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유의 IT모델」 주창자
오늘날 全세계적인 IT(Information Technology)산업 불황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NTT 도코모社만은 예외다. 1992년 NTT에서 독립한 이 회사는 휴대전화 단말기에 인터넷 기능을 추가한 「i모드」라는 모바일 컴퓨팅(mobile computing·움직이는 컴퓨터) 신기술로 연간 10조 엔 정도 이익을 내고 있다. 이것은 NTT 도코모가 브로드밴드(broadband·주파수 분할
다중화 기법을 이용해 하나의 전송매체에 여러 개의 데이터 채널을 제공하는 정보통신 용어), 즉 常時 접속 가능한 대용량의 고속회선을 전국에 설치하여 인터넷과 PC의 연결을 통해 여러 가지 e-비즈니스를 일으켜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미국식 모델과는 다른 길을 갔기 때문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NTT 도코모는 「인터넷과 PC의 연결」이라는 미국 모델을 답습하지 않고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연결」이라는 고유 모델로 승부를 걸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반면에 브로드밴드를 이용한 미국식 모델은 2000년까지 미국의 닷컴 기업 220개 이상이 폐업했고, 2001년 초부터 2001년 8월까지 410개 이상이 파산했다. 미국 모델의 특징인 무료 서비스, 무료 뉴스
사이트 등은 대부분 경영 악화로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IT업계에서는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연결을 통한 모바일 컴퓨팅이라는 「일본 고유의 IT산업 모델」이 가능했던 것은 사카무라 겐(坂村健) 교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평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현재 도쿄대학 대학원 정보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사카무라 교수는 1982년 일본이 IBM 컴퓨터 스파이 사건으로 미국으로부터 수모를 당한 후 「일본 고유모델의
컴퓨터 기술을 개발한다」는 구호 아래 대대적으로 추진된 「트론」(TRON·The Real time Operating system Nucleus) 기술개발의 책임자다.
그는 트론 기술을 응용하여 「인터넷과 휴대폰의 결합」을 현실화함으로써 「일본식 IT의 선구자」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 IMT 2000〈International Mobile Telecommunication-2000·육상 및 위성 환경에서 음성, 고속 데이터, 영상 등의 멀티미디어 서비스 및 글로벌 로밍(해외에서도 휴대전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하는 유무선 통합 차세대 통신서비스〉 프로젝트의 리더」라는 평까지 듣고 있다.
사카무라 교수는 텔레비전과 방송 출현 등을 통해 『IT산업에서 미국 방식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는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있다. 최근에 한국에 번역 소개된 저서 「차세대 IT혁명과 아시아적 발전 모델」(동방미디어 刊)에서도 사카무라 교수는 『미국 주도下에 패권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IT산업에서 미국 모델을 답습할 것이 아니라 일본 및 아시아를 지키는 고유의 기술개발을 통해 아시아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아
일본 사회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月刊朝鮮은 사카무라 교수가 주장하는 IT산업의 새로운 세계를 알아보기
위해 일본 도쿄의 고하다(五反田) 전철역 근처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마음씨 착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단정한 인상을 한 사카무라 교수가
기자 일행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먼저 사카무라 교수에게 「차세대 IT혁명과 아시아적 발전 모델」(이하
「차세대 IT혁명」으로 표기)이란 著書(저서)를 집필하게 된 동기를 묻자
『미국에서 태동된 IT산업의 불황이 세계적 불황으로 번진 이유를 찾기
위해서』라며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열었다.
