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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트레일 6구간 제3부
성당초등학교-승전목-삼웅2리마을회관
20260402
1.승전목의 동학 정신과
삼웅2리 마을의 영웅 우러름 기상
국토순례 동서트레일 6구간 탐방을 떠났다. 도보여행팀 안내버스는 양재역 국립외교원 앞에서 7시 10분에 출발하여 행담도휴게소에 8시 24분 도착하여 휴식한 뒤 8시 40분에 출발하여 6구간 출발지인 충남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 느티나무당산에 9시 10분에 도착하였다. 트레킹 준비를 마친 뒤 느티나무당산 맞은편 지방도 제649호선 서령로의 율목1리 버스정류소에서 9시 13분 동서트레일 6구간 탐방을 출발한다. 2주 전인 3월 19일 율목리 서낭제가 열리던 날 이곳에서 5구간을 서진하였다. 이번에는 같은 곳에서 출발하여 6구간 탐방을 동진하여 당진시 면천면 삼웅리 삼웅2리 마을회관에서 마치게 된다. 동서트레일 6구간 탐방 체험을 3부로 나누어 정리한다.동서트레일 6구간은 율목리 느티나무 당산에서 출발한다.
제3부(성당초등학교-삼웅2리마을회관) : 당진시 사기막동 송림공원의 그윽한 소나무숲에 봄바람이 살랑거린다. 오후의 봄햇살은 거리에 반짝이고 봄바람은 소나무숲을 스쳐 솔향기를 품은 솔바람이 되어 봄햇살을 흔든다. 꽃향기만이 봄날의 향기가 아니라는 듯 솔향기는 부드럽게 흐른다. 이배산 서쪽에 자리한 아담하게 예쁜 성당초등학교 교문 앞을 지나면 곧바로 당진시 구룡동이다.
당진시 구룡동은 9개의 용머리 산이 있어서, 혹은 마을 지형이 구렁이같이 생겼다고 하여 '구렁이'가 '구룡'으로 변하여서, ‘구룡동(九龍洞)’이 되었다고 한다. 구룡동은 당진시 사기막동 남쪽으로 동쪽의 이배산과 동남쪽의 웅산, 서쪽의 칼바위산을 에두르며 넓게 자리하고, 칼바위내(劍岩川)가 구룡동 북쪽으로 흘러 당진시 정미면 대운산리 대방들을 지나 역천에 유입된다.
지방도 647호선 역천로는 성당초등학교 앞을 지나 검암천의 구룡교를 건너 당진시 구룡동 구룡삼거리에서 남쪽으로 지방도 제70호선 역천로가 되어 내려가고, 동쪽으로는 지방도 제70호선 면천로가 되어 구룡동과 면천면 사기막리로 이어간다. 동서트레일은 역천로 보도를 따라 검암천의 구룡교를 지나 구룡교 남단에서 역천로와 작별하여 검암천 둑방길을 따라 검암천을 거슬러 오른다. 검암천 둑방길을 따라 이배산 자락에 자리하는 구룡동 도동마을과 천주교 구룡리공소, 동남쪽의 도곡마을, 남쪽의 구룡삼거리를 확인하고 검암천을 거슬러오르며 구룡동 들녘을 지난다.
검암천은, 당진시 면천면 삼웅리의 웅산 줄기가 북서쪽으로 벋어내려 솟구친 도곡산 절벽 북쪽으로 흘러 이배산 남쪽 자락을 돌아 서쪽으로 흘러 구룡동으로 흘러내린다. 지방도 제70호선 면천로는 구룡삼거리에서 동쪽으로 당진시 구룡동을 지나 이배산 남쪽 자락과 도곡산 북쪽 자락 사이로 흐르는 검암천의 도곡교를 건너 당진시 면천면 사기막리로 이어간다. 이 웅산 줄기의 도곡산 절벽 아래 검안천 천변에 동학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에게 승리를 거둔 승전목이 있다. 탐방할 당시에는 이 전체적 지형이 머리에 그려지지 않았는데, 탐방을 마치고 탐방한 트랙과 주변 지도를 살피니 당진시 사기막동과 구룡동, 면천면 사기막리 전체 지형이 그려졌다.
동서트레일은 지방도 제647호선 역천과 작별하고 검안천을 거슬러 올라 구룡동 도동마을 입구의 지방도 제70호선 면천로와 만난다. 면천로에서 동서트레일은 내포문화숲길의 내포불교순례길과 동행하여 구룡동 도곡마을과 당진 감리교회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 법인 평안마을 요양원 방향으로 이어가다가 큰골길로 나가 웅산 능선으로 올라가는 게 정상인 것 같다. 웅산 능선에서 동서트레일과 내포불교순례길이 내포동학길과 만나는 웅산 능선의 이정목 날개를 보고서야 동서트레일, 내포문화숲길의 불교순례길, 내포동학길의 경로를 짐작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포문화숲길의 불교순례길과 동서트레일은 승전목을 지나지 않는 경로이다.
탐방 당시에는 이런 경로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탐방객 대부분이 진행하는 지방도 제70호선 면천로를 따라 도곡마을 입구와 큰골길 입구, 덕원레미콘 당진공장 출입구를 지나 검암천의 도곡교를 건너 검암천 천변의 승전목으로 내려갔다. 승전목은 내포문화숲길의 내포동학길 시종점으로 내포동학길은 "구한말 관군과 일본군에 의연히 맞섰던 당진 면천읍성과 승전목 등 동학민중항쟁의 발자취를 마주하며 걷는 길"로 면천읍성-승전목 전체 거리 10.25km라고 한다. 걷지 않은 길은 늘 궁금하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동서트레일 6구간 정상 코스의 탐방하지 못한 탐방로가 상상을 자극하고 아쉬운 마음에을 일으킨다. 한편으로 내포문화숲길을 탐방하지 않았기에 동서트레일을 벗어나 걸은 면천로와 탐방한 승전목, 면천면 사기막동 들녘과 이배산의 골재 채취 모습 등이 소중한 추억으로 마음에 사무친다. 특히 승전목에 대하여 배우게 된 것에 가슴이 뜨겁다.
