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방의 문이 열렸다. ‘습격! 레슨실’은 눈에 띄는 제자 여럿을 세상에 내놓은 명교수의 레슨실을 찾는다. 쟁쟁한 제자를 잇따라 배출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미래의 한국 대표 연주자들이 자라고 있는 현장을 공개한다.
지난달 말 서울 서초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오전 9시 50분 이 학교 2학년 이희명(18)군이 바이올린을 들고 3층의 한 레슨실로 향했다. “하루 연습을 쉬면 내가 알고, 이틀을 쉬면 평론가가, 사흘을 쉬면 청중이 안다.” 붓으로 눌러 쓴 문구가 한쪽 벽에 걸려있다. 이군은 긴장된 모습으로 악기 상태를 점검하며 레슨을 기다렸다. 그는 올해 열린 제36회 중앙음악콩쿠르 1위 수상자다.
30분 후 같은 콩쿠르의 3위 입상자인 설민경(19)양이 이 방을 찾았다. 다음날 오전에는 신현수(23)·장유진(20)씨가 레슨실을 찾았다. 각각 2008년 롱티보 국제 콩쿠르와 2006년 영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쥔 스타들이다. 이처럼 각종 콩쿠르 우승자의 릴레이를 방불케 하는 풍경이 이 방에서는 매일 펼쳐진다.
◆한 음 한 음까지=이 곳은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61) 교수의 레슨실이다. 레슨의 첫째 비결은 지독함이었다. “사기치려고 하지마. 대충 하는 거 다 들려.” 책상에 앉아 턱을 괴고 학생이 연주하는 프랑크 소나타 1악장을 듣던 김 교수가 쏘아붙였다. 학생이 얼어붙듯 연주를 멈췄다. “다시.” 이번엔 또박또박 음표가 살아난다. “나이스.” 그제야 오케이 사인이 났다.
학생의 마음 편한 연주는 몇 소절 가지 못했다. “잠깐. 음정이 좀 높다. 첫째 손가락을 조금 옮겨봐. 아니 너무 많이 갔잖아.” 연주가 다시 끊어졌다. 김 교수가 급기야 의자에서 일어났다. 학생의 손가락을 잡고 직접 위치를 잡았다. “이게 맞아. 다시 해보자.” 김 교수는 학생이 혼자 맞는 소리를 낼 때까지 기다렸다. 음 하나를 조율하는 데 약 5분이 걸렸다.
학생 한 명에게 주어진 시간은 30분. 아침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꼬박 여덟 시간 동안 16명의 학생이 왔다. “30분이 세 시간 같아요. 음 하나까지 잡아내시니, 긴장감에 몸이 굳어요.” 레슨을 마친 학생이 악기를 다시 넣으며 귀띔했다. 하지만 긴장감은 레슨실을 나간다고 해서 풀리지 않는다.
◆머리에서 발끝까지=“내 방에서 머리 풀고 있는 거 못 봐. 얼른 묶어.” 한창 멋 부릴 20대 초반, 긴 머리의 여학생에게 불호령이 떨어졌다. 김 교수는 제자들의 머리와 옷 입는 스타일, 태도와 생활 방식까지도 일일이 점검한다. “레슨실에서만 선생이면 진짜 선생이 아니죠.” 제자가 콩쿠르 입상하는 등 좋은 소식이 있으면 주변에 직접 전화를 돌린다. 감격으로 눈물 범벅이 된 김 교수의 전화를 받아본 사람이 꽤 된다. 때문에 신현수씨는 “선생님이 아니라 엄마”라고 스승을 소개한다. 중요한 연주나 콩쿠르를 앞두고는 아예 집으로 불러 밥까지 먹여가며 가르친다. 유치원·초등학교 시절에 학생을 발탁해 10년 넘게 기르는 것도 그의 비결이다. 김 교수의 꼼꼼함을 간섭이라고 여기던 어린 아이들은 ‘생활 밀착형’ 레슨에 적응하며 자신의 음악을 완성시켜간다. 이날 모든 학생들은 레슨 시간 10분 전에 정확히 도착했고, 쉴 틈 없이 레슨이 이어졌다. 점심 시간은 없다. 레슨실에서 김밥·샌드위치를 먹는다. 김 교수는 좁은 방을 오가며 학생들의 바이올린에 맞춰 노래를 했다. 큰 소리로 학생에게 일침을 놓다가, 마음에 드는 연주가 나오면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악기 소리가 그 목소리에 파묻혀 안 들리는 일도 허다했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레슨실 모노 드라마’라 할 만했다.
