 각각 여섯 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날개 안과 주위에는 눈이 가득하였다.8) 이러한 네 생물의 모습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환상9)과도 유사하기 때문에 이를 연상케 한다. 주께서는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환상에서의 네 생물을 이미지로 삼아 이것을 떠 올리게 하는 것으로서 요한에게 보여주고 계신 것이다. 이 네 생물의 형상은 각 영역에서 가장 대표적인 피조물들로 묘사되고 있다. 필립 E. 휴스는 사자는 야수의 왕, 황소는 가축 중의 왕, 사람은 땅의 통치권을 위임받은 전 생물의 왕, 독수리는 공중의 새들의 왕으로서 각각의 생물들을 대표한다고 하였다. 그는 이 네 생물들이 천사들의 집단뿐만 아니라 주들의 주님(Lord of lords)의 형상을 반영하는 자들이라고 보았다. 바클레이는 네 생물은‘그룹들’인 천사 같은 존재로서 하늘의 조직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위치이고 하나님의 보좌를 지키는 자라고 하였다. 이 모두를 종합하면 네 생물은, 그것이 천사들을 뜻하는 것이든, 또는 생물들의 대표를 뜻하는 것이든, 피조물의 대표자로서의 성격을 띨 것인데, 이사야 6장 2-3절에서는“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어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찬양에 있는 존재를‘스랍들’, 곧 하나님을 모시는 천사로 말해주고 있는 것과 관련할 때 요한이 본 이 네 생물이 밤낮으로 쉬지 않고“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이시다”라고 외치고 있었던 것은 이사야 6장 3절에 나오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찬양에 있은 스랍(seraphim)들의 광경을 그대로 재현하여 보여주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네 생물은 보좌에 앉으신 주 하나님의 곁에서 섬기며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온 세상으로 보내져 활동하는 하나님의 사자로 여겨진다. 이들에 의하여 불려지는 찬양은 전능하신 창조주이시며 세상의 은혜로우신 구원자이신 주님을 쉬지 않고 경배하는 데 있어 보이는 통일된 예배 모습이다. 이때 그 예배의 중심은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은‘이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이심을 찬양하여 나타내고 있다.
3. 하늘의 찬양(9-11절)
9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10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11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이처럼 네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신 세세토록 살아 계신 분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리고 있을 때에, 이십 사 장로들은 보좌에 앉으신 분 앞에 엎드려 경배를 드리고 자기들의 머리에 쓰고 있던 금관<금면류관>을 벗어서 보좌 앞에 던지며 찬양하였다. 여기서‘세세토록 사시는 이’는 영원무궁하도록 살아 계신 분이라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에서만 발견되는 것으로 서 너 번 반복되는 하나님의 별명인데 1장 18절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사용되며, 구약에서는 영원히 사시는 이로 언급한다. 그런데 네 생물들이 하나님을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리고 있을 때, 이십 사 장로들도 똑같이 하나님을 경배하며 자기들의 머리에 썼던 면류관을 벗어서 보좌 앞에 던지며 찬양하였다. 면류관을 벗어 던지는 이 행동은, 종종 로마의 황제들에게 여러 가지 이유로 금 면류관을 바쳤던 것을 들어서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10) 본문에서는 머리에 금으로 만든 면류관을 쓴 이들은 믿음의 경주를 마친 이긴 자들로서 면류관을 받았지만(계 2:10, 4:4; 딤후 4:8; 약 1:12; 벧전 5:4), 그 승리가 자신들의 주로서 함께 하신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승리로서 얻게 된 영광을 자신들이 취하지 않고 승리를 얻게 하신 하나님께로 돌려드리는 모습을 취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들이 쓴 면류관이 사실은 하나님의 것이며, 자신들은 그 면류관을 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음을 행동으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자신들이 썼던 면류관을 바치면서 한 찬양은“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이다. 이십 사 장로들은 이 찬양을 통해서 주 하나님이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당연한 것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이요 만물이 주님의 뜻에 의해서 지어졌고 또한 만물이 주님에 의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
4. 요한계시록 4장의 결론
4장에서의 네 생물들과 이십 사 장로들의 하늘 예배 행위의 광경은 5장과의 상호 연결에서 좀더 장황하게 묘사된다. 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는 요한에게 하늘 성전의 보좌를 환상을 통해 계시하여 주시는 것에서 지금 그가 보고 들은 것을 장차 되어질 일 속에서 위로로 주시는 일을 하신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높임을 받으심으로써 세상은 큰 재앙 속에 있게 되고, 이때 교회도 큰 환난을 겪게 되는 것이지만, 하늘 성전의 보좌에 계신 주 하나님을 예배(경배)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 보좌로부터 교회의 돌보심이 있을 것이다.