『현재 IT는 세계를 이끌고 있는 대단히 중요한 산업입니다. 그런데 선진
각국이 다양한 육성정책을 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發 IT 불황이 왜 全세계적 불황으로 이어졌을까. 특히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어떻게 하면 IT산업의 불황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됐죠』
무분별한 미국 추종에서 깨어나라
―사카무라 교수의 著書를 읽으면서 저는 이 책이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의 저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의 IT판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까지 일본과 한국은 IT분야에서 미국 방식을 답습해 왔습니다. 미국이 문명이 발달하고 위대한 나라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나라 고유의 시스템이 있고, 아시아는 아시아 고유의 스타일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의 원고를 쓰면서 그 나라가 처한 고유의 문화를 IT에 접목시켜 발전모델을 창조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저자께서는 著書를 통해 미국식 IT모델인 「브로드밴드 구상」에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여기에 대한 代案으로 일본은 미국과는 다른 IT모델, 즉 인터넷과 휴대폰 단말기의 접속을 통한 모바일 컴퓨팅(움직이는
컴퓨터) 쪽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브로드밴드 구상의 문제와
한계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저는 브로드밴드 방식은 IT산업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기술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브로드밴드 방식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투자되어야 하기 때문에 단계를 밟아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죠. 또
막대한 예산을 들여 브로드밴드를 구축했다 해도 그 「정보의 고속도로」를 통해 무엇을 주고 받을 것인가 하는 콘텐츠(내용물)가 문제입니다』
사카무라 교수는 『브로드밴드 방식은 정보 고속도로망을 통해 주고받는
콘텐츠를 이용해서 투자비를 회수해야 하는데 회선망 구축에 막대한 투자가 요구되므로 투자비 회수가 어려울 것』이라면서 영화산업을 예로 들었다.
『일본에서 영화를 제작하여 극장이나 비디오 대여점을 통해 영화나 비디오를 빌려 볼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데 5000억 엔이 투자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그런데 브로드밴드를 깔아 인터넷과 PC를 통해 영화나 비디오를 감상하려면 1조 엔 이상이 투자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브로드밴드 구축은 천천히 단계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죠』
―저자께서는 미국 주도下에 진행되는 IT산업에 우려를 표시하면서 아시아권, 즉 일본의 역할을 강조하셨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IT산업의 방향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우선 미국식 모델의 무분별한 추종에서 깨어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미국이 문명국이란 점은 존중하지만 한국이나 일본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미국이 될 수는 없으니까요. 미국은 IT산업의 흐름이 브로드밴드와 PC를
연결시키는 쪽으로 가고 있는 데 비해 일본은 국민 각자가 휴대폰을 소지하고 있기 때문에 휴대폰과 인터넷의 연결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본이 처한 상황과 조건, 생활습관, 문화에 뿌리를 둔 새로운 방법론을 IT에 접목시킨 것입니다. 일본의 방식을 아시아 국가들은 의미 깊게 지켜보길 바랍니다』
한국도 IT산업의 독자 모델 개발해야
한국은 현재 「정보통신 强國이 되자」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구호 아래 정부 주도下에 IT산업 발전을 위해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결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은 인구 100명당 브로드밴드 인터넷 연결 10명을 기록하여 브로드밴드 인터넷망 설치 현황에서 세계 1위의 국가가 되었다(2위는 인구 100명당 4명을 기록한 캐나다, 100명당 3명을 기록한 미국). 이러한 한국의 IT산업 위상에 대해 질문하자 『한국의 IT산업 수준은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IT산업에서 한국과 일본이 추구하는 전략의 유사성과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저는 두 나라의 IT산업 환경이 유사하다고 봅니다. 문제는 한국 IT산업의 숙명은 내수시장이 협소하기 때문에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여 세계와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죠. 반면에 일본은 국내 수요만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한국은 自國 내에서 IT산업의 소비를 늘리는 방법을 강구해야 하고, 외국에 진출하더라도 그 나라 여건에 맞는 서비스를 새로 개발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우선 한국은 생활 패턴이
