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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17:1 ~ 2(929) “화목한 가정” 2024. 5. 12
흑인 여자 성악가 마리안 앤더슨(Marian Anderson, 1897-1993)은 ‘100년에 나올까 말까 한 하늘의 목소리’라고 극찬을 받은 세계 최고의 알토 성악가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클라식 음악가들은 앤더슨을 두고 20세기 최고의 여성 알토 성악가로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97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품에 안겼는데, 특히 앤더슨은 흑인영가 찬송가를 참 많이 부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전차한 것으로 유명한 성악가입니다. 자신이 섬기던 교회 성가대에서 모아 준 돈으로 첫 성악 레슨을 받았고 1930년대 성악가로서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흑백차별이 심한 상태에서 흑인이었던 앤더슨은 피부색 때문에 워싱턴 D.C 컨스티튜션 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없었습니다. 시민들은 규제에 대한 항의 표시로 링컨 기념관에서 마리안 앤더슨 연주회를 열어 주었습니다. 7만 5천 명 인파들이 모여 열광하며 마리안 앤더슨의 노래를 들었습니다.(사진)
공연이 끝난 후 기자가 앤더슨에게 물었습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앤더슨은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의 기립 박수를 받으면 곧잘 눈물을 흘렸기에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대답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앤더슨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공연을 마친 후 집으로 달려가 나를 키우느라고 거칠어진 어머니의 손을 잡을 때”라고 말합니다. 앤더슨의 성공 뒤에는 딸을 위해 쉼 없이 남의 빨래를 하며 손이 부르튼 어머니의 사랑과 그 어머니의 뒤 바라지를 잊지 못하는 앤더슨의 효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헬라어로 효도(孝道)는 ‘안티펠라르기아’인데 ‘한 가지 선을 또 다른 선으로 보답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을 키워 준 부모님을 부양하고 귀하게 모시는 의미로 사용하였던 단어입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는‘안티펠라르기아 법’이 있었는데, 그 법에 따르면, “자녀들은 부모를 부양하여 잘 모시든지, 아니면 감옥에 들어가든지,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되어 있다고 합니다.
부모님을 잘 모시고 섬기는 것이 기분 내키면 해도 되고, 기분이 나쁘거나 부모님과의 사이가 틀어지면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의 행동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엡6:2절‘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자녀들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합니다. 공경하고 섬겨도 되고 섬기지 않아도 되는 선택의 의미 사항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자녀들은 부모님을 잘 모시고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된 모든 분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자녀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올바르게 양육하고 키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가정을 주셨습니다. 가정의 창조자는 하나님입니다. 가정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가정의 주인이 하나님이어야만 합니다. 가정의 주인이 아버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확한 답은 아닙니다. 신앙 안에서 좋은 가정이란 어느 누구 한사람의 독불장군으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가 노력하는 모습으로 만들어져 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정원과 가정은 가꿀수록 아름다워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원을 가꾸고, 화초를 가꾸어 보신 분들은 아주 쉽게 이해되는 말입니다. 가꾸면 가꾸는 만큼 아름다워지는 것이 정원이요, 화초입니다. 가꾸지 않고 방치해 놓으면 금방 지저분해지고, 화초들도 빨리 시들고, 벌레들도 들끓어서 금방 쓰레기장처럼 변해 버립니다.
화초와 정원이 그러하듯이, 가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가꾸고, 정성을 들이고, 사랑으로 보살피면, 더 많은 것으로 보답하지만, 그냥 방치하고 팽개쳐 버리면, 금방 악취를 풍기는 쓰레기장으로 변해 버릴 수 있습니다.
옛말에 보면 “자식이 효도하면 양친이 즐거워하고, 가정이 화목하면 만사가 이루어진다 자효쌍친락 가화만사성(子孝雙親樂 家和萬事成)”는 말이 있습니다.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것이 성취되지만,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고 파괴되면 아무 것도 이루어질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병든 가정이 많고, 깨어지는 가정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문제나 사회의 온갖 병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출발점은 가정이 파괴된 것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은총의 선물인 가정이 병들고 있습니다. 가정을 잘 보존하고, 치유해야 할 사명은 성도에게 주신 하나님의 지엄하신 분부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고 해도 가정이 가지고 있는 순기능을 대치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첫째주일은 어린이 주일로 설교를, 지난 주에는 어버이 주일로 설교를 하엿습니다. 이제 오늘은 가정을 주제로 설교를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덕민교회 교우들의 모든 가정은 화목한 가정이 되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1. 화목한 가정은 물질 때문에 다투지 않습니다.
1절.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돈이 많이 있으면 행복하고, 돈만 넉넉하게 가진다면 가정에 행복은 찾아 온다”고 여기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1절의 말씀은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는 말씀입니다. 온갖 산해진미가 가득한 밥상보다 마른 떡 한 조각으로 화목한 가정이 복되고 행복한 가정이라는 말입니다.