5. 요한계시록 4장의 해석적 의미
요한계시록 4-5장은 천상보좌에 대한 환상의 계시이다. 이중에서 4장은 천상보좌 앞에서 펼쳐지는 하늘 예배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사도 요한은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이 전해 주시는 말씀을 기록하여 보낼 것을 지시 받아 그대로 하였다. 그런 뒤에 그는 하늘에 열린 문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또한 한 음성을 들었다. 요한의 귀에 들린 음성은 그가 처음에 들었던 그 음성, 곧 주의 날에 그에게 들렸던 큰 음성 그것이었다(1:10). 요한이 들은 음성은 마치 나팔 소리 같았는데,“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하시는 것이었다. 요한이 들은 것은 주의 음성이었으며, 장차 일어나야 할 일들을 보여주시겠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요한에게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를 알려주는 음성이 있은 후 곧 이어서 성령께서는 요한을 하늘로 이끌어 한 분이 앉아 계신 보좌 앞으로 인도하였다. 요한이 성령에 이끌려 하늘로 인도되어 본 것은 하늘에 보좌가 있고 그곳에 앉으신 분을 본 것이었다. 요한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여러 이미지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화판에 그림을 그려 담듯이 하며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요한이 본 것은 보좌에 앉으신 분에 대한 광경이다. 요한의 눈에 들어온 보좌에 앉으신 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그 모습이 마치 벽옥<다이아몬드>과 홍보석<홍옥/루비> 같아 아름답고 찬란한 빛이 나고 있었다. 그리고 무지개가 보좌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그 광경이 마치 녹보석<비취옥/에메랄드>으로 빛나는 것 같았다. 보좌에 앉으신 분을 이와 같이 각종 보석을 사용하여 묘사하고 있는 것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에 대한 표현에서 이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영광스러운 분이시니 사람이 가장 고귀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찬란히 빛나는 보석에서 보는 것과 같이 참으로 존귀하신 분이심을 나타내고 있다.
다음으로, 요한이 본 것은 보좌에 둘러 있는 이십 사 보좌와 그곳에 앉아 있는 이십 사 장로들에 대한 광경이다. 천상보좌의 둘레에는 또 다른 이십 사 보좌가 있었다. 그리고 그 보좌에는 이십 사 장로가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흰옷을 입고 금면류관을 쓰고 있었다. 이들은 자기들 앞에 있는 보좌를 향하고 있었는데, 그 보좌로부터 번개가 쳐 번쩍이고 우르렁거리는 소리와 천둥치는 소리가 났으며 보좌 앞에는 일곱 등불이 환히 켜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영이 일곱이라는 말이 아니고 일곱 교회와 함께 하시는 영을 뜻하는 것으로, 주님 자신을 지칭하는 것인 표현인 동시에 주님이신 영 곧 성령을 뜻한다.
그리고 또 요한이 본 것은 보좌 앞에는 유리를 보는듯한 맑은 수정이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 것이었으며, 그 보좌 사이의 네 모퉁이 둘레에는 앞뒤에 눈이 달린 네 생물이 서 있었습니다. 첫째 생물은 사자 같았고,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았고, 셋째 생물은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넷째 생물은 날아가려고 날개를 편 독수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 네 생물은 각각 여섯 개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날개의 중심부에도 여러 개의 눈이 달려 있었다.