승전곡(勝戰谷) 전투에 대한 내용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글을 통해 조금 더 알아본다.
"1894년 당시 충청남도의 동학은 덕포(德胞), 예포(禮胞), 청포(淸胞), 충경포(忠慶胞), 산천포(山川胞), 홍포(洪胞) 등이 있었는데, 덕포(德胞)는 춘암(春菴) 박인호(朴寅浩)를 중심으로 덕산(德山), 예산(禮山), 온양(溫陽), 홍주(洪州), 결성(結城), 면천(沔川), 당진(唐津), 서산(瑞山), 태안(泰安), 목천(木川) 등의 교단을 통합한 강한 세력이었다 한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났을 때, 10월 21일 합덕의 동학 농민군이 홍주 관군에게 진압당했고, 22일에는 면천의 동학 농민 지도자였던 이창구가 홍주목에서 처형당하고 나서 면천 지역의 동학 세력은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그 후 태안과 서산 지역의 동학 농민군은 해미를 거쳐 해미의 여미벌에 집결하게 되었고, 예포와 덕포의 연합 부대로 성장하게 되었다. 즉, 모든 교단은 일제히 봉기하여 해미군(海美郡) 여미평(餘美坪)[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운집하니 불과 2~3일 사이에 1~2만 명의 동학군이 모이게 되었고, 동학군은 면천군(沔川郡) 관아를 향해서 일제히 진격하였다.
동학군은 10월 24일[양력 11월 21일]에 15,000여 명에 이르는 인원을 이끌고 면천의 승전곡에서 일본의 아카마츠[赤松國封] 소위가 이끄는 일본군 1개 소대, 2개 분대, 관군 34명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동학군이 대승하고 일본군은 홍주로 퇴각하였다. 이를 계기로 이 협곡을 ‘승전목(勝戰項)’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당진 지역은 내포 지역 동학농민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곳이었다. 1894년 초기부터 각 포별로 각개 활동을 전개하는 시기에는 예포의 조직과 산천포의 조직이 활동을 이어 가던 곳이 당진이었고, 특히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군사력을 지닌 이창구가 바로 당진 출신이며 이창구가 활약하던 중심지도 당진이었다. 또한 전국적으로 2차 동학농민전쟁이 시작되었을 당시에 여미벌에서 조직된 내포 동학농민군의 주력은 대부분이 이창구 휘하에서 활동하던 당진 사람들로 추정되고 있다. 더욱이 동학농민전쟁사에서 유일하게 일본군과 전면전을 벌여 승리한 승전곡 전투가 있었던 곳도 바로 당진이다. 이렇듯 당진 지역은 내포 동학 농민군이 주력적으로 활동하던 곳이라 할 수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당진시 면천면 사기막리와 삼웅리의 경계를 이루는 웅산 능선의 해발 200m쯤 되는 산봉에 올라 이정목 날개를 보고서야 사전에 탐방 경로를 준비하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사전에 이러저러한 것들을 익혀도 실제 탐방할 때는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현장 모습이 나타난다. 탐방은 체험하지 않은 미지의 길을 걷기에 탐방한 뒤에 더욱 새로움으로 남게 되고 그 지역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강렬해진다. 웅산을 가늠하며 삼웅리 마을로 내려간다. 동서트레일이 웅산 능선 어느 지점으로 올라왔을까를 어림하지만 분명하지 않다. 그렇다면 다음에 당진시 구룡동 도곡마을을 거쳐 웅산 능선에 오르는 탐방로를 따른 뒤 면천읍성으로 이어가는 내포동학길을 탐방하면 이 지역의 지형이 더 분명해질 것이다.
면천면 삼웅리 들녘 건너편 면천면 송학리와 죽동리 지역에 다불산, 아미산, 몽산이 솟아 있다. 그리고 삼웅리 뒷골산 자락의 삼웅저수지에에서 흘러내리는 삼웅천이 삼웅2리 들녘을 흘러 삼웅2리 마을 입구로 내려간다. 삼웅2리 들녘의 삼웅안길에서 삼웅2로를 따라 삼웅순복음교회를 지나 삼웅2리 마을회관 앞 동서트레일 안내판에서 탐방을 마친다. 삼웅2리마을회관 앞의 쉼터정자 현판을 살피니 영웅정(英雄亭)이다. 이 지역에서는 한자 '雄'을 몹시 좋아하는구나.
걸어온 길들의 의문과 궁금증, 그리고 배운 것들에 대한 기쁨이 솟아오른다. 삼웅리 지명과 웅산에 대하여 배운 것이 많다. 그런데 '웅'의 한자는 어느 것일까? 서산시에서는 웅산을 곰산인 熊山으로, 당진시에서도 삼웅리의 처음 지명은 곰 熊을 썼다. 그런데 당진시에서는 현재 雄山, 三雄里라고 적고 있다. 두 지역에 걸쳐 있는 동일한 웅산을 당진과 서산에서 다른 한자로 적는 게 이상하다. 고증을 통하여 정확한 한자명을 밝히고 두 지역에서 동일한 한자 지명으로 통일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삼웅2리 마을 입구 표석에 '영웅산 아래 장수마을 삼웅2리'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웅산과는 다른 영웅산이라 명명한 산이 있을까? 마을 입구에서 정면으로 산이 보인다. 마을과 가까운 산으로 그 아래 마을이 자리한다. 웅산은 마을과 떨어져 남쪽에 솟아 있으니 마을 가까이에 있는 저 산을 혹시 영웅산이라 명명하였을까?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8.9km
전체 소요 시간 : 5시간 13분
성당초등학교 교문 옆에 그윽한 소나무숲 송림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 숲은 당진에서 유일한 마을 터의 기운을 보완하는 비보림(裨補林)이라고 한다.