가정은 물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물질에 의하여 좌우되지 말아야 합니다. 잠언 15:17에는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합니다. 같은 뜻의 말씀입니다.
화목한 소문난 가정을 보면, 한결 같이 물질을 초월하여 사랑을 나누는 가정들입니다.
물질을 초월한다는 말은 가정은, 물질 보다 정신과 사랑, 화목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질이 사랑의 근거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가끔 신문에 보면, 혼수 문제로 다툼이 일어나고, 결국 이 일로 인하여 이혼하였다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하고 살아가는 것이지, 값비싸게 장만한 혼수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거창한 혼수가 행복한 가정 생활의 척도가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특히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되는 것은 <돈 문제>입니다. 돈 문제를 잘 관리하지 못하면 사람이든 단체이든 국가이든 금방 무너지고 부패하게 됩니다. 특히 가정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다툼은 돈 문제입니다. 부부싸움의 대부분 시작도 돈 문제입니다. 부모와 자녀간에 갈등과 대립이 시작되는 것도 돈 문제 때문입니다. 교회안에서도 분란이 일어나는 것이 돈 문제입니다.
고려 공민왕 때의 “형제투금”(兄弟投金) 이야기가 있습니다. 형제가 함께 길을 가다가 땅에 떨어져 있는 금덩어리 두 개를 줍게 됩니다. 의가 좋은 형제는 서로 큰 것을 가지겠다고 싸우지 않습니다. 서로에게 큰 것을 양보한 후에 사이에 좋게 하나씩 나누어 가집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고 있는데, 갑자기 동생이 봇짐에서 꽁꽁 싸놓은 금덩이를 강물에 던집니다. 깜짝 놀란 형이 “왜 귀한 금덩이를 강물에 던지느냐?” 물어 봅니다. 동생이 하는 말입니다. “자신이 금을 가지고 있다 보니, 형만 없었다면 금 두덩어리가 다 내 것이 될 텐데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이런 생각을 없애려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금덩이를 강물에 던졌다”고 합니다.
동생의 말이 끝나자 말자, 형도 동생에게 미안하다 말합니다. “나도 너처럼 그런 생각을 가졌다”고 말하면서 자신 또한 가지고 있었던 금덩이를 강물에 던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형제투금>입니다.
십여년 전에 대통령 영부인을 지냈던 분이 뇌물로 2억짜리 시계를 받았습니다. 이것 때문에 검찰에서 뇌물 건으로 조사가 들어간다는 말이 들리니, 이 분은 자신이 뇌물로 받은 2억짜리 시계를 봉하 마을 논두렁에다가 버렸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결국 이런저런 일로 인해 남편 되는 분이 바위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사리 분별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재물에 청렴결백하여 황금을 돌보는 것처럼 하는 것도 아닌데, 한 개에 1억을 넘기는 시계를 그냥 논두렁에 버렸다는 것입니다. 재물에 연연하지 않고, 초연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2억짜리 시계를 논두렁에 그냥 버린 것일까요? 아니지요~ 이런 저런 일로 돈 받아먹고, 뇌물시계 받아먹고, 이제 검찰에서 조사를 한다고 하니, 도망칠 모양으로 어린아이처럼 그냥 버린 것입니다.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물질을 뛰어 넘는 사랑을 나누고, 행복을 가꾸는 여러분들이 되기 바랍니다. 물질로 행복하고, 돈으로 행복한 가정이 아니라, 사랑으로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축원 드립니다.
해외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던 남편이 현지에서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남겨진 미망인이 적은 글을 보았습니다. 엄청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부인은 남편의 시신을 수습하고, 한국에 와서 장례를 치렀답니다.
그런데 남편에게는 시동생이 둘이 있는데, 시동생들은 혼자 된 형수를 불쌍히 여기기는커녕, 재산과 보상금을 조금이라도 더 뜯어가겠다고 눈을 부릅뜨면서 장례식장에서 조차 싸우더랍니다. 이것이 부인에게는 남편 세상 떠난 것보다 더 큰 상처가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요즘 세상이 이렇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부부의 사랑보다 돈이 앞서고, 형제 우애보다 돈이 앞서는 사회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돈이 사랑보다 앞서가는 가정은 매우 위험한 가정입니다. 돈이 신앙보다 앞서간다면 이는 곧 무너지는 신앙이 되고 맙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자명한 사실입니다.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걸인에게 베드로와 요한이 어떤 말을 합니까?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돈을 기대하지 말라. 더 큰 것을 기대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돈 보다 더 소중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돈보다 더 중요한 사랑이 먼저 나타나기 바랍니다.
우리 자녀에게도 돈으로 만족하는 인생을 가르치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로 만족하는 인생을 가르쳐야 합니다. 돈이 주는 만족을 느끼기 보다는, 물질을 뛰어 넘는 사랑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행복이란 물질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님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하나가 되며, 사랑을 나누고, 행복을 전하는 여러분의 가정이 되기를 축원드립니다.
2.화목한 가정은 다스림을 받을 줄 압니다.
