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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장 1인자인 은사 혜각 스님에게서 단청과 탱화를 직접 전수받음
사명암은 조선 선조 6년(1573) 사명대사가 주석하던 곳에 이기 스님, 신백 스님이 중창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통도사 사명암의 동원스님은 48년 간 스스로를 낮추며 탱화를 그려왔다. 동원스님은 우리나라에서 단 두 명뿐인 중요무형문화재 단청장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해온 일이지만 늘 조심하고 삼가는 마음이 앞선다고 한다. 작은 선이 모여 형태를 갖춰가는 탱화를 그릴 때는 신심이 들어가 있어야 비로소 그림이 살아나기 때문에 숨 한 번 크게 쉴 수 없다고 한다.
통도사, 운문사, 동학사, 동화사, 대원사, 제주 관음정사까지 동원스님이 손수 단청한 곳이 100여 곳이 넘는다. 동원 스님은 스승이었던 혜각 스님(慧覺, 1905~1998)에게 행자 시절부터 단청과 탱화를 직접 전수받았다. 그 때부터 스님의 수행법은 단청과 탱화가 된 것이다.
1992년 중요무형문화재 48호로 지정받은 단청장 혜각 스님은 1905년 황해도 신촌군 청량리 사동마을에서 태어나 전각루대(殿閣樓臺)의 단청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다 1920년 15살의 나이로 출가했으며 지난 1998년 1월 3일 93세의 나이로 열반했다. 혜각 스님은 당시 단청의 1인자로 불리던 이화응 대화상의 문하생으로 입문해 단청의 화업을 익히는 등 12종 기법의 창작문양을 개발, 독보적인 명성을 떨쳤다.
혜각 스님은 말보다는 행(行)을 위주로 했다. 제자들이 계율에서 어긋난 일을 하면 용서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자비보살`이었지만, 잘못을 목격하면 눈물이 쏙 나도록 야단을 쳤다. `나한`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것도 이 때문이다. 여행을 좋아하여 상좌나 손상좌들과 함께 걸망 하나 둘러메고 산천을 만행(萬行)하는 것을 즐겼다. 8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손상좌와 함께 지리산을 거뜬히 종주했다고 한다.
혜각 스님은 단청하는 일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동원스님이 들려주는 일화이다. "스님께서 단청한 도량 가운데 한 곳이 김천 직지사 입니다. 다른 절이나 전각도 그렇지만 정말 혼신을 다해 마무리 하셨지요. 그리고는 한참 뒤에 우연하게 북한 사찰 모습이 담긴 도록을 보게 되었습니다. 불타버리기 전의 금강산 신계사 단청 문양이 실렸는데, 어쩌면 그렇게 똑같던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동원스님은 1966년 홀로 여행차 통도사를 찾았다가 그 길로 출가를 하였다고 한다. 스님은 자유를 찾아 출가했다. 대전을 떠나 전국을 유랑하다 부산에서 경주로 향하던 길에 우연히 통도사에 들르게 됐다. 처음 온 곳인데도 낯설지 않고 포근해 스님은 하루, 이틀, 사흘 머물다 아예 출가했다. 특별히 발심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자유롭게 살고 싶어 전국을 떠돌다 왔는데 처음 온 사찰이 너무 자유롭게 편해 하룻밤 자고 간다는 것이 50년이 다됐다고 하였다.
대전에서 태어난 스님은 1966년 출가, 월하 스님을 법사로, 혜각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고암 스님에게서 비구계를 받았다. 1980년대 초반 잠시 통도사 교무 소임을 맡은 것을 빼고는 줄곧 탱화를 그리며 한평생 수행에 매진했다.
행자 시절 방에 걸린 관음도를 열심히 펜으로 따라 그리던 모습을 본 홍법 스님이 혜각 스님에게 소개하면서 은사와 제자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인 혜각 스님을 모시며 불화 수행을 하는 것은 동원 스님의 주된 일과였다. 그저 혜각 스님을 모시며 부처님의 법을 따라 지극정성을 다해 불화를 그리다보니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고 하였다.
