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레미야 18:1~6(1079) ‘내 손안에 있느니라’ 2026.4.12.
연탄길이라는 이색적인 제목을 붙인 책이 있습니다. 이철환 작가가 쓴 감동적인 에세이 문집입니다. 작가가 야학 교사로 활동하던 시절 학생들과 이웃들에게서 들은 실제 이야기를 모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무려 7년을 투자해서 한 권의 책을 엮어냈습니다.
그런데 책을 저술한 것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몸에 이상증상을 느끼게 됩니다. 귀가 심하게 울리는 현상 때문에 교회 밖에서 설교를 들어야 했고, 심한 어지럼증 때문에 고통을 당하데 됩니다. 장로님이 요즈음 귀에 문제가 생겨서 병원도 다니시고 많이 고생하시고 계시는데, 이철환작가도 힘든 고통을 경험합니다.
이때 그는 골방에서 종일 하나님과 씨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고 기도하는 중, 하나님께서 ‘네가 쓴 책에 날개를 달아주겠다’는 확신을 줍니다. 그러자 이 작가는 하나님께‘하나님, TV에 나가 한 시간만 말할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매달리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작가의 기도에 응답을 합니다. 그가 쓴 ‘연탄길’책이 KBS ‘책을 말하다’ 라는 프로그램에 방영되어 출연하게 됩니다.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현재까지 꾸준하게 팔리면서 300만권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모든 인생은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 자신만이 가진 능력으로 온전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무시해서 던지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이 아무런 쓸모가 없는 존재이고,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맹목적으로 믿고 의지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이 아무리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 없을 정도로 완전한 상태를 항상 유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다는 것을 깨닫는 성도는 하나님의 손을 부여잡을 수 있습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시는 것을 믿는 성도는 부족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설교 초두에도 잠시 언급하였지만, 김장로님이 귀 문제로 인하여 병원치료도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치료 받고 있는 귀 문제가 단기간에 치료되지 아니하고 장기로 이어지면, 영구장애가 올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집중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때에 이철환작가가 경험하였던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이 김장로님에게도 넉넉하게 임할 수 있도록’ 우리 모든 성도님들 역시 기도에 힘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익히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손안에 있는 것을 내 것 인양 고집하면 고통이 따른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 맡기지 않으면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지난 주일이 부활 주일이었습니다. 제가 전했던 중심적 부활 메세지는 아무 간단한 내용이었습니다. ‘주님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고 주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로 이어질 때, 성도가 가지는 신앙은 살아 있는 신앙이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과 내가 한마음 한 몸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의 마음을 담아서 함께 찬양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라는 아름다운 고백의 찬양입니다.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내 앞에 어려운 일 보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슬픔 없네 두려움 없네. 주님의 그 자비로운 손길 항상 좋은 것 주시도다. 사랑스레 아픔과 기쁨을 수고와 평화와 안식을.’
내가 살아가며 숨을 쉬는 순간순간마다 어렵고 힘든 일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다 맡기면서 의지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렵고 힘들고 눈물 나는 상황이 발생해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항상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항상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할까요? 왜 내가 좋을 때나 내가 힘들때나 나의 상황에 갸의치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믿고 따라가야 하나요?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설교의 배경이 되는 본문을 살펴 봅시다.
예레미야는 유다 왕 요시야 때에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선택한 유일하고 특별한 백성’이라는 자부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선택해 주신 것은 잊어 버리고, 자신들이 잘나고, 자신들이 똑똑하고, 자신들만이 특별한 대상인 양 오만과 교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예례미야 선지자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교만하게 행동하다가는 멸망한다고 말했지만 우습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니 자기들 마음대로 우상숭배하고 온갖 타락을 즐깁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너희들은 토기장이가 만든 진흙 그릇에 불과하다. 그러니 토기장이 되신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지 말고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릇을 만드는 토기장이 손길을 무시하고, 자신이 잘난 것만 그러내는 무식한 진흙 그릇은 결국 토기장이가 다 부숴 버릴 것이라는 엄한 경고를 합니다.
