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6.
동네 한 바퀴
무료한 오후의 짧은 낮잠은 달다. 그런 만큼 육체의 늪은 깊고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게으름이 발동되어 해거름이 짙도록 자버리면 가여운 은퇴자의 일상이 되어 버린다. 깨끗한 백수, 현명한 은퇴자가 되기 위해서는 벌떡 일어나 봄 맞으러 밖으로 나가야 한다. 봄 공기 역시 싱그럽고 달달하기 때문이다.
용방면 동네 구경을 나선다. 센터 서쪽 농로를 따라 걷다가 두동마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마을 초입에 '수필가김행자문학비'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르포 형식의 '6.25 한국전쟁사' 전 6권을 남긴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다. 역사의 아픔을 너무 가벼이 여기지 말라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한다. 훌륭한 수필가 한 명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두동마을을 지나 가구수가 만만찮은 봉덕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좁은 골목길로 올랐다. 언덕 위 경사진 밭에서 고구마 심을 두둑 작업 중인 할머니와 인사를 건넸다. 농업창업지원센터의 존재와 역할을 잘 알고 있었다.
너무 멀리 가면 돌아오기 힘들다. 마을을 빠져나와 서시천 둑방을 걷는다. 봄나물을 캐는 아주머니들이 보인다. 도로에서 멀어 오염되지 않은 쑥들이 좋아 보인다. 콩가루에 버무린 쑥국 향이 느껴진다. “쑥 캐시나요?” “예, 쑥부쟁이도….” 잉! 쑥부쟁이가 뭐지. 살짝 데쳐서 장에 무쳐 먹으면 연한 쓴맛이 좋다고 한다. 알고 보니 쑥부쟁이는 구례농업기술센터의 지역특화작목으로 선정되어 로컬푸드로 육성하는 부지깽이나물이었다.
내일도 좋은 봄날이면 행복할 것 같다. 잘 드는 짧은 칼 한 자루와 비닐봉지 큰 거 하나 들고 봄나들이하러 가야겠다. 쑥도 캐고 쑥부쟁이도 뜯어 온몸 가득 봄기운을 채워야겠다.
첫댓글 소쿠리들고 수건 폭 덮어쓰고 가소
김해 신여사 좋아하잖어요
바람이 불어서...
6.25 한국전쟁사! 김행자 수필가는 집필 중 사망하고, 그녀의 문학 스승이 남은 자료를 정리하여 발간했으니 유작이다.
전 6권으로 동부전선 2권, 서부전선 2권, 중부전선 1권, 백마고지 전투 및 장사동 상륙작전 등으로 되어 있다.
동부전선은 6.25당시 강릉에 주둔했던 8사단의 이야기다. 서쪽부터 백선엽의 1사단, 유재흥의 7사단, 김종오의 6사단, 이성가의 8사단 순이었다. 다른 3개 사단장은 자사전 등을 남겨 전투 내역이 대중적으로 상세히 알려진데 반해 8사단만은 남긴 게 없어 당시 전황이 궁금한 면이 많다. 이 책 덕분에 8사단의 행적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특징은 단지 8사단의 움직임 수준이 아니라 사단내 각 중대 하나하나의 전투 현황까지 다루고 있다. 이 정도로 상세한 전투기록으로 서술된 책은 없다. 그리고 이런류의 서적은 밀리터리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수많은 오타가 나오는데 이 책은 놀라울 정도로 오타가 없다. 아마 작가가 단순히 기록을 옮기는 수준이 아니라 제대로 당시 상황을 이해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출처][6.25 한국전쟁사|작성자 메르카츠 https://blog.naver.com/milcamp/222709064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