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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의 길 5코스 제2부
신촌동평화누리길쉼터-소라지로-송촌교-
평화의삼거리-검단사입구-장준하추모공원-
고려통일대전입구-파주장단콩웰빙마루-
통일동산공원-성동사거리-새오리로입구
20250108
1.코스 소개 : 생략. 1부 참조.
2.장준하추모공원과 큰 파주의 빛
제2부 : 파주시 신촌동 공구·공작기계업체인 '나원기계' 앞 평화누리쉼터에서 자유로 옆 재두루미길을 따라간다. 파도로 치솟는 국토 사랑의 뜨거움이 정면에 보이는 오두산통일전망대로 날아간다. 오두산통일전망대 아래서 임진강과 한강이 합수하듯 우리 겨레와 국토가 평화통일로 어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국토'의 시인 조태일(趙泰一, 1941~1999)이 성큼 다가온다. 그의 이름 큰(泰) 하나(一)가 국토 사랑의 뜨거움으로 생애를 달궜고, 큰 하나를 이루기 위해 독재 세력과 큰 싸움하다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떴다. "발바닥이 다 닳아 새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 조태일의 '국토 서시(國土序詩)' 전문
신촌동에서 송촌동 들녘을 가로질러 송촌동9반 버스정류소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언덕에서는 걸어온 신촌동과 송촌동, 한강 건너 김포반도 북단이 환하게 보인다. 김포반도 북쪽 끝이 황해북도 개풍군 관산반도를 향해 한강(조강) 북쪽으로 쑤욱 내밀고 있다. 그런데 한강(조강) 가운데로 군사분계선이 지나고 있다. 강에서는 물고기들이, 하늘에서는 새들이 군사분계선을 자유로이 오고가지만 겨레는 국토를 오갈 수 없다. 탐방객은 마음만 흥분할 뿐이지 실천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니 현실 변화에 아무 소용이 없는 안일한 현실주의자요, 감정 낭비의 낭만주의자로 덜컹거릴 뿐이다.
송촌동 언덕길 도로명은 '소라지로'이다. '소라지-'가 무슨 뜻일까? 이 마을이 소나무가 많은 곳이어서 송촌동(松村洞)이라 불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소라지는 송촌(松村)의 토박이말로, 소나무(솔+나무)의 '솔'을 어원으로 분석하면 될 듯싶다. '솔가지(솔+가지)'가 솔아지, 소라지로 변하였을 것이라 추정한다면, 이곳의 원래 지명은 소라지마을이었는데, 한자로 송촌동이 되었을 것이다. 도로명을 지을 때 이 지역의 토박이말을 살려서 송촌로 대신에 소라지路라고 명명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소나무가지길, 솔가지길을 따라 솔가지마을을 통과한다. 솔가지마을에는 여러 산업체들이 자리하고, 카페들이 즐비하다. 소나무숲 언덕을 넘어 마을로 내려간다. 자유로 동쪽, 공릉천 하구에 자리한 마을은 공릉천이 범람하면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가지길은 하구마을을 통과하여 공릉천변 철책에서 재두루미길과 재회한다. 재두루미길은 한강하류 철새도래지에 접한 자유로 동쪽으로 이어지는 길로 신촌동 문발교사거리에서 시작한다. 평화의 길은 재두루미길과 동행하다가 송촌동 들녘길로 나오면서 재두루미길과 작별하고, 재두루미길은 계속 자유로를 따라 공릉천 하구로 이어져 공릉천 하구에서 공릉천 남쪽 둑방길을 따라 송촌교 남단에서 끝나는 길이다. 재두루미길과 소라지길(솔가지길)은 평화의 길 5코스 탐방 후반부에서 전체 지리적 위치를 알려주는 중요한 도로이다.
공릉천은 일제강점기 때 곡릉천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2009년 1월 1일 제 이름을 되찾았다. 이름이 왜 공릉천일까?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에 있는 공릉(恭陵)은, 세조의 둘째 아들로 조선의 8대 왕에 오른 예종의 원비(元妃) 장순왕후 한씨의 능이며 장순왕후는,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난의 1등 공신 한명회의 셋째 딸이다. 공릉천은 공릉 앞을 흘러오는 하천이라고 하여 명명되었는데, 간신배 한명회의 혈통이 그늘져 있다. 한명회가 노닐던 한강 남쪽의 정자가 압구정인데, 현재 압구정은 터만 남았고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들어서 있으며, 압구정로는 압구정의 한명회를 수많은 학자들이 찾아왔다고 하여 학자나무 회화나무를 가로수로 심어 놓아서 꽃이 피었다 떨어질 때는 회화나무 꽃물이 몹시 진득하여 길바닥이 끈적끈적하다. 간신배를 찾아온 학자들이 과연 진정한 학자들일까? 그들 또한 권력욕에 사로잡혀 권력의 한 자리를 탐하는 유유상종이라는 생각이 든다. 간신배 한명회의 압구정이 흘러흘러 파주시 공릉천 한강 하구에서 장순왕후 흔적과 만난다. 그 흔적 위로 공릉천의 습지가 펼쳐지고, 철새가 날아오며, 인간의 문명이 자연과 조화한다. 공릉천 주변에 금촌 신도시, 운정 신도시, 탄현 신도시의 고층아파트들이 치솟아 있고, 통일동산 관광특구가 조성되어 여러 문화콘텐츠들이 자리한다. 파주시 공릉천 하구 건너편 김포반도와 북쪽 황해도 개풍군 관산반도가 하나가 되어 이 풍요한 한강의 물길을 자유로이 오가기를 바라는 겨레의 염원은 꿈속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파주시 송촌동과 탄현면 법흥리를 경계하는 공릉천의 송촌교 남단에서 재두루미길과 소라지로는 만남과 이별의 기쁨과 슬픔을 나눈다. 이곳에서 재두미길은 끝나고 송촌동 동쪽으로 이어져온 소라지로가 송촌교를 건넌다. 평화의 길은 소라지로를 따라 법흥리 평화의 삼거리까지 동행하며 이곳에서 소라지로는 법흥리 신세계아울렛 방향으로 이어가고, 평화의 길은 작품 '평화의 삼거리' 벽화가 조성된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필승로를 따라간다. 필승로의 검단사 갈림길에서 평화의 길은 검단사 방향으로 파주 살래길을 따라가는데, 우리 일행은 평화의 길을 이탈하여 필승로를 따라 장준하를 만나러 간다.
