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이 제삿날
瓦也 정유순
“우리 마을에서는 비오는 날이 제삿날입니다.”
“아니, 제삿날은 돌아가신 날을 기일(忌日)로 정하여 지내시는 것 아닌가요?”
“알지요. 그러나 날씨 좋은 날은 횟가루(시멘트먼지)가 많이 날라 와서 제사음식을 장만할 수가 없고, 빨래도 비 오는 날 하는걸요. 그리고 하루 종일 창문을 열어 놓을 수가 없어서 여름이면 더워 죽을 지경이죠. 이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하소연 할 곳도 없어요.”
“……”
<시멘트수송차량>
아주 오래전에 소백산에 가기 위해 중간에 잠깐 들른 어느 마을에서 주민과 나눈 대화다. 이 마을은 대규모 시멘트공장이 가까운 거리에 여러 개가 있었다. 경제개발계획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웬만한 불편쯤은 주민들이 참아야 했고, 또 잘도 참아냈다. 공사장에 ‘공사 중’이란 푯말만 내걸면 다 통하던 시절이었다.
<석회석 채취와 시멘트공장-네이버캡쳐>
강원도와 충청북도 일대에는 다른 곳보다 양질의 석회암(石灰岩)이 많이 매장되어 있어, 이 일대에는 시멘트공장이 들어서기가 좋은 장소 같았다. 시멘트는 채굴(採掘)된 석회암을 높은 열로 구워 분쇄(粉碎)하여 아주 작은 가루로 만들어 건축자재(建築資材), 도로포장(道路鋪裝), 토목사업(土木事業) 등의 주요자재로 사용한다.
<시멘트공장고로 - 뉴시스1>
고속도로․지하철건설과 산업단지조성, 새마을사업 등 토목건축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시멘트의 수요가 급증해 공급량이 턱 없이 모자라 일반개인은 돈 주고도 사기가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사전환경성검토’나 ‘환경영향평가’같은 제도가 없어서 그랬는지 주민들의 생활불편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체 시멘트공장이 들어섰던 모양이다.
<영월의 시멘트공장>
석회암을 캐낸 자리는 산허리가 잘려 나가거나, 채굴 준비를 위해 산의 지표면을 긁어내어 ‘살가죽이 벗겨진 시체(屍體)’처럼 흉물스럽게 누워 있었다. 지금도 시멘트공장 주변에 가면 이런 몰골은 많이 볼 수 있다. 이미 때 늦은 후회지만 엄청난 자연파괴다. 원래 제 모습으로 돌려놓기는 영원히 불가능 하다.
<석회석 채취로 헐벗은 자병산 - 연합뉴스>
이런 형편이 오랫동안 계속되다보니 일상생활의 불편은 물론이거니와 조상들의 제사조차 제때에 모시기가 무척 힘들었던 것 같다. 제사를 지내자니 제사음식을 장만할 수가 없었고, 안 지내자니 선조(先祖)에 대한 도리가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여러 궁리 끝에 찾아낸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비 오는 날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가정에서 조상에 대한 제사가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는데, 이는 아주 오래된 우리의 전통으로 조상을 섬기며 공경하는 아름다운 풍습이다.
<그림 - 장영철화백>
먼지는 우리생활 주변에서 항상 발생하고 있지만 공장이나 사업장 또는 공사장 등에서 발생하는 먼지는 생물에게 피해를 주는 ‘중금속’이나 기타 해로운 물질을 가지고 있어 호흡을 곤란하게 하거나 나무나 풀 등의 잎에 달라붙어 생장(生長)을 방해 한다. 그때 그 공장에서 일 했던 직원이나 주변에 살았던 주민들 중에는 ‘먼지가 폐에 들어가 호흡기능에 장애’를 일으키는 진폐(塵肺)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지금도 있다고 한다.
<시멘트공장에서 배출하는 연기 - 네이버캡쳐>
환경에 대한 지식이 한참 모자랐던 시절에 발생했던 슬픈 유산이다. 과거 먼지가 많이 발생하는 광산 등에서 일 했던 사람들도 진폐증(塵肺症)을 호소하는 사례가 있었다. 먼지가 공기 중에 섞이면 우리는 선택의 여지없이 마실 수밖에 없다. 방법은 공기 중에 나쁜 먼지가 섞이지 않게 하는 방법뿐이다.
<석회석채취로 피복이 벗겨진 산>
또한 과거 농어촌에서 지붕개량사업으로 얹어 놓은 스레이트(slate) 지붕과 대도시의 지하철에서 불연재(不燃材)나 방열재(放熱材)로 사용했던 재료는 석면(石綿)이 주 원료인데, 부식하여 먼지가 되면서 지하상가나 지하철역 등에서 생활하는데 위협이 된다고 하니 걱정이 앞선다. 석면은 암을 일으키는 위험한 물질로 분류되어 정부에서는 철저하게 관리한다고 알려 졌다.
<석회석채취로 잘여나간 산 - 네이버캡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속담이 있다. ‘어떤 일이 벌어진 후에 어리석게도 야단법석을 떤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비록 소를 잃었다 하더라도 고칠 외양간이 있으면 빨리 고쳐야 한다.
<맑은 하늘>
<정유순의 ‘우리가 버린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서>
https://blog.naver.com/waya555/222963217062
첫댓글 ㅎㅎ
비오는 날은
시골에서는 우중명일 이라고 우스게소리로 들어는 봤어요ㆍㅎㅎ
그렇죠.
옛날에는 비 오는 날이 쉬는 날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