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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주조 역사를 간직한 곳
등록문화재는 구한말 개항기부터 한국전쟁 전후까지 만들어진 건축물·산업유산·예술품 등을 가리킨다. 국보·보물·사적 등은 지정문화재라고 일컬으며 등록문화재는 이에 비해 아직 젊은 문화재에 속하는 셈이다. 등록문화재는 20세기 산업화와 급변해온 시대의 명암을 짚어보고, 그 안에서 잊혀졌던 유물과 인물 그리고 역사의 가치를 되짚어 보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근대문화유산 역시 세월이 흐르면서 희소성이 덧붙여지며 그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다.
충북 진천군 덕산양조장(세왕주조)은 한국 근대 주조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일본 사람이 설계해 1929년에 짓기 시작한 이 양조장은 이듬해에 완공된 것으로 이규행(48) 대표의 말에 따르면, 서향으로 난 정문과 그 앞의 측백나무가 한여름 열기를 막아 건물을 시원한 상태로 유지해주며 측백나무에서 날아든 송진이 참나무로 된 건물 외벽에 달라 붙어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한다고 한다. 백두산 전나무와 삼나무로 높게 올린 지붕은 환기에 이로우며, 건물 중간에 넓게 깐 톱밥 역시 같은 효과를 낸다. 측백나무는 해충도 방지한다. 나무의 진액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해충을 쫓아 건물의 나무가 썩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실제 2006년 보수공사를 하면서 건물을 해체한 적이 있었는데, 뼈대가 하나도 썩지 않았었다.
세월의 더께 속에서 빛나는 이름
진천 덕산양조장의 1평 남짓한 사무실에는 허영만의 ‘식객’에도 등장한다는 오래된 금고가 자리하고 있고, 벽에는 이승만 시절부터 받아온 주류대회 상장들이 가득하다. 양조장 입구의 ‘석 잔을 마시면 대도에 통하고 한말을 마시면 자연과 합한다.三杯通大道 一斗合自然’라는 의미의 수묵화를 눈에 담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시큼하면서도 꼬리한 냄새가 코끝을 스쳐온다. 냄새의 근원을 따라 간곳에는 술항아리들이 전통옹기 속에서 전통 양조기법으로 발효식품의 맛과 효능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다. ‘1935 龍夢製(1935년 인근 용몽리에서 만들었다는 뜻)’란 글자가 찍혀 있는 이곳 발효실 항아리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술이 보글보글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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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명맥을 잇는 다는 것은
진천 덕산양조장(세왕주조)의 이규행 대표는 애초에 충북 청주에서 건설업을 했다. 그러다 3대째에 끊길 뻔 한 가업을 잇기로 결심했다. 업으로 삼을 정도의 양조 전문가는 아니었다. 직원들은 누구보다 전문가였지만, ‘낙하산’ 사장에게 쉽게 기술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밥 짓는 것부터 차근차근 배웠고 배달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전통주 자료들을 찾아내 자신만의 비법을 연구했다. 원료의 성질을 파악하고 배합에 따라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내고, 오직 손으로만 만들어내는 진짜 맛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2년이 지난 뒤 세왕주조의 대표 술이 된 ‘천년주’가 탄생했다. 충북 진천 쌀에 인삼, 백복령, 구기자 등 12가지 약초와 누룩으로 빚었는데, 소비자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으며 진천군 문화상품으로 지정받았다. 할아버지 때부터 탁주와 약주를 빚어온 집안의 손재주가 그에게도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막걸리는 2002년에 시작했다. 서민의 술이고 싼 술이라 쉽게 생각했는데, 약주보다 더 애를 먹었다. 양조장에서는 맛이 괜찮았는데, 밖에 나가면 며칠 만에 상하기 일쑤였다. 효모균은 살아 있는 미생물이어서 이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3년을 고생해 2005년부터 주당들에게 옛 맛을 품은 막걸리로 인정받게 됐다. 세왕주조 막걸리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담백하고 시원할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옛맛이 난다고들 해요. 비법이 뭐냐고 묻는데, 특별한 게 있겠어요. 그냥 옛날 방식 그대로 만드니까 옛맛이 나겠죠.”라고 이규행 대표는 설명한다.
고두밥을 찧고 이틀간 종균실에서 배양한다. 배양한 것을 항아리에 담고, 덧밥(술밥)을 다음날 넣어준 뒤, 이틀 동안 숙성한다. 이 모든 것을 사람의 손으로 한다. 사람 손으로 균을 띄울 때 날씨에 따라 그 방법이 다른데, 이 미세한 감각을 기계는 흉내 낼 수 없다. 세왕주조의 제품 수는 대형 주류회사 못지않다. 대통령상을 3번이나 받은 ‘생거진천 쌀막걸리’와 냉침법을 응용해 만든 ‘가시오가피주’ 등 35종이나 된다. 그만큼 이규행 대표는 전통의 맥을 이으려는 재투자에 적극적이란 얘기다.
“우리 양조장을 나무로 표현하고 싶네요. 할아버지께서 나무를 심으셨고, 아버지는 뿌리를 내리셨어요. 우리는 줄기를 뻗게 했습니다. 앞으로 나무의 잎이 무성해져야겠죠? 100년, 200년이 흘러도 후손이 전통을 지킨 우리 양조장을 지켜나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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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바람이 불면서 양조장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는 지금, 세왕주조에는 ‘말통’(술 한 말이 들어가는 20 통)을 실은 차들이 줄을 잇고, 주문 전화도 끊이지 않는다. 더불어 세월에 밀려 사라졌던 다른 양조장들도 부활하고 있다. 충북지역만 해도 장사가 안 돼 문을 닫았던 괴산군 문광, 음성군 대소 양조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한국의 최대 막걸리 회사로 장수막걸리를 생산하는 서울탁주는 충북 진천군 광혜원면에 2만 8000여㎡(8700평)의 대규모 양조장을 짓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덕산 양조장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 했던 적이 있었다. 2001년 덕산 양조장이 도로 계획상 길이 나는 곳으로 지정 되었던 것. 다행히 2003년 문화재 등록이 받아들여지면서 건물 철거는 피할 수 있었다. 문화재청이 우리가 소중히 가꾸고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이라고 인증하고 있는 곳인 세왕주조. 이는 어떤 칭찬보다도 명예롭다. 80년 동안 우리 술을 빚어온 덕산양조장(세왕주조)가 현대인들에게 주는 전통주의 역사는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옛 것의 의미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글·사진 | 류우종 한겨레신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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