비슷한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유리할 듯 합니다』
―저자께서는 著書 「차세대 IT혁명」 곳곳에서 「미국의 모방」에 대한
위험성을 지적하고 독자의 길, 고유의 길을 강조했습니다. 일본을 비롯한
동양권 국가들은 미국이 정해 놓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씨름판이 실제로는 아메리칸 스탠다드라는 점을 인식하고, 그 판에 억지로 끌려가 힘도 못
써보고 패하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은 1980년대 초까지 미국에 비해 산업 발달이 크게 늦었습니다. 때문에 계속 미국을 모방하는 과정에서 어떤 분야에서는 미국을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어요. 흉내를 내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흉내를 내는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관과 방법론을 찾았어야 하는데, 저는 여러 산업 분야에서 일본인들이 일본식 방법론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고 봅니다. 이런 것에 대한 반성의 차원에서 저는 일본이 독자모델로 가야
미국과 경쟁이 가능하다고 본 겁니다. 한국도 지금은 잘 나가고 있는 것 같지만 한국만의 독자 모델을 개발하지 않으면 몇 년 후 일본처럼 큰 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있어요』
IT기술 개발은 국가가 주도해야
―저자께서는 著書에서 「IT분야에서 필수적인 기초 기술은 국가 주도下에 개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주장은 「벤처기업=민간분야의 창의성」이라는 기존의 개념과는 조금 다른 것인데, IT분야 기술 연구에서 국가 주도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미국의 컴퓨터산업은 탄도미사일과 수소폭탄 연구를 위해 시작됐습니다. 인터넷은 미국의 군사기술인 알파(ARPA·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고등연구계획국) 네트워크가 모체입니다. 고등연구계획국은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 충격에 의해 탄생한 美 국방부 산하 기관으로서 연간 수천억 달러의 巨金을 투자하여 전자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이것을 1990년대 초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이후 민간에 개방한 것이 오늘날의 인터넷이죠. 알파 네트워크를 개방하는 과정에서 IT벤처기업이 탄생되었으니 결국 미국의 벤처 연구자금은 거의 군사 연구비로
출자된 것입니다. 저는 「벤처 육성=민간기업」이란 등식은 오해의 산물이라고 봐요. 벤처에 필요한 핵심기술은 거대한 투자가 요구되는데, 이 정도 투자는 국가 주도로 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 현실입니다』
트론 프로젝트의 개발자인 사카무라 교수는 일본의 IT산업史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일본은 트론 프로젝트에 국가의 死活을 걸다시피 했는데, 그 원인은 1982년 히타치 제작소와 미쓰비시 전기 직원들이 IBM의 캄퓨터 기술을 빼내려다 美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되는 수모를 당했기 때문.
1970년대 일본은 후지쓰와 히타치를 중심으로 IBM 컴퓨터와 호환이 가능하면서도 IBM을 능가하는 컴퓨터 개발에 도전했다. 일본의 약진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일본의 추월을 막기 위해 컴퓨터에 들어가는 칩과
OS(Operating System·컴퓨터 시스템의 전반적인 동작을 제어하고 조정하는 프로그램들의 집합)를 지적 소유권 등으로 접근할 수 없게 차단했고,
급기야 일본의 컴퓨터 기술자들이 산업 스파이로 몰리는 수모를 당한 것이다. 사카무라 교수는 著書 「차세대 IT혁명」에서 1982년 IBM 스파이
사건을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상의 충격』이라고 표현했다.
―1982년 IBM 스파이 사건의 의미는 무엇이며, 이 사건이 그 후 일본의
IT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IBM 사건이 나기 전까지 일본은 지적소유권이란 개념이나 법률, 제도의 정비가 없었는데 미국이 여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저는 당시 사건은 일본 기업들이 IBM을 추월하려는 경쟁이 야기한 결과라고 봅니다만 어쨌든 이 사건으로 컴퓨터 분야에서 더 이상 미국 흉내내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극복 방법은 미국처럼 필요한
요소 기술을 제로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두 다 독자 개발하거나, 미국 부품을 사다 조립하는 길뿐이었어요. PC분야에서 일본은 후자를 선택했는데,
이렇게 되니까 이익이 전혀 나지 않아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휴대폰은 순수한 일본 기술이었기 때문에 미국의 견제를 받지 않고도 휴대폰과 인터넷의 연결이 가능했어요. 이것을 가능케 한 것은 휴대폰 안에
트론 기술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의 비밀
―이제 대화 주제를 트론으로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트론이란 한 마디로
무엇입니까.