6절 보세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저는 6절 하반절에 있는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는 말씀에 아주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의 제목으로 삼고 본문의 은혜스런 내용을 여러분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글 성경에는‘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라고 번역이 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원어를 직역하면‘너는 내 손 안에 있구나(so are you in my hand)’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존재’라는 말이 두 가지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나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 모든 것을 다 책임져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긍정적인 의미입니다. 2)부정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이 허락이 안 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올바른 신앙을 논할 때 이 말이 기준이 됩니다.
올바른 믿음을 가진 성도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기 싫어도 하나님이 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순종하고 해야 하는 것이 성숙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손안에 붙들림 받은 성도는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는 성도입니다. 내 고집과 내 생각을 묻어두고 하나님의 뜻만 드러내는 성도입니다.
고전 10:31절에 신앙인들의 행동 지침이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동하라’
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공도, 실패도 하나님 손 안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축복도 하나님의 손에 있고 승리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안에 붙들림 받은 성도가 누리는 은혜는 어떤 은혜일까요?
1.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성도가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 작가이며, 장애인 공동체(joni PTL)의 대표로서 기독교 사역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조니 이렉슨 타다(Joni Earetkson Tada, 1949~ )’는 여성이 있습니다. 수 만명을 전도한 위대한 전도자입니다. 그런데 조니는 온 몸이 마비된 장애자입니다.
조니가 17살이던 1967.7.30.일, 물에 다이빙을 했는데 물을 깊이를 잘못 측정해서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경추에 골절이 발생하면서 목 아래가 전신 마비가 되는 사고가 일어납니다.
병원에 입원하여 수개월동안 치료했지만 별 차도가 없자 그녀는 큰 절망에 빠져 버립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는다’고 자부하였는데, 17살 십대 꿈 많은 청소년기에 발생한 이 끔찍한 사고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을까?’라는 끝없는 의문으로 힘든 시기를 겪게 됩니다.
그러다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노력할 때,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됩니다. 그녀에 대한 위키피디아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서전 『조니』에 따르면, 2년간의 재활 기간 동안 조니는 분노, 우울, 자살 충동, 종교적 의심을 경험했다. 하지만 작업치료 중에 그녀는 이 사이에 붓을 끼고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웠고, 자신의 심경을 담은 책을 저술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그녀는 40권이 넘는 책을 집필했고, 여러 음악 앨범을 녹음했으며, 자신의 삶을 담은 자전적 영화에 출연했고, 장애인들의 옹호자이다.’
자신에게 발생하였던 끔찍한 사고를 통해 조니는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역사하시는 새로운 세상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였지만,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더 크게 사용하려고 고난을 허락하신 것’이라 조니는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버리기도 하지만 들어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은 쓰임 받지만, 하나님의 뜻에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버림받게 됩니다. 열매를 맺는 알곡은 곳간 안에 들여지게 되지만, 쓸모없는 쭉정이는 불에 살라져 버리는 이치와 동일합니다.
6절 후반절 다시 보십시다.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처럼, 오늘 이 예배를 참석한 나도 하나님의 손안에 잡혀 있는 존재 인 줄로 굳게 믿습니다.
롬 9:21절,‘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고 말씀합니다. 반어법적인 질문입니다. ‘권한이 없느냐?’라고 묻는 질문은,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귀하게 쓸 그릇과 천하게 쓸 그릇을 임의대로 만들고 창조하실 권한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나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달려 있다는 점을 절대 잊지 맙시다. 하나님은 나를 빚어 만드신 토기장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내가 나 된 것입니다. 내가 존재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일이며, 이 마지막 때에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나를 세우신 하나님의 선한 뜻을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값어치 없는 그릇’이라는 맞은 자존감을 버려야 합니다. 자신을 무가치하다고만 생각지 말고 국보급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될 사명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성도는 하나님의 목적을 아는 성도입니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가 있습니다. 1891-1895년의 공사 기간을 통해 건축한 교회로 건축 당시 그 지역에서 가장 높은 교회 탑을 가진 아름다운 교회당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1943년 폭격으로 교회당은 크게 파괴되어 버립니다. 교회당을 장식하였던 아름다운 스테인레스 유리도 다 깨어져 버렸고, 종탑도 파괴되어 버립니다. 파괴된 교회당을 성도들이 다시 보수하기 위해 예배당을 청소합니다.
