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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교회 / 20150719 주일오전예배 / 정광수목사님 | |
분류 | 주일오전예배 |
제목 | 인생의 전환점 |
성경 | 누가복음 22:54-62 |
정리 | 성지교회 청년부 |
성경말씀(누가복음 22:54-62)
54.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55.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56.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57.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이 여자여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58.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이르되 너도 그 도당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하더라
59. 한 시간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이르되 이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60.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네가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 닭이 곧 울더라
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62.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녹취자료 |
신라의 꿈이 있는 젊은 선인 두 사람이 당나라로 유학가게 됩니다. 한사람은 원효이고, 다른 한사람은 의상입니다. 당시 당나라에는 천축국이라고 해서 바로 인도죠. 선진 불교를 배웠던 삼장법사가 한창 위세를 떨쳤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당나라에 가서 선진불교를 배워야겠다고 두 사람이 출발합니다. 경주에서 출발해서 평택쯤 왔는데 석굴로 만든 무덤 속에 이제 비를 피하고 밤이슬을 피하기 위해 들어가서 잠을 청했는데 원효가 잠을 자다가 목이 너무 말라서 더듬거리다 보니 그릇에 물이 있어요. 그 물을 시원하게 잘 마시고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까 천정에서 빗물이 떨어져서 고여 있던 해골바가지였어요. 그 안을 보니까 버러지가 버글버글 끓고 있는 것을 봤어요. 보는 순간에 구역질이 나서 속에 있는 것을 다 토해냈어요. 그러다가 원효가 무릎을 치며 큰소리로 웃었어요. 의상이 깜짝 놀라서 ‘아니 형님, 다 토해놓고 갑자기 웃다니... 실성했느냐.’ 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원효가 ‘나는 큰 진리를 깨달았다, 자네 혼자 당나라에 가게. 나는 가지 않겠네.’ 라고 했어요. 물은 같은 물인데 어제 밤에 먹었을 때에는 그렇게 달고 맛있던 물이 아침에 보니 구역질나는 물로 보이지 않았냐? 결국 물은 같은 물인데 마음먹기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냐? 삼라만상은 그대로 있는데 문제는 내 마음의 상태구나.. 여기서 유명한 삼계유심이라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삼계’ 라는 말은 ‘중생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마음먹기 따라서 나오는 부분들이다. 마음을 다스리면 되는 일 아니냐?’ 라고 말했어요.
불교의 근본진리가 여기서 출발하고 사실 팔만대장경이 기록된 근본 요체도 여기에서 나오게 됩니다. 불교는 사실 종교가 아니라 하나의 철학입니다. 마음을 다스리고 깨닫는 거죠. 그래서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상태를 부처가 된다고 하죠. 원효는 마음의 진리만 깨닫고 영적진리를 몰랐던 거죠. 마음의 진리를 깨닫는다고 해서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는데 해결되지 않는 겁니다. 우리는 이 인생의 영적 참된 진리를 복음 안에서 깨달아야 하는 겁니다. 이 참된 진리를 우리가 깨닫는 순간에 오늘 제목처럼 참된 전환점을 갖게 됩니다. 인류역사의 큰 공적을 남기거나 국가를 위해서 쓰임 받은 인물들이 모두 전환점을 가지고 있었어요. 뉴턴은 늘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봤는데 그 날 따라 ‘왜 사과가 떨어지나?’ 라고 생각하다가 만유의 인력이라는 법칙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어떤 깨달음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전환점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베드로가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조금 달리 표현을 했는데 예수님을 부인하다가, 또 ‘너가 예수당이다’라고 하니까 맹세하며 부인하고, 나중에는 예수를 욕하고 저주하면서 부인했다가 하는데 부인하자마자 닭이 꼬끼오하고 웁니다. 부인하는 그 순간 예수님이 돌아보시며 쳐다보시는데 베드로와 눈이 마주쳤어요. 얼마나 베드로가 황당하고 창피했을까요? 오늘 본문 보면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베드로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압니까? ‘내가 그동안에 큰소리를 쳤는데 내 믿음이 가짜구나... 내가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폼 잡았는데 그게 다 허위고 가짜로구나... 나라는 존재는 소망이 없는 것이로구나, 철저히 그 분의 도움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구나.’ 라고 깨달았어요. 이것이 베드로를 베드로 되게 만드는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었어요.