김 교수가 가장 편안한 옷과 낮은 신발로 레슨실에 오는 이유다. “어떻게 보면 노동이죠. 그래도 즐거워요. 꼬맹이 때부터 보던 애들이 자라서 한 마디만 해도 척 알아들을 때의 기분이란….” ‘가르침 중독’, 명스승의 레슨 비결을 요약하는 가장 적확한 단어다.
김호정 기자
김남윤의 원포인트 레슨
① 계획을 가져라
내가 왜 이렇게 연주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② 내 생각을 말하라
시키는 대로 하면 발전이 없다. 레슨실에서도 입을 열어라.
③ 음악을 위해 살아라
생활의 모든 것이 음악에 맞춰져 있어야 한다.
④ 시야를 넓혀라
프랑스 음악을 공부할 땐 그 나라 영화를 챙겨 보라.
김남윤의 제자들
‘김남윤과 100명의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 교수가 1990년대 후반 이후 종종 열고 있는 음악회 형식이다. 열 살도 안된 꼬마부터 20대 후반의 연주자까지 다양하다. 클래식은 물론 팝송까지 연주하며 즐기는 ‘김남윤 제자 축제’라 할만하다.
그만큼 김 교수 ‘사단’은 화려하다. 서울대 이경선(46) 교수,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김지연(40), 20대에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백주영(34), 각종 국제 콩쿠르에 입상한 신아라(27)·현수(23)자매, 권혁주(25)가 눈에 띈다. 이달 일본 센다이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계 최초로 우승한 클라라 주미 강(23), 퀸엘리자베스·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6위·5위에 오른 윤소영(26)도 김교수의 제자다.
‘윤사랑회’는 김 교수의 제자들이 만든 감사 모임이다. 경희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박인건(53) 경기도문화의전당 사장 등이 모임을 이끌고 있다.
지난달 말 서울 서초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오전 9시 50분 이 학교 2학년 이희명(18)군이 바이올린을 들고 3층의 한 레슨실로 향했다. “하루 연습을 쉬면 내가 알고, 이틀을 쉬면 평론가가, 사흘을 쉬면 청중이 안다.” 붓으로 눌러 쓴 문구가 한쪽 벽에 걸려있다. 이군은 긴장된 모습으로 악기 상태를 점검하며 레슨을 기다렸다. 그는 올해 열린 제36회 중앙음악콩쿠르 1위 수상자다.
30분 후 같은 콩쿠르의 3위 입상자인 설민경(19)양이 이 방을 찾았다. 다음날 오전에는 신현수(23)·장유진(20)씨가 레슨실을 찾았다. 각각 2008년 롱티보 국제 콩쿠르와 2006년 영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쥔 스타들이다. 이처럼 각종 콩쿠르 우승자의 릴레이를 방불케 하는 풍경이 이 방에서는 매일 펼쳐진다.
“나 같으면 이 부분에서 느려지지 않고 연주하겠어. 어떤 것 같아?” 김남윤 교수는 제자의 생각을 물어가며 레슨을 이끌었다. |
학생의 마음 편한 연주는 몇 소절 가지 못했다. “잠깐. 음정이 좀 높다. 첫째 손가락을 조금 옮겨봐. 아니 너무 많이 갔잖아.” 연주가 다시 끊어졌다. 김 교수가 급기야 의자에서 일어났다. 학생의 손가락을 잡고 직접 위치를 잡았다. “이게 맞아. 다시 해보자.” 김 교수는 학생이 혼자 맞는 소리를 낼 때까지 기다렸다. 음 하나를 조율하는 데 약 5분이 걸렸다.
