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인도에서의 불교 유적은 땅에서 발굴해낸 유적지 밖에 없는 셈이다.
사르나트가 부처님이 최초로 설법한 곳이라는 것이 확인된 것은 아쇼카왕의 석주 때문인데 그 석주에 그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프레드릭 와르텔이라는 사람이 사르나트를 발굴하면서 1905년 아쇼카왕의 석주와 4머리 사자상
사르나트의 유적군 서쪽에 위치한 5개의 아쇼카 석주는 본래 15m 높이였으나 현재는 2m 남짓한 하단부만 부러진 채 남아 있다.
석주에는 불교의 분열을 경계하는 아쇼카 왕의 당부가 새겨져 있고, 기둥 꼭대기는 4마리의 사자상이 놓여 있었다. 사자상은 현재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이슬람제국이 들어서면서 기둥을 훼손하고 땅 속에 묻어 버렸다.
다메크 스투파보다 더 큰 다르마지카 스투파
다르마라지카 탑(Dharmarajika Stupa)은 탑의 기단부만 남아 있지만 초전법륜 탑인 다메크 탑보다 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르마라지카'는 '진리의 왕'이란 뜻이라 한다. 벽돌로 이루어진 탑의 기단부 직경은 31.5m로 원형이 많이 남아있는 직경 28.5m의
다메크 탑보다 크다.
영국 식민지 시절인 1794년에 바라나시 지역의 지방장관 '쟈갓 싱(Jagat Singh)'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저택을 짓기 위하여 부처님
의 사리탑인 마르마라지카 탑을 헐어 벽돌을 채취하던 중에 알 수 없는 고대 문자가 새겨진 상자를 발견하였다.
쟈갓 싱은 상자에 쓰인 문자를 해독하지는 못하였으나 사리함과 안에 들어있던 대리석으로 만든 사리병에는 관심이 있어서 사리
병에 담긴 내용물을 갠지스 강에 버리고 사리함과 사리병은 보관하였다고 한다.
1798년 'J 던컨'이라는 사람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세상에 널리 알림으로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조사와 연구 끝에
그것이 부처님의 사리함과 사리병이며 갠지스 강에 버린 내용물이 부처님의 '진신사리(Sarira)'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부처님의
사리를 찾을 길은 없게 되었다고 한다.
불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런 크기의 다르마지카는 파키스탄의 탁실라에도 있는데(2019년도에 가서 보았음)
파키스탄 탁실라의 다르마지카 스투파
다르마지카가 여러 곳에 세워지게 된 이유는 석가모니가 사망한 뒤 다비할 적에, 그 사리를 받고자 인근 8개 왕국이 사람을 보내어
전쟁이 일어날 뻔했다. 이때 한 바라문이 나서서 중재하고 사리를 8등분하여 각 나라에 전해주었고, 사리를 받은 나라 부족은 각자
기념물을 세워 기념했다. 8개 나라 부족이 받았으므로 당연히 사리탑도 모두 8기라 '근본8탑'이라고 부른다.
석가모니가 사망하고 수백 년이 지나 아쇼카 왕이 인도를 통일하고 불교에 귀의하면서 탑을 여럿 만들고자 했다. 아쇼카 왕은 근
본8탑 중 단 한 기만 제외하고 나머지 7기의 내부에 모신 사리를 꺼내어 덜어낸 뒤, 인도의 각 지방으로 보내어 불사리탑을 짓도록
명령했다. 불교의 기록에 따르면 이때 아쇼카 왕이 인도 전역에 불사리탑 8만 4천 기를 세웠다고 하는데, 불교에서 '8만 4천'이란
숫자는 '극히 많음'을 가리키는 상투적인 표현이므로 정말로 8만 4천 기는 아닐 것이다.(나무위키)
기도를 하면서 거니는 비구니
폐허는 무심하지만 무심한 폐허 위에서 인간이 세월의 무상과 종교의 배타성에 대해서 괜히 생각해 본다.
단체로 오는 사람들은 순례객들이다.
설명하는 사람의 복장과 앉아 있는 사람들의 복장을 보면 한국사람들이다.
다메크 스투파(탑)으로 진리를 보는 탑이라는 뜻이며 최초로 다섯 제자들에게 설법한 자리라고 한다.
다메크 탑의 기단에는 순례자들이 공양의 의미로 붙인 금박자국이 있다.
기념 사진을 찍는 미얀마에서 온 순례자들과 각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미얀마는 불교국가이다.
불교의 교리와 힌두교의 교리는 공통점이 많은데 방법은 다르지만 윤회와 해탈을 목적으로 하는 것도 같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카스트제도를 부정하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모든 인간 안에는 불성이 있어서 누구나 성불을 할 수 있지만,
힌두교에는 카스트제도가 철저하며 브라만 이외의 자들은 수행을 통한 해탈의 길에 들어설 수 없다.
카스트끼리는 교류가 금지될 정도로 엄격하게 구분하며 불가촉천민은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다.
기원을 하면서 다메크 스투파를 도는 사람들...시계방향으로 돈다
사르나트에서 최초로 설법한 녹야원 ..삼장법사도 이 곳에 들렀고 혜초도 이곳을 들렀었다. 그 때는 이곳에 승려만 1,500명이 넘었
던 곳이라고 ...
https://youtu.be/uOsSZY8J4_s?si=WdQYQgDLWuWBgwJP...녹야원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