『쉽게 설명하면 휴대폰에 들어 있는 마이크로 컴퓨터나 인터넷 브라우저, 소프트웨어의 총칭입니다. 휴대폰 외에도 자동차의 엔진 컨트롤 시스템, 디지털 카메라, 항법장치에 들어 있는 마이크로 컴퓨터나 제어장치 등으로 설명하면 이해가 빠르겠죠. 다시 말하면 소형 컴퓨터가 모든 생활 필수품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저자께서는 트론 프로젝트의 개발 책임자였다고 하는데 이런 기술 개발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이었습니까.
『트론은 흉내내기의 한계에 도달한 일본이 순수한 독자기술을 총동원하여 개발한 것으로서, 사회 전체에 컴퓨터를 내장시켜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의 혜택을 보자」는 꿈을 현실화한 OS(Operating System)입니다. 트론을 개발하면서 저를 비롯한 팀원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보다 월등히 뛰어난 기계용, 산업용, 전자용 OS를 개발하자는 목표을 세웠는데, 그것이 달성되었다고 봅니다. 현재 트론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내장형 운영체계로서 초기에 의도했던 것보다 더 앞서가는 기술적 진보를
이루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의 혜택을 본다」는 것이 좀 실감이 나지 않는군요.
이 질문에 사카무라 교수는 트론이 내장된 컴퓨터를 보여 주었는데 그것은 동전 크기만 한 검은 물체로 된 플라스틱 덩어리였다.
『이 플라스틱 물체가 트론 기술이 집약된 컴퓨터인데, 이것은 전파로 작동하며 전지가 필요 없습니다. 이 물체를 좀더 압축하여 휴대폰에 내장하면 내장 컴퓨터가 되는데, 이 컴퓨터에 내장된 다양한 정보와 데이터를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주택에 내장하면 비가 올 때 자동으로 창문이 닫히면서 에어컨이 작동하여 공기를 조절하고 화분에 물을
주며 난방조절 등을 알아서 합니다. 이 컴퓨터를 냉장고 안의 식품 용기에
장착하면 용기 속 음식물의 신선도 유지 등이 가능합니다. 이런 것들이 제가 주장한 「어디서나 컴퓨터」의 개념이지요』
―저자께서는 著書에서 트론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IBM 스파이
사건과 무관치 않으며, 벤처 기질이 약한 일본인에게 맞는 현실도피적인
프로젝트였다고 하셨는데요.
『현실도피라기보다는 더 이상 미국의 흉내를 내지 말고 일본이라는 사회의 특성에 맞는 OS를 개발하자는 뜻이었습니다. 일본인은 체질적으로 소형·경량화, 그리고 전지로 작동하는 기계 메커니즘을 개발하는 데 강점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트론으로 현실화된 것입니다』
「벤처 기질이 약한 일본인」이라는 차원에서 사카무라 교수는 자신의 著書 「차세대 IT혁명」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밝히고 있다. 과학적 연구 결과에 의하면 두뇌 속의 신경 전달 물질인 세로토닌(Serotonin) 수용체가
적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보수적이 되어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싫어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일본인은 세로토닌 수용체가 적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전체의 90%인 반면 미국은 5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프로그램은 쓰레기
이런 유전학적 이유 때문에 일본인은 태생적으로 벤처 기질에 약해 어떤
일에 도전할 때 혼자서, 모험심 강한 세계에 도전하는 것을 극히 꺼리는 대신 집단으로 안전하게 일을 한다고 한다.
사카무라 교수는 일본인의 체질적, 유전학적 분석을 통해 『빌 게이츠를
본받자, 빌 게이츠를 연구하자는 것은 넌센스다. 오히려 일본은 빌 게이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 잘 해왔다는 것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著書 중 또 다른 흥밋거리는 미국의 패권적인 IT산업에 대한 도전, 특히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비판이었다. 여기에 대한 견해로 화제를 돌려보았다.