이배산 서쪽 당진시 사기소동에 소재한 성당초등학교는 2026년 1월 14일 제77회 졸업식으로 총 3,392명이 졸업하였고, 2026년 3월 1일 현재 초등학교 7학급(특수학급 1학급 포함)과 병설유치원 1학급으로 편성되어 있다고 한다.
●연혁 1941년 2월 1일 : 당진현내국교 부설 성당간이학교 인가/ 1943년 3월 31일 : 당진현내국교 부설 성당분교장 개칭 인가/ 1949년 9월 30일 : 성당국민학교로 승격 인가/ 1982년 2월 20일 : 성당국민학교 병설유치원 인가/ 1996년 3월 1일 : 성당초등학교로 개칭/ ●교가[김진화 작사·곡] 하늘 높이 솟아 오른 이배산 기슭/ 우리들의 배움터 평화의 요람/ 우뚝 솟은 이 강산의 정기를 받아/ 굳세고 아름다움 배우며 산다/ 억만년 살아나갈 우리 고장을/ 길이길이 빛내자 성당 어린이// ●교화는 장미로 자라나는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절제하고, 청렴하게 살도록 유도한다. 교목은 소나무로 꿋꿋한 절개와 의지를 나타낸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당진시 사기소동 성당초등학교에서 구룡동으로 넘어와 당진시 구룡동의 비디오 및 영상기기, 통합배선반 제조업체 (주)동화통신과 전기 공사업체 (주)아이제이통신을 지난다.
성당삼거리에서 지방도 제647호선 역천로 보도를 따라 당진시 사기소동 지역의 송림공원, 성당초등학교를 지나 당진시 구룡동으로 넘어와 오른쪽의 (주)동화통신&(주)아이제이통신 앞을 지나왔다.
충남 당진시 사기소동(沙器所洞)은 당진 중심지에서 남서쪽으로 6㎞ 지점의 역천 변에 위치한 마을이다. 동쪽으로 이배산에 맞닿아 있다. 지방도 647호선이 지나가며, 운산~서산 방향으로 통하던 옛 국도 32호선이 지나고 고속국도 30번 당진~영덕 고속도로와 고속국도 15번 서해안고속도로가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다. 사기소동은 예전에 사기(沙器)를 굽던 사기소(沙器所)가 있어서 사구실, 사기소리(沙器所里)라고 하였다. 사기소동은 원래 당진군 남면(南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남면 동산리(東山里), 죽활리(竹活里), 성당리(盛堂里)와 도동(道洞) 및 해미군 일도면 대운산리(大雲山里)의 각 일부를 병합해 그대로 사기소리라 하여 당진군 이배면에 편입되었다. 이배면은 1928년 당진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63년 당진읍으로 승격되었다. 2012년 1월 1일 당진군이 당진시로 승격되어 당진시 사기소동으로 개편되고, 행정동인 당진 2동에 속하게 되었다. 서쪽은 정미면 대운산리, 북쪽은 용현동, 동쪽은 면천면 사기소리, 남쪽은 구룡동과 경계를 접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주)동화통신 옆 역천로 보도에서 동쪽의 이배산(螭背山)을 바라보았다. 건너편 이배산 자락에 구룡동 도동마을이 자리한다.
1530년대에 발행된『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이배산이 당진현 남쪽 15리에 있다’, ‘이배산에는 성당사와 사근사라는 절이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여지도서(輿地圖書)』에도 ‘이배산은 덕산 가야산이 오른쪽으로 떨어진 면천 아미산에서 줄기가 뻗어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배산에 대한 한자지명은 시대에 따라 변화가 심하다.『해동지도(海東地圖)』에는 ‘이배산(離背山)’,『청구도(靑邱圖)』와『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이배산(利背山)’, 1872년의 당진 지방지도에는 ‘이배산(螭背山)’으로 각기 다르게 쓰고 있다. 즉 역사적으로 오래된 순서대로 살펴보면 離背-利背-螭背 순으로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발행된『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당진군 남면의 산명에 ‘이배산이 성당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지방도 제647호선 역천로 보도를 따라 검안천의 검암교를 건넌다. 맨 오른쪽 뒤에 해발 107.6m 칼바위산이 보인다.
당진시 구룡동 검암천의 남쪽 둑방길이 정상 코스이지만 북쪽 둑방길을 따라가도 무방하다. 맨 왼쪽에 구룡동 도동마을이 보인다.
역천로의 구룡교를 건너 역천로와 검안천의 구룡교를 뒤돌아보았다. 오른쪽 뒤에 (주)동화통신과 성당초등학교가 보인다.
삼웅2리마을회관 5.3km, 원당지 5.4km 지점, 구룡교 남단에 내포문화숲길&동서트레일 이정목이 서 있다.
정면에 이배산이 우뚝하고, 그 자락에 도동마을이 자리하며 왼쪽 전신주 뒤에 천주교 구룡리공소가 보인다. 작은 개울(細川의 다리를 건너 검암천 남쪽 둑방길을 따라 검암천을 거슬러 오른다.
이배산 동쪽에 승전암(勝戰菴)이 있었고, 그 앞에는 검암천(劒岩川)이 흐른다. 승전암은 지금은 기왓장만이 남은 폐찰이 되었고 주변은 돌을 캐내어 경관이 엉망이다. 검암천은 가을 경치가 뛰어나고, 이 검암천이 침식하여 만든 협곡이 당진-면천 간 교통통로이자 동학군이 관군한테 승리한 승전목(勝戰-) 계곡이다. 이 승전목의 도로쪽 자연 바위 절벽에는 조선시대 만든 민백준 청덕휼민비가 각자되어 있다. 이배산의 봉우리는 평평한 평지를 이루며, 동쪽으로는 다불산, 남쪽으로는 웅산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작은 개울 다리(細川橋)에서 남쪽을 살폈다. 맨 오른쪽 역천로의 구룡삼거리에 구룡동마을회관, 중앙 왼쪽 맨 뒤 구룡2통에 도곡마을과 평안마을 요양원이 자리한다.
