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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16) 2018. 11. 28
새 마음을 주시는 하나님
삼상 10:8-16
<지난 시간 요약>
자신을 찾아 온 사울을 잘 대접한 사무엘은 그 다음날 아침 그를 떠나보내기 전 그에게 기름을 붓습니다. 그리고는 그가 하나님에 의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움 받았음을 확인하여 줍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울은 확신이 없습니다. 이에 사무엘은 그에게 세 가지 징조가 임할 것을 예언하여 줍니다.
첫 번째 징조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날 것인데 그 두 사람이 ‘네가 찾던 암나귀들은 이미 찾았기 때문에 걱정 하지 말고, 오히려 아버지 기스가 당신이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하고 있다’라는 말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2절).
베냐민 지파인 사울에게 라헬의 무덤은 상징성이 있는 장소입니다. 거기서 자신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이, 그것도 복수의 사람이 자신의 사정을 정확히 말해 주는 것만으로도 사울을 신비로운 체험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징조는 다볼에 있는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세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3-4절). 이들은 벧엘로 제사 드리러 올라가는 사람들입니다.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졌고,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졌습니다. 염소, 떡, 포도주 모두 하나님께 드려질 제물입니다(민15:5-6).
그런데 이 세 가지 물건은 왕에게 드리는 물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떡 세 덩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에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4절).
‘문안한다’는 것도, 또 ‘떡 두 덩이를 준다’는 것도 왕에 대한 최고의 예우의 표현입니다.
세 번째 징조는 ‘하나님의 산’, 곧 사울의 고향 ‘기브아’에 이르면 거기서 ‘선지자의 무리’를 만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만날 때 사울에게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6절)고 예언합니다.
이 징조에 대한 예언을 마친 사무엘은 사울에게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고 명령합니다.
7절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이 세 가지 징조가 임하거든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는 분명한 징조이기 때문에 ‘기회를 따라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불신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기회(선물)로 알고 ‘왕권’을 적극적으로 잡으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소홀히 한 사울>
이 징조에 대한 말씀을 마친 후 사무엘은 사울에게 먼저 길갈로 내려가서 칠일동안 기다리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8절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네가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 동안 기다리라.”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요단 강을 건넌 직후 진을 쳤던 곳이었습니다(수 4:19).
또한 이곳은 사무엘이 자신의 사사직을 수행하기 위하여 매년 순회하던 주요 거점 중의 하나였습니다(7:16).
사울의 고향 기브아로부터 약 17km 떨어진 곳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해석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에 대한 후속 기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 가라는 것인지도 분명치 않습니다. 뒤 이어 나오는 본문과도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징조를 경험한 사울이 길갈로 바로 내려가지 않고 산당으로 갔기 때문입니다(13절 “사울이 예언하기를 마치고 산당으로 가니라.”).
그런데 이 8절 말씀은 하나의 예언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은 2년 후에 성취되었습니다.
삼상13:1-15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 2 이스라엘 사람 삼천 명을 택하여 그 중에서 이천 명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고 일천 명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고 남은 백성은 각기 장막으로 보내니라/ 3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사울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이르되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하니/ 4 온 이스라엘이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대를 친 것과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함을 듣고 그 백성이 길갈로 모여 사울을 따르니라/ 5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 치매/ 6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7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따른 모든 백성은 떨더라/ 8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9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10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 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11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15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
아마도 추측하건대 사무엘은 전쟁과 같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먼저 길갈로 가서 기다리면 내가 뒤 따라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어떻게 행할 바를 알려주겠다고 약속한 것 같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길갈을 떠나지 않고 사무엘을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다급한 마음에 7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제자장인 사무엘이 드려야 할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일 후에 사울은 사무엘과 하나님의 눈 밖에 납니다. 하나님은 이 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택하여 지도자로 세우시겠다는 말씀을 하시며 사울의 통치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사울은 이때를 시작으로 해서 내리막길을 걸었고, 결국 아들 3형제와 더불어 비참하게 최후를 마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할 때가 있습니다.
상황에 몰릴 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상황을 앞세우기 시작할 때, 상황에 쫓겨 말씀을 멀리할 때, 우리의 영적 삶도 망가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눈 밖에 두면, 하나님도 우리를 눈 밖에 두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묵상하며, 반성하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해야 할 신앙의 싸움입니다. 사울이 범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사무엘의 예언한 세 가지 징조를 듣고 사울은 몸을 돌이켜 출발하려 하였습니다.
9절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사울은 사무엘을 떠나기 위해 몸을 돌이키는 순간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울의 가슴에 새로운 불꽃이 타올랐습니다. 암나귀를 찾는 것은 이제 관심 밖이었습니다. 전에는 협소한 농부와 목동의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오로지 곡식과 가축들만 염려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펼칠까하는 정치가의 마음으로,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할까하는 장군의 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선하게 다스려야 할까하는 왕의 마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주어가 ‘하나님’이심을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언제나 변화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새롭게 바꿔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두 가지 바꾸어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자기 정체성을 바꾸어 주십니다.
나는 우연히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운데 만들어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부름 받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인식입니다.
요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다른 하나는 삶의 목적을 바꾸어 주십니다. 가치관을 바꾸어 주십니다.
우리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의 순위가 바꾸어 주십니다.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생활 걱정만 하고 살았던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10:31-33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징조보다는 말씀>
그런데 이렇게 새 마음을 품게 된 시점이 중요합니다. 세 가지 징조를 만나기 전에 이미 사울의 마음이 새 마음이 되었습니다. 사무엘의 말씀만으로 이미 그 마음이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후에 일어나는 징조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본래 징조를 주신 목적은 말씀을 믿고 확신함으로 ‘새 마음을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사무엘의 말씀을 듣고 출발하는 순간 ‘그 마음이 새롭게 되었기에’ 더 이상 징조는 필요 없어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은 얻습니다. 참 신앙은 표적을 조건으로 내세우는 신앙이 아닙니다.