1. 하나님은 인생의 위기나 환난을 통하여 전환점을 만드시기도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빌립보서 1장 6절 말씀보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지키시기로 부름 받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내게 닥친 모든 문제 속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들어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신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깨달으면 인생의 전환점으로 다가오는 겁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먼저 너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겠다.’ 고 약속하셨는데 왜 그의 의를 구하고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인지 깨달아지기만 한다면 그 인생을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인생의 위기나 난관을 통해서 전환점을 만드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경륜과 계획 속에서 우리를 부르셨는데 우리들을 통해 이루시기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겁니다. 그래서 내 신분이 얼마나 놀라운 신분이며 하나님이 이 시대에 왜 부르셨는지를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창세기 3장 15절 말씀의 언약의 혈통을 이을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 속에서 갈대아우르에서 불러내시고 하란을 거쳐서 가나안땅에 가게 만드셨을 때에 창세기 12장 1절과 3절 사이에 약속을 합니다. 내가 너로 하여금 뭐로 만들겠다? 복의 근원을 만들겠다. 내가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를 내리겠다고 합니다. 땅의 모든 족속들이 너 때문에 복을 받을 것이다. 히브리서 6장에 보면 하나님이 다시금 약속을 합니다. 자기보다 높은 이가 없으므로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두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합니다. ‘내가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성도의 신분입니다. 아브라함만 이런 신분이 아니고 우리도 똑같은 신분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뭘 이해하지 못하는가 하면 얼마나 축복된 신분인지가 깨달아지지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까? 어떻게 하면 부자될까? 어떻게 하면 자식 많이 낳을까? 관심이 이쪽에 있지 자식이 복의 근원된 사실 자체를 깨닫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위기를 만드시죠. 기근을 당하여서 다 굶어 죽게 생겼어요. 그래서 부득불 애굽땅으로 내려갔다가 사랑하는 아내를 바로왕에게 빼앗기게 되죠. 꼼짝없이 이제는 소용없게 되지죠. 그 상황 속에서 아브라함이 무엇을 잡죠? 언약의 말씀을 잡는 것이에요. ‘네가 복의 근원된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이 약속을 붙들고 아브라함이 기도했는데 거기서 뭘 체험하게 되죠? ‘아 내가 정말 복의 근원이 맞구나. 하나님보다 크신 분이 없는 것이구나.’ 거기서 놀라운 복음도 깨달아요. 내가 거짓말해서 마누라를 빼앗겼지만 거짓말 했는데도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시는 것이구나. 복음을 깨달은 겁니다. 이게 아브람으로 하여금 아브라함 되게 만드는 전환점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강단의 메시지를 들으며 문제 속에서 답만 찾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부르셨을 때에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이 되도록 부르셨어요. 근데 야곱은 간사하고 인본주의의 대가고 잔머리 굴리고 거짓말 시키고 사기치고. 하나님이 이렇게 해서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으로 삼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을 위기 속에 던져 넣죠. 형이 그를 죽이려고 추적해 왔을때 창세기 28장을 보게 되면 벧엘에서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죠. ‘과연 여기에 계시구나.’ 이게 전환점의 시작이 되는데 그래도 야곱 속에 잘못 각인되고 뿌리 내린게 잘 안 바뀌어 져요. 그래서 창세기 32장에서 아예 죽음의 위기 속에 던져놔요. 형이 데리고 오는 400명의 군사가 죽이려고 하는 위기 속에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항복하게 만들어요. 그래도 안 깨져요. 그래서 나중에 세갬성 사건 때문에 아모리 족속에 의해 가지고 이제 야곱집안이 완전히 몰살당하게 되었을 때에 이 사건을 통하여서 야곱이 진짜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서 그의 잘못 각인되고 뿌리된 것들이 무너지게 됩니다. 이게 야곱의 전환점이 되어진 것입니다.