학생 한 명에게 주어진 시간은 30분. 아침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꼬박 여덟 시간 동안 16명의 학생이 왔다. “30분이 세 시간 같아요. 음 하나까지 잡아내시니, 긴장감에 몸이 굳어요.” 레슨을 마친 학생이 악기를 다시 넣으며 귀띔했다. 하지만 긴장감은 레슨실을 나간다고 해서 풀리지 않는다.
◆머리에서 발끝까지=“내 방에서 머리 풀고 있는 거 못 봐. 얼른 묶어.” 한창 멋 부릴 20대 초반, 긴 머리의 여학생에게 불호령이 떨어졌다. 김 교수는 제자들의 머리와 옷 입는 스타일, 태도와 생활 방식까지도 일일이 점검한다. “레슨실에서만 선생이면 진짜 선생이 아니죠.” 제자가 콩쿠르 입상하는 등 좋은 소식이 있으면 주변에 직접 전화를 돌린다. 감격으로 눈물 범벅이 된 김 교수의 전화를 받아본 사람이 꽤 된다. 때문에 신현수씨는 “선생님이 아니라 엄마”라고 스승을 소개한다. 중요한 연주나 콩쿠르를 앞두고는 아예 집으로 불러 밥까지 먹여가며 가르친다. 유치원·초등학교 시절에 학생을 발탁해 10년 넘게 기르는 것도 그의 비결이다. 김 교수의 꼼꼼함을 간섭이라고 여기던 어린 아이들은 ‘생활 밀착형’ 레슨에 적응하며 자신의 음악을 완성시켜간다. 이날 모든 학생들은 레슨 시간 10분 전에 정확히 도착했고, 쉴 틈 없이 레슨이 이어졌다. 점심 시간은 없다. 레슨실에서 김밥·샌드위치를 먹는다. 김 교수는 좁은 방을 오가며 학생들의 바이올린에 맞춰 노래를 했다. 큰 소리로 학생에게 일침을 놓다가, 마음에 드는 연주가 나오면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악기 소리가 그 목소리에 파묻혀 안 들리는 일도 허다했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레슨실 모노 드라마’라 할 만했다.
김 교수가 가장 편안한 옷과 낮은 신발로 레슨실에 오는 이유다. “어떻게 보면 노동이죠. 그래도 즐거워요. 꼬맹이 때부터 보던 애들이 자라서 한 마디만 해도 척 알아들을 때의 기분이란….” ‘가르침 중독’, 명스승의 레슨 비결을 요약하는 가장 적확한 단어다.
김호정 기자
김남윤의 원포인트 레슨
① 계획을 가져라
내가 왜 이렇게 연주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② 내 생각을 말하라
시키는 대로 하면 발전이 없다. 레슨실에서도 입을 열어라.
③ 음악을 위해 살아라
생활의 모든 것이 음악에 맞춰져 있어야 한다.
④ 시야를 넓혀라
프랑스 음악을 공부할 땐 그 나라 영화를 챙겨 보라.
김남윤의 제자들
‘김남윤과 100명의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 교수가 1990년대 후반 이후 종종 열고 있는 음악회 형식이다. 열 살도 안된 꼬마부터 20대 후반의 연주자까지 다양하다. 클래식은 물론 팝송까지 연주하며 즐기는 ‘김남윤 제자 축제’라 할만하다.
그만큼 김 교수 ‘사단’은 화려하다. 서울대 이경선(46) 교수,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김지연(40), 20대에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백주영(34), 각종 국제 콩쿠르에 입상한 신아라(27)·현수(23)자매, 권혁주(25)가 눈에 띈다. 이달 일본 센다이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계 최초로 우승한 클라라 주미 강(23), 퀸엘리자베스·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6위·5위에 오른 윤소영(26)도 김교수의 제자다.
‘윤사랑회’는 김 교수의 제자들이 만든 감사 모임이다. 경희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박인건(53) 경기도문화의전당 사장 등이 모임을 이끌고 있다.
김남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기악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