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28편 역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흔히 부르는 노래가 아닙니다.
참 이스라엘은 성전이 있든 없든 율법과 성전의 참 것에 대한 계시로 찬송을 부르듯
땅에서 난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앉히어져
그 은혜에 의해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자랑할 것 하나도 없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로 인해 그 피 안에서 하나가 되고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성령 안에서 주와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나아갑니다(엡2장)
그로 인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갑니다(엡2:22) 만약 이 사실을 유대인들이 안다면 까무러치기까지 할 겁니다.
1절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모든 것의 근본, 근원, 기본입니다. 성령은 주를 경외하게
하십니다(사11:2) 만일 성령이 계신다면 차별금지법 같은 걸 묵인하면서 좌측에 설
수가 없을 겁니다. 어느 당의 편이라고 좌측이나 우측이 아니라 영적인 사상으로
좌우를 말하는 겁니다. 정당의 소속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정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창조의 질서를 깨뜨리고 남자가 남자와
여자가 여자와 더불어 그 짓거리를 함에도 차별하지 말자하고 나오면 이건 아닙니다.
이건 천만큼보다 더 존귀하시고 영광스러운 주님과 하나가 된 달란트가 없이 주의 일을
한다고 수고를 하는 좌편의 사람들일 겁니다. 영광과 존귀를 얻지 못하면 오른 편에
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사람들은 우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없는 세상에 속한 신학교교수나 목사들이 철학이나 인문학을 공부하여
사람들에게 매우 유식한 지식과 정보를 전하면서 유명인으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기독교인의 90%가 좌측에 있다는 말을 하는데 그건 아담 안에 있는
저주와 어릴 때부터 쌓여진 증오심이 처리되지 않았기에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겁니다.
말로는 하나님께 모범생이라도 되듯 자신을 자랑하지만 경외감이 없는 게 문젭니다.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근본이 잘 못되었다고 하듯, 성도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분은 있으되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성경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만으로 얻는 복을 나열하려면 어마어마합니다. 성령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므로 성령의 사람은 주님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의 길(in His way)을 걷는 자 곧 그 말씀 안에서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롯이나 다 신자라는 면에서는 같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약속의
복이 성취되어 가는 인생이지만 롯은 당시의 애굽의 복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은 상황을 보지 않는 믿음으로 나아갔지만 롯은 눈치가 빠르게
소돔을 택했습니다. 그의 눈에는 에덴같이 보였습니다. 결국 롯은 쫄딱 망했습니다.
2절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손이 수고한 대로는 노동의 결과를 보장해 주겠다는 뜻입니다. 일하는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사실 세상에서 일할 수 있고 그 수고한 만큼만 자기의
몫이 되어도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므로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을 때에는 일 년 동안 내내 땀 흘려
농사를 지어 놓으면 대적들이 쳐들어 와서 그만 그들에게 늑탈 당하고 맙니다.
전쟁은 그들에게 징계였습니다. 재주는 곰이 하고 돈은 서커스단이 먹는 꼴이 됩니다.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한 때는 미국의 한국교민들이 어글리 코리안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건 돈을 벌기만 하고 쓸려고 하지 않으니 미국 경제에 도움이
안 되어 나온 말이었습니다. 물을 흘러내리는 갈릴리 호수는 수위가 줄지 않지만
받기만 하는 사해의 수위는 오히려 점점 줄어든다고 합니다. 복을 받지 않고 수고로
사는 사람은 평생 주를 위해서 쓸 것이라고 말은 하지만 움켜쥐고 있을 뿐입니다.
먼저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분의 말씀 안에서 그 길을 따라 가므로 복을 받아야 합니다.
재물은 각 사람의 그릇에 따라 나누어 주는 분복이므로 먼저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재물도 자석에 못이 달라붙듯 따라 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돈 따라 우왕좌왕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재물을 맡아 관리를 하려면 남을 위해 쓸려고 하는
마음을 먼저 가져야 합니다. 아브라함이나 다윗은 거부지만 하나님의 청지기들입니다.
3절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네 아내가 안방에 있음은 하는 말씀은 그 자리가 아내의 정 위치란 뜻입니다.
결실한 포도나무라는 뜻은 남편을 의지하고 열매를 주렁주렁 열리는 모습입니다.