필승로 간선에서 지선이 갈리는 모퉁이에 장준하선생 추모공원이 있다. 장준하 선생 추모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장준하 선생이 걸어온 길' 추모벽에 새겨진 선생의 삶을 마주하기가 두렵다. 선생은 일제강점기의 광복군으로, 해방 조국에서 정치인과 민주화 운동가로서, 그리고 언론인으로서 조국의 미래를 위해 가열찬 삶을 살다가 결국 유신독재자 박정희의 권력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선생의 사상과 그 실천, 일관된 삶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었다. 그래서 그의 삶은 '민주혼의 숨결로서, 그가 발간한 월간종합교양지 「사상계」와 자서전 「돌베개」에 잘 나타나 있다. "조국애를 몰라서 조국을 귀하게 여기지 못했고, 조국을 귀중하게 여기지 못하여 우리의 선조들은 조국을 팔았던가. 우리는 또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으련다. 나는 또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이 가슴의 피눈물을 삼키며 투쟁하련다. 이 길을 위해 나는 가련다. 나의 인생의 과정은 '또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라는 이정표의 푯말을 꽂고 이제부터 나를 안내할 것이다."(「돌베개」 중에서) 이 뜨거운 가슴의 피눈물은 우리 조국과 후손의 희망이다. "나는 또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이 가슴의 피눈물을 삼키며 투쟁하련다." 우리의 미래는 이런 분들에 의해 밝아지는데, 대한민국 현 정국에서 까마득한 못난 조상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정치꾼들과 모리배들이 궤변을 외치고 있다.
파주NFC(축구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 울타리를 따라 필승로 지선을 따라오면 고려통일대전 입구가 나온다. 언덕에 보이는 고려통일대전은 사단법인 고려역사선양회에서 고려의 민족 통일 정신과 고려의 역사를 제고하기 위하여 준공한 대궐로서 왕건 태조 영정 및 위패와 역대 왕위 및 배향위를 봉안하는 정전(正殿)을 비롯하여 충신각(忠臣閣), 공신각(功臣閣), 수복방(守僕房), 강당(講堂), 내삼문(內三門), 서문(西門) 등의 건물을 고려시대 양식으로 건축하였다고 한다. 고려의 민족 통일 정신이 고려 대궐을 짓는다고 선양되는 것인가? 장준하 선생처럼 행동과 실천으로 고려 민족통일 정신을 밀고 나갈 때 김포반도와 관산반도, 파주평야는 하나가 된다.
(주)파주장단콩웰빙마루는 '해스밀래 로컬푸드(직판장)', '해스밀래 The Table(한식)', '해스밀래 Cafe(카페와 디저트)'를 운영하는 6차산업의 농촌 융복합단지로서, 2021년 11월 11일 개장하였고, '해스밀래'는 '해가 스미다'의 뜻으로 파주 농산물의 기운이 햇살처럼 온 세상에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이곳에 안내된 파주 장단삼백(長湍三白)은 파주 지역 특산물인 한수위 파주쌀, 파주 장단콩, 파주 개성인삼을 이른다고 한다. 2층 '해스밀래 The Table & Cafe' 전망대로 올라가서, 작별한 평화의 길 5코스 파주 살래길, (주)파주장단콩웰빙마루의 항아리마당, 파주NFC(축구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 오두산통일전망대 등 통일동산 일대를 훑어 보았다.
2층 '해스밀래 The Table & Cafe'에서 내려와 성동로 지선을 따라 성동리 문화&전시장 신축공사장을 지나서, 검단사 갈림길에서 헤어졌던 평화의 길과 반갑게 재회한다. 평화의 길은 파주 살래길을 따라 통일동산 고산원공원과 탄현 유아숲체험원을 거쳐 통일동산 공원 입구 성동로 지선으로 내려오고 있다. 우리 일행은 잃어버린 다정한 길동무를 되찾은 듯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제부터 평화의 길과 동행하여 왼쪽 통일동산 공원으로 이어간다. 지도와 평화의 길 안내도에는 이 공원을 통일동산이라 이르는데, 탐방객이 판단하기에 통일동산은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와 법흥리 일대에 조성한 관광특구 전체를 이르며, 이 관광특구를 일반적으로 통일동산이라 부르는 것 같다. 그래서 통일동산이라 적혀 있는 이곳은 통일동산 근린공원 이르는 것이 나을 듯싶다.
통일동산 공원에는 비둘기들이 부조된 통일기념탑이 조성되어 있으며, 평화의 길 정코스는 이 공원을 서쪽에서 동쪽 끝 평화로까지 이어간다. 통일동산 공원 동쪽 입구 평화로에는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의 전통건축부재 보존센터와 전시관이 있어, 파주시 통일동산 전통문화의 빛이 밝게 반짝인다.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에서는 수집한 부재를 통해 전통건축유산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공유하기 위해 2023년 8월 1일에 전시관을 개관하였으며, 숭례문 탄화 부재를 활용한 숭례문 상층 가구 재현물 등 여러 부재를 전시한다. 야외에는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의 사랑채와 집무실로 알려진 아재당(我在堂)을 전시하는데, 오랜 기간 동안 다른 장소에 이축, 해체·보관되어 있던 아재당의 본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재건하였다고 한다.