중앙 뒤의 성당초등학교와 그 옆의 (주)동화통신 앞을 지나 검암교를 건너 검암천 남쪽 둑방길을 따라 검암천을 거슬러 오른다. 칼바위천(劒岩川)은 당진시 구룡동과 사기소동을 지나 당진시 정미면 대운산리에서 역천에 유입된다.
당진시 구룡동을 흘러내리는 검암천 남쪽 둑방길을 따라 검암천을 거슬러 오른다. 북쪽 둑방길을 걷는 탐방객들은 위쪽 검암천의 도동교를 건너 남쪽 둑방으로 넘어와야 동서트레일과 재회한다.
검암천은 충남 당진시 면천면 송학리 아미산(峨嵋山)[350.9m]에서 발원하여 당진시 면천면 사기소리를 가로질러 남서로 흐르는 하천으로, 면천면 삼웅리의 일산봉과 웅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세천들을 합한 후 유로 방향을 틀어 북서류하여 흐른다. 그 다음 당진시 구룡동의 검암산(劍岩山)[칼바위산]을 에워서 사기소동의 경계를 따라 흐르다가 정미면에서 역천(驛川)에 유입된다. 검암천(劍岩川)의 이칭은 칼바위내이다. 검암천이 흐르는 승전목[勝戰項] 협곡은 내포지역에서 관군과 동학군이 전투를 벌려 동학군이 대승한 지점이다. 칼을 세워 놓은 것 같이 날카롭게 생긴 바위인 검암(劍岩) 앞을 흐르는 하천이기에 검암천이라 부른다. 암석의 경연(硬軟)[굳음과 무름] 차이에 따라 연약한 부분이 침식되어 협곡을 이루는 하천이며, 옛부터 승전어화(勝戰魚花)라 하여 밤에 횃불을 밝히며 물고기를 잡던 경치가 좋은 곳이다. 검암천은 유로 연장 8.96㎞, 유역 면적 20.14㎢인 지방 하천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당진시 구룡동 도동길을 따라 중앙에 보이는 행복한家돌봄센터 앞을 지나 지방도 제70호선 면천로로 나간다.
충청남도 당진시 구룡동은 당진 중심지에서 약 8㎞ 떨어져 있다. 서산시 운산 쪽으로 가는 구룡고개 근처에 있는 마을이다. 대부분의 지대가 완만한 구릉성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산간 부락이다. 마을 동쪽에는 저산성 구릉지가 있으며 마을 북쪽에는 동서로 검암천이 흐르고 있다. 당진 시내와 당진시 정미면, 면천면 그리고 서산시 운산면과 통하는 사통팔달의 교통 요지이다. 구룡리의 도곡 부락 큰골 끝과 원구룡 계곡 끝이 맞닿은 곳에 해발 251m의 고주봉을 주산으로 북쪽으로 향하여 뻗어 올라간 오봉산, 무등산, 칼바위산 등 9개의 용머리 산이 있어서, 혹은 마을 지형이 구렁이같이 생겼다 하여 '구렁'이 '구룡'으로 변하여 ‘구룡동(九龍洞)’이라 하였다. 구룡동은 본래 당진군 남면(南面) 지역에 속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서 남면 도곡리(道谷里), 도동(道洞) 일부를 병합해서 구룡리(九龍里)라 하여 당진군 이배면에 편입되었다. 이배면은 1928년 당진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63년 당진읍으로 승격되었다. 2012년 1월 1일 당진군이 당진시로 승격되어 당진시 구룡동으로 개편되고 행정동인 당진 2동에 속하게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동서트레일은 행복한家돌봄센터 입구에서 오른쪽 '면천로'로 이어간다. 검암천 북쪽 둑방길을 걸은 탐방객들은 검암천의 도동교를 건너 행복한家돌봄센터 입구에서 동서트레일과 재회한다.
2025년 4월에 설립된 '행복한家돌봄센터'는 방문요양·방문목욕 서비스와 병원 동행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고 한다.
도동길을 따라 '행복한家돌봄센터' 앞을 지나면, 지방도 제70호선 면천로의 도동마을 입구에 도동마을 표석과 내포문화숲길&동서트레일 이정목이 서 있다. 삼웅2리마을회관 4.6km, 안국지 6.1km 지점이다.
도동(道洞)은 옛 당진군 남면 도동 지역으로, 뒷골[道谷]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에 옹기점이 있어서 점말이라고도 불렸으며, 복개 마을이라고도 불렸다. 도동[점말] 마을은 흥선대원군이 천주교를 탄압할 때 교인들이 정착하여 옹기를 구워서 생업을 이어오던 곳이다. 지금도 옹기를 굽던 가마터와 천주교 구룡리공소가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도동마을 입구에서 면천로를 따라 구룡슈퍼와 평안마을 버스정류소를 지나간다. 건너편 도곡마을 입구에 도곡마을 표석이 서 있다.
당진시 구룡동 구룡2통 도곡마을이 왼쪽 뒤부터 오른쪽으로 펼쳐져 있고, 오른쪽 안쪽 뒤에 평안마을 요양원이 자리하는 듯. 내포문화숲길의 불교순례길 7코스와 동서트레일 6구간은 도곡마을로 이어가는 것이 정상 탐방로인 듯.
