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출3:1-14절, 85.506.511장.
구약을 대표하는 인물인 “모세”의 120년 생애는 40년씩 세 등분할 수 있습니다. 처음 40년은 “바로” 궁(宮)에서 왕자로 지낸 시기요, 다음은 미디안 땅에서 양치기로 지낸 시기요, 마지막 40년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에서 보낸 기간입니다.
인간의 생애는 다 그렇다지만, 특히 위대한 사람의 생애는 변화가 많습니다. 모세에게 있어서 미디안 광야에서의 40년은 좌절과 고독으로 가득한 은둔 생활이었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이 한적한 들판에서 그의 종을 양육하는 훈련 도장으로 활용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생애의 제 3가지 시작될 시기에 호렙산 가시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가시덤불에 불은 붙고 있었으나 가시는 타지 않는 신기한 광경을 보려고 한 발짝씩 다가서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모세야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을 벗으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과거를 청산하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지금 막 새로운 생애의 출발점에서 있습니다. 그는 그 시간까지 숨겨진 생활을 하였습니다. 무명하고 초라한 사람의 삶을 지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막 위대한 사람으로 위대한 인물로, 선민의 지도자로 소명을 받는 순간에 서 있습니다. 이제 모세의 소명에 앞서 신을 벗으라고 하신 뜻을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과거를 깨끗이 청산하라는 것입니다. 1)화려했던 바로의 궁중 호화롭던 생활도 청산해야 합니다. 행1:22절에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보낸 애굽의 사십 년은 배우는 시절이었으니 인생의 가장 중요한 때입니다
“바로”와 “라암셋 2세”는 이스라엘이 강성해 감을 두려워 한 나머지 새로 출생하는 산아 중 남아는 나일 강에 우상 제물로 던지게 하였습니다. 이때 레위 가문이었던 남편 “아므람”과 부인 “요게벳” 사이에 한 옥동자가 생겼습니다.
그들은 국법을 어기고 석 달 동안이나 숨겨 길렀으나,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나일 강 물에 띄웠습니다. 사랑스러운 아들을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 강에 띄운 부모는 원통하고 비통한 그 심정을 다 헤아릴 수 없어 가슴이 무너지는 듯 했고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마침 그때 바로 왕 공주가 시녀들을 거느리고 나일 강변으로 목욕하러 나왔다가 갈대밭 속으로부터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그 아이를 구하여 데려다가 공주의 아들로 삼았습니다. 아이 어머니 요게벳은 아기의 유모가 되었고 다행히도 아이는 생모의 품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는 “물에서 건졌다” 하여 “모세”라 불러왔으며, 모세는 자라면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을 생모를 통해서 믿게 된 것입니다. 바로는 이스라엘을 멸절시키려 하였으나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바로의 딸인 공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해방을 이루시고야 만 것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최고 학부인 히스피리오 국립대학에서 천문, 지리, 수학, 군사, 법률, 정치학 등 최고 학문을 다 터득하였습니다. 모세는 공주의 양자로 일대 권력가였고 애굽을 통치할 수 있는 최고의 실력자가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라는 것으로 발에 신을 벗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2)그릇된 애국심의 범죄 행위도 청산해야 합니다. 출2:12절에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세가 감추니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동족을 향한 뜨거운 열정은 어느 날 자기의 동족이 받는 고통을 목격하게 되자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을 동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인간적 방법은 더 큰 어려움만을 초래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모세는 자기 자신이 사십년 동안 애굽의 궁정에서 필요한 모든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오늘을 위하여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위치에서 동족들의 고난을 돌아볼 때 그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모세의 예측과 전혀 다른 결과를 불러들였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오늘의 모든 성도들이 마음 깊이 간직하여야 할 교훈인 것입니다. 어찌하던 간에 하나님은 모세의 이 같은 동족 애국심도 벗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때에 저의 새로운 일을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2.현재의 입장을 고치라는 것입니다. 1)하나님 앞에 지극한 소명자로 입장을 고칠 것입니다. 출2장까지의 사건이 출애굽을 위한 예비 작업이었다면 본 장에서부터는 그 출애굽의 역사가 구체화되는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본문은 생애의 제 2기를 맞은 모세가 미디안, 땅에서 양치기로 연단의 40년 세월을 보내고 있던 중 하나님으로부터 소명(召命)을 받는 사건입니다. 이를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 호렙 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의 현현입니다.(1-6절),
학대받는 이스라엘을 해방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7-9절), 그 일의 일꾼으로 모세를 부르시고 사명을 맡기신 사실(10-12절) 등의 본문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1)출애굽의 역사가 분명히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에 따라 이루어진 성역(聖域)이라는 점입니다.
(2)주께 부름 받는 것은 개인의 탁월한 영예를 이루기 위함이 아니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까닭에 하나님은 소명 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적적한 지혜와 그 뜻을 이루는 데 필요로 하는 능력과 신앙적 담력을 허락하십니다.(빌4:13절). 이 점을 알고서 소명자인 것을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2)여기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소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이스라엘 자손의 구원입니다.(8절). 고통 속에서 부르짖는 소리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구원을 준비하시고 이를 위한 도구로 모세를 선택하시어 이 소명을 그에게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기를 믿고 의지하여 부르짖는 사람들을 외면치 않는 자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약속의 이행입니다.(8절).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구원과 함께 하나님께서는 그 옛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약속을 이행하시기 위한 소명을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모세에게 이 약속의 이행을 위하여 소명을 주셨습니다.
