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비오는 바람에(그리고 일요일이라 좀 느슨하게)
5시 기상이지만들 더 자고 일어나니 7시쯤 되었다.
로사님 밤새 열오르고 하여 잠 못 잔 듯..
나도 일어나는 데 힘들었다. 좀 어질하고.. 아침에 변..
목욕 갔다 오신 선생님 8시 넘어 들어오셔,
비 오지만 우산 쓰고 산책 가잖다.
마그밀과 숯가루 먹고, 넷이서(선생님, 심진스님, 안나님,
나) 택시 타고 도산공원으로...
도산공원, 서울 살면서 처음이다.
비는 오지만 좋다. 아니 오히려 사람도 없고(일요일이라
더 그런지) 더 낫다. 공원 화장실에서 변 보다. 금방 먹은
마그밀과 숯가루 그대로 나온 듯.. 넷이서 우산 쓰고 슬슬
도산공원 거닌다. 선생님 앞장서서 가시며 이것저것
만져보고(나무둥치, 나뭇잎), 보여주고(돌에 새긴 글들, 꽃들),
설명해 주신다. 여러 가지 나무들 많고, 잘 만들어 놓았다.
여기, 참 좋다..
'할머니 꽃밭'에 여러 꽃들(백일홍, 붓꽃, 접시꽃, 금잔화,
봉숭아...), 자귀나무 꽃(3년 전엔가 종묘공원 앞 쉼터에서
첨 보고 하도 특이해 셔터 꾹꾹 눌러댔는데... 아주 화려해
우리 꽃 아닌 줄 알고 식물도감 찾아보지도 않았지) 향기
맡으며, 아름드리 삼나무 두 그루 마주보고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삼나무 껍질은 참 특이하고 멋있다. 하나는 밑둥이
울퉁불퉁한 게 특별히 더 멋있다. (삼나무 첨 보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성큼성큼 잘 자란다는
메타세쿼이아가 바로 그거네..)
꽃들, 나무들, 하나하나 보며 만지며 새기며 걷다. 비오니
얘네들도 생기가 돈다. 떨어진 꽃들도 있지만.. 늘 그렇듯
떨어진 꽃들에 더 마음이 간다..
군데군데 세워 놓은 돌비석들 앞에서 잠깐씩들 멈춰서서
글 읽는다. 도산 선생님이 하신 여러 말씀들 새겨 놓았다.
"낙망(落望)은 청년(靑年)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그밖에 여러 말씀들, 하나하나 어쩌면 이리도 밝고 바르고
강건한 말씀인지.. 나가면 도산 안창호 선생님 책을 읽어
봐야겠다(교과서에서 배운 것 외에는 도산에 대해 제대로
읽은 책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가장 가까운 공원이어서겠지만,
도산공원에 온 까닭이 나한테는 특별히 이렇게 새겨진다.
다시 도산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리고 이 땅에 온 내
임무에 대해서도..
새겨진 글귀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벅차 올라 울컥해 온다.
날마다 올 테니, 글귀는 하나씩 찬찬히 외워 오기로 한다.
벤치에 앉아 조금 쉬었다. 바람 소리 들으며... 선생님은
가을에서 겨울로 들어서는 '바람' 소리, 참 좋단다.
눈 감고 바람을 느끼며 앉아 있다. 다른 생각들도 물론
계속 떠오르지만.. 2시간 만에 돌아온다.
공원 앞 어느 집 담벼락 아래 쬐껜한 감 하나 떨어져 있어
(너무 일찍 떨어졌네..) 주워들고 온다. 아까 택시 타기 전에
선생님이 길에서 주워 주신 새끼 은행잎하고 같이...
10시 반쯤 들어와 선생님은 효진씨 아침밥 준비하고, 로사님
보살피고, 우린 좀 쉬고 나서 각자 운동한다. 난 쿠룬타 하고..
12시쯤 선생님이 된장 찜질하잖다. 나랑 심진스님이랑 된장
찜질해 주셨다. 처음이다, 이런 거.. 배꼽에 대일밴드 열십자로
붙이고, 비닐에 넣은 된장(꽤 많다) 팩 올리고 수건 덮고,
그 위에 뜨거운 전기 찜질팩 또 올려놓는 거다. 3시간 정도
있어야 된단다. 꽤 긴 시간이다. 그래도 누워 자다, 책 보다
(거의 못 봤다), 자세 바꾸다(엉치랑 꽤 배긴다) 하면서
3시간 보냈다. 뜨뜻해서 좋다. 선생님 그 사이에 또 효진씨랑
안나님 점심 차려주시고.. 그리고 쉴 틈이 없이 또,
찜질 끝나고(식사도 끝나고) 스님, 안나님, 나 운동시켜
주신다. 간단한 운동인데도 힘든다.