또한 전통건축부재 보존센터와 전시관 가까이에는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가 있어, 파주 통일동산의 전통문화의 빛은 더 휘황찬란해지는 느낌이다. 경기도 북부지역 첫 국립박물관으로 2021년 7월 개관한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은 유물과 아카이브 자료를 보관하고 관리하는 동시에 전시기법을 접목한 개방형 수장고이자, 관람객과의 거리를 좁힌 관람 친화적인 박물관으로, 총 15개 수장고에 약 100만 점 이상의 소장품과 아카이브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파주는 분단 접경 지역의 소외 지역이 아니다. 큰 파주는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자연 풍경과 인문 문화가 빛나게 어우러지는 대한민국 미래의 희망으로서 못난 조상이 되지 않으려는 뜨거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파주(坡州)여, 너를 칭송한다.
3.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22.5km
전체 소요 시간 : 5시간 47분
공구·공작기계업체인 나원기계 앞에 '출판단지·신촌동' 버스정류소, 그 옆에 평화누리길쉼터와 체력단련장이 조성되어 있다.
'출판단지·신촌동' 버스정류소 앞에서 평화의 길은 오른쪽 재두루미길을 따라 중앙 뒤에 보이는 광고제작업체인 (주)싸인텔레콤 파주공장 앞으로 이어간다. 성동사거리 6.7km 지점이며, 왼쪽 길은 자유로 진출로이다.
(주)싸인텔레콤 파주공장 앞 재두루미길에서 자유로와 한강 건너 김포반도를 조망한다. 중앙 왼쪽 맨 뒤에 문수산, 오른쪽 가로등 기둥 뒤 한강 건너에 김포시 하성면 후평리 연화산이 가늠된다.
왼쪽에 자유로와 한강철책, 왼쪽 뒤에 임진강이 한강에 합수되는 관음포, 중앙 뒤에 오두산통일전망대가 가늠된다. 2027년 완공 예정인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김포-파주) 한강하저터널이 재두루미길 앞에 보이는 소나무 뒤쪽으로 통과하는 듯.
파주시 신촌동 국제물류 파주물류 센터 앞 들녘에서 쇠기러기들이 낙곡(落穀)을 먹고 있다.
재두루미길에서 평화의 길은 오른쪽 농로로 이어간다. 왼쪽 뒤에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오두산통일전망대가 보인다.
평화의 길은 시멘트 농로를 따라간다. 앞쪽은 파주시 신촌동, 뒤쪽은 파주시 송촌동 지역이다.
시멘트 농로 갈림길에 평화누리길 이정목이 세워져 있으며, 평화의 길은 왼쪽으로 이어간다.
시멘트 농로 갈림길의 평화누리길 이정목에서 왼쪽 길로 이어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어 송촌동 들녘을 가로지른다.
파주시 송촌동 들녘을 가로질러 오른쪽 막스시오G스페이스 베이커리&카페 앞으로 이어간다.
오른쪽 언덕 위에 동화나라유치원, 중앙에는 카페들이 자리한다. 평화의 길은 중앙 뒤 언덕 '소라지로'로 올라간다.
막스시오는 수입의류판매점, 그 옆 막스시오G스페이스는 베이커리&카페이다. 평화의 길은 구릉지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소라지로263번길을 따라 막스시오G스페이스 옆 언덕길을 따라 올라간다.
소라지로263번길을 따라 언덕으로 오르는데 오른쪽 터에 와불 안내판이 붙은 석불과 십이지신상 모형들이 조성되어 있다. 화순 운주사 와불의 모형물을 세워놓은 것 같다.
소라지로163번길을 따라 언덕의 '소라지로길'로 올라오면 송촌동9반 버스정류소가 있고, 건너편 주택 입구에 행주 기씨(幸州奇氏) 정지공파(廷芝公派) 표석이 세워져 있다. 오른쪽의 마코펫은 반려동물용품 판매점이다.
파주시에 거주하고 있는 행주 기씨는 송촌동 감골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데, 행주 기씨가 감골마을에 들어 온 것은 15세기이다. 입향조 기정지(奇廷芝, 1461년생)의 묘가 다율동에 있으며, 현재 송촌동에 행주 기씨가 40여 호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소라지로 버스정류소 옆에서 걸어온 파주시 송촌동 들녘과 막스시오G스페이스, 운주사 와불 모형물이 세워져 있는 곳을 확인한다. 한강 건너 김포반도 왼쪽에 봉성산과 전류리포구, 하성면 지역의 김포평야, 오른쪽의 연화산을 가늠한다.
소라지로를 따라 송촌동9반 지역을 향해 가다가 송촌동9반 버스정류소와 송촌동1반으로 이어지는 남쪽 방향을 뒤돌아본다.
소라지로길을 따라 닭요리 전문점인 고래시골닭 건물 앞을 통과한다. '소라지'는 송촌(松村)을 뜻하는 토박이말이라고 한다.
고래시골닭 건물 오른쪽에서 파주시 송촌동과 탄현면 갈현리·법흥리에 걸쳐 펼쳐진 파주평야를 조망한다.
고래시골닭 건물 오른쪽에서 파주시 송산동과 연다산동에 걸쳐 펴쳐진 파주평야를 조망한다.
고래시골닭 음식점 앞에서 소라지길을 따라 내려오면 송촌리 버스정류소가 있고, 한강 건너편에 김포반도가 보인다. 2011년 7월 25일 파주시 교하읍 송촌리는 파주시 송촌동으로 개편되었는데, 송촌9반 북쪽 지역을 지금도 송촌리라고 이르는 듯.
송촌리 버스정류소 옆에서 한강과 건너편 김포반도 김포시 하성면 석탄리·후평리 지역을 조망한다. 한강 동쪽에는 자유로가 달리고, 한강 건너 중앙 뒤의 연화산, 오른쪽 뒤의 임진강이 한강에 합수하는 관음포,그 뒤의 황해북도 개풍군 관산반도를 가늠한다.