히스기야도 앗수르나라 군대가 처들어온 위기 속에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하나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 이 히스기야가 히스기야 되어지는 전환점으로 만들어 주신 것이요.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이미 복의 근원입니다. 이미 어마한 축복속에 나를 불러 주셨습니다. 이걸 못 깨달으니까 깨닫도록 만들기 위하여서 하나님이 내 인생에 무엇을 준다고요? 위기를 주시는 겁니다. 여기서 무엇을 찾으라는 겁니까? 하나님 계획을 찾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내 신분이 얼마나 놀라운 신분인 것인지를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내 힘으로는 인생을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분이 성령으로 내속에 내주, 인도, 역사하시는 신분이 되지 않았습니까?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성령 역사가 임하게 되고 내가 기도할때에 흑암이 무너지고 천사가 동원되게 되지는 하나님의 보호자가 내 배경이라고요. 그러고는 이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이 세상에 완전 승리자가 될 수 있도록 보장받은 신분이 내 신분이요 이렇게 부름을 받았는데 실패하는 인생을 자꾸 살아가니까 하나님이 뭐하는 겁니까? 정신차리라고 여러분들을 자꾸 간섭하시는 겁니다. 자식이 공부도 안하고 자꾸 엉뚱한 짓 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부모가 어디있나요. 동일합니다.
이미 여러분들이 복음을 받았다는 것은 이 어마어마한 축복 속에 부름을 받았는데 정신 못 차리니까요. 그래서 여러분께 생겨나는 문제와 사건이 애 생겨하는 것인가 깨달으라는 겁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 인생에 문제를 주었을 때 그 문제를 전환점으로 삼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응답받아서 네 신분이 무엇인지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겨나게 되면 하나님이 내 인생가운데 문제를 왜 주신 것인지를 깨달으세요. 하나님이 공연히 여러분들을 골탕 먹이고 힘들게 하시려고 문제 주시는 것이 아니에요. 이거 깨닫기 까지 미안하지만 계속 고통을 당할 겁니다. 오늘 오후예배 시간에 여러분께 말씀드리게 될 것인데 전도와 선교에 여러분의 인생의 방향을 안 맞추면 미안하지만 여러분 인생가운데의 문제 해결 안 돼요. 왜? 하나님과 방향이 맞지 않으니까 자꾸 문제를 줄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뭐하라는 말입니까? 문제와 사건은 내게 무엇 때문에 주는 것이다?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으라고 주시는 겁니다. 지금까지 안 되어 왔습니까? 괜찮습니다. 오늘 깨닫고서 도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문제와 사건을 통하여 전환점을 만드시기도 하신다.
하나님은 문제와 사건을 통하여서 내 자신이 천명을 깨닫기 원하는 겁니다. 모세는 특별한 경험을 통하여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죠. 바로의 왕궁에서 40년 동안 준비가 되고 미디안 광야 40년 동안 기도하며 영적준비를 갖추었을 때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하나님을 모세는 만나게 되죠. 하나님을 만나 이사건 자체가 모세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겁니다. 지난 80년의 세월동안 하나님을 모세를 지키셨고 그 모세를 만난 그 사건이 계기가 되져서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하는 출애굽의 주역으로 쓰임 받도록 하나님이 전화시켜주죠. 만남들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핍박자였죠. 예수님 믿는 사람을 잡아 가두기 위하여서 대 제사장의 공문을 들고 다메섹을 올라가다가 누구를 만났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요. 사실 바울은 최고의 바리새 공부를 했고 율법의 박사요 다소에서 성장하면서 문학과 철학에 아주 조예가 깊고 헬라 철학까지 꿰뚫은 사람입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귀족 집안입니다. 바로 이 바울이 누구를 만났나요? 예수님 만난 그 순간이 인생의 전환점이요. 이방인의 사도로서 변화 받을 수 있는 계기로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들입니다.
