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로히르 반 데르 베이덴
로히르 반 데르 베이덴(Rogier van der Weyden, 1399-1464)은
북유럽에서 활동한 플랑드르의 화가다.
그는 루벵의 궁수협회의 주문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를 그렸다.
이 그림은 대형제단화로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내리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 그림은 사실적인 정교한 세부묘사를 했지만
연극적으로 표현했기에 연극무대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마치 채색한 조각상과 같은 효과를 내는데,
그림 속 등장인물들은 서로 친밀하고도 밀접한 관계로 묘사되었다.
이 그림에 나타난 강렬하지만 절제된 감정표현은 반 데르 베이덴의 특징이다.
또한 예수님과 성모님의 반복되는 자세와
사도요한과 마리아 막달레나의 대칭으로 시각적 효과를 강조했다.
이 그림은 마태오복음 27장 57~61절과 마르코복음 15장 42~47절,
루카복음 27장 50~56절과 요한복음 19장 38~42절이 그 배경이다.
그곳은 해골 터였다.
그래서 성모님의 손아래 두개골이 있다.
이 두개골은 아담을 상징한다.
십자가는 아담의 무덤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담의 불순종으로 세상에 죽음이 시작되었지만,
예수님의 순종으로 세상의 죽음을 물리쳤다.
그곳에는 열 명이 있었다.
중앙에는 예수님께서 시신이 되어 십자가에서 내려지고 있다.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양쪽 겨드랑이를 천으로 감싼 채
예수님의 시신을 받아 내리고 있다.
은밀하게 예수님을 추종했던 니코데모는 예수님의 다리를 붙잡고 있다.
또 일꾼으로 보이는 어떤 사람이 사다리 위에서
한 손으로 십자가를 붙들고 다른 손으로 예수님의 왼팔을 부축하고 있다.
그의 얼굴색이 시신처럼 창백하게 느껴지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이 그림이 걸려 있는 성당의 사제로 추측되는 녹색 옷을 입은 사람이
몰약 그릇을 들고 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던 제자 요한이 슬픔을 억누르며
쓰러지는 성모님을 급히 붙잡으려 한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기 전에 그에게 어머니를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십자가 밑에 있었던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이 그림에도 등장한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반지를 낀 손을 모으고
예수님의 발에 난 상처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녀의 그런 행동은 눈물로 그분의 발을 씻어 드렸던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이모와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는 성모님 곁에 머물러 있다.
그분의 이모는 쓰러지는 성모님을 부축하고 있고,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는 이 광경을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어
눈을 가리고 울고 있다.
성모마리아는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님과 똑같은 자세로 실신하신다.
그래서 성모마리아의 손과 예수님의 손이 평행선을 이루고 있다.
숨을 거두신 예수님의 얼굴보다 성모님의 얼굴이 더 창백한 것이
마음에 찡하다.
죽은 아들보다 죽은 아들을 보는 어머니의 슬픔이 더 크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내리는 도구로 쓰인 사다리가 왜 가운데 있을까?
그것은 십자가에서 희생되신 예수님이 하늘과 땅을 이어 주는
구원의 사다리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분은 당신의 죽음으로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주셨다.
성모님도 당신의 슬픔으로 예수님과 우리를 이어주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교회를 세상과 이어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