소라지로 좌우에 물류업체 '주식회사 핫프렌즈(HF)', 육류음식점 '핏보이즈바베큐', 카페&디저트 '아레볼', 카페 'LP갤러리', 카페&디저트 '아늑', 디저트&카페 '우연히설렘' 등이 자리한다. 중앙 맨 뒤에 탄현면 법흥리 헤이리마을이 가늠된다.
소라지로 서쪽에 현대해운 경기지사가 자리하고, 한강 건너 김포반도 최북단 김포시 하성면 시암리와 관음포가 확인된다.
인테리어소품 창고형 매장&온라인쇼핑몰 '이스턴원'이 송촌리 종점 버스정류소 맞은편에 있다.
송촌리 종점 버스정류소 앞 갈림길에서 평화의 길을 단축하여 소라지로를 따라가면 송촌교로 이어지며, 평화의 길은 버스정류소 왼쪽 소라지로327번길을 따라 언덕을 올라갔다가 공릉천 마을로 내려가 공릉천의 송촌교로 이어간다.
송촌리 종점 버스정류소 갈림길에서 소라지로327번길을 따라 언덕을 올라와 왼쪽으로 내려간다.
소라지로327번길을 따라 언덕을 내려오면 자유로가 왼쪽에 달리고 오른쪽 뒤에 오두산통일전망대가 보이며, 그 앞쪽은 임진강이 한강에 합수하는 관음포이다.
왼쪽은 재두루미길, 오른쪽 'The Limo(더리모)&' 기업 앞의 소라지로327번길을 따라 송촌동 하구마을을 통과한다.
판촉&기념물 업체 (주)한흥티다이를 돌아 왼쪽으로 이어간다. 중앙 언덕에 한옥펜션 '살림채'가 나뭇가지에 가려 있다.
소라지로327번길 주변에 여러 산업체들이 자리한다. 오른쪽 '빅인터내셔널' 기업 오른쪽 언덕에 한옥펜션 '살림채'가 있다.
파주시 송촌동 소라지로327번길을 따라가며 왼쪽 뒤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오두산통일전망대를 살핀다.
소라지로327번길을 따라 공릉천 하구마을을 통과해 재두루미길로 나왔다. 철책 뒤에 공릉천이 한강에 합수하고, 자유로의 송촌대교가 공릉천 하구를 가로지른다. 왼쪽 뒤는 임진강이 한강에 합수하는 관음포, 그 오른쪽에 오두산통일전망대가 있다.
왼쪽 소라지로327번길을 따라와서 재두루미길로 나왔다. 오른쪽 뒤에 공릉천 하구를 가로지르는 송촌대교가 보인다.
재두루미길을 따라 공릉천을 가로지르는 송촌교 입구로 이어간다.
재두루미길은 파주시 송촌동 공릉천 송촌교 남단의 소라지로와 만나는 지점에서 끝난다.
송촌교 남단 출입구 옆에 공릉천 설명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철새의 낙원 공릉천(恭陵川) : 양주 챌봉 계곡에서 발원, 고양시를 거쳐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에서 한강과 합류하는 유로 연장 75km의 국가하천이다. 송촌대교 일원과 하구에 습지가 발달하여 저어새, 흰꼬리수리, 재두리미, 개리 등 철새가 관찰되고 삵, 고라니 등이 서식한다. 하천명은 파주시 조리읍에 소재한 조선 제8대 예종의 원비 장순왕후 능인 공릉에서 유래하였고, 일제 때 구부러진 하천의 모양 때문에 곡릉(曲陵)으로 바꿔불리다가 2009년 1월 1일 파주시의 노력으로 원래 이름을 찾게 되었다.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를 지나는 공릉천을 가로지르는 송촌교를 건넌다.
송촌교를 건너며 동남쪽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 지역의 공릉천과 습지를 살핀다. 중앙 뒤쪽 파주시 금촌 지역이 가늠된다.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공릉천 서쪽에 드넓은 습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뒤쪽은 파주시 운정신도시 지역일 것이다.
송촌교와 왼쪽은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송촌교 건너는 파주시 송촌동 지역이며 왼쪽 뒤는 운정신도시 지역일 것이다.
공릉천 하구를 송촌대교가 가로지르고, 중앙 뒤는 임진강이 한강에 합수하는 관음포구 지역으로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김포시 하성면 시암리, 황해북도 개풍군 관산반도가 만나는 곳이다. 오른쪽에 오두산통일전망대가 보인다.
공릉천 하구를 자유로의 송촌대교가 가로지르고, 한강 건너에 김포반도 최북단 김포시 하성면 후평리와 시암리 지역이 황해북도 개풍군 관산반도 방향으로 길게 벋어 있다.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와 갈현리가 경계를 이루는 송천교 북단 지역을 건너 소라지로 왼쪽으로 이어간다.
송천교 북단에서 북쪽 방향의 소라지로를 따라 중앙 뒤 통일동산하수처리장 앞으로 이어간다. 오두산통일전망대가 보인다.
법흥리 들녘에 겨울 철새들이 낙곡(落穀)을 쪼고 있고, 건너편에 파주프리미엄신세계 아울렛이 보인다.
왼쪽은 탄현면 법흥리, 오른쪽 위는 탄현면 갈현리 지역이며, 왼쪽 뒤에 법흥리 시가지 건물들이 솟아 있다.
공릉천 철책 북쪽 소라지로를 따라 통일동산하수처리장 솔숲에 조성된 평화누리길 쉼터로 이어간다.
평화누리길 쉼터를 지나 송촌대교 북단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자유로 옆 소라지로를 따라간다.
평화누리길 쉼터에 공릉천 친수공간조성 기본계획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통일동산하수처리장을 지나 소라지로를 따라간다. 소라지로는 오른쪽 뒤 탄현면 법흥리 신세계아울렛 앞까지 이어진다.
솔숲 왼쪽 송촌교 북단에서 소라지로를 따라 오른쪽 통일동산 하수처리장을 거쳐왔다. 왼쪽 뒤에 운정신도시가 보인다.