엘리야는 참신논쟁을 벌이면서 그 850명에 바알과 아세라 목상 선지자들 다 죽이죠. 그리고는 기도했을 때 하늘에서 비가 내려서 3년 6개월 동안 가물었던 땅에 비가 내렸어요. 엘리야는 생각하기를 이렇게 하면은 이제 하나님 나라가 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큰 기적을 보고서도 왕도 백성도 아무도 하나님 앞에 안돌아 오는 거 있지요. 자기는 이것만 하면 될 줄 알았어. 그래서 엘리야가 낙담과 좌절 속에 빠져서 로뎀나무 밑에 누워서 하나님 나를 죽여 달라고.. 인생의 목적이 없어지고 허탈감 속에서 영적인 피로감이 그로 하여금 견딜 수 없도록 만든 거지요. 그가 까마귀를 통해서 주어지는 떡과 물을 마시고 하나님 산 호렙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무엇을 얘기 하는가 하면은 지금 ‘바알과 아세라 목상 선지자들을 없애는 것은 내가 정치적으로 해결한다. 그래서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라.’ 사실 나중에 예후가 그 땅에 있는 모든 바알과 아세라 목상 섬기는 선지자를 다 죽입니다. 그리고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네가 이적과 기적을 행했다고 해서 이 백성이 변화 받는 것이 아니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자 칠천 명을 남겨 두었는데 그들 집중 훈련시켜서 이 민족을 변화 시켜라. 그리고는 네 후계자로 엘리사를 새워서 그로 하여금 이를 감당하게 만들어라.’ 이게 엘리야의 제2의 전환점입니다. 인생의 참 목적이 내가 해야 될 사명이 무엇인가 천명을 깨닫게 되는 장면들입니다.
한나가 기도 하는 중에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게 되고 내가 아들 주시면 이 민족 살리는 나실인으로 드리겠다고.. 그 역사의식을 갖고서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원하는 게 무엇인가 깨닫는 겁니다. 그게 인생의 전환점입니다. 세상은 복음 없이 다 망해 가는데.. 재앙 속에 빠져있는데.. 여기는 관심이 없이 오로지 내 유익만을 찾고 있는 내 자신이, 그렇구나! 정말 하나님이 원하는 게 무엇인가 깨닫는 것이 그게 전환점이 되는 겁니다. 전환점.
저 자신이 지금 서남아시아 선교하게 된 것도 계획이 어디서 나온 것인가 하면은 제가 2005년 카렌선교를 갔다가 거기서 만났던 인도의 나가랜드 친구들 세 사람 만난 것이 그게 저로 하여금 서남아시아 선교하도록 만든 전환점 하나님께서 만드셨어요. 어떤 사건을 두고 하실지 사실은 몰라요. 지금 파키스탄에 가 있는 하순종 선교사는 단기 의료사역으로 우리 팀들을 따라서 아프카니스탄 들어갔다가 그 현장을 보고서 감동을 받아서 이 분이 선교사로 아프간 들어간 겁니다. 그런데 무엇이 계기가 될지는 모르는 겁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맹세하고 전혀 부인했던 그 사건을 통하여서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무엇을 만드셨습니까? 전환점을 만드셨어요. 내 인생의 가운데 닥치는 모든 위기나 문제나 어떤 사건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 계획을 정말 찾는다면 그 문제 사건자체가 여러분들로 하여금 새로운 인생을 살게 만드는 뭐로 만드신다고요? 전환점으로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모세나 바울이나 엘리야나 베드로나 한나나 다 뭐가 있었던 것인가 하면, 비록 틀린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하는 뭐가 있었습니까? 열심이 있었어요. 엘리야는 뭐라고 고백하는지 압니까? 다 버리고 나만 남았다고 이야기 할 만큼 열심히 있었어요. 틀린 열심이라도 정말 주를 살리겠다는 열심가진 그 심령 자체가 중요한 겁니다. 백성을 향한 그 가슴을 가졌던 모세, 어떻게 하면 틀렸지만 하나님 앞에 인정받기 위해서 노력했던 바울, 그 열심 갖고서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위하여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은 위기와 사건을 통하여서 내 인생의 전환점으로 만들어가는 겁니다. 흐리멍텅하게 대충 예배나 드리고 이렇게 사는 자는 자기 인생의 문제가 생겨나도 근심도 안 해요. 그것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찾지를 못해요. 정말 하나님에게 향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자들은 이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정말 기도하게 되었을 때에 무엇을 찾는 겁니까?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님의 음성을 내가 듣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그 인생을 변화시키게 되는 전환점이 되는 거지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기도해야 됩니다. 한번뿐인 인생을 내가 살아가는데 하나님,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입니까?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 질문하세요. 지금처럼 이렇게 살다가 인생 끝나실 겁니까? 하나님이 여러분들 뭐로 불러 주셨습니까? 복의 근원으로. 땅의 모든 족속들이 나 때문에 복을 받도록 최고의 축복 속에 승리하도록 나를 불러주셨어요. 이 축복 다 놓쳐버리고 오늘 생각을 바꾸고서 하나님 앞에 우리가 질문하며 기도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겁니다. 나를 통하여 이루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계획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내 생명 드리기 까지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입니까? 이것 깨닫는 순간에 우리는 인생의 정말 전환점들이 내 인생 가운데 찾아오게 되는 겁니다.