5시 넘어 셋이서 목욕 간다. 좀 많이 걸어가야 하긴 하지만,
목욕탕이 넓고 사람 없어, 그리고 야트막한 탕(턱도 높지
않고)에 뜨거운 물도 그리 뜨겁지 않고(찬물은 꽤 찼다. 차게
느껴지더라..) 좋았다. 편했다.
목욕탕에선 살살 움직인다. 그럴 수밖에. 후딱후딱 할 기운도
없고.. 몸과 얼굴은 유아비누로, 머리는 밀가루 풀어 감고,
린스 대신 식초로 헹구고, 온탕과 냉탕을 번갈아 들어간다.
첨엔 반만 담궜다가 나중엔 몸 전체 다 담궜다. 한 너댓번
왔다갔다했다.
천천히 목욕하고 7시쯤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엔 바람이
싸늘하지 않고 부드럽게 휘감기더라. 여러 가지 음식점
간판들 보고 떡집들 지나오지만 그다지 먹고 싶단 생각은
안 든다. 그냥 기운이 없을 뿐... 오늘은 일요일이라 음식점들
문 많이 안 열었고, 사람들도 많이 안 다녀 한산한 길이다.
안나님 모레쯤 집에 다니러 가시면서 겉옷 빨아준다 하여,
된장찜질하느라 베린 옷 맡기기로 한다. 고맙다.
단식 선배로서, 이것저것 알려주고 도와주니...
가볍게 몸 풀고, 책 좀 보고, 효진씨 오늘 나가는데,
선생님이 반찬들 챙겨넣어 주신다. 제일 먼저 시작한 효진씨,
엊그제부터 죽으로 들어갔다는데, 밥상을 보면 참말 진수성찬,
현미찹쌀죽에 미역국, 무, 감자, 호박 가늘게 채썰어 볶은 것,
양배추, 당근, 여러가지 생채소들.. 김, 멸치, 물론 양은 적고
다 재료 그대로 따로따로이지 가미하여 만든 게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생님 정성으로 만들어주신 거니... 효진씨 한 사람
만을 위해... 가히 '여왕의 밥상'이라 할 만하다. 효진씬 스무
날에서 사흘 정도 남았는데, 낼부터 출근이라 나가서 계속
보식한단다. 잘 해내고, 그리고 앞으로 잘할 효진씨.. 나도
잘해내겠지?
8시 넘어 안나님 밥상 받고(미음과 오이즙), 우리(로사님,
스님, 나)도 옆에서 식사한다. 마그밀과 숯가루로...^^
효진씨도 그랬고, 안나님 식사하는 거 보면 완전 도 닦는
거다. 그 반 공기도 안 되는 미음을 1시간 이상 드신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좀 느슨하게 보냈다. 저녁 운동도 없었고,
8시부터 9시까지 엎드려 책(선재스님 사찰음식 책) 보고
뒹굴다, 9시에 나눔시간 가졌다. 특별히 '나눔'이랄 것도 없고,
선생님 요가원 화분에서 잘 자라는 푸른 이파리 무성한 나무
보며 시작한 생명 얘기.. 그리고 예전에 십오년인가 팔년인가
길렀다는 붕어 이야기, 심진스님의 잉어 이야기, 또 내가 본
송충이 춤추는 이야기... 생명, 그대로 놔두고 바라봐주는 게
가장 그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 너무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그들을 죽게 한다고...
식물이고 동물이고, 사람도 물론이겠지...
고양이와 우리집 땡꾸 이야기 나누었다.
'개는 개다'가 개를 무시하는 말이 아니라는 거,
그들을 가장 그들답게 하는 것.. 인정해주는 거.. 맞다.
'단식'에 대해 어제에 이어 여러 말씀 하시는데, 내가 자꾸
조는 바람에 10시까지 못 하고 9시 반쯤 끝났다. 어제부터
자꾸 9시만 넘으면 졸린다.. 몸이 벌써 알고 있었나 보다,
단식한다는 거..
자리 펴고 인사하고 잠자리에 든다. 난 작은방에서,
다른 분들은 요가하는 큰방(도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