―저자께서는 著書에서 『세계의 사회 전체 인프라가 거의 일개 회사에
좌우되는 현상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면서 全세계 OS를 독점한
마이크로소프트가 평범한 회사로 바뀌는 순간 진정한 IT혁명이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IT산업에 끼친 순기능과 역기능은 무엇입니까.
『윈도의 제조사인 마이크로소프트가 1990년대 후반부터 버전 업을 반복했기 때문에 시스템에 바이러스가 침입할 수 있는 새로운 구멍이 차츰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구멍을 통해 신종 바이러스 침투가 계속됐어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나오는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강해 인터넷망을 타고
급속히, 강력히 퍼져 나가 全세계에 큰 피해를 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사카무라 교수는 『윈도라는 특정 OS의 독점 상태가 없었다면 컴퓨터 바이러스가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 컴퓨터 바이러스 피해 확대의 근본적인 책임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있다고 비판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컴퓨터 사회 전체의 동반 자살을 초래할 수도 있는
모노컬처(단일 품종으로 구성된 집단) 전략을 의연히 고수하고 있는데, 세계의 사회 전체 인프라가 거의 일개 회사에 좌지우지되는 현상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미국의 컴퓨터 학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프로그램은 쓰레기」라고 극언을 했어요』
―저자께서는 「차세대 IT혁명」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로 상징되는
미국의 IT산업이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미국
기업의 IT산업 독점이 계속될 경우 어떤 문제들이 발생할 것으로 보십니까.
『앞으로의 세계는 자유 경쟁이 필수인데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정보공개와 독점금지입니다. 문제는 미국 정부가 독점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법과 제도를 운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로소프트가 OS 분야에서
독점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 기업이 OS 시장을 독점할 경우 그 기업의 방식대로 통일되는 것이 불가피하므로 이 분야에서 경쟁이란 있을 수
없어요. 경쟁이 사라지면 기술의 발전도 기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는 또 『계속되는 버전 업으로 인해 사용자들이 매년 비싼 돈을 내고 새로운 제품을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점도 독점의 폐해』라고 지적했다.
『유럽과 세계 곳곳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체제에 대해 고소·제소·비판이 쏟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일본과 한국에서만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은 국제적인 웃음거리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시아에서 산업이 가장 발달한 일본과 한국이 마이크로소프트에 아첨하고 있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어요』
韓·日이 아시아를 지킬 의무가 있다
―저자께서는 著書에서 트론 OS는 「내용을 공개하여 누구라도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개방형 구조인 반면 마이크로소프트의 OS는 「내용을 비밀에 부쳐 같은 것을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폐쇄적
구조라고 비판했습니다. 인류의 산업이나 경제발전에 있어 어떤 방식이
더 유리하다고 보십니까.
『개방형 구조로 가면 全세계의 많은 기업들이 관련기술을 응용하여 좀더
진보된 기술에 도전할 수 있고, 자유경쟁을 통해 엄청난 발전을 이룰 수도
있습니다. 인류의 발전, 산업의 발전이란 측면에서 볼 때 마이크로소프트처럼 관련기술을 사용하지도 못하고, 또 사용하려면 막대한 이용료를 내야 하는 방식은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는 자명합니다』
―저자께서는 『과거의 역사에 접속할 수 있는 수단을 잃어버리면 문화는
쓸모 없는 것』이라며 문자와 문화의 중요성, 특히 東北亞 지역 국가들이
함께 사용중인 漢字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저자께서는 현재 컴퓨터에서 17만字의 한자를 완벽히 구현하는 프로그램을 개발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프로그램 이름이 「超漢字 B트론」이라는 것인데, 기본 개념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문자를 컴퓨터에서 사용 가능하도록 한 것입니다. 超漢子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요. 일본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붙인 이름입니다』