잿더미들을 치우다 보니 잔해더미 속에 예수님상이 발견되었는데, 예수상에서 예수님의 두 손이 모두 부러져 나가고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파괴되어 버린 두 손을 다시 조각해서 붙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기도하던 중에 손이 부러진 그 상태 그대로 두기로 합니다.
복원을 반대한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 예수님의 손이 없어지고 말았다. 우리는 다시 그 손을 조각해 붙이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들이 예수님의 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두 손이 없는 예수님의 모습은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역사적 기념물이 되기도 하고,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기로 작정한 성도들이 자신이 예수님의 손이 되어 봉사하고 섬기는 모습이 되겠다는 결단으로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손이 있는 예수님상이나 손이 없는 예수님 상이나 보여주는 목적은 동일합니다. 예수 그리스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나를 위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성도는 ‘나는 하나님에 의해 지음을 받은 질그릇으로서, 하나님이 원하는 목적대로 쓰임을 받아야 되는 사명이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4절 보세요.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조성되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토기장이 하나님은 진흙을 이겨 토기를 만드는 데 ‘자신의 선한 의견대로’만든다고 적고 있습니다.
명확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 뜻이 없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토기장이되신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고 만드실 때, 하나님의 선한 의도에 따라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고로 나는 값어치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의 존재를 무시하고 하찮게 여겨도, 하나님은 나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죽게 하실 정도로 나를 귀하게 여기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땅을 살아가는 존재 목적을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나라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쓰임을 받는 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함을 받은 고귀한 존재들입니다. 정말로 소중한 대상이 한분 한분입니다. 우리 모두 고백해 봅시다. ‘나는 하나님에게 쓰임을 받는 고귀한 존재다.’옆 사람에게 축복해 봅시다. ‘당신은 예수의 보혈로 구원함을 받은 고귀한 분입니다’ 우연히 이 땅에 살아가게 된 것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하나님께서 목적을 두고 이 땅에 나게 하신 존재들입니다.
엡 2:10절 말씀도 증거합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의 손 안에 붙들림을 받은 존재라는 것을 믿는 성도는 내 삶을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믿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능하게 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6절 전반절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우리 모두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토기장이가 자신의 결정에 따라 마음대로 토기를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의 결정에 따라 우리 모두를 귀하고 선한 일꾼으로 들어 사용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존재라 해도 하나님의 손에 맡겨질 때 존귀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혹시 실수했더라도 하나님께 내 문제를 맡기면 더 좋은 모습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토기장이 손에 들려진 그릇이 다시 만들어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손에 있기만 하면 다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좋으신 하나님께 내 모든 것을 온전히 맡기는 우리 모든 성도가 되길 축원합니다.
텔레비전에서 도기 그릇을 만드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리포터가 질그릇을 만드는 전문 도공에게‘왜 이미 모양이 완성된 그릇을 다시 불 속에 넣습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이때에 도공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불을 통과하지 않은 그릇은 물을 담을 수 없어요. 겉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작은 압력에도 금이 가고 깨지고 말기 때문이죠’
여기에 신앙적 교훈이 있습니다. 가마 속의 뜨거운 불을 지나온 그릇만이 비로소 단단해지고, 물을 담고, 오래 쓰일 수 있는 그릇이 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손 안에 붙잡힘으로 연단된 그릇은 세상 풍파에 넘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냥 질그릇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안에 쓰임 받는 그릇이 되어 교회를 세우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