도곡(뒷골)마을은 옛 당진군 남면 도곡리 지역으로, 도동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사근절의 뒤쪽에 있는 마을로 원래 ‘뒷골’이 ‘되골’, ‘도골’로 변해서 도곡(道谷)이 되었다. 일명 윗말이라고도 하는데, 원구룡과 도동의 중간에 위치하고, 밀양 박씨, 수원 백씨, 여산 송씨의 집성촌이다. 당진 감리교회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 법인 평안마을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지방도 제70호선 면천로를 따라 구룡슈퍼 옆 평안마을 버스정류소와 건너편 도곡마을 입구의 표석을 지나간다.
도동마을 입구에서 면천로를 따라 평안마을 버스정류소와 건너편 도곡마을 입구를 지나왔다. 왼쪽 맨 뒤에 칼바위산이 보인다.
면천로를 따라 승전목으로 이어간다. 중앙에 덕원레미콘 당진공장이 있고, 왼쪽 이배산 능선 끝자락과 오른쪽 산 사이의 협곡에 동학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에 승리한 승전목(勝戰項)이 있다.
큰골길은 구룡2통 도곡마을을 거쳐 큰골로 올라가는 길인데, 회원들 중 몇 명이 큰골길로 올라가 동서트레일 정상 코스를 따라간다.
큰골길 입구 맞은편에 도곡마을 버스정류소가 있고 오른쪽 언덕에 덕원레미콘 당진공장이 자리한다. 동서트레일을 벗어나 내포동학길 1코스 시종점인 승전목으로 이어간다.
건설산업 기본 재료인 레미콘을 생산·납품하는 (주)모헨즈 당진공장 출입구를 지난다. (주)모헨즈는 1970년 한일흥업(주)로 설립하여 2000년 (주)모헨즈로 법인명을 변경하였으며, 천안, 당진, 서천, 보령에 공장을 두고, 서울사무소는 서울시 도곡동에 있다고 한다.
면천로를 따라 큰골길 입구를 지나 덕원레미콘 출입구 앞에서 구룡동 지역을 돌아본다. 중앙 왼쪽 맨 뒤에 칼바위산이 보인다.
구룡동에는 도동, 뒷골, 원구룡, 사근절, 성당촌의 5개 자연마을이 있다. 원구룡(元九龍)은 옛 당진군 남면(南面) 구룡리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전의 ‘원 구룡리’ 지역을 말한다. 남양 양씨 집성촌으로 약 450년 전부터 존속하고 있다. 사근절[沙斤寺]은 옛 당진현 남면 사근사리(沙斤寺里) 지역으로, 구룡 앞에 있는 마을이며 옛날에 사근사(沙斤寺)라는 절이 있었다. 현재 주민들은 원구룡을 사근절이라고 부른다. 성당촌(聖堂村)은 면천으로 가는 길가에 있는 승전목 안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며 천주교의 공소가 있다. 주변에 천주교 교우촌이 있었다. 북쪽은 당진시 사기소동, 동쪽은 면천면 사기소리, 남쪽은 서산시 운산면 수당리, 서쪽은 운산면 안호리, 당진시 정미면 대운산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지방도 70호선, 647호선이 관통하며 고속국도 15번 서해안 고속 도로가 마을 북쪽으로 통과하고 있다. 당진 감리교회에서 운영하는 사회 복지 법인 평안 마을이 있다. 도동[점말] 마을은 흥선대원군이 천주교를 탄압할 때 교인들이 정착하여 옹기를 구워서 생업을 이어오던 곳이다. 지금도 옹기를 굽던 가마터와 천주교 구룡리공소가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지방도 제70호선 면천로를 따라 검암천의 도곡교를 건너 오른쪽 승전목(勝戰項)으로 내려간다.
면천로의 보도를 따라 검암천의 도곡교를 건너서 오른쪽 공사 현장으로 내려간다.
도곡교 동단 도곡교 버스정류장 옆에 승전목 가미원나루터 표지판이 전신주에 걸려 있다.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공사 현장으로 내려와 걸어온 길을 살폈다. 이배산이 솟아 있고, 검암천이 돌아흐르며, 면천로의 도곡교는 검암천을 가로지른다.
공사현장 아래쪽 검암천변에 내포문화숲길 이정목과 승전목(勝戰項) 안내판, 목장승 두쌍이 서 있다.
내포동학길 이정목 옆에 승전목(勝戰項, 勝戰谷)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정목에 내포불교순례길&동서트레일 날개가 없다.
승전목(승전곡) : 사기소리와 구룡리 경계가 되는 좁은 길목이다. 검암천이 남쪽으로 흐르다 도곡산 암벽에 부딪쳐 북으로 방향을 바꾼다. 면천 8경의 하나로 승전어화(勝戰漁火)라고 부르며 은어가 많아 밤에 횃불을 들고 고기잡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1894년 10월 24일 산상에 포진했던 동학군 2만여 명이 일본군과 관군 100여 명을 승전목으로 유인하였다. 열세한 무기와 전투력에도 불구하고 지형지물을 십분 활용한 치열한 전투 끝에 일본군과 관군을 패퇴시켰고, 그 여세로 면천에 무혈입성하였으며 홍주성으로 진격하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승전곡 전투는 동학군이 일본군과 교전하여 승리한 단 두 곳 중에 한 곳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일본군과 정면으로 교전하여 승리한 유일무이한 전투로도 기록되어 있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나 현재 도로건설 및 확장공사와 석산개발로 원형이 훼손되었다.
