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雪백설이 자욱하다. 안개가 자욱하다고 하는데, 백설이 자욱하다고 한다. 흰 눈인데 상서롭지도 않고 깨끗하고 맑지도 않고 자욱할 뿐이다. 구름마저 험하다. 탁 트인 평원이 아닌 ‘골’에 있다. 사방이 막힌 골짜기에 눈이 자욱하고 구름은 험하다. 안개가 자욱한 것보다 더 앞이 보이지 않는다. 구름은 빛을 가리고 또다시 자욱한 백설을 뿌릴 기세라는 것.
매화를 기다린다. 대나무와 달리 고운 꽃과 향을 가진 매화가 어느 곳에 피었는지 돌아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볼 수 없다. 매화는 ‘반가운’ 매화. 매화가 왜 반가운가. 봄을 알려주기 때문. 일단은 백설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 험한 구름도 유화시킬 수 있을 것. 매화가 여기에 피어 있지 않다. 어느 곳엔가 피어 있을 것인데 여기에는 없다. 매화마저도 환경 좋은 곳에서 피어 있을 것이라는 암시가 보인다. ‘골’이 아니라 ‘궐’에 피어 있을까. 그런 매화는 ‘반가운’ 매화가 아니라 玩賞用완상용에 불과한 것. 그러한 매화는 봄을 가져오지도 못하고 그윽한 향기도 주지 못한다.
내가 여기에서 매화가 되어 봄소식을 가져오는 기쁘고 반가운 매화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에 있을 생각은 없어 보인다. ‘갈 곳’을 찾고 있을 뿐. 눈이 자욱하고 구름이 험한 골짜기에는 밤이 찾아오고 있다[夕陽석양]. 길을 가려면 빛이 있어야 하겠는데 앞이 보이지 않고 게다가 어둠이 내리면 갈 수도 없을 것. ‘홀로 서 있’는 이는 어둠과 자욱한 눈과 험한 구름에 휩싸여 눈뜬장님처럼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것. ‘갈 곳’을 ‘몰라 하’고 있다. ‘갈 곳’을 상정하고 있다. 홀로 그 자리에 있을 마음이 없다. 홀로 서서 자욱함과 험함과 어둠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떠나려고 한다.
이러한 시조를 읊는 마음은 어떠한 것일까. 이 ‘골’에 가서 서 있어 본 사람이라야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한 걸음 내디디려고 하지만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알 수 없는 현실. 그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그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마음을 숨기지도 않는다. 거기에서 반가운 매화의 은은한 향기가 조금이나마 들려오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