3.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인생의 전환점을 찾도록 만드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전환점을 찾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서 인생의 전환점을 갖도록 만드십니다. 우리가 강단 메시지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결단한다면, 그것이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는 전환점이 되는 겁니다. 실직하고 이제 아무런 배경도 없고, 삶의 소망이 다 끊어진 젊은이가 아무도 자기를 도와줄 자가 없어요. 죽기로 작정하고서 철로에 베개하고 누웠어요. 기차가 지나가면 자기 머리를 갈아 없애라고, 죽겠다고. 누워있는데, 바람이 휙 불어서 종이가 한 장 날아와 얼굴에 딱! 붙었어요. 뭔가 싶어서 보니까 그게 뭐라고 쓰여 있는 것인가 하면, 마태복음 11장 28절 말씀이 기록되어있어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아니 도대체 누구길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나를 이분이 오라고 부르는 것인가.’ 이분이 죽는 걸 포기하고 도대체 알고 싶어서 교회를 찾아갔어요. 이렇게 해서 그분이 예수 믿었는데, 그분이 인도의 유명한 선교사가 된 유명한 썬 다싱입니다. 히말라야 산맥을 오르내리며, 수많은 족속들을 찾아다니며 복음 전했던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뭐 한마디에? 그 말 한마디에.
어린 시절의 진센돌프가 아버지 서재 앞을 지나가다가 예수님의 벌거벗은 십자가 밑에 요한복음 19장 30절 말씀을 읽었어요. 다 이루었다. 한 구절입니다. ‘그럼 다 끝났다는 이야기 아니냐?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셨고 내 인생의 모든 문제가 다 끝났다면 더 이상 내가 할 것은 아무것도 없고 내가 할 것은 이제 전도밖에 할 것이 없는 것이로구나!’ 나중에 아버지의 영지를 이어받아서 백작이 되고, 자기 땅에 모라비안 교도들을 불러드려서 이들로 하여금 복음으로 양육하고 선교 훈련 시켜서 이들을 유럽 전 땅으로 파송을 합니다. 모라비안 교도들 14명당. 14가정이 아닙니다. 14사람당 한 사람씩을 자비량 선교사로 유럽 전역에 파송하는 선교의 아버지가 됩니다. 그 시작이 어디서 나왔죠? 말씀 하나 깨닫는 바로 그 순간입니다.
루터는 성지순례를 위하여서 로마에 올라갔어요. 로마에 가면 바티칸 시티가 있고 안에 들어가면 베드로 대성당이 있습니다. 그 앞에 빌라도 다리라는 것이 걸려있어요. 빌라도 다리를 무릎걸음으로 올라가면 50년 동안 지은 죄가 사함을 받는대요.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50년의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 떼거지로 와서 무릎걸음으로 올라가는 거죠. 올라가다가 성경 말씀이 생각나졌어요.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이 생각나졌어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래, 내가 무릎걸음으로 올라간다고 내 죄가 사함을 받느냐? 이건 아니다. 내 죄가 용서를 받는 것은 예수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지 내가 선행하고 무릎걸음으로 고행한다고 죄 사함을 받느냐? 이것은 틀린 거다.’ 그 말씀이 얼마나 강하게 가슴에 부딪혔는지,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서 캐톨릭하고 싸우는 겁니다. 그래서 그 거대한 캐톨릭과 싸우는 종교개혁을 선포하게 되는 겁니다. 뭐가요? 그 말씀이.
