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22년 10월 15일(토)
05:40 광교중앙역 3번출구
08:00 북한산성입구 산성매표소
코스 : 매표소-서암문-원효봉-북문-위문-노적봉-용암문-동장대-대동문-보국문-대성문-대남문-문수봉-청수동암문-나한봉-나월봉-부왕동암문-증취봉-용출봉-가사당암문-의상봉-국녕사-중성문-대서문-산성매표소
산행시간 : 9시간00분 / 15km
회비 : 20,000원 (하산식사 만석장 가마구이 02-385-2093) 17:00
입금계좌 : 농협 356-1109-7867-63 이영길
북한산성13성문 종주
북한산성은 1711년(숙종 37)에 북한산에 쌓은 것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유사시에 대비해 한양 외곽에 성을 쌓자는 논의가 대두되면서 만들어진 산성이다. 당시 완성한 성곽의 길이는 7,620보(步), 즉 21리 60보이며, 지형에 따라 적절하게 축성 방식을 달리하여 성벽을 쌓았다. 성곽 시설로는 군사 지휘소인 장대(將臺)를 세 곳(동장대, 남장대, 북장대)에 만들었고, 성문 6개소(북문, 대동문, 보국문, 대성문, 대남문, 대서문), 암문(暗門) 6개소(서암문, 백운동암문, 용암문, 청수동암문, 부왕동암문, 가사당암문), 수문 1개소를 두었다.
1. 서암문(西暗門)
서암문은 1711년(숙종 37) 북한산성을 축조하면서 설치한 8개의 암문 중 하나로 창릉천에서 쉽게 오를 수 있는 구릉의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서암문은 여느 암문과 마찬가지로 성문 상부에 문루를 설치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암문 출입구가 네모난 형태를 보이는데 서암문은 외관상 무지개 모양의 홍예 형태를 띠고 있다. 문 내부에는 문짝을 달았던 지도릿돌과 장군목이라는 빗장을 걸너질렀던 방형의 구멍이 남아있다.
서암문의 주변은 지형이 낮고 험하지 않아 취약 지대에 속했다, 이를 감안해 다른 암문에 비해 성벽을 높게 쌓았고 성문과 연결된 성벽을 ㄱ자 모양으로 돌출시켜 접근하는 적을 측면에서도 공격할 수 있도록 했다.
서암문은 성내에서 생긴 시신을 내보내는 문이라 해서 시구문(屍驅門)이라고도 불렀다.
1-1. 여장(女墻)
여장은 성벽의 몸체 부분 위에 설치한 낮은 담장이다. 성가퀴 또는 살받이터라고도 한다. 성을 지키는 병사를 보호하고 적을 관측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다.
여장은 대개 총안(銃眼, 적에게 활이나 총을 쏠 수 있도록 성벽 여장에 나있는 구멍)을 뚫었다. 비스듬하게 뚫어 성벽 가까이 접근한 적을 공격할 수 있게 한 총안을 근총안이라 하고, 수평으로 뚫어 멀리있는 적을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게 한 총안을 원총안이라고 한다.
북한산성의 여장은 적당히 다듬은 할석(割石, 깬돌)으로 쌓았다. 이 점은 전돌로 쌓은 남한산성의 여장이나 잘 다듬은 돌을 사용한 화성의 여장과 차이를 보이는 축성법이다.
2. 북문(北門)
북문은 원효봉과 영취봉 사이의 해발 430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산의 능선이 말안장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형태를 보이는 안부(鞍部) 지점에 자리한다. 주변에 상운사와 훈련도감 유영지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훈련도감 유영과 상운사에서 북문 지역의 수비와 관리를 맡은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북문에는 문루와 문짝이 없는 상태로 육축부와 개구부만이 남아있다. 문루 자리에는 초석만이 있으며, 개구부에는 문짝을 달았던 원형의 지도릿돌과 장군목을 건너질렀던 방형의 구멍이 남아있다.
북한산성의 대문이 완성된 때문 1711년(숙종 37)인데 30년 후에 간행된 "북한지"에는 북문의 문루가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를 근거로 18세기 전기에 이미 문루가 없어졌으며, 그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져왔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3.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 위문)
백운봉암문(위문)은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에 설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의 성문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1711년(숙종 37) 북한산성을 축조하면서 설치한 8개의 암문 중 하나인데, 일제강점기부터 위문(衛門)으로 불려왔다.
백운봉암문은 여느 암문과 마찬가지로 성문 상부에 문루는 설치하지 않았다. 성문 양쪽은 장대석으로 쌓고 그 위 천장 부분은 장대석 여러 매를 걸쳐 만들었다. 이런 양식의 성문을 아치 모양의 홍예식과 구분하여 평거식(平据式)이라 부른다. 원래 문짝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문짝을 달았던 원형의 지도릿돌과 일반문이 빗장에 해당되는 장군목을 걸었던 방형 구멍이 남아있다.
4. 용암문(龍岩門)
용암문은 북한산성의 대동문 북쪽에 있는 암문으로, 산성이 축성된 1711년(숙종 37)에 지어졌다. 용암봉 아래에 있어서 용암봉암문이라고도 부르며 우이동으로 통하는 관문이다. 암문은 그 모양이 홍예가 아닌 방형이라는 것이 특징이며 상부에 문루도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용암문은 성 내부 쪽을 홍예형으로 만들었다. 용암문 상부이 여장은 무너졌던 것을 1996년에 새로 복원한 것이다.
