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7 : 3 - 5 어떻게 죽을까?
학교에서 선생님이 종례를 하면서 반 청소당번 아이들에게 파란 쓰레기통을 가리키면서 쓰레기통을 부셔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들 3명이 쪼르르 파란 쓰레기통을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나간 지 얼마가 지나도 아이들이 들어오지 않자 선생님이 아이들을 찾으러 밖에 나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아이들이 파란 쓰레기통을 부시느라 돌로 치고 막대기로 때리며 발로 밟고 쓰리기통을 아주 부시고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도 쓰레기통 부려오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사람이 있습니까?
오늘 제 설교를 듣고 말귀를 못 알아들어 쓰레기통을 아주 주시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잘 배우지도 못했고 전달력도 부족하고 표현력도 거칠어서 못 알아듣는 말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성령께서 알아듣도록 인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유명 연예인들이 목매어 죽는 자살사건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라는 최진실씨가 목매어 죽음으로 충격을 주더니 8일에는 꽃보다 남자에 출연했던 28살 밖에 되지 않은 미녀배우 장자연씨가 목매어 죽음으로 또 다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일본의 유명 형제배우 22살 밖에 되지 않은 이토 타카히로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자살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1년에 12000명 가량이 자살을 합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목매어 죽는 자살을 선택하느냐 하고 말하지만 나는 기독교인들만 아니라 목매어죽는 신학생들 그리고 목회자들을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지금도 신학생들이나 목회자가 목매어 죽고 있습니다.
그 선봉에 섰던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가롯 유다입니다. 가룟 유다는 다른 제자들보다는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계산이 빨라 제자들 중에서 돈 궤를 맡을 정도였습니다(요 12:6; 13:29). 출신도 다른 11제자들은 북쪽 갈릴리 출신인데, 가룟 유다는 남쪽 유다의 가룟이라는 도시 출신이었습니다.
전해지는 기록에 의하면 가룟 지방은 교육여건이 아주 좋았다고 합니다. 우리말로 하면 예수님의 11제자들은 두메산골 출신인데, 가룟 유다는 강남 출신이었다는 말입니다. 출신부터 다르고, 학력도 다르고, 다른 제자보다 똑똑했고, 돈 궤도 맡고 가룟 유다는 항상 자부심이 대단했고, 자기의 생각은 누구보다 옳다고 여겼습니다.
마 26장에 예수님께서 한센씨 병에 걸린 시몬의 집에 계실 때 한 여인이 아주 값비싼 향유를 가져와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제자들은 모두가 분노했습니다. 이 아까운 것, 무슨 의도로 이 비싼 것을 예수님의 머리에 다 부어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싸게 팔아서 우리에게 돈을 주면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데 하면서 여인이 행한 일에 못 마당함으로 나무라고 있었습니다.
요 12장에 예수님이 제자들과 나사로의 집에서 잔치를 할 때에 한 여인이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그리고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비볐습니다. 그 향유의 가치는 삼백 데나리온으로 일반 회사원의 1년 연봉 정도의 가치였습니다.
이 엄청난 돈을 한 순간에 날렸다고 생각한 가룟 유다는 주님 보는 앞에서 주님이 무안할 정도로 그 여인에게 “왜 그런 엄청난 돈을 낭비하느냐?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느냐? 왜 쓸데없는 행동을 하느냐? 그 돈으로 가난한 자들이나 돕지!”하고 야단을 쳤습니다(요 12:4).
그때 예수님도 그 여인을 야단친 자기를 두둔해주실 줄 알았는데 뜻밖에 예수님은 “가만 두어라. 왜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했다! 앞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인의 행위도 전해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주님의 말씀을 듣고 가룟 유다는 마음의 상처를 받았습니다.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자기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별 볼일 없는 여인을 두둔하며 사람들 앞에서 자기에게 면박을 주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정면에서 면박을 줄 수 있나?”
가룟 유다는 자신이 사람들 앞에서 여인에게 상처를 입힌 생각은 하지 않고 상처를 받은 것만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여인에 대한 시기심이 불타올랐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일개 무명의 여인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는 것 같아서 창피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는 마음에 자기보다 인정받는 여인에 대한 시기심 그리고 책망 받아 구겨진 자존심으로 마음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가롯 유다는 정치적 야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물론 다른 제자들에게도 그런 야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에게는 특별히 그런 정치적인 야심이 강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적인 야심을 이루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물론 3년 동안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그런 야심을 버려야 한다는 말씀을 무수히 들었을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아! 그렇다!”고 동의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마음에는 여전히 예수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뒤엎고 자신도 한 자리를 차지할 것에 대한 기대를 가졌을 것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그에게는 비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욕심을 비전으로 착각하고 합리화 시키고 있는 사람입니다.