셋째 애굽에 대한 청원입니다. 모세는 이러한 몇 가지의 소명을 이루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애굽의 바로에게 자기 백성을 보내줄 것을 청원하여야 했습니다. 이 문제는 모세에게 죽음과도 상통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소명을 맡기시며 염려하는 모세에게 그와 함께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입장만 생각 말고 하나님의 원대한 뜻을 위해서는 발에 신을 벗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3.미래의 충성을 맹세하라는 것입니다. 주인을 봉사하는 종의 태도는 충성과 복종입니다. 출4:10-17절에 모세는 여러 가지의 이유를 들어서 변명을 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그 변명이 아니라 충성의 맹세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모세가 사명을 회피하였던 이유가 무엇이며 그 결과는 어떠하였습니까?
1)바로에 대한 두려움으로 회피했습니다. 모세는 먼전 자신이 상대해야 할 대적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외적인 초라함을 깨달았습니다.(출3:11절).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사명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모세의 잘못이 있었습니다.
즉 모세는 자신이 대적 바로의 능력만 깨달았지 자신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는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2)백성들의 불신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모세의 두려움은 백성들의 불신이었습니다.(출4:1절).
그는 자신이 말씀을 전해야 할 대상인 백성들의 완고하고, 불 신앙적인 마음을 두려워하여 아예 그들에게 말씀 전해야 할 것을 포기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말씀의 열매를 거두시는 이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심을 몰랐습니다. 그는 자신 스스로 그들에게 말씀을 전할뿐만 아니라 그들이 믿는 것까지도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줄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법칙이 아닙니다. 뿌리는 것은 인간이 해야 할 영역이지만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 전하는 일에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3)모세의 사명 변명의 결과입니다. 결국 모세의 변명은 사명의 회피는커녕 하나님의 진노만을 초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일꾼은 결코 그의 사명에서 벗어날 수가 없으며 결국에는 그 일을 감당하게 되고 맙니다.
이러한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명을 회피하다가 많은 정신적 물질적 고통을 당한 후에 주께로 돌아오는 사례를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당한 고통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회피하려 하여 하나님의 진노에 처하지 말고 담대함으로 그 일에 충성합시다. 주님은 그와 같은 자를 사랑하십니다.
4.신을 벗으라는 말은 권리를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율법 중에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는 표시로 발에서 신을 벗어 증거를 삼는 규칙이 있습니다.(신25:7-10; 롯4:7절). 권리란 권세와 이익 또는 특정한 이익을 주장하거나 받을 수 있는 법률상의 능력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법으로 보장된 이익 추구 또는 정당한 요구를 말합니다. 당연히 요구하고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하는 것은 대개 세 가지 이유가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1)타인에 의해서 권리를 포기하도록 강요받았을 경우입니다.
2)다른 목적을 위하여 왕의 소유권을 포기하는 경우입니다. 3)감사와 감화에 의한 자발적인 권리의 이양입니다. 빌3:7절에 "지금까지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자기의 권리를 포기한 점에서도 같으나 이유나 결과는 다릅니다.
5.전적 복종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인의 종은 주인 앞에서 신을 신지 않습니다. 상전에 대한 자기 신분의 표시오 존경과 전적 복종의 표시였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전적으로 복종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자기의 주장이나 의견을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주의 종들은 주인 되시는 그리스도 앞에서 신을 벗고 수종 드는 전적인 헌신과 복종을 배워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모세의 위대한 제 3기의 40년 생애는 호렙산 가시덤불 가운데서 들려온 여호와의 말씀대로 신을 벗는 생애였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자기를 탈피하고 새로운 자기가 정립된 생애였습니다. 지상의 모든 이익을 추구할 권리를 포기하고 하늘의 상급을 좇아 간 생애였으며, 자기를 비우고 온전히 여호와 하나님께 전적으로 복종하고 따라간 생애였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의 대 접전이 있기 전에 그릿 시냇가에서 숨은 생활의 과정을 이수했으며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기 전에 남의 나라의 깊은 감옥에서 숨은 생활의 과정을 이수했으며, “바울”은 세계 전도의 길에 나서기 전에 아라비야 광야에서 이 과목을 수료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종교 개혁의 위한 “마틴 루터”도 엘프르의 “어거스틴” 수도원에서 자신의 죄 문제로 번민하면서 수도의 길을 걸었습니다. 숨은 생활은 하나님의 일꾼이 되기 위한 준비의 기간입니다. 그것은 자아 탈피의 훈련이요,
자기 정복의 수업이요, 자기 개선의 교육 기관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종들을 숨은 생활을 통해서 고상한 그릇으로 만드십니다. 주의 종들은 과거는 자기는 죽고 철저히 부정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자기 자신에게 실망과 비애를 느껴본 사람입니다.