장기간 보유자가 부재중이었던 단청장 보유자에 양산 통도사 사명암 감원 동원 스님과 홍창원 씨가 지정되었다. 문화재청은 2009년 2월 19일 전 보유자였던 고 혜각 스님의 상좌 스님인 동원 스님을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보유자로 지정했다. 동원 스님은 현지조사 시 기량과 작품의 예술성 등 모든 면에서 완숙한 경지를 보여줬으며, 전 보유자였던 고 혜각 스님 단청의 특성을 잘 살려 전통단청 기능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통도사 사명암(四溟庵) 주지 동원스님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이다. 석정스님과 더불어 단청, 탱화의 대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진 조계사 대웅전 탱화는 꼬박 3년 동안 6명의 제자와 조성한 높이 8m, 폭 5m 크기의 국내최대 후불탱화이다. 석가여래탱화는 2008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인 조계사 대웅전에 모시며 점안식을 가졌다. 캐나다 서광사, 청도 운문사, 대구 동화사 등 100여 사찰에 단청 불사를 했고, 전국의 많은 법당에 스님의 손길이 스며있다. 고려불화에 준하는 세밀한 탱화를 그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7살에 출가한 이래 48년을 영축산과 더불어 수행하며 자신을 비우고 불화를 통해 부처님의 법을 중생들에게 전하고 있다. 불화 수행을 하는 동원스님은 부처님을 찬탄하는 자유인이며, 그의 손길에는 정성이 가득 묻어난다.
동원스님이 좋아하는 것이 네 가지라고 한다. 첫째는 자유로운 몸과 마음이다. 둘째는 산천을 보고 여행하는 일이다. 지금도 한없이 가는 것을 좋아해 어디든 훌쩍 떠난다. 미국에서 가장 높다는 산을 비롯해서 전국 안 가본 곳이 없다. 세 번째는 그림을 좋아한다. 중국에서 가장 권위가 있다는 항주 국립미술학교를 마쳤다. 네 번째는 대금을 좋아한다. 재미있게 살려다 보니 그림에 맞는 악기 하나쯤은 있어야겠다 싶어 배웠다. 그런데 나이가 들다보니 그림은 업이다 보니 하고 있지만 음악은 재미가 없어져 대금은 버렸다고 하였다.
1998년 입적한 혜각 스님과 함께 퇴락한 사명암을 일으켰다. 동원스님은 일승대와 쌍벽을 이루는 정자를 연못을 조망할 수 있는 자리에 건립하고 이름을 무작정(無作停)이라고 명명하였다. 사명암을 방문할 때 무작정이라는 정자에는 무작정 올라가서 연못을 내려다보면 고요하고 정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자유롭게 살려면 일을 만들지 말라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동원스님에 의하면 사명암에는 행사도 없고 특별히 정해진 일정도 없으며, 신도들 누구나 자유롭게 와서 기도하고 가면 된다고 한다.
탱화로 최고의 경지에 오른 동원스님은 "탱화를 그리는 일은 부처님 일을 하는 것이다. 부처님 일은 신명을 다해야 하고, 신명이 들지 않으면 영험 없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100년 전 탱화를 보면 원력(願力)과 신심(信心)으로 조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사명암은 통도사의 부속암자로 작은 규모이지만 건축학적으로 매우 짜임새 있고, 일반인의 눈으로 봐도 아주 아름답다. 숲속 길 진입로를 따라 주차장에 도착하면 계단식 구조로 이루어진 암자가 나타난다. 먼저 계단을 올라가면 연못이 있는데, 중앙의 다리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뉘어진다. 커다란 잉어들이 연못을 휘젓고 다니는데, 미리 물고기 먹이를 준비해가면 잉어 쇼를 볼 수 있다. 연못 속에는 수련이 피어 있다.
다리에서 보면 오른쪽의 일승대가 기둥을 연못까지 길게 내리고 있는데, 스님들의 차 마시는 공간으로 일반인들이 올라갈 수 없다. 왼쪽에 정자가 있는데, 이름이 무작정이라는 것과 어울리게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양산신문 news@yangsanilbo.com
사명암 감원 동원스님, 화관문화훈장 받아
통도사 산내 암자인 사명암 감원 동원스님이 정부로터 화관문화훈장을 받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0일 제48호 국가중요무형문화재 단청장 보유자 동원스님에게 화관문화훈장을 수여하는 등 문화훈장 수훈 대상자 18명을 발표했다.
시상식은 12일 오전 10시 반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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