이러한 특징을 띤 독특한 모습의 네 생물들은 보좌에 앉으신 분을 향하여 밤낮으로 쉬지 않고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네 생물이 이처럼 보좌에 앉으신 분을 경배하고 있을 때 이십 사 장로들도 보좌에 앉으신 영원 무궁히 살아 계신 분 앞에 엎드려 함께 경배하고 자기들의 머리에 쓰여 있는 금면류관을 벗어 보좌 앞에 드리며 찬양하였다.“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요한이 주께서 보여주신 환상 계시를 통하여 본 네 생물들과 이십 사 장로들이 경배하는 천상보좌에 앉으신 분이 누구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이어지는 5장에서의 문맥적 해석에서 알려주고 있다. 그분은 하늘의 하나님, 곧 성부 하나님이시다(1, 6-7절). 요한계시록 4장은 네 생물들과 이십 사 장로들이 천상보좌에 앉으신 세세토록 살아 계신 분이신 하나님을 경배함에 있다는 것을 계시해 주시고 있다.
네 생물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이유의 내용은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외친 찬양에서 잘 나타나 있다. 네 생물들은 주 하나님은 거룩하시다고 외친다. 그리고 이 거룩하신 주 하나님은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이시라고 외친다. 거룩하신 주 하나님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곧 영원무궁하신 살아 계신 분이심을 인식하고서 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거룩하신 주 하나님은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이시라고 하는 것은 요한이 요한계시록 첫 장에서부터 증거 해 온 것이다(1:4, 8). 하나님이 거룩하시며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분이신 것에 대한 이해를 갖고서 그 하나님을 주님으로 섬기는 믿음에 있는 이것이 요한이 본 천상보좌에 앉으신 주 하나님을 경배함에 있는 천상예배의 광경이다.
천상보좌에 앉으신 거룩하신 주 하나님을 네 생물들이 경배하는 것을 그대로 따르는 것에서 이들과 함께 하고 있는 이십 사 장로들도 함께 경배한다. 이십 사 장로들이 거룩하신 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에서 그들의 입술에 있은 찬양은 네 생물들이 하고 있는 경배에 있는 믿음을 따르는 것으로 거룩하시며 영원 무궁히 살아 계신 하나님은 자신들의 주님으로서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지극히 당연함을 고백하는 믿음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십 사 장로들은 독특한 특징적인 행동을 취하였다. 그것은 네 생물들이 하나님을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리고 있을 때, 이십 사 장로들도 똑같이 하나님을 경배하는데 자기들의 머리에 쓰고 있던 금으로 만든 면류관을 벗어서 보좌 앞에 계신 주 하나님에게 바치며 찬양하는 것이었다. 금면류관을 벗어 바치는 이 행동은 로마 황제의 신하들이 세운 공로로 인하여 황제로부터 하사 받아 썼던 면류관을 여러 가지 이유로 금 면류관을 황제에게 바쳤던 것을 사용하여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머리에 금으로 만든 면류관을 쓴 이들은 믿음의 경주를 마친 이긴 자들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데 그 이긴 자들은 자신들이 승리한 그 승리가 자기의 힘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주로서 자신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에게서 나온‘주 하나님의 전쟁’인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승리로서 얻게 된 영광을 자신들이 취하지 않고 승리를 얻게 하신 하나님께로 돌려드리는 모습을 취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들이 쓴 면류관이 사실은 하나님의 것이며, 자신들은 그 면류관을 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음을 행동으로 인정하는 것이었다(참조. 창 14장) 따라서 이십 사 장로들은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자신들이 썼던 면류관을 바치면서 한 찬양은“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다”라고 하고서, 이어서“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라고 하였다. 이십 사 장로들은 이 찬양을 통해서 주 하나님이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 것은 주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지으셨으며, 만물은 주님의 뜻에 의해서 지어졌기 때문에 주님의 그 뜻을 따르며 받드는 것에서 자신들의 존재성 있다는 것을 자신들은 잘 인식하고 있다는 것에서 이다. 주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요, 주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실 때는 그 만물을 창조하는 것에서 갖고 계신 뜻, 곧 목적이 있는데, 주님의 뜻대로 지금 자신들이 존재하는 것에서 주 하나님을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찬양하여 경배 드린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신 영원한 뜻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의 택한 백성을 구속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셨다. 이 경배에 있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들로 하나님의 나라에 존재하게 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을 주님으로 섬김에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믿음을 은혜로 주신 것은 이것 때문이다. 그러니 이 믿음에 있어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로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아들로 사는 영원에 우리의 생명이 있는 것 외에 또 다른 무엇이 우리에게 있어야하겠는가? 아니다. 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지를 알면 그것으로 족하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와 권능으로 충만하다는 것을 알고 그 믿음으로 우리의 마음이 벅차다면 그것은 우리가 주 하나님을 예배함에 충실한 것이다. 주일에 믿음의 형제들이 연합함이 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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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창세기 1장 26-28절에서 언약하시고 있는 창조언약을 성취하시는 약속으로 창세기 3장 15절에서‘여자의 후손’을 주시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이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고서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를 그 승리 가운데 두실 것에 대한 예언적 기록이다.