2절. “슬기로운 종은 부끄러운 짓을 하는 주인의 아들을 다스리겠고, 또 형제들 중에서 유업을 나누어 얻으리라”
이 말씀을 보면,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종이 주인의 아들을 다스린다”는 말입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특히 주인과 종의 신분이 엄격히 구분된 고대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이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지혜로운 부모님이 개망나니 같은 아들의 버릇을 잡기 위하여 종중에서 슬기롭고 충직한 종을 세워 아들을 일시적으로 다스리게 합니다. 여기서 <다스린다>는 말은 “꾸짖는다”는 말로 표현하면, 이해가 쉬운 상황입니다.
주인의 허락을 받은 슬기로운 종은 개망나니아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을 것입니다. “내가 보니 우리 주인은 지혜롭고 인자하심이 인근 마을 전체에 비교할 자가 없는데, 도련님은 왜 이렇게 개망나니 짓을 하면서 아버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다니시나요? 제가 주인님의 허락을 받아 도련님을 야단치겠습니다”아마 이런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집에서 부리는 종에게 야단을 맞고 꾸지람을 들은 아들의 입장이 어떻게 될까요? 모멸과 수치심, 그리고 자신의 어리석고 미련한 모습으로 인해 벌어진 이 부끄러운 일에 대하여 두고두고 가슴에 새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은 아들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종에게 아들을 훈계하라고 지시하는 주인입니다. 바로 아들의 아버지이며, 이 집안의 가장인 주인입니다. 고로 2절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요? 화목한 가정, 행복한 가정, 가정의 기준이 제대로 지켜지는 가정은 다스림과 훈계가 올바르게 나타나고 지켜지는 가정이란 말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범죄한 후에, 선지자 나단이 와서 자신의 죄를 신랄하게 지적합니다. 나단 선지자가 자신의 추악한 잘못을 지적하였을 때에, 다윗 왕은 변명 하지 아니하고 바로 “내가 범죄하였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다윗왕의 위대한 점이 돋보입니다. 아마,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내가 왕인데 여자 하나 내 마음대로 취하지 못하냐?”하면서 윽박지르거나 무시하였을지 모를 일입니다. 아마 그렇지 못한 왕이었으면 “죄를 지적하는 나단 선지자를 단칼에로 목을 벨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왕은 겸손하게 다스림을 받습니다. 이것이 위대한 성군입니다.
여러분~ 부부 사이에도 똑같은 모습이 필요합니다. 서로가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줄 알아야 되고, 귀 담아 들을 줄 알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스림을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와 자녀 서로가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님의 훈계를 달게 받아야하며, 부모님의 다스림을 수용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자녀가 올바른 말을 할 때에는, 때로는 부모가 자녀의 말도 들을 줄 도 알아야 합니다. 자녀의 말을 수용하고, 자녀의 요구를 응답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너가 무엇인데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하면서 귀를 닫아버리면, 화목한 가정도 아니고, 행복한 가정도 되지 못함을 알아야 합니다.
정채봉(丁埰琫) 작가의 ‘멀리 가는 향기’라는 책에 나오는 글입니다.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어린 아들과 함께 사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부가 자주 다투고 싸웁니다. 처음에는 어린 아들과 어머니가 싸우는 소리 듣지 못하도록 조용히 싸웁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부싸움 소리가 더 커집니다. 어린 아들도 듣고 어머니도 듣게 됩니다.
“당신 어머니가 더럽고 비위생적이라서 함께 못 살겠어요. 내가 오늘 신경정신과에 다녀왔는데 병명이 무엇인지 알아요? 노이로제래요. 어머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니 내가 노이로제에 걸릴 수밖에요.”라고 말합니다. 아들내외가 싸우는 모습 때문에 어머니가 조금 떨어진 곳에 작은 방을 얻어 이사를 나가려고 합니다.
어머니가 이사 가는 날입니다. 아버지와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상자에다가 어머니의 물건들을 넣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들이 종이와 연필을 가지고 와서 중얼거리면서 적기 시작합니다. “헌 옷장 1개, 전기장판 1개, 담요 1개, 밥통 1개” 이상히 여긴 엄마가 물었습니다. “너, 왜 그런 것들을 적고 있니?” 그때 어린 아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다음에 엄마를 내보낼 때 제가 챙겨드릴 것들이에요.”
퇴계 이황,‘춘한노건 불가망’(春寒老健 不可望)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봄이 추운 것과, 노인이 건강한 것은 믿을 수 없다’라는 의미입니다. 부모님이 건강하시다고 설마 하지 마시고, 돌아가신 다음 후회가 되지 않도록 살아 계실 적에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효도를 할 수 있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더 잘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에게 하나님이 주신 나의 자녀들을 믿음으로 더 잘 가꾸고 사랑으로 키워나가는 멋진 부모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5월 가정의 달을 통해서 모두가 행복하고, 모두가 사랑으로 풍성하게 채움을 받는 우리 덕민 교회 성도님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