소라지로와 작별하고 지하통로로 이어간다. 지하통로 입구 벽에 작품 '평화의 삼거리' 설명안내판이 붙어 있다.
지하통로 입구 벽에 '바다조형(호해란, 권연희, 정순희)' 팀에서 제작한 작품 '평화의 삼거리' 설명안내판이 붙어 있다.
작품 '평화의 삼거리'가 설치된 '파주 오두산(탄현면 1001) 굴다리' 지역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강화도 방면의 서해로 흘러가는 합류지역입니다. 여기에 공릉천 하구 습지까지 더해져 왜가리, 저어새, 개리 등의 이동 쉼터이자 황복 등 각종 물고기들의 서식지가 되어 넓은 생태공간을 이룹니다. 이곳은 역사적으로는 물적, 인적 교류의 소통 통로이자 문화와 경제의 요충지로써 '물의 삼거리'라고 불렸던 지역입니다. 강변 너머 4km에 자리한 북녘의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남북이 가깝게 맞닿은 이곳은, 분단 이후 남북이 수십 년간 대립하는 최전선이 되어 오직 새들만 자유롭게 오가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한반도에 화해 분위기가 조성됨에 따라 이 평화와 소통의 지역으로 다시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평화의 삼거리'라는 이름의 작품을 제작하였습니다. 이곳이 다시금 평화가 저 강물처럼 흐르고 희망이 무지개처럼 떠오르는 곳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자유로 출로의 지하통로 좌우벽과 천정에 작품 '평화의 삼거리' 벽화가 조성되어 있다.
지하통로 삼면에 그려진 작품 '평화의 삼거리'는 한강 하류와 주변 지도를 배경으로 하여 자연 풍경을 그렸다.
지하통로를 나와 평화누리 자전거길 이정목 앞에서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평화누리길과 경기둘레길 이정목 앞에서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성동사거리 2.2km 지점이다.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신세계아울렛 방향으로 오른쪽의 소라지로와 왼쪽의 필승로가 달린다.
평화의 삼거리에서 필승로의 횡단보도를 건너 필승로를 따라 검단사 방향으로 이어간다.
평화의 길은 필승로를 따라 검단사 입구로 이어간다. 왼쪽에 자유로가 달리고 그 뒤에 오두산통일전망대가 보인다.
평화의 길은 오른쪽 검단사 방향으로 들어가 파주 살래길을 따라가야 하는데, 일행은 장준하추모공원 방향으로 향한다.
검단사(黔丹寺)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오두산(鰲頭山)에 있는 사찰. 경기도 파주시 필승로 292-33(탄현면 성동리 689)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봉선사의 말사이다. 847년(신라 문성왕 9) 혜소(慧昭)가 창건하였다. 혜소는 얼굴색이 검어 흑두타(黑頭陀) 또는 검단(黔丹)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찰 이름은 그의 별명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일설에는 사찰이 있는 오두산이 검은 편이라 검단사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창건 이후 조선 중기까지의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창건 당시에는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파주시 문산읍 운천리에 있었으나, 1731년(정조 7) 장릉(長陵)을 탄현면 갈현리로 옮길 때 함께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한다. 이후 장릉에 제사를 지낼 때는 이 사찰에서 두부를 만들었다고 해서 한때는 두구사(豆拘寺)라고도 불렀다.
1906년 김정호(金正昊)가 법당을 중수하였다. 건물로는 법당인 법화전과 요사가 있고, 유물로는 아미타불탱화와 신중탱화·검단선사영정 등이 전한다. 탱화는 19세기말에 제작된 것이고, 검단선사영정은 고려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원본을 토대로 조선 후기에 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법당 내의 석불은 등신불(等身佛)로 천여 년간 버려져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 때 인근 금산리 보현암에서 수습하여 보존해오던 것이다. - 두산백과
왼쪽은 성동IC 방향으로 자유로가 달리고, 일행은 평화의 길을 벗어나 필승로를 따라 장준하추모공원으로 이어간다.
필승로 보도에서 장준하선생 추모공원과 언덕의 장준하묘소를 살피고 출입구를 통해 추모공원 안으로 들어간다.
고 장준하(1918~1975)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 항일독립운동을 하고 광복 후에는 '사상계'를 창간해 지식인의 등대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자 온몸을 불살랐다. 지난 1975년 8월 17일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후 파주시 광탄면 신산리 소재 '천주교 나사렛 묘원'에 안장됐다. 파주시가 2억5000만원을 투입, 탄현면 성동리 688번지에 3967㎡(약 1200평) 규모로 조성되는 장준하 선생 추모공원엔 유골을 안장한 추모대와 길이 40m, 높이 50cm~2.8m에 이르는 추모벽이 만들어졌다. 추모벽은 선생의 높은 뜻과 희생정신을 백두대간으로 형상화했다. 또한 좌우로 나누어진 추모벽 정중앙에 선생의 고행과 정신을 기리는 상징적 요소인 '돌베개'를 놓고 분단된 산맥을 하나로 이어 선생의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 좌측벽에는 출생부터 영면에 이르기까지 연보(年譜)를, 우측벽에는 대표적인 저서 '돌베개'와 당대 지식인의 등대 역할을 했던 '사상계'에 대한 소개, 그리고 선생의 어록과 추모글 등을 수록했다. - 2012. 8. 16. 조선일보 오경환 기자
필승로 갈림길 오른쪽에 장준하공원 출입구가 있으며, 건너편에 파주NFC(축구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가 있다.
장준하선생 추모공원 안으로 들어가 추모벽을 살핀다. '장준하 선생이 걸어온 길' 추모벽에는 출생과 성장, 구국장정의 길, 지성의 좌표 「사상계」, 민주혼의 숨결 등 5부로 구성되어 새겨져 있다. 그 중 '민주혼의 숨결' 내용을 옮긴다.
