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지하 만인지상’, 이른바 재상제도가 확립된 것은 한대(漢代)이후다. 전국시대만 해도
재상(宰相) 또는 승상(丞相)은 제도화된 관직이 아니고 군주의 개인적 참모를 의미했다.
본디 재(宰)와 상(相)은 둘 다 군주를 보필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군주 개인의 사무를
돕는 의미에서 출발한 재상의 지위가 한대에 이르러 사해의 다스림을 보필하고 만기를
주관하는(輔政四海 主理萬機) 군주 아래 최고의 지위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참모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성공한 예는 참으로 드물다. ‘만인지상’에 성공
했으나 ‘일인지하’에 실패한다거나, ‘일인지하’에는 성공했으나 ‘만인지상’에 실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진(秦)의 중흥을 이룬 상앙(商鞅)은 일인지하에는 성공했으나 만인지상에 실패함으로써
오마분시(五馬分屍), 몸뚱이가 다섯 갈래로 찢겨 죽었고 맹상군(孟嘗君)은 만인지상에는
성공했으나 일인지하에 실패함으로써 조국 제(齊)나라로부터 쫓겨나는 설움을 겪어야 했다.
결국 맹상군은 위(魏)나라 재상이 되어 진(秦)나라와 함께 제를 멸하는데 앞장서는 비운을
맞게 된다.
어떤 조직이든 참모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인지하와 만인지상, 두 부분에서 똑같이 성공을
이루어야 한다. 특히 만인지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인지하에 성공해야 한다.나아가
보스의 신임을 받아야 하고, 신임을 받아낼 수 있는 설득력과 현실적 능력이 증명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진퇴를 분명히 해야 한다. 흔히 직간(直諫)을 말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뢰가 뒷받침될 때의 얘기다. 보스의 도량과 상황을 무시한 직간은 자신을 해치고 지지자들
마저 곤경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
먹을 가까이 하면 검은 물을 들이기 쉽고, 칼을 가까이 하면 베이기 십상이다. 하물며 절대
권력을 쥔 자를 가까이 함에 있어서는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 때에 있어 직간보다
물러남이 현명할 수 있는 법이다.
오나라를 멸한 뒤 어느 날 구천은 문종(文種)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전에 오나라를
치는 일곱 가지 방책을 나에게 말했다. 나는 그 중 세 가지를 활용했다. 나머지 써 보지 못한
네 가지는 이번에 저승으로 가거든 선군(先君)에게 보여 주도록 하라.”
문종(文種)은 범려(范蠡)와 함께 오나라를 멸한 구천의 일등공신. ‘구천이 동고(同苦)는 할
수 있으되 동락(同樂)은 어려운 사람”이라며 제나라로 떠나 버린 범려의 말이 떠올랐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조정은 자신을 반란죄로 옭아매고 있었고, 문종은 읍참마속(泣斬馬謖)하는
구천의 양두구육(羊頭狗肉) 앞에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한비자는 군주를 대할 때 일곱 가지
를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 고의든 실수든 군주의 비밀을 누설하면 목숨이 위태롭고
둘째,> 군주가 진행하는 일에 있어 군주의 의중을 누설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셋째,> 군주에게 건의한 사안의 보안문제다. 자신이 누설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눈치를 채
누설 됐다면 그 또한 자신이 누설한 것과 같다.
넷째,> 군주의 신뢰가 두텁지 않을 때 중대사를 건의하는 것이다. 채택되든 아니하든 결국은
목숨이 위태롭고 다섯째>, 군주의 잘못을 들춰내 역설(逆說)하지 말아야 한다.
여섯째,> 군주가 타인의 계획을 자신의 공인 양 말하고자 할 때 그 경위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 위험하고,
일곱번째>마지막으로 군주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일을 권하거나 이미 그만둘 수 없는 일을
자꾸 그만두라고 강요하면 그 역시 목숨이 위태롭다.
중앙본부 또는 지부를 맡고 있는 참모라면 한번쯤 되새겨볼 만한 경구다. “대인을 두려워하라.
대인을 두려워하면 방종한 마음이 없어지리라. 소인도 두려워하라. 소인을 두려워하면 거만하
고 횡포하다는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大人 不可不畏 畏大人則 無放逸之心 小人 亦不可不畏 畏小人則 無豪橫之名).”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성공을 이끄는 요체는 멀리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