자기의 지식, 경험, 능력이 꺾이우고, 유능하다고 믿던 자신이 실로 무능하기 짝이 없는 존재임을 절실히 느낀 사람이라야 비로소 주의 능력의 세계를 향하게 되고 겸손히 머리를 조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종을 할 수가 있고 또한 그 자가 주를 위해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러한 자를 찾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6.신을 벗으라는 것은 인생의 새 출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신을 벗는 것은 자기를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려는 신앙 고백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신이 없습니다. 엄마가 등에 업고 다닙니다. 엄마가 곧 발이 되어 줍니다.
아이가 발에 신을 신게 되면 이때부터는 자기 발로 걷기 시작하며 자기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모세야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이 말은 모세에게 “네 인생은 이제 끝이 났다. 그리고 모세야 너는 죽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생애를 보면 갈 상자에 담아질 때 그의 발에는 신이 없었습니다. 그의 어머니의 품에서 자랄 때에도 신이 없었습니다. 모세는 어머니와 함께 걷고 어머니 품에서 신앙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성장하여 공주의 아들이 되었을 때 그는 발에 애굽의 신을 신은 것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대학을 출입하였고 이방 애굽의 교육으로 그의 인격이 향상되었습니다. 이제 미디안 40년 목동 생활에서, 양을 이끌고 광야를 헤매느라고 신발이 닳아졌습니다.
우리 인생은 이 세상을 헤매느라 신발이 닳아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는 말은 네 인생행로를 바꾸라는 것입니다. “네 출입을 이제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발에서 신을 벗었다는 것은,
모든 출입을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입니다. "모세야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 발로 걷지 않고 내가 걷게 하리라"는 약속입니다. 믿음으로 출입하고 복음의 신을 신는 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시121:8절에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을 지켜 주십니까? 발에서 신을 벗은 자입니다. 발에서 신을 벗어버리고 “주여 저는 어린아이라 출입할 줄을 모르나이다.
발에 신이 없어 걷지 못합니다. 주께서 이 종으로 걷게 하여 주옵소서“하는 자입니다. 자기를 소개하는 이력서를 쓰는데 이력서 란에 밟을 리(履) 지날 력(歷)입니다. 자기 발로 밟고 지나온 경로를 쓰는 것이요 발에 다닌 자취를 쓰는 것입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은 이제 이력서를 다시 쓰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발로 다녔지만 이젠 하나님이 이끄는 대로 가라는 것이요, 생애의 이력서를 바꾸라는 것이 하나님의 호렙산 명령입니다. 더러운 신, 위선의 신, 교만의 신, 다 벗어 버려야 합니다. 누가 의인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우리 주님이 함께 하시며 그 이름이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신을 벗으라고 내게 말씀해 주셨는데 내가 신고 있는 신이 어떠합니까?
나를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모세는 자기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강물에 버림받았던 과거를 지닌 모세, 입술이 둔한 모세, 자기를 이렇게 살펴볼 줄 알았습니다. 이런 모세가 신을 벗었을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7.가나안 땅은 신을 벗은 자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신을 벗고 발바닥으로 밟고 들어가는 곳임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수1:3절에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모세에게 "네 신을 벗으라. 그러면 정녕 너와 함께 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리라" 하십니다. 드디어 신을 벗고 모세를 대신해서 발바닥으로 밟은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여기 보면 발바닥으로 밟는 것만 주시겠다고 하셨지 신발로 밟는 것을 주겠다고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얼마나 신기한 성서의 비밀입니까? 왜 하나님께서 신을 벗으라고 하십니까? 여리고 성을 점령하기 전에 신을 벗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발로는 여리고 성에 못 간다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의 그 완고한 성벽을 발로 걸어서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신발을 벗고 서면 하나님이 무너뜨린다는 것입니다.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네가 선 땅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선 곳이 거룩한 땅”이라는 것은 “이제 네가 밟는 땅은 하나님의 종으로 밟는 땅이요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라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신을 신고 나온 사람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유월절의 은총을 입고 홍해를 건넜습니다.(출12:11절). 이들은 광야에서 죽습니다. 왜냐하면 애굽의 신을 그대로 신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새로 난 사람들만이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직도 더러운 세상의 것, 애굽의 것을 갖고 있는 옛 사람은 광야에서 죽습니다. 그러기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우리에게 발바닥으로 밟고 가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신을 벗으라”는 이야기는 “옛 사람을 벗으라“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활동, 내 인생관, 이것들을 다 벗어버리고 주께서 인도한 땅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았는데 아직도 내 고집대로 살고 있는 사람은 광야를 헤매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늘나라에 편안히 못 갑니다.
가나안은 내 신을 벗어야만 갑니다. 그러기에 모세에게 벗으라고 했고 여호수아에게 네 발바닥으로 밟는 땅을 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8,말씀을 정리합니다. 수5:15절에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도 모세처럼 하나님의 명한 대로 그대로 행했기 때문에 지상에서 최고의 복지 가나안을 얻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후5: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 새 생명을 가슴에 품었으면 옛 성품을 던져버리고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변화되어서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므로 삶을 통한 생활전도가 되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의 복된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