민주혼의 숨결 : 1967년 야권의 '4자 회담'(유진오 윤보선 이범석 백낙준) 막후에서 주선. 5.3 대통령 선거 후 선거법 위반으로 또다시 구속(국가원수모독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 서울 동대문구 을구 신민당 후보 출마, 옥중 당선/ 1971년 자서전 「돌베개」 출간/ 1972년 「씨알의 소리」(발행인 함석헌) 편집 위원으로 활동/ 1973년 '10월 유신'에 대하여 양일동씨와 함께 통일당 창당, 최고위원 취임. 민주 회복을 위한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 주도/ 1974년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혐의 구속,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 선고. 심장협심증과 간경화 증세가 악화되어 형집행정지로 출감/ 1975년 9월 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죽음, 파주 광탄면에 영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1995년 제20주기 추도식 및 추모문집 「민족혼, 민주혼, 자유혼」 출판기념회/ 1999년 금관문화훈장 추서
장준하의 저서 「돌베개」는 학도병으로 끌려간 날부터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귀국하기까지의 과정이 담긴 책으로 1971년 5월 20일, 사상사에서 처음으로 발간되었다. 다음은 「돌베개」에 부치는 말이다.
…일제에 패색이 짙어지던 1944년부터 조국광복이란 감격의 깃발이 민족의 숨결처럼 펄럭이던 1945년까지 나의 20대는 '자랑스러운' 자부심으로 부끄러울 것 없는 젊음을 구가했다. 그로부터 4반세기가 지나고 또 한두 해가 얹혔다. 그리고 나도 50대에 들어섰다. 이제 나는 그 2년간의 체험을 중심으로 우리 현대사의 한 증언자가 되고자 이 수기를 발표한다. 당시 국내외를 통한 제반 사정과 우리 젊은이들의 저항을 내 눈으로 확인한 대로 기록해야 하겠다는 사명감까지도 느끼게 되는 오늘날의 정치현실은 나로 하여금 주저 없이 붓을 들게 했다.
사상계는 1952년 8월 문교부 산하 국민사상연구원의 기관지였던 「사상」에서 출발하였다.「사상」의 편집인으로 참여했던 장준하가 1953년 4월에 인수해 제호를 「사상계」로 바꾸고 월간종합교양지를 창간했다. 창간호 3천부가 발간되고 최고 발행부수가 10만부에 이르는 등 지식인층과 학생충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민족통일문제, 민주사상의 함양, 경제 발전, 새로은 문화 창조, 민족적 자존심의 양성을 편집의 기본 방향으로 삼고 다방면에 걸쳐 권위 있는 글을 실었다. 자유언론 투쟁에 앞장섬으로써 정치 탄압의 수난을 당하였다. 1970년 5월호에 김지하의 시 '오적(五賊)'을 실었다는 이유로 당국의 폐간 처분을 받아 통권 205호로 명맥이 끊겼다.
파주는 항전의 땅입니다.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삼국시대부터 삶의 터전을 지켜내려는 사투가 있었고, 근래 6·25전쟁에서도 자유를 수호한 도시입니다. 분단의 역사, 접경도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지만 애우 역동적인 모습으로 평화로운 미래를 열어갑니다. 장준하 선생은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했으며, 사상계를 발간해 지식인의 등대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자 온몸을 불살랐으며, 분단된 조국의 평화통일에 헌신했습니다.
일본에 뺏긴 나라를 되찾고자 구국 장정의 길에 올랐던 장준하 선생의 굳은 의지를 파주에 다시금 실립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결코 거저 얻어지지 않았음을 파주에서 가르치고, 일깨워 나가겠습니다. 연고도 없이 묻혀 계셨던 파주 광탄 나사렛공원묘지에서 이곳 통일동산으로 오신 이유는 수많은 호국명령이 선생의 안타까운 영혼을 부른 때문입니다. 죽어서도 살아있는 장준하 선생의 애국애족 정신, 의로운 기상은 우리 파주와 영원히 함께할 것입니다.
여기, 지유로 가는 길, 통일로 가는 길목, 우리는 겨레와 나라의 자유와 통일을 찾는 길 위에서 일생을 바친 장준하 선생과 함께 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이자 사상계 발행인, 국회의원, 민주통일운동가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셨던 선생님, 황토의 유택은 님을 흠모하는 우리들 마음을 시리게 했습니다. 이제 통일을 염원하는 파주시민을 비롯한 이 땅의 민초들이 뜻을 모아 장준하 선생 영생의 터를 통일동산으로 모셔 왔습니다. 목숨을 바쳐 지켜낸 자유혼, 민족혼, 민주혼은 만민이 우러러 함께 지켜나길 정신입니다. 암울한 시대, 온몸을 던져 지식과 사상을 개발한 개척혼과, 이를 실천한 용기와 성실, 강인함과 헌신을 배우고 꿈꾸면서 우리 모두 어울려 자유와 통일의 대해로 나아갑니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 바다로 흘러드는 이곳, 민주, 통일의 숭고한 뜻이 천지를 뒤흔드는 함성으로 우리들의 가슴에 메아리 치고 있습니다. 2012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으며.
묘소 올라가는 입구 왼쪽에 '장준하 선생의 묘(張俊河先生之墓)'라고 적힌 묘비가 서 있다.
묘소 가는 길 입구에 장준하 선생의 '돌베개' 중의 문구를 새긴 조형물, 그 앞에 돌베개가 있다. "우리는 무기를 가졌습니다. 조국을 찾아야 한다는 목표물을, 똑바로 겨냥한, 젊음이란 이름의 무기입니다." - 「돌베개」 중에서
파주 통일동산의 장준하선생 추모공원을 살피고 나와서, 다시 돌아보았다.
