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에서
거실 커튼을 걷으면 밖이 안보다 훨씬 밝다. 유리문에 바싹 다가선다. 왼쪽에는 밝은 연두빛 언덕 뒤로 멀리 산이 흐리게 섰다. 그 너머에 아침해가 숨어있다. 오른쪽은 낮은 구릉 하나가 있는데 온통 헐벗어 붉은 흙이 드러나 있어 흉하다. 아침마다 반복되는 내 행동은 늘 같은 느낌으로 답을 하고, 날이 갈수록 뭣때문인지 궁금해 미치겠다.
아침 산책을 나섰다. 아내랑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는 길은 평화롭다 못해 아담과 이브의 에덴동산과 다를 바 없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물소리와 바람 소리뿐이다. 가끔은 새소리도 들린다. 트랙터로 잘 다듬어진 밭이나 골을 내어 검은 비닐로 덮어 놓은 깔끔한 밭도 보인다. 더러는 지난겨울부터 지금껏 잠자고 있는 곳도 있고 이름 모를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밭도 있으니 세상사의 다양성이 들판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듯하다.
헐벗은 작은 구릉 입구에 섰다. 허물어지기 직전의 정자 한 채가 세월의 무게를 겨우 버텨내고 있다. 정면 2칸, 측면 2칸의 작은 정자는 용마루 가운데의 적새가 구멍이 나 진흙이 보이고 활주가 허공중에 떠 있거나 넘어진 상태다. 기와지붕은 잡풀이 뿌리를 내렸고 일부의 서까래와 평고대는 틀어져 기와를 지탱할 힘이 없어 보인다. 다행스러운 것은 8개의 평주가 꼿꼿하게 버티어 섰고 지붕 아래의 창방, 도리, 장여가 잘 짜져 있어 금방 넘어질 같지는 않다. 누구의 정자인지 모르겠으나 이렇게 좋은 곳에 정자 하나 세울 때는 가슴안에 큰 뜻 두어 개는 품지 않았을까.
서는 데가 달라지니 보이는 것도 다르다. 멀리서 보이는 것은 헐벗은 구릉이었으나 그 구릉 위에 서니 미래가 보인다. 무수히 많은 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 지지대에 곱게 묶어 성장을 도우려는 세심한 정성이 보인다. 가늘고 길쭉한 줄기 끝에 새순이 앙증맞게 피었다. 내년이면 곁가지 두어 개씩 솟아나 어리지만, 나무꼴은 될 것 같다. 주위에 산수유가 군락을 이루고 서양산딸나무는 앙상한 가지에 희고 빨간 꽃을 가득 피웠다. 꽃동산을 의도한 느낌이 든다. 새 생명이 붉은 흙 위에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있다.
다 같을 수는 없다. 서로 달라야 아름다운 세상이다. 나무는 햇빛을 거두어 속이 더 빽빽해지는 여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들판에 흩어진 밭은 농민의 손길이 더해져 양파밭, 마늘밭, 감자밭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허물어지는 정자 하나 살리고 현판 하나 달아 생명의 꽃을 피울 수도 있겠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알게 모르게 새 생명을 피우기 위해 사라지는 것도 매우 흔하다.
첫댓글 잘 적었다 나날이 잘 적는다
이럴줄 알았으면 젊을날부터 글쓰기 하지
한 참을 쉬다가 하나 적으니까 사유가 풍부해 질 뿐인데...
원래부터 그런건 아닌 것 같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