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도에서도 타지 않은 심장 / 베트남 틱꽝득 스님
“우리나라(베트남) 불교가 고난의 때임을 보고,
여래의 장자로 명명되는 수행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불교가 멸망해 가는 것을 좌시할 수 없어
이 한 몸 불살라 제불(諸佛)에 공양하고
그리하여 불교를 지키는 공덕을 행할 수 있기를 기꺼이 청합니다.”
1963년 6월 11일 오전 10시 남베트남 사이공.
‘소신공양’의 뜻을 밝혀온 틱광득 스님이 마침내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폈다.
그는 격렬한 불길 속에서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그 모습은 사진기자 말콤 브라운의 렌즈에 담겨 전 세계로 전송됐다.
그리고 인류는 그 모습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틱꽝득은 1897년 베트남에서 태어나 15살이 되던 해 불교에 귀의했다.
그 후 틱낫한 등 많은 제자들을 배출, 뛰어난 인품으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다. 그렇다면 그의 심장은
왜 베트남 국립은행에 보관된 것일까.
이는 응오딘지엠 정권과 관련이 있다.
응오딘지엠은 자신의 가족과 측근들을 고위 관직에 임명해
부정부패를 일삼고, 반 정부 단체를 단속하고 탄압하는 등
독재 정치를 펼쳤다. 특히 불교를 탄압하고 박해했다.
자신이 로마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는 불교 사찰을 훼손하고,
석가 탄신일 행사를 금지하는가 하면, 승려들에게 총을 쏘기도 했다.
이에 틱꽝득을 비롯한 승려들은
1963년 5월 가두 행진을 하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계속되는 시위에도 불구,
응오딘지엠 정권은 강경 진압으로만 맞섰다.
결국 틱꽝득은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
가두 행진 1달째인 6월 11일, 미국 대사관 한복판에
가부좌를 하고 앉은 그는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독재 정권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소신공양을 하기로 한 것.
그는 소신공양을 하기 전, 다른 승려들에게
"앞으로 넘어지면 흉조이고
뒤로 넘어지면 평화를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놀랍게도 그는 온몸이 화염에 휩싸였음에도
끝까지 가부좌 자세를 유지했다.
그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오열하며 슬퍼했고,
시위를 막아서던 경찰들 역시 받들어 총 자세로 경의를 표했다.
결국 10여 분 뒤 틱꽝득은 뒤로 쓰러지며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후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소신공양 이후 틱꽝득의 시신은 소각장으로 옮겨져
6시간 동안 더 태워졌는데, 4천 도 씨의 불에서도
그의 심장이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후 연료를 보충해 2시간을 더 태웠지만,
여전히 그의 심장은 없어지지 않았고,
심지어 경찰들이 황산을 뿌려도 심장은 녹지 않았다.
틱꽝득 스님의 심장
이에 응오딘지엠이 그의 심장을 가져가려 하자,
승려들은 틱꽝득의 심장을 사수해 프랑스 은행에 맡겼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소신공양을 하는 그의 사진과 함께
전 세계에 보도돼 큰 화제를 일으켰다.
“눈을 감고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감히 응오 딘 지엠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박애와 자비의 마음으로 국민을 위해 종교평등의 정책을 실행하고,
그리하여 영구적으로 나라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출처 : MBC 서프라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