마12:38-40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 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억하시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셨고 12광주리가 남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그날 그 기적을 체험한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를 합하여 2만 명은 되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 다 어디로 갔습니까?
오로지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이 참 신앙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표적이나 기적이 일어나면 금상첨화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의지하는 신앙은 금방 시들어버립니다.
자극적인 감정에 의존하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믿음으로 받고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취된 징조와 사울의 변화>
그래도 징조는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9절b)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만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기에, 오늘 본문을 기록한 저자도 세 가지 징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 제일 중요한 마지막 징조만을 기록합니다.
10-12절 “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11 전에 사울을 알던 모든 사람들이 사울이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함을 보고 서로 이르되 기스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고/ 12 그 곳의 어떤 사람은 말하여 이르되 그들의 아버지가 누구냐 한지라 그러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되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더라.”
앞서 ‘새 마음이 되었다’는 것이 내적 변화라면 세 번째 징조를 경험한 사울에게 외적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바로 성령의 은사를 경험한 것입니다. 사울이 선지자의 무리 중에서 예언을 한 것입니다.
여기서 예언을 했다는 것은 무슨 구체적인 미래의 내용을 말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울이 선지자들과 함께 영적인 신비체험을 하는 중 알 수 없는 소리로(방언)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설명한 것입니다.
사울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예언하는 것을 보고 사울을 알던 사람들이 놀라움을 표하였습니다. 그들은 사울은 본시 선지자 무리들과 함께 행동하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지금 사울이 선지자와 같이 예언하자 신기함을 감추지 못한 것입니다. 이후 사람들은 어떤 사람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보고는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속담). 이것은 사울이 선지자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런 속담이 생긴 것입니다.
훗날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연상되지 않습니까?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시, 성령 충만함을 받은 120명의 성도들이 각기 다른 나라의 방언을 하자 그것을 목격한 당시의 사람들도 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행2: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의 역사가 충만하면 두 가지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는 내적 변화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다른 하나는 외적 은사가 나타납니다.
지금도 얼마든지 예언이나 방언의 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병을 고치는 치유의 은사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은사가 다름을 주의해야 합니다.
함부로 비교하여 우열을 평가해서도 안 됩니다. 가장 좋은 은사는 사랑의 은사입니다.
또 외적 은사는 반드시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자랑의 목적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 “기스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라는 말 속에는 조롱의 냄새가 풍깁니다.
당치도 않은 사람이 그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선지자만 되게 하셨습니까?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떻습니까? 갈릴리에서 물고기 잡던 사람입니다. 그가 무슨 말이나 논리적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나중에 성령에 사로잡히니까 그의 설교 한 번에 삼천 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행2:41).
사도 바울은 성령에 사로잡혀 복음을 전파하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빌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우리 힘으로는 안 되지만, 성령 안에서 못할 일이 없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환경 탓하고 조건 따지지 말고, 날마다 성령 충만하기를 소원하시기를 바랍니다. 일을 하나님이 하게 하실 것입니다.
<산당으로 올라가는 사울>
하나님의 놀라운 징조를 체험한 사울은 이후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기 위해 산당으로 올라갔습니다.
13-16절 “사울이 예언하기를 마치고 산당으로 가니라/ 14 사울의 숙부가 사울과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디로 갔더냐 사울이 이르되 암나귀들을 찾다가 찾지 못하므로 사무엘에게 갔었나이다 하니/ 15 사울의 숙부가 이르되 청하노니 사무엘이 너희에게 이른 말을 내게 말하라 하니라/ 16 사울이 그의 숙부에게 말하되 그가 암나귀들을 찾았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더이다 하고 사무엘이 말하던 나라의 일은 말하지 아니하니라.”
그런데 그 산상으로 사울의 숙부(작은 아버지)가 찾아왔습니다. 이 숙부는 후에 사울 왕국의 군대 장관이 된 ‘아브넬’의 아버지 ‘넬’입니다(삼상 14:50-51). 아마도 사울을 걱정한 아버지가 찾아오라고 보냈을 것입니다.
숙부는 사울과 그 사환에게 ‘너희가 어디로 갔더냐’고 물었습니다. 약간 책망하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암나귀들을 찾으라고 보냈더니 여기서 뭐하고 있냐는 것이지요. 이에 사울은 “암나귀를 찾다가 찾지 못하므로 사무엘에게 갔었나이다”고 대답했습니다. 맞는 말이지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고백입니다.
이에 숙부가 “사무엘이 너희에게 이른 말을 말해 달라”고 합니다. 그의 변화된 모습을 본 숙부는 그 동안 사울에게 심상찮은 일이 일어났음을 눈치 채고 사울이 사무엘로부터 들은 말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매우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이때 사울의 대답이 어떠합니까? “그가 암나귀들을 찾았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더이다” 하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의 말, 곧 나라의 일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라 일’은 사울이 왕이 되는 일을 가리킵니다. 사울이 이러한 사실을 숙부에게 숨긴 것은 겸손과 신중함을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왕으로 세우시기까지는 경거망동하지 않고 신중하게 행동한 것입니다.
<맺는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령 안에서 변화된 사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사울의 변화의 주체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그 마음의 변화는 징조를 체험하기 전 먼저 말씀으로 새롭게 되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이 성령님을 사모하고,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사울처럼 성령 받아 ‘마음이 새로워지고’, ‘성령의 신령한 은사’를 받아 누리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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