2) 요한이 처음 들은 음성은 1:9-20인데, 여기에서 잔(Zahn)과 롤로푸(Roloff)는 1:1의 화자는 천사이고 1:19의 화자는 그리스도라고 생각한 반면에, 부쎄트(Bousset)와 비슬리 머레이(Besley-Murray)는 그리스도의 음성이라고 생각하며, 따라서 4:1의 음성도 그리스도의 음성이라고 말한다(Philip Edgcumbe Hughes).
3) 벽옥(jasper)은 대개 붉은 색이지만 노란색, 초록색, 회청색도 발견되는 불투명한 돌인데(David E. Aune), 현대어성경은 다이아몬드로 번역하였다. 홍보석은 현대어성경은 루비로 번역하였다.
4) 현대어성경은 에메랄드로 번역하였다.
5) 이십 사(24) 장로들이 구원받은 성도들인 교회라고 보는 것은 이들이 입은 흰 옷에서도 설명이 된다. 7장에 나오는 십 사만 사천(144,000) 무리는 어린양의 피에 깨끗함을 입은 흰 옷을 입은 자로 묘사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잇듯이 흰 옷을 입은 자는 이십 사(24) 장로로 말해지든, 또는 십 사만 사천(144,000) 무리로 말해지든지 간에 그들이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입은 거룩한 자들인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6) 필립 E. 휴스는 그의 저서인 주석‘요한계시록’에서 일곱 영들은 성삼위의 세 번째 위(位)인 성령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그럴지라도 일곱 영을 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로 해석한 것과는 같은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오 또한 그리스도의 영이시기 때문이다(롬 8:9).
7) 현대어성경은‘황소’로 번역하였다.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환상에서는‘소의 얼굴’이다.
8) 공동번역은“그 몸에는 앞뒤에 눈이 가득 박혀 있었다”라고 번역하였고, 한글킹제임스, 킹제임스흠정역은“그것들의 안쪽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표준새번역과 우리말성경, 바른성경, 새번역은“날개 둘레와 그 안쪽에는 눈이 가득 달려 있었다.”, 현대어성경은“그 날개의 중심부에도 여러 개의 눈이 달려 있었다”, 현대인의성경은 “날개 안팎으로 눈이 가득하였다”라고 각각 번역하고 있다.
9)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네 생물은 사람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데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었다(겔 1:10).
10) 로마 황제는 상속, 임직, 승리, 기념일과 같은 다양한 행사에 원로원과 지방 도시들의 대표자들에게서 금면류관을 받았다(David E. Aune)
*참고문헌
1. 송무현,‘요한계시록 강의안’.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2. 이필찬,『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서울: 성서유니온선교회, 2000.
3. David E. Aune, WBC Vol. 52A : Revelation 1-5, 김철 역,『WBC 주석 요한계시록 1-5장』. 서울: 도서출판 솔로몬, 2003.
4. Philip Edgcumbe Hughes, The Book Of The Revelation, 오광만 역,『요한계시록』. 서울: 여수룬, 1994.
5. William Barclay, The Revelation of John Vol. Ⅰ, 고영춘 역,『성서주석 시리즈 계시록(상)』. 서울: 기독교문사, 1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