아프리카, 지금 리비아 쪽입니다. 히포라는 곳에서 로마로 유학을 온 젊은 청년이 있었어요. 이름이 어거스틴이요. 17살 먹은 놈이 과부랑 동거하고 공부는 뒷전이고 엄마가 너무 가슴이 아파서 이게 뭐냐고! 별 짓 다하고 다니니까. 그래서 울면서 어거스틴 어머니 모니카가 암브로우스 목사님을 찾아갔어요. 목사님 우리 아들이 이런데.. 했더니 암브로우스 목사님이 모니카에게 이야기합니다.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는 아들을 변화시킨다고. 그래서 그 아들 위해서 계속 기도하는데, 어느 날 그날도 방탕하고 타락해서 건들거리면서 오는데 집 너머 길거리에서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는 거죠. 성경 가사 내용에 곡을 붙여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게 오늘 여러분들에게 성시 낭독했던 부분입니다. 로마서 13장 11절 이하를 노래로 만든 것인데,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말씀이 마음에 부딪히게 되면서 이 말씀을 듣고서 어거스틴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분은 초대 교부들 가운데서 가장 신학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쳐서 참회록이나 하나님의 도성 등 많은 도서를 남겼던 위대한 인물로 하나님이 사용하셨습니다.
왜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라고 여러분들에게 말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아셔야 하는 겁니다. 성경 구절구절 하나 속에 여러분들이 깨닫기만 하면 인생의 전환점들이 그 속에서 나오는 겁니다. 록펠러가 텍사스 지방에서 석유를 개발해서 큰 부자가 됩니다. 그러면서 그는 마음으로 소원하기를 내가 이 땅에 사는 날 동안에 최고로 교회를 많이 세우고 하나님께 쓰임 받아야 되겠다고 결단하고 있을 때에, 그가 우연히 읽은 성경이 창세기 11장 3절을 읽습니다. 거기에 바벨탑 사건이 나오는데, 지으면서 벽돌과 그리고 역청이라는 단어가 나와요, 한글말로. 그런데 그것을 영어로 번역하면 ‘타르’라는 단어에요. 원유 찌꺼기 범벅을 ‘타르’라고 이야기 하거든요. 흙벽돌 찍어서 타르로 고정시키면서 이것을 만든 것이거든요? 이것을 보는 순간에 눈이 번쩍 열리면서,아 타르가 있다는 이야기는 여기에 석유가 있다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해서 이란 석유개발을 시작하게 되고,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에 제일 부자가 누구냐면 바로 록펠러입니다. 지금 인플레이션 반영해서 계산해보면 지금까지 록펠러보다 더 부자가 없어요. 하나님은 성경 요절 하나 가지고서도 최고 부자가 되도록 만드셨어요.