주를 경외하고 그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따라 주의 보좌로 나아가는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는 아내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가 아니겠지요? 바울이 말한 믿지 않는
쪽일 겁니다(고전7장) 남편들의 행복은 아내가 자신에게 적응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남편의 제1호의 복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의 질서는 남자가 잡아야 합니다.
남편은 씨가 되고 아내는 밭이 되어야 합니다. 남편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말씀 안에
행함이 부실하므로 아내로 치맛바람을 날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어선 안 되죠.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다 함은 자식들도 제자리에 있습니다.
감람나무는 생명력과 번식력 그리고 용도가 다양하고 쓸모가 다양합니다. 감람나무는
어디서나 무성하게 자라고 뿌리에서 열매까지 어느 것 하나라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싱싱하게 키워야 합니다. 이 문제를 깨닫는데
참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7대 정도의 신앙의 가정이 되면 거의 완벽해 진다고 합니다.
4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 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다시 1-3절의 말씀을
다 끌고 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렇게 복을 얻을 것이라 강조하는 겁니다.
5절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시온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와 함께 시온에 서 있습니다.
시온 산은 장자들의 총회입니다(히12:22절이하, 계14장) 초태생이시며 장자이신 주의 영을
받은 이들은 그 총회원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144,000이 아니라 단 하나라도 그게
바로 나라고 장담을 합니다. 그리고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받습니다. 영원토록 평강과
각양 좋은 것들을 볼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엄청난 복입니다. 하나님은 비디오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들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 되게 하신 후에 그의 영광을 보게 하시므로(고후3:18) 장차 이루어질
영광을 미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계7,14,21장) 이미 우리는 거기에 붙잡혀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말씀 안에 주의 길을 따라 가는 자들에게는 이런 복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이런 복으로 사는 사람은 단순하고 명쾌합니다. 구질구질하고
우물쭈물하지 않습니다. 흡사 대한민국의 전체 지도를 알고 있는 사람이 지명에
대한 설명을 할 때에 어디는 어디에 있고 어떻게 간다하고 명쾌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매우 분주해 집니다. 자기 방어,
변명, 따짐, 그 문제를 모면할 방도를 강구하는 일 등으로 생각이 너무 바쁩니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학생이 커닝을 위해 눈동자를 굴리듯 하는 것 같습니다.
신앙생활을 잘못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어도 가난뱅이로 살 수가 있습니다. 아담의
본성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부끄러워하는 가운데 조마조마하게 살게 됩니다.
따라서 복과 형통한 인생을 살아가려면 하루라도 빨리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영으로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는 비밀을 깨닫고 나아가 그리스도의 본성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엡2장의 받은 은혜와 그리스도 안에서 받을 은혜로 하나님의 집이 지어져 가야 합니다.
6절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자식의 자식은 장수한다는 뜻이며 볼지어다는 그 자손으로부터 보상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식은 하나님의 기업이며 상급이 되는 것입니다(시127:3) 자식으로 인해
부모의 얼굴이 구겨질 수도 있고 자식으로 인해 부모의 체면이 설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이런 확신이 항상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영원합니다.
육신으로도 이스라엘은 선민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그들은 아직 로마서의 비밀도
모르고 에베소서의 교회의 비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선민의식으로 가득합니다. 비록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무지하지만 용감무쌍합니다.
그래서 정신병이 가장 적은 민족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란하고 다투는 것 보세요.
그러므로 우리는 임마누엘의 신앙에 확실해야 합니다. 성령의 내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 예수그리스도를 존중히 여기고
그 말씀 안에서 자신을 쳐 복종시켜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므로 하나님의 복이
머무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됩니다.
생활의 에너지가 넘칠 것입니다. 겉보기에도 안색과 혈색이 좋고 생기가 넘칩니다.
자신감이 가득합니다. 성령 충만은 사기충천이며 생명의 약동입니다. 바로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이 이파리가 싱싱합니다(시1편) 그리스도인이 빌빌대면 안 되지요.
하나님은 우리의 삶속에 언제나 함께 동행 하시며 살아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측정하므로 존재하듯 영이신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에
의해 경외하고 믿음으로 주의 길을 따라갈 때에 우리에게 실상이 되어 주십니다.
첫댓글 아멘 🙏
목사님
감사드립니다 ~
할렐루야!!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