승전목 안내판 옆 아래에 새롭게 작성한 승전목(勝戰項) 전승지(戰勝地)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승전목은 당진시 면천면 사기소리의 이배산과 남쪽의 웅산 사이에 S자 모양으로 있는 좁은 협곡을 말한다. 1894년 10월 지금의 서산시 운산면에 집결한 당진, 서산, 태안, 해미의 동학농민군 일만 오천여 명은 면천을 공격하기 위해 준비를 하면서 지세가 좋은 이 승전목에 5백여 명을 매복시켜 놓았다. 다음날 면천에서 출발한 일본군 소위 아카마쓰가 이끄는 90여 명의 일본군이 승전목에 도달하였고, 동학농민군은 유인과 매복 작전으로 큰 승리를 거두고 면천까지 합락하였다. 승전목 전투는 동학군이 일본군에게 유일하게 승리를 거둔 마지막 전투이다. 하지만 현재는 대규모 식재 채취장 및 도로 건설로 옛 흔적이 대부분 사라졌으나 그 역사적 의의를 기념하여 당진시 향토유적 제10호로 지정하였다.
승전목 이정목과 안내판 아래에 동학농민대장군과 동학농민여장군, 승전목대장군과 승정목여장군 등 목장승 두쌍이 서 있다.
승전곡을 지나 당진시 구룡동에서 당진시 면천면 사기소리로 넘어와 오른쪽 검암천의 다리를 건넌다.
승전목에서 검암천을 건너서 검암천 둑방길을 따라 당진시 면천면 사기소리 마을로 올라간다.
검암천 둑방길을 따라가다가 승전목 협곡을 뒤돌아보았다.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사기소리 검암천 양쪽에 깎아지른 듯한 암벽산에 있는 협곡으로, 구한말 면천 관아에서 여미평에 모인 동학군 토벌을 위해서 진격해 오던 관군과 검암천 협곡에서 교전해 동학군이 대승하여 ‘승전목(勝戰項)’이란 지명을 붙였다고 알려졌다. 당진시 구룡동에서 면천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2㎞ 정도 가면 면천면 사기소리가 나온다. 면천면 사기소리와 구룡동 경계로 흐르는 검암천 절벽은 지명에서 유래하듯 칼바위로 수직 절벽을 이루고 있다. 이 암벽의 산에 협곡을 이루는 곳을 승전목이라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검암천 둑방길을 따라 당진시 면천면 사기소리 마을로 올라간다. 위쪽에 공사 중인 새로운 면천로가 검암천 위를 가로지른다.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에 속하는 사기소리(沙器所里)는 옛날에 도자기를 굽던 곳이라 ‘사기소리’라 하였다. 사기소리는 본래 면천군 송암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평후동, 하웅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사기소리라 해서 당진군 마암면(馬岩面)에 편입하였다. 1917년 10월 면명(面名) 개칭에 따라 면천면에 편입되었다. 2012년 1월 1일 당진군이 당진시로 승격됨에 따라 당진시 면천면 사기소리가 되었다. 동쪽은 면천면 죽동 1리와 송학 1리, 남쪽은 면천면 삼웅리와 당진시 구룡동, 서쪽은 당진시 구룡동, 북쪽은 당진시 사기소동, 면천면 죽동 1리와 접하고 있다. 1개의 행정리, 5개의 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구시[沙器所], 상부(上部), 자라펄, 미락골, 새터말, 윗말, 하부(下部)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석재 채취로 흉물이 된 이배산 남쪽에 공사 중인 새 면천로가 검암천 위를 가로지른다.
당진시 면천면 사기소리 들녘에 비닐하우스 농장들이 펼쳐져 있고, 언덕에 농가들이 자리한다.
비닐하우스에서는 양상추를 재배한다. 동학농민군이 승리를 거둔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 승전곡(勝戰谷)이 중앙 뒤에 보인다.
비닐하우스 농장 사이의 농로를 따라 당진시 면천면 사기소리 마을로 올라간다.
걸어온 농로를 뒤돌아본다. 검암천은 공사 중인 새 면천로의 검암교 아래로 흘러가고, 중앙 뒤 협곡에 승전목이 있다.
면천로 지선을 따라 당진시 면천면 사기소리 들녘과 농가를 지나 매화꽃이 피어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승전목 0.77km 지점, 왼쪽은 사기소리 사태말 방향, 숲길로 들어가 뒤쪽의 웅산 능선으로 올라간다.
숲길 입구에서 사기소리 들녘과 농가, 뒤쪽의 석재 채취로 흉물스런 해발 247.2m 이배산을 바라보았다.
숲길로 들어와 묘지를 지나 묘지 윗길로 올라간다.
숲길로 진입하여 묘지를 지나와 묘지 위쪽에 숲길 입구를 내려보았다.
송학2리마을회관 4.86km, 승전목 0.95km 지점, 숲길이 본격적으로 가팔라진다.
내포문화숲길 중 내포동학길로, 면천읍성에서 승전목까지 1코스로 끝난다. "구한말 관군과 일본군에 의연히 맞섰던 당진 면천읍성과 승전목 등 동학민중항쟁의 발자취를 마주하며 걷는 길입니다."(내포문화숲길에서) 내포불교순례길&동서트레일 날개가 없다.
해발 254.9m 웅산의 서북쪽 능선으로 오르는 등성이 길이 가파르다. 돌계단길을 따라 오른다.
당진면 면천면 사기소리와 삼웅리의 경계를 이루는 웅산 능선으로 올라간다. 높이는 해발 205m쯤 되는 듯.
능선에 내포문화숲길&동서트레일 이정목이 서 있다. 이곳에서 내포문화숲길 중 내포불교순례길 7코스와 내포동학길 1코스, 그리고 동서트레일 6구간이 만난다. 내포불교순례길과 동서트레일 6구간은 승전목을 거쳐오는 길이 아니라 도곡마을을 거쳐 큰골길에서 웅산 능선으로 올라 이곳으로 내려오는 길이다.
오른쪽 길은 내포동학길, 왼쪽 웅산 능선은 내포불교순례길과 동서트레일 경로이다.
동서트레일 6구간은 내포문화숲길의 내포불교순례길 7코스와 내포동학길1코스와 동행한다.