광복군 독립투사, 월간 <사상계>를 창간한 언론인, 박정희 군사정권에 맞선 반독재 민주투사였던 장준하(1918~75) 선생을 기리는 추모공원 ‘장준하공원’이 그가 영면한 지 37년 만인 오는 17일 경기도 파주시 통일동산에서 문을 연다. 파주시 광탄면 신산리 나사렛 천주교 공동묘지에 안장됐던 장 선생의 유해도 지난 1일 이곳으로 이장됐다. 장준하 선생 유가족, 장준하기념사업회와 파주시 등은 17일 오전 11시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통일동산에서 각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준하공원 제막식을 열 예정이라고 14일 밝혔다. 파주시는 연간 200만명이 찾는 통일동산 4000㎡ 터에 2억5000만원을 들여 추모공원을 만들어, 장 선생의 생애와 공적을 기록한 24×25m 규모의 기념조형물과 추모시설 등을 지었다.
선생의 유해는 1975년 숨진 당시 교통이 불편하고 사람들의 왕래가 드문 천주교 묘지에 안장됐다. 의문사 의혹을 잠재우려 권력기관이 일부러 외딴곳에 묘를 쓰도록 했다는 의혹도 있어왔다. 아들 호권(63)씨는 “갑자기 상을 당해 허둥대고 있는데 누군가 묘지가 준비돼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 어디인지도 모르고 따라갔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장준하공원이 파주 통일동산에 조성된 것은 지난해 천주교 묘소에서 열린 선생의 36주기 추모행사에 이인재 파주시장이 참석한 것이 계기가 됐다. 장 선생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 뒤 국립 대전현충원으로 이장하는 방안이 추진됐지만, 유족들과 기념사업회 쪽이 ‘친일인사, 독재자와 함께 묻힐 수 없다’며 거부해왔다. 파주/박경만 기자, 박기용 기자 mania@hani.co.kr 한겨레신문 2012.08.15.
필승로 지선을 따라 올라오면 고려통일대전 입구가 나온다. 중앙 언덕에 고려통일대전이 보이며, 산길이 파주살래길로서 평화의 길 정코스 탐방로이다. 고려통일대전은 사단법인 고려역사선양회에서 고려의 민족 통일 정신과 고려의 역사를 제고하기 위하여 1995년 기본 계획을 설계하여 2007년에 2단계 공사가 준공되었다고 한다. 주요 시설물은 왕건 태조 영정 및 위패, 역대 왕위 및 배향위를 봉안하는 정전(正殿)을 비롯하여 충신각(忠臣閣), 공신각(功臣閣), 수복방(守僕房), 강당(講堂), 내삼문(內三門), 서문(西門) 등이며 고려시대 양식으로 건축되었다고 한다.
필승로 지선에서 성동로로 넘어왔다. '해스밀래 The Table & Cafe' 입구에 파주살래길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몸을 가볍게 살래살래 흔들며 구불구불한 길을 걷는다는 의미의 살래길은 통일동산 장단콩웰빙마루에서 출발해 검단사, 유승 앙브와즈아파트, 전망대, 축구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까지 이어지는 총 4.2km 구간으로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밤나무, 전나무, 소나무가 울창한 숲길을 따라 정상에 오르면 오두산통일전망대와 임진강, 자유로가 한눈에 들어오고, 맑은 날에는 북한 땅인 송악산도 볼 수 있다. 특히 통일전망대에서 임진강으로 지는 환상적인 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
성동로의 파주시 관광안내소 옆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해스밀래 The Table & Cafe' 2층으로 올라간다.
성동로 건너에 (주)파주장단콩웰빙마루 로컬푸드(직판장)가 있으며, 왼쪽에 (주)파주장단콩웰빙마루의 장독들이 즐비하다. (주)파주장단콩웰빙마루는 '해스밀래 로컬푸드(직판장)', '해스밀래 The Table(한식)', '해스밀래 Cafe(카페와 디저트)'를 운영하며, '해스밀래'는 '해가 스미다'의 뜻으로 파주 농산물의 기운이 햇살처럼 온 세상에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성동로 건너편 솔숲 뒤에 파주NFC(축구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가 있고, 그 뒤에 오두산통일전망대가 있다.
'해스밀래 The Table & Cafe' 앞에 파주장단콩웰빙마루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파주 장단삼백(長湍三白)은 파주 지역 특산물인 한수위 파주쌀, 파주 장단콩, 파주 개성인삼을 이른다고 한다.
파주장단콩웰빙마루는 파주를 대표하는 특산품인 장단콩을 테마로 생산·가공·유통·판매와 체험·관광·문화가 어우러진 6차산업의 농촌 융복합단지입니다. <2015 경기북동부 경제특화 발전사업 공모전 대상>으로 조성 시작, 파주시를 비롯 9개 파주 지역농협과 산림조합, 김포파주인삼농협 등이 공동 출자하여 설립, 2021년 11월 11일 개장하였습니다.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파주 장단삼백(長湍三白)의 정신,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파주농업인, 시민과 상생하며,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과 새로운 먹거리 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파주장단콩웰빙마루에서는 콩으로 만든 장(醬)류 제조시설, 로컬푸드 매장, 프리미엄 콩요리 전문점, 파주장단삼백 디저트카페 등 파주장단콩의 모든 것을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 파주장단콩웰빙마루 https://pajumaru.com/
파주 살래길이 나무뎈길 위쪽으로 이어지며, 평화의 길 정상 코스는 파주 살래길을 따라간다.
파주장단콩웰빙마루전망대에서 미즈호텔, 힐즈호텔, 호텔위즈 등이 몰려 있는 호텔촌을 살핀다. 평화의 길 정상 코스는 호텔촌 뒤 산길로 이어지는 것 같다. 평화의 길 정상코스에서 벗어나 2층 해스밀래 카페에서 '성동로'로 내려간다.
2층 '해스밀래 The Table & Cafe'에서 내려와 성동로 지선을 따라간다. 오른쪽은 성동리 문화&전시장 신축공사장이다.
성동리 문화&전시장 신축공사장 가림막에 헤이리예술마을 홍보판이 붙어 있다.
