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많이 사라졌지만 '함'은 우리 결혼문화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함들이는 결혼 전야제의 성격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예비신랑신부의 결혼을 알리는 일종의 '신고식'인 것. 함들이의 성격과 함 속에 들어가는 내용물 등에 대해 알아보자 .
-함의 내용물과 의미
함을 보내는 의식인 납폐는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결혼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혼서지와 혼수를 보내는 성스러운 의식이다. 원래는 결혼식 전날에 신랑이 신부에게 보내는 것이지만, 요즘은 각각의 사정에 따라 결혼식 며칠 전에 날짜를 정해 행하는 것이 추세다. 함을 싸는 것도 한복 업체에 의뢰해 싸는 것이 보편적으로 굳어졌다.
가장 중요한 내용물인 혼서지는 혼인 때 신부 집으로 보내는 서간으로 혼서, 또는 예장지라고 한다. 혼서지는 백지를 길이 36cm, 폭 60cm 정도의 크기로 하고, 아홉 번 접어서 혼서보(검은색, 또는 쪽물감을 들인 비단 겹보자기, 네 귀퉁이에 붉은색 금전지를 단 것)에 싸서 근봉을 두른 다음 함의 맨 위에 올려놓는다. 혼인에 앞서 신랑 집에서 보내는 예물을 채단이라고 하는데, 붉은 비단 한 감과 푸른 비단 한 감을 접어 싸고 청실과 홍실로 묶어 보내는데 대개 납폐 때 혼서지와 함께 보내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함으로 알려진 봉채함은 종이함, 자개함, 목상감함, 은입사 상감함, 자수함 등 그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그 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치는 것은 손자수함이다. 지방마다, 집안마다 각각 다를 수 있지만 함에 오곡이 들어가는 것은 거의 동일하다. 먼저 함 바닥에는 빨간색 한지를 깔고 청색 주머니에는 콩을, 적색 주머니에는 팥을, 연두색 주머니에는 수수를, 꽃분홍색 주머니에는 찹쌀을 넣으며 황색 주머니에는 음력을 기준으로 신랑과 신부의 나이를 합쳐 목화씨를 넣는다. 각 주머니는 동서남북과 중앙에 두며, 주머니의 주둥이는 각 사방으로 향하게 하고 중앙에 놓인 목화씨 주머니는 북서쪽을 향하게 한다.
채단을 오곡주머니 위에 가지런히 놓은 후 인연의 의미를 담고 있는 쌍가락지 한 쌍과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물려주는 패물로 노리개 하나 정도가 채단 위에 놓여진다. 이때 쌍가락지와 마찬가지로 인연을 뜻하는 거울을 함께 놓기도 한다. 시렁(안뚜껑)을 닫은 후 혼서지보(납폐서)를 시렁 위에 놓는데, 이 혼서지보는 신랑 아버지가 신부 아버지께 보내는 신랑의 가문과 자손에 대한 소개와 글로 며느리를 맞이하는 감사의 내용이 담겨지며, 겉은 붉은색, 안은 청색으로 된 보자기에 싼다.
함을 보낼 때는 청홍 겹보자기를 사용해서 홍색이 바깥으로 오게 싼 다음 스무 마 정도의 무명천으로 함 끝을 맨다. 함 끈 역시 한 번만 잡아당기면 매듭이 풀리도록 매듭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도 두 사람이 앞날이 술술 풀리도록 바라는 기원의 의미다.
-함을 맞는 방법
함을 보낼 때는 신랑 집에서 봉지떡(찹쌀 두 켜에 팥고물을 넣고 가운데 대추와 밤을 박은 찰떡)을 정성껏 찐 다음 시루 째 마루 위에 있는 소반에 떼어다가 그 위에 함을 올려놓았다가 지고 간다. 신부 집에서 함을 받을 때는 화문석을 깔고 병풍을 둘러친 후 홍색 보자기를 덮은 상을 내놓는다. 찹쌀과 팥을 섞어 봉치떡을 시루에 쪄서 시루 째 상 위에 올려놓고 그 위에 홍보자기를 덮은 후에 옆에 정한수를 떠놓는다.
함은 신부의 부모가 받는 것으로, 가능하면 한복을 입고 신부의 아버지는 두루마기까지 갖춰 입는 것이 좋다. 신부는 노랑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고, 함을 받은 신부 측에서는 답례로 신랑의 의복을 준비하는데, 한복 대신 양복을 준비하는 것이 요즘의 추세다.
-오늘날의 함
신부 집에서 신랑 집으로 함을 전달하는 사자(使者)를 보통 '함진아비', 혹은 '함잡이'라고 한다. 함진아비는 신랑 측과 가까운 사이의 결혼을 한 나이 지긋한 사람이 갔으나, 지금은 신랑의 친한 친구가 함을 지고 가거나 신랑이 혼자서 직접 함을 지고 가는 경우가 많다.
함진아비가 보자기로 싼 함을 흰 베로 멜빵을 만들어 양 어깨에 걸어 메면, 그 앞에 등불을 밝혀주는 사람과 동행한 2~3명의 사람이 함께 신부 집으로 향한다. 함진아비의 정중하고도 익살스런 언행은 신부 집은 물론 동네 구경꾼들의 큰 웃음거리요, 관심사가 된다. 또 지방에 따라서는 이 함진아비의 얼굴에 까맣게 환을 그려 더욱 웃음을 사기도 했으며 함진아비의 신분을 감추고, 더욱 우스꽝스런 행동을 하고자 오징어로 얼굴을 가리고 함 팔러 가는 경우도 많다.
신부 집에서는 소반 위에 백설기 시루를 준비하였다가 함이 도착하여 함진아비가 함을 시루 위에 올려놓으면, 오복(五福)을 두루 갖춘 나이 지긋한 어른이 함을 열어 여러 사람들에게 두루 보여주는 것이 상례지만, 함진아비는 좀처럼 함을 내려놓지 않거나, 아예 집안에 들어오는 것조차 완강히 거부하고 시루 둘레를 빙빙 돌면서 갖가지 푸념과 떼를 쓰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함을 산다'는 말이 생겨났다.
신부 집에서는 가족이나 친지들이 준비했던 술과 간단한 음식을 대접하여 함을 빨리 받으려고 하지만, '먼 길을 걸어오느라 지쳐서 움직일 수 없다'거나 '대접이 소홀해 함을 팔 수 없다'고 엄포를 놓기도 한다. 그리고 흥정이 붙어 큰소리가 오고 가는 협상이 진행되며 얼마간의 요구가 맞게 되면 함을 내려놓게 된다.
웨덱스닷컴의 김정희 팀장은 "근래 함값은 보통 50만원 정도인데 집안에 따라 차이가 많다"며 "함들이 행사가 시끄럽다고 신고하는 경우도 있고 친구들이 시간이 맞지 않는 등의 이유로 신랑 혼자 함을 지고 가는 경우가 많기에 근래 '함값 협상'은 무척 빠르다"고 전했다.
함진아비의 괴상한 화상과 익살, 신부 집과의 수고비 협상, 동네 사람들의 역성과 익살 등은 결혼이란 축제를 더욱 즐겁게 만들고자하는 우리 혼례 풍습에서 볼 수 있는 한국인의 따뜻한 인간미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 첨부 파일 참조
함을_보내고_받는_절차와_방법[1].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