오른쪽으로 굽이돌아 내포문화숲길&동서트레일 이정목 앞을 지나 내려간다.
내포문화숲길의 내포불교순례길 7코스는 양탑사 4.10km, 내포동학길은 송학2리마을회관 4.31km, 동서트레일 6구간은 삼웅2리마을회관 1.4km 거리이다.
정면에 보이는, 삼웅리 마을의 뒷산을 바라보며 내려간다. 왼쪽 골짜기는 성지골인 듯.
내포문화숲길의 불교순례길 7코스와 동서트레일 6구간은 웅산 능선의 송전탑 있는 부근으로 올라와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것 같다.
내포문화숲길의 불교순례길 7코스와 동서트레일 6구간이 웅산 능선 왼쪽에서 내포동학길과 만나서 오른쪽으로 내려오는 것 같다.
임도갈림길에서 임도는 오른쪽으로 이어지고, 동서트레일은 곧바로 내려간다.
임도갈림길에서 내포문화숲길의 불교순례길과 동학길, 동서트레일이 동행하여 오른쪽으로 내려오는 웅산 능선을 올려보았다.
삼웅2리마을회관 1.2km 지점, 임도갈림길의 내포문화숲길&동서트레일 이정목을 지나 아래로 내려간다.
내포문화숲길&동서트레일 이정목 왼쪽의 숲길로 내려간다.
삼웅2리마을회관 0.9km 지점, 숲길에서 시멘트 임도 삼웅안길을 따라 내려간다.
삼웅안길에서 내포불교순례길 7코스와 동서트레일 6구간이 올라오는 웅산 능선 송전탑 근처를 올려보았다.
삼웅안길을 따라 성지골 마을을 돌아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중앙 뒤에 당진시 최고(最高)의 아미산(峨嵋山)이 솟아 있다.
삼웅안길을 따라 당진시 면천면 삼웅리 마을을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간다. 아미산 능선이 중앙 뒤 몽산(蒙山)으로 이어진다. 상웅리(上熊里), 중웅리(中熊里), 하웅리(下熊里)의 한자 곰 熊이 삼웅리(三雄里)의 수컷 雄으로 바뀌었다.
충남 당진시 면천면 삼웅리(三雄里)는 수미산 밑에 위치하므로 수미 또는 웅산이라고 하였다. 삼웅리는 본래 면천군 송암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상웅리(上熊里), 중웅리(中熊里), 하웅리(下熊里) 일부와 대조리(大鳥里)의 일부를 병합하여 삼웅리라 해서 당진군 마암면(馬岩面)에 편입하였다. 1917년 면명(面名) 개칭에 따라 면천면에 편입되었다. 2012년 1월 1일 당진군이 당진시로 승격됨에 따라 당진시 면천면 삼웅리가 되었다. 삼웅리의 동쪽은 면천면 성상리와 성하리, 남쪽은 대치리, 서쪽은 당진시 구룡동과 서산시 운산면 수평 2리, 북쪽은 사기소리와 송학 1리와 접하고 있다. 나무고개[南無峙], 수미[三熊], 밤가시, 양지말[陽地村], 갈곡[角谷], 넘어말, 묵은 잣티, 신웅[新熊], 하웅[下熊], 상웅[上熊], 음지말[陰地村], 점재, 형제골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삼웅안길을 따라 성지골마을 앞을 지나간다. 오른쪽 뒤에 해발 321.3m 다불산(多佛山)과 해발 350.9m 아미산이 보인다.
삼웅2리마을회관 0.7km 지점, 삼웅안길이 성지골 마을 끝에서 오른쪽으로 돌아나간다.
삼웅안길을 돌아 삼웅리 들녘을 오른쪽으로 돌아 중앙에 보이는 민가 앞 쉼터정자에서 왼쪽으로 내려간다.
당진시 면천면 삼웅리 뒤쪽에 보이는 골짜기를 성지골이라 이르는 듯. 성지골 아래 삼웅안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이어갔다.
성지골 마을 앞에서 삼웅안길을 따라 삼웅리 들녘을 지나 내려왔다.
당진시 면천면 삼웅리 마을 쉼터정자 앞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뒷골산과 그 아래 삼웅저수지 제방이 보인다.
쉼터정자를 지나 삼웅천의 다리를 건너면 삼웅천 살리기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삼웅2리마을회관 0.4km 지점, 면천면 삼웅리 건너편 왼쪽에 다불산, 그 오른족 뒤에 아미산이 솟아 있다.
뒷골산 골짜기의 물들이 삼웅저수지에 모였다가 삼웅천으로 흘러내린다. 뒤쪽에 삼웅저수지 제방이 보인다.
중앙 맨 뒤 웅산 능선으로 올라와 오른쪽으로 내려왔다. 중앙 뒤의 성지골 마을에서 삼웅안길을 따라 맨 왼쪽 민가 앞 쉼터정자를 거쳐 삼웅천 다리를 건너 삼웅천 살리기 안내판을 지나 이정목 앞으로 왔다.
삼웅안길을 따라가며 건너편의 다불산(321.3m)과 아미산(350.9m), 오른쪽 맨 뒤의 몽산(299.4m)을 확인한다.
삼웅안길을 따라가다가 뒤돌아보았다. 해발 254.9m 웅산이 왼쪽 맨 뒤에 솟아 있고, 웅산 능선이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웅산은 서산시 운산면 수평리와 당진시 면천면 삼웅리의 경계를 이루는데 서산에서는 웅산(熊山), 당진에서는 웅산(雄山)이라 이르는 듯.
삼웅안길을 따라 앞에 보이는 삼웅순북음교회 앞을 지나 삼웅2로를 따라간다.
삼웅2로를 따라 삼웅순복음교회 앞을 지나 앞에 보이는 삼웅2리마을회관 앞으로 이어간다.