―저자께서는 著書에서 『수치 계산의 도구로 발전해 온 컴퓨터가 이제부터는 문화를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면서 『문화를 관리하는 컴퓨터를 만들어 아시아의 문화를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문화를 관리하는 컴퓨터란 무슨 뜻이며, 저자가 직접 개발한 「超漢字 B트론」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마이크로소프트의 OS는 영어의 알파벳 26문자를 토대로 개발됐기 때문에 아시아 문자를 컴퓨터 상에서 완벽히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결과 컴퓨터에서 漢字를 비롯하여 아시아의 여러 가지 문자 표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당수 문자와 문화가 말살 위기에 처했습니다. 문자가 말살되면 문화가 사라지기 때문에 아시아의 문자를 컴퓨터에서 완벽히 구현하자는 차원에서 「超漢字 B트론」을 개발한 겁니다. 저는 이것을 아시아
각국의 문화 보호를 위한 OS, 아시아를 위한 OS라고 의미 부여를 하고 싶습니다』
사카무라 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껄끄러운 것이 현실이지만 아시아에서 산업과 기술이 가장 발달한 두 나라가 아시아를 단결시켜 아시아의 문화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漢字 버리면 과거 문화 통째로 폐기처분하는 것
―한국의 일부 지식층과 젊은 계층은 『한자는 중국 글자이니 버리고 한글만 전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런 주장에 대한 견해를 밝히신다면.
『한국은 지난 수천년 동안 漢字를 사용해 왔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漢字를 버리면 과거 문화를 통째로 폐기처분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때문에 한글만 사용하자는 주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漢字는
중국에서 한국과 일본으로 들어온 것이지만 漢字로 인해 적어도 아시아
몇 개국은 정보교류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현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21세기의 漢字는 아시아의 라틴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著書를 보면 『인류 역사에서 대부분의 혁명은 피를 흘리고 희생자가 나왔다. IT도 혁명인 이상 진행과정에서 「유혈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구절은 IT산업이 인간의 삶과 산업, 경제양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존의 가치관과는 약간 다른 것처럼
이해됩니다.
『새 기술이 등장하면 舊시대 기술자는 피해를 보는 것이 인류사의 교훈입니다. 馬車 통행 시대에 자동차가 등장하면 馬夫는 직업을 잃게 되지요.
IT산업이 대단히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이 와중에 많은 새로운 직업이 탄생하는 반면, 많은 사람은 직업을 잃고 있습니다. 직업을 잃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시대의 흐름이 반드시 희망적이지는 않다는 뜻을 표현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자가 한국의 IT산업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한 조언을 구하자 사카무라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한국의 IT산업은 미국의 브로드밴드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데 브로드밴드 방식이 한국의 상황에 적절하며 무리하지 않는 것이라면 큰 문제는 없겠죠. 그러나 미국을 따라가거나 흉내내기로 가면 미국 기업만 돈을 벌 뿐 아무런 실속이 없습니다. 저는 한국에 갈 때마다 유교문화의 깊은
뿌리, 연장자에 대한 존경 등에 감명을 받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마치 젊은이들이 다 끌고 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저는 한국의 독특한 문화를 잘 발전시켜 IT와 접목시킴으로써 한국 고유의 정보문명 모델을 만들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모델을 모색하고
관련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을 넘어서야 진정한
실속이 있는 겁니다』
세 시간에 걸친 인터뷰가 끝난 후 사카무라 교수는 자신의 사무실 한편에
마련되어 있는 디지털 박물관을 안내했다. 입장객이 소지한 카드 한 장에
디지털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방대한 자료를 입출력할 수도 있고 거대
화면을 통해 자료를 영상으로 볼 수도 있는 희한한 박물관이었다. 사카무라 교수는 『이런 시스템을 100% 순수한 일본 기술로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호텔에 들어와 텔레비전을 켜니 마침 한국 특집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었다. 브로드밴드 세계 1위의 한국을 르포 형식으로 취재한 내용이었다. 하드웨어의 웅장함이나 IT관련 각종 수치가 세계 톱 클라스에 오른 한국이
과연 소프트웨어나 콘텐츠, 수익 면에서 어느 정도나 실속을 차리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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