향유 사건으로 자신의 자존심이 뭉개졌다고 생각하니까 참을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자기는 죽는다고 말하는 예수님을 보면서 그의 비전은 다른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의 공동체를 뛰쳐나가 거대한 교권을 가진 대제사장들에게로 찾아가 예수님을 팔아버리는 배신으로 자기의 비전을 성취할 방법을 모색합니다. 이것이 가롯 유다의 마음 깊은 곳에 있었던 것입니다
신학생들이나 목회자들을 모든 큰 교회를 꿈꿉니다. 교인들도 큰 교회만 찾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큰 교회를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큰 교회를 다니면서 헌금을 합니까? 봉사를 합니까? 전도를 합니까? 아니면 교인들을 돌보는 일을 합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큰 교회에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것이 명예심입니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가는 사람들이 자신이 교회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교회에 직분만 가지고 마치 자기가 교회를 부흥시키고 성장 시킨 것처럼 자랑하기 위해서 또 교회가 그렇게 성장했을 때 자기가 무슨 큰일이라도 한 것 차람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 명예심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회자들도 큰 교회를 꿈꾸는 이유는 많은 목회자들이 정말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큰 교회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큰 교회에 머무르고 있다는 큰 교회의 주인이라는 명예심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큰 교회를 꿈꾸는 이유가 정말 영혼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 때문에 그들을 돌보다 보니까 교회가 부흥하는 사람은 교회가 큰 교회가 되었다고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전도 한명 안하면서 교회에서 영혼을 돌보는 일은 하지 않으면서 실력있다고 인정받아 큰 교회에 청빙받아 행정력 가지고 교회 경영 능력가지고 설교 잘한다 소리 들으면서 큰 교회에 청빙을 받아 그 자리를 지킨다면 그리고 그 교회가 마치 자기 때문에 교회가 부흥된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은 가롯 유다 같은 명예욕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가룟 유다에게 있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약점은 바로 물질에 대한 욕심이었습니다. 그가 옥합을 깨뜨린 여인에게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도와주지 않느냐?”고 한 것은 그가 평소에 선교와 구제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사실상 베푸는 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만 그 돈이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아! 저 돈이 있었으면 무엇 무엇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의 물질적인 욕심을 결정적으로 보여준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을 돈을 받고 팔았다는 것입니다.
요13:21- 말씀에 “다 앉아 먹을 때에(최후의 만찬을 할 때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다른 제자들은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하게 잘 몰랐겠지만 가룟 유다는 그 말이 자신에 대해서 한 말이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주님의 말씀을 듣고 가룟 유다는 “주님께서 나의 마음과 행위를 다 알고 계시는구나! 역시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하고 생각하고 돌이켜서 주님께 회개의 고백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저건 나 들으라는 소리구나!”하고 자존심이 더 상했습니다. 결국 그는 자존심 때문에 더 상처를 받고 회개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가룟 유다는 부글부글 끓는 마음으로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때 다른 제자들은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 것이다”는 주님의 말을 듣고 근심하는 마음으로 한 명씩 한 명씩 “접니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가룟 유다는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태연하게 모른 척 하고 있으니까 주님께서는 아주 직설적으로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그의 시기심, 욕심, 자존심, 명예심에 목을 맨 가롯 유다는 시기심, 욕심, 자존심, 명예심으로 자기 목을 매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줄을 삼아 자기 목을 매니 그 줄이 끊어지자 땅바닥에 떨어져 배가 터져 창자가 쏟아져 죽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에 대해 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 뻔 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주의 종이 되겠다고 주님을 따라나선 여러분!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제자들과 가롯 유다 같은 사람들은 3년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녀도 언제나 주님의 십자가와 죽음과는 상관도 없이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4년의 학부 과정을 예수님을 따라 다녀도 신대원 3년을 예수님을 따라다녀도 주님의 십자가와 죽음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시기에 목을 매서 다른 친구 동역자들의 잘되는 것이 시기가 나고 그들이 조금 저 큰 교회에 가는 것이 시기가 나고 인정받는 것이 시기가 나고 교회가 부흥이 되는 것도 시기가 나고 동역자들이 하는 모든 것에 끊임없이 시기하고, 심지어는 평신도들이 주님께 더 열심있게 잘 섬기는 꼴도 시기가 나서 못 보는 시기로 목을 매고,
욕심에 목을 매서 어디교회 가면 삯을 더 주고, 어디 교회가면 등록금도 지원해주고, 어떻게 하면 손해안보고 교통비라도 덜 드는 곳에서 사역을 할 수 있을까 하며 돈 돈 하며 자동차도 갖고 싶고 컴퓨터도 갖고 싶고 핸드폰도 하며 욕심에 목을 매고,
자존심에 목을 매서 누가 자기에게 조금만 서운한 말하면 그 사람의 말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못 참고, 못 견디고, 자존심이 상해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날을 새우고 언젠가는 반드시 그의 자존심을 짓밟아야 하고 그 자존심이 없으면 스스로 자신은 시체라고 생각하며 자존심에 목을 매고,
명예에 목을 매서 무슨 한 자리 준다면 자기 간 쓸개 다 빼주면서 그 명예를 얻어 보려고 알랑거리고, 별것도 아니면서 신문에 이름한줄 이라도 나는 것을 좋아하고 무슨 불의 종이니, 능력의 종이니, 하나님을 움직이니 하고 떠벌이면서 명예에 목을 매고
영화 제목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처럼 시기에 목매어 죽을 놈, 욕심에 목매어 죽을 놈, 자존심에 목매어 죽을 놈, 명예에 목매어 죽을 놈 되었다가 그 배에 든 것이 무거워져 더 견딜 수 없을 때 그 줄이 끊어져 땅바닥에 떨어져 배 때지가 터져 죽을 놈 되면 차라리 신학생이나 목사가 안 되는 것이 더 나을 뻔한 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오래 따라 다녀도 이런 것에 목을 매면 목매어 죽는 놈, 배가 터져 죽는 놈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시기와 욕심과 자존심과 명예와 정욕에 목매지 마십시오. 이런 것에 목을 매면 목을 매는 순간 질식해서 죽게 되고 그 줄은 끊으려고 해도 쉽게 끊어지지 않는데 그 줄이 끊어지면 배가 터져 죽습니다. 그가 어떤 인간인지 배가 터져 죽는 순간 그 속에 감추었던 온갖 더러운 것들이 다 흘러나오는 비참한 불쌍한 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차라리 신학생이나 목사가 되지 않았더라면 좋을 뻔한 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