오른쪽 뒤 삼웅안길에서 '삼웅2로'로 들어와 삼웅순복음교회를 살핀다.
삼웅2리마을회관 앞에 영웅정(英雄亭)이 있고 그 오른쪽 운동기구들 옆에 동서트레일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내포문화숲길의 불교순례길 7코스&동서트레일 6구간 이정목이 내포문화숲길·동서트레일 종합안내판과 함께 서 있다.
좀더 가까이서 내포문화숲길·동서트레일 종합안내판을 살핀다.
삼웅리는 수미산 밑에 위치하므로 수미 또는 웅산이라고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상웅리(上熊里), 중웅리(中熊里), 하웅리(下熊里)를 합하여 ‘삼웅리’라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곰 '熊'자가 수컷 '雄'자로 바뀌었으며, 마을회관 앞 쉼터정자에 '영웅정(英雄亭)' 현판이 붙어 있다. 삼웅리는 영웅마을이었으며 산 이름도 웅산(熊山)이 아닌 웅산(雄山)이었던 것인지 불분명하다.
왼쪽의 삼웅2리마을회관이 오른쪽의 삼웅마을회관보다 규모가 더 크다. 삼웅리는 본래 면천군 송암면 지역으로 '수미(雄山)' 또는 '순매동네'로 불리는 마을로 수컷 웅과 뫼 산이 합하여 "숫뫼>숟뫼>순매, 수미"로 음운이 변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동서트레일 6구간 탐방을 마치고 휴식한 뒤, 안내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지방도 제70호선 면천로로 나간다.
삼웅순복음교회 앞에서 맨 왼쪽의 다불산, 그 오른쪽의 아미산, 그 오른쪽 뒤 몽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확인한다. 왼쪽 삼웅2로를 따라 멋진 소나무 앞으로 내려간다.
삼웅2로를 따라 멋진 소나무를 지나 면천로의 삼웅2리 마을 입구로 내려간다. 중앙 뒤에 다불산이 보인다.
'영웅산 아래 장수마을 삼웅2리' 표석이 마을 입구에 서 있다. "이 비는 2001년 당진군에서 주최한 우리마을 사랑운동 종합평가 때 금상을 수상(상금 3천만원)하여 주민의 화합과 결속을 다짐하기 위한 계기를 마련하고자 2002년 4월에 세우다."
마을 표석 뒷면에 적인 삼웅리 내력과 옛 마을 이름 변천을 옮긴다.
삼웅리(三雄里)[수미, 웅산]: 본래 면천군(沔川郡) 송암면(松岩面)의 지역으로 수미산(須彌山) 밑이 됨으로 수미 또는 웅산(雄山)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웅리(上雄里), 중웅리(中雄里), 하웅리(下雄里) 일부와 대조리(大鳥里) 일부를 병합하여 상웅(上雄), 중웅(中雄), 하웅(下雄)리라 하고 이를 삼웅리라 하여 당진군 마암면(馬岩 : 沔川)면에 편입하였다. 원래 삼웅리는 수미(雄山), 숟매동네로 불리는 마을로 수컷 웅의 '수'자와 뫼 산을 의미하는 뫼가 '수컷 뫼→숟 뫼, 숟매→ 수미'로 음운이 변천하여 온 것으로 사료된다. 이 마을은 웅산(雄山)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고지봉, 와계산, 쟁기산 등이 둘러싸여 있고 그 골짝으로 지박골, 성주골, 각골 등의 물이 합쳐져 마을 앞으로 내를 이루며 수해들을 형성하였다. 마을에는 예로부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던 산제당 터와 마을 주민들의 공동샘인 대동샘(안샘)이 있다. 마을 지명은 마을 토지의 역사, 지리를 담고 있어 조상들의 삶이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삼웅2리는 웅산 기슭에 자리잡고 그 기(氣)를 받아 성장하고 발전해오고 있는 마을이다. 이제 잊혀져가는 마을의 역사를 재조명하여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마을의 전통과 옛 지명에 대한 역사관을 밝혀 오늘에 사는 우리들의 자긍심과 애향심을 고취시키는 한편 이를 계기로 주민의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고자 이 비를 세운다.
삼웅2리 마을 입구에서 걸어나온 삼웅2로를 돌아보았다. 정면에 보이는 산을 영웅산이라 명명하였을까? 웅산은 오른쪽 뒤에 있다.
지방도 제70호선 면천로의 삼웅2리 마을 버스정류소에서 서쪽으로 중앙 뒤의 이배산을 살폈다.
지방도 70호선 면천로의 삼웅2리 마을 입구에서 남쪽 삼웅리 지역을 살폈다. 중앙 맨 뒤에 웅산이 솟아 있다. 웅산을 서산에서는 熊山이라 하고 당진에서는 雄山이라 한다. 그렇다면 마을에서는 왼쪽 뒤의 산을 영웅산이라 명명하였을까?
충남 서산시 운산면 수평리와 당진시 면천면 삼웅리 경계에 걸쳐 있는 웅산은 곰이 살았던 산, 또는 산의 형상이 곰처럼 생겼다 하여 웅산(熊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한 웅산 주변에는 곰이 나타나는 계곡의 마을이라는 곰실마을이 있다. 웅산은 금강 북쪽의 산줄기인 금북정맥이 가야산에서 갈라져 나간 지맥으로, 산은 높지 않으나 경사가 급하고 산세가 험하여 계곡이 발달되어 있다. 높이는 253.3m이다. 웅산 북쪽 뒷골산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형성된 계곡에서 발원한 하천이 삼웅저수지로 흘러가며, 웅산 남서쪽 일산봉에서 발원한 하천은 역천에 합류되어 당진시의 석문방조제로 유입된다. 곡간지 주변으로는 농경지가 발달되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