문화와 예술이 소통하는 마음, 경기도 유일 문화지구인 헤이리 예술마을은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모여 만든 공동체마을로, 마을이 하나의 종합예술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술가의 개성과 철학이 어우러진 마을 곳곳의 갤러리 박물관, 전시관, 공연장에서는 다양한 예술작품이 창작되고 전시, 공연, 축제 등 다채로운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연중 펼쳐진다.
성동리 지선이 성동로 간선과 교차하는 곳에서 오른쪽 성동로를 따라가면 탄현 유아숲체험원으로 이어진다. 일행은 성동로 지선을 계속 따라 통일동산으로 이어간다.
통일동산 고산원공원과 탄현 유아숲체험원을 거쳐 내려오는 오른쪽의 평화의 길이 이곳 성동로 지선에서 재회하여 왼쪽 통일동산 공원으로 이어간다.
재회 지점에서 평화의 길 정상코스가 거쳐오는 통일동산 고산원공원과 탄현 유아숲체험원 방향을 올려보았다.
검단사 입구에서 헤어졌던 평화의 길과 성동로 지선에서 재회하여 평화의 길을 따라 통일동산 공원으로 이어간다.
통일동산 공원에 비둘기들이 부조된 통일기념탑이 조성되어 있다.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통일동산 공원의 가로등이 신전(神殿)의 문주(門柱) 앞으로 가는 길의 열주처럼 서 있다.
평화동산 공원 문주 왼쪽 뒤에 미디어아트 전시관 '뮤지엄 헤이', 오른쪽 뒤에 주방용품 업체 '모드니프리미엄'이 있다.
파주시 통일동산 관광특구 내 1,200평 규모의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용관 '뮤지엄 헤이(Museum Hei)'가 당신을 초대합니다. 평균 10m에 달하는 높은 층고와 바닥, 넓은 벽면과 거울에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을 주제로 한 '시공간'과 '자연', '명화' 등의 초현실적인 프로젝션 맵핑 기술을 입혀 관객을 감싸는 듯한 압도적 경험을 선사합니다. 다방향으로 전시 공간을 거닐며, 웅장한 빛과 사운드 뿐만 아니라, 테마에 맞는 조향을 더해 극대화된 몰입감을 표현합니다. Hei는 핀란드어로 '반갑고 기분 좋은 안녕'입니다. 행복지수 1위 나라 핀란드의 따듯한 인삿말처럼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 뮤지엄 헤이 https://www.museumhei.com/
통일동산 공원 동쪽 끝 평화로 건너편에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의 전통건축부재 보존센터와 전시관이 있다. 평화의 길은 평화로 왼쪽 성동사거리 방향으로 이어간다.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은 전통건축 부재와 재료의 체계적 수집·보존 및 조사·연구, 전통 재료·기법 전승과 함께 전통건축 수리기술 진흥을 위해 2017년 2월 설립된 국가유산청 산하 특수법인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2017년 12월 준공한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는 수집한 부재를 통해 전통건축유산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공유하기 위해 2023년 8월 1일에 전시관을 개관했다.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 전시관의 상설전시는 A존과 B존(전통건축부재, 역사의 흔적), C존(숭례문의 기억과 가치), D존(전통건축재료) 총 4개로 구성되어 있다. 전국의 건축문화유산 수리 현장에서 수습한 부재와 숭례문 탄화 부재를 활용한 숭례문 상층 가구 재현물, 전통건축의 재료를 전시하여 제공하고 있다. 전시부재는 보존 상태를 위하여 교체되는 경우도 있다. 야외에는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의 사랑채와 집무실로 알려진 아재당(我在堂)을 만나볼 수 있다. 오랫동안 다른 장소에 이축, 해체·보관되어 있던 아재당의 본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재건하였다. - 파주문화관광
평화로 서쪽 보도를 따라 앞에 보이는 성동사거리로 이어간다.
성동사거리에서 평화로는 남북으로 이어지고, 왼쪽은 필승로, 오른쪽은 헤이리로이다. 왼쪽 필승로의 횡단보도를 건너고, 다시 북쪽의 평화로의 횡단보도를 건넌 뒤 중앙의 '통일동산관광특구' 조형물 오른쪽 헤이리로를 따라간다.
통일동산 관광특구는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법흥리 일원 약 300만㎡ 약 91만평으로 조성되었다. 통일동산 관광특구 일대에는 오두산 통일전망대, 프로방스마을, 맛고을, 헤이리마을, 카트랜드, 프리미엄아울렛 등 여러 관광콘텐츠가 있으며, 한반도 평화관광의 중심지로서 확고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 대한민국구석구석
헤이리로 북쪽 보도에 DMZ 평화의 길 6코스 안내도와 평화누리길 7코스 헤이리길 문주 등이 설치되어 있다.
평화의 길 6코스 : 11.07km, 2시간 30분 소요. •통일동산(성동사거리)~낙하 IC까지 연결되는 구간으로 조성, 걷기 여행길인 평화누리길을 따라 연결되는 보통 난이도 구간입니다. •파주시의 주요 관광자원인 파주 프로방스, 헤이리 마을 등을 경유하며 한강과 한강 일원의 습지 등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호젓한 마을 길, 농로 등을 따라가는 구간으로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구간입니다.
DMZ 평화의 길 6코스 안내도 옆에 경기둘레길 6코스 이정목과 스탬프함, 통일동산 이정목이 세워져 있으며 이정목에 통일동산 관광특구안내도가 붙어 있다.
통일동산 이정목 옆에 성동리 표석과 평화누리길 7코스 안내도가 조성되어 있다.
평화누리길 7코스 헤이리길 : 21km, 5시간 30분 소요. 체인지업캠퍼스, 헤이리마을, 프로방스 카페촌 등을 거쳐 가게 되므로 많은 볼거리를 즐길 수 있는 구간이다. 이후에 펼쳐지는 반구정까지는 한가로운 긴 구간이므로 체류시간을 알맞게 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