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근대 이행기 시문학의 전개 과정
1) 옛 시형의 지속과 변모
(2) 시조
근대 이행기에는 전통적 서정 장르의 대표시형인 시조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권오만 교수는 조동일 교수의 소론을 빌어 이를 두세 가지 측면¹³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그 중 첫 번째로 시조 율격이 밖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점을 꼽는다. 이는 이 시기 시조가 3행 표기를 원칙으로 하여 각 행의 끝에 마침표를 찍거나 구의 끝에 쉼표를 찍음으로써 그 자리가 율격적 휴지休止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명료하게 드러내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들 구두점은 시조조차도 이제 가창이 아니라 율독律讀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일러준다.
시조에 나타난 두 번째 특징은 종결구조의 변화다. 가창되던 전통 시조에서는 종장 끝 음보가 매우 유장하고 전아한 가락을 만드는 데 기여했지만, 외세의 침략에 격분하고 행동을 촉구하던 당대의 상황에서는 그러한 가락이 그대로 수용될 수가 없었다. 따라서 똑같은 끝음보의 생략이라 하더라도 근대 이행기의 시조들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긴장감 조성에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천리(三千里) 도라보니, 천부금탕(天府金湯)이 아닌가.
편편옥토(片片沃土) 우리 강산(江山), 어이자고 ᄂᆞᆷ줄손가.
ᄎᆞᆯ아리 이천만중(二千萬衆) 다 죽어도, 이강토(彊土)ᄅᆞᆯ
-「자강력(自强力)」, 『대한매일신보』, 1908.12.29
차라리 이천만 민중이 다 죽더라도 나라를 남의 손에 넘겨줘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반외세의 결의가 느껴지는 시조다. 쉼표의 사용과 종장 끝 음보의 생략이라는 변화가 고스란히 실현되어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조선 중기 이후 주 창작층이던 사대부들의 전망이 닫혀버리면서 오륜가류에 고착되어 있던 시조가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은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시조 역시도 새로운 시대의식을 주도적으로 담지해낼 수 있는 시가형은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3장 6구의 틀은 지나치게 좁고 작았다. 18세기에 이루어진 사설시조로의 변모를 무시하고 정형시조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 했던 문학사적 안목의 부재가 이런 결과를 빚었을 것이다. 시조 형식이 지닌 가치 문제는 1920년대에 와서야 다시 주목받기에 이른다. 형태적으로 완결된 한글 정형시 논의의 좋은 보기라는 생각이 이에 미쳤던 것이다. 소리 내어 실현하는 4음보격이라는 생각의 좋은 실험 장치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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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권오만. 앞의 책, 137쪽
『한국 현대 시문학사』 이승하 외 지음
2024. 4. 4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