4-1. 동장대(東將臺)
동장대는 북한산성의 동쪽에 있는 장대로 1712년(숙종 38)에 지어졌다. 장군의 지휘소로 북한산성에는 동장대 외에 남장대, 북장대가 있었으나 현재는 동장대만 남아있다. 동장대는 최고 지휘관이 사용하던 곳으로 장대 중에서도 가장 중요시되었다. 장대의 평면은 정방형이며, 중층 구조로 아래층은 벽이 없이 트여 있어서 지휘하기 편리하도록 했으며, 위층은 창으로 막아 방을 만들어 사용했다. 장대의 구성이나 모습은 수원 화성의 서장대와 거의 같다. 이 장대는 소실되었던 것을 1996년에 복원한 것이다.
5. 대동문(大東門)
대동문은 북한산성의 동쪽에 있는 성문으로, 산성이 축성된 1711년(숙종 37)에 지어졌다. 서울의 동북쪽 수유동과 우이동을 연결하는 관문이다. 문의 형식이나 모습은 대남문이나 대성문과 같지만 홍예는 이 문이 가장 크다. 하부의 홍예문은 통로로 사용되었으며 상부의 단층 문루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문루는 소실되었던 것을 1993년에 새로 복원되었는데 이때 홍예문 상부의 여장도 함께 복원하였다.
6. 보국문(輔國門)
보국문은 북한산성의 동남쪽에 있는 암문으로, 산성이 축성된 1711년(숙종 37년)에 지어졌다. 보국문은 소동문 또는 동암문이라고도 한다. 암문은 평상시에는 백성들의 출입문으로 이용되었으며 전쟁 때에는 비밀통로로 사용되었다. 암문은 돌로 만들었지만 홍예 형태가 아닌 방형의 평문 형식이며 상부에 문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1993년에 보국문 상부이 여장을 복원하였고 부분적으로 수리하였다.
7. 대성문(大城門)
대성문은 북한산성의 동남쪽에 있는 성문으로, 산성이 축성된 1711년(숙종 37)에 지어졌다. 문의 형식과 규모는 대남문과 같다. 대성문은 형제봉 능선을 타고 서울의 북쪽 평창동과 정릉동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관문이다. 성문 하부는 홍예 모양으로 통로를 내고 성문을 달아 여닫을 수 있도록 했다. 상부 단층 문루는 우진각 지붕 형태인데 이는 지붕 네 면 모두에서 불화살 공격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 문루는 소실되었던 것을 1992년에 새로 복원한 것이다.
8. 대남문(大南門)
대남문은 북한산성의 가장 남쪽에 있는 성문으로, 산성이 축성된 1711년(숙종 37)에 지어졌다. 소남문으로도 불린 대남문은 비봉 능선을 통해 도성의 탕춘대성과 연결되는 전략상 중요한 성문이다. 성문 하부는 홍예 모양으로 통로를 내고 성문을 달아 여닫을 수 있도록 했다. 상부에는 군사를 지휘하고 성문을 지키기 위한 단층의 문루가 있다. 이 문루는 소실되었던 것을 1991년에 새로 복원한 것이다.
9. 청수동암문(淸水洞暗門)
청수동암문은 북한산의 나월봉과 문수봉 사이의 고갯마루에 위치해있다. 1711년(숙종 37년) 북한산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설치한 8개의 암문 중 하나로, 탕춘대성과 비봉에서 성 안쪽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했다.
10. 부왕동암문(扶旺洞暗門)
부왕동암문은 북한산의 나월봉과 증취봉 사이의 고갯마루에 위치해 있다. 1711년(숙종 37) 북한산성을 축조하면서 설치한 8개의 암문 중 하나로, 성 밖의 삼천사 쪽에서 성 안의 중흥사에 이르는 길목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했다. 암문은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이자 때로는 구원병의 출입로로 활용된 일종의 비상출입구이다. 산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적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고갯마루나 능선에 설치했다.
11. 가사당암문
대서문에서 의상봉 갈림길까지 다시 와서 의상봉 방향으로 오르면 국녕사가 나온다. 국녕사를 지나 산길을 오르면 오른쪽으로 의상대 오르는 길과 왼쪽으로 용출봉 오르는 길의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에 가사당암문이 있는데 이 암문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쳐버렸다. 암문은 비상시에 사용하는 숨겨진 문이라는데 가사당암문은 제대로 설치되어서 지나쳐버리게 된 것 같다.
12. 중성문(中城門)
중성문은 북한산의 노적봉과 증취봉 사이의 협곡에 쌓은 중성(重城)에 설치된 성문이다. 대서문에서 이곳에 이르는 지역은 지형이 비교적 평탄해 적의 공격에 취약한 구역이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곳에 적의 공격을 이중으로 방어할 수 있는 차단 성인 중성을 두었다. 중성 안쪽은 북한산성의 내성에 해당되는데, 이 내성에 행궁, 중흥사, 상창 등의 주요 시설이 집중되어 있었다.
북한산성 중성문 옆에는 수문 터가 남아있다. 수문은 성벽 하단에 문을 내어 성 안의 물을 성 밖으로 흘려보내는 배수 시설로, 적의 침투에 대비한 철책 시설도 갖추어 놓았다.
13. 대서문(大西門)
대서문은 북한산성의 정문으로 성문 6곳 중에서 가장 낮은 지점에 위치한다. 1712년(숙종 38) 숙종이 북한산성에 행차했을 때, 이 대서문을 통해 성내에 들어갔다고 한다. 과거 성내에 마을이 있었을 당시엔 주민들이 대대로 이용했던 성문이기도 하다. 지금의 문루는 1958년에 복원한 것으로 북한산성 문루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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