링컨이 어린 시절에 노예들이 학대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갈 3:28 의 말씀을 읽다가 마음으로 도전을 받았어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하나인데, 피부 색깔이 다르다고 해서, 검다고 해서 종살이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다 하나라고 이야기 했는데.. 이 말이 링컨의 가슴 속에 이것이 각인되었어요. 그러면 어떻하면 노예를 해방시킬까 생각해보니까, 돈 많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해결방법은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되는데, ‘내가 대통령이 되면 할 수 있겠다.’ 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 때부터 링컨은 인생의 목적이 뭐하는 겁니까? 대통령이 되는 것인데, 왜 되야 하는 거죠? 노예 해방시켜야 되니까요. 그 말씀을 듣고서 깨달아진 것이 뭐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까? 링컨의 인생의 전환점이 거기서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수없는 메시지를 듣습니다. 강단의 메시지, 요절 내용들.. 정말 우리가 뭐하면 되는 겁니까? 이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까지 말씀을 묵상하라고 자꾸 강조하는 부분들도, 그 한마디 말씀이 내게 부딪히게 되면 그 말씀 하나가지고 뭐하는 것인가? 인생의 전환점이 오게 되는 겁니다. 김동권 목사의 인생의 전환점이 창세기 12장 1절에서 3절 메시지입니다. 내가 복의 근원이다. 이것 하나 깨달은 겁니다. 난 다 가졌구나, 난 복의 근원이로구나. 이것이 목회를 달라지게 만들어요. 무슨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인생의 전화점이 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정말 가슴을 안고서 ‘하나님. 정말 새로운 인생을 살기를 원합니다.’ 하고 문제와 사건 속에서 여러분들이 말씀 묵상 속에서 이것을 찾으라고 요구를 하는 부분들입니다. 가정의 자녀들 여러분들의 가슴 속에 메시지를 심으세요. 어느 메시지가 인생을 변화시킬지 몰라요. 왜 요절 말씀을 묵상하라고 이야기 합니까? 어느 것이 변화시킬지 아무도 몰라요. 그 한마디가, 그 한 사건 자체가 인생을 아주 송두리째 바꿔요. 왜? 우리는 무엇이기 때문에? 복의 근원으로 하나님이 나를 불러 주셨기 때문에..
베드로가 왜 실패했나요? 예수님을 뭐했다고요? 멀찌감치 따라가다가.. 이것이 사단의 통로요. 메모지에 여러분들이 등거리 했더니 무슨 뜻인지 자꾸 묻더라고요. 세상과 하나님을 양쪽으로 양다리 걸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외교도 지금 등거리 외교하죠? 미국하고 중국하고 눈치봐가면서.. 눈치 볼 것 없어요. 소신껏 해야 되요. 세상의 눈치보고 하지 말고 등거리 하지 말고 멀찌감치 따라가지 말고 뭐하란 이야기냐? 따라가기는 해야 되겠는데, 혹시나 들통 날까 싶어서 멀찌감치 따라가다가 지금 시험 들었잖아요. 뭐하란 이야기입니까? 할 바에는 완전히 그 분을 향하세요.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등거리 가지고 있게 되면 사단의 통로가 되고, 결코 여러분 인생 자체가 승리하지 못해요. ‘오직 예수, 오직 복음 안에 모든 답이 정말 다 들어있는 것이로구나.’ 결단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멸시하지 않아요.
문제와 사건이 생겼습니까? 하나님 계획을 찾으세요. 강단메세지를 듣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그 속에서 찾으세요. 실패했습니까? 도전하세요. 어디만큼 도전할까요? 베드로가 베드로가 된 것은, 실패한 것 때문에 사도행전 1장 말씀을 붙잡고서 마가다락방에서 베드로가 뭐했나요? 이것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수 있는 계기가 여기서 나오게 되었고, 이것이 베드로가 베드로 되게 만든 전환점이 되었잖아요. 실패했습니까? 안되어 왔습니까? 도전하세요. 그것을 하나님이 나의 뭐로 삼아주시겠다고요? 전환점으로 삼아주시겠다고요. 아니면 엘리사처럼 도전하세요. 갑절의 영감을 얻기 위하여서 엘리사가 도전했던 것처럼, 오늘부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붙들고 도전하라고 요구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질 때에, 바로 결단하면 끝나는 겁니다. 그것을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서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통하여서 이 세상을 살리는 최고의 서밋으로 쓰기 위해서 하나님이 날 이끌어주시려고 날 부르신 것이거든요. 오늘 말씀을 정말 마음에 담으시고, 이 메시지 하나하나 속에서 여러분들이 정말 붙들 때에, 최고가는 인생으로 만드시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서 저희들에게 귀중한 것을 깨닫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로 하여금 오직 예수, 오직 전도 속으로, 내 자신의 신분을 깨닫고 천명을 깨닫게 만드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문제와 사건을 주시기도 하고, 어떨 때는 말씀을 통하여서 깨닫게도 하셔서 날 이끌어 가시겠다고 저희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멀찌감치 따라갔던 신앙생활의 태도를 바꾸고 문제 속에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며,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정말 찾으며, 말씀 앞에 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인생의 참된 전환점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가 될 수 있도록 주님이 저희를 권고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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