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남쪽으로 내려와 서울 한강 시적점은 강동구 구역인 강동대교이지만..
서울 둘레길과 서초구 답사에서 만났던 자료로 대신하기로 하고..
고덕산 끝자락에 구리암사대교 옆 구암서원터
암사동 유적지
역시 송파구도 서울 둘레길에서 미리 답사한 풍납토성과 올림픽공원의 몽촌토성을 지나
옛한강의 유일한 흔적인 석천호수를 지나 석촌동고분군, 방이동 고분군 등을 답사했다.
석천호수에는 삼전도비와 삼전나루터 표석, 송파나루터 표석이 동호와 서호에 흩어져 있다.
송파구와 강남구의 경계인 탄천 주위에 남겨진 조각들을 찾아 본격적인 서울 한강 걷기를 시작했다.
잠실(蠶室).. 의식주의 중요한 한축이였던 뽕나무는 국가적 절대 사업이였을 것이다.
강북 잠실에서 강남시대를 열었던 강남의 탄생까지.. 한강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소중한 답사였다.
부리도(浮里島)의 명칭은 큰비가 내리면 주변이 온통 물에 잠겼지만 이곳만은 물 위에 떠 있었다고 하는데
탄천과 양재천이 만나는 곳이니 큰 비가 내리면 자주 홍수가 났었던 모양이다.. 종합운동장역 2번출구
탄천炭川을 지나면 접하게 되는 삼성.. 이제 송파구에서 강남구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고..
나는 三星그룹의 삼성인줄 알았는데 奉恩寺,舞童島,楮子島가 모여 삼성三成이란다.
지금의 삼성동 한전부지가 무동도 자리이고 저자도는 압구정동 아파트를 건설하면서 마을 자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왠 도시 한 복판에 사찰?? 이렇게 도시화는 수도산 품속에 있었던 봉은사 사찰을 섬처럼 만들어 버렸다.
오늘의 봉은사를 지켜준 선릉과 정릉
한강변의 물이 너무 맑아 청담淸潭.. 청숫골이라 불리웠던 청담동을 지나면
청담동 134번지인 청숫골 마을터가 있던 곳이다
정치적 중심에 있었던 한명회에 어울리지 않은 이름을 가진 압구정狎鷗亭..
그래서 당시에는 지나가던 이들에게 비웃음의 대상이였다고..
지금은 앞.뒤로 너무 개발이 되어 전혀 느낄 수 없는데 중국에까지 알려진 절경이라는데..
한강 걷기... 가양나들목에 있던 그림... 겸재 정선이 그린 압구정도... 바로 앞에 한강이 흐르고 있다.
삼성동의 하나였던 저자도 섬을 사라지게 했던 압구정동 아파트 건설은 이 사진속의 지형을 바꾸어 놓아 버렸다.
압구정터는 현대 5차 아파트 74동 뒤편 가운데쯤 있었다.. 눈앞에 두고도 몇번을 물어봤다..
유래 표지석이 보이고 아래에 압구정지 표지석이 있다
압구정을 지나 잠원동에 가면..
잠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잠원에 어울리는 노력으로 이렇게 새로 심은 뽕나무도 볼 수 있고..
잠원동 신반포에 있는 잠실 뽕나무는 500년이 넘는 풍파를 견디어 주어 산 증인이 되어주니 감사하고..
삼성동에서 사라진 저자도의 아픔은 반포 서래섬에도 남아 있다.
개발과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던 서래섬..
반포천을 지나면 충과 효의 고장이라는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과 사모곡 효사정 그리고 효심하면 떠오르는 정조의 용양봉저정에 지금도 그 숨결 그데로 남아 있다.
반포천 합수점과 동작현충원
동작 현충원 정상인 동작대.. 맑은 한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경치 좋은 곳이라 하여 붙여진 명수대가 있던 자리라고..
효사정
효사정은 서울특별시 우수경관 조망명소 답다.. 가야할 한강대교와 노들섬
용양봉저정 앞에 있는 주교사터..
노들나루공원에서 본 용양봉저정
노들강변의 노래가 전하는 우리나라 철도의 시발지인 노량진역을 중심으로 사육신 공원이 있고
사육신묘
여의도 샛강을 지나다 보면 유일하게 올림픽 대로에 흔적만 남아 있는 귀신바위와 방학곳지 나루터를 만날 수 있다.
올림픽 도로를 만들면서 귀신바위 흔적까지 사라지게 해 귀신바위옆에 학이 놀았다는 느티나무만 외롭게 서있었다.
한강철교를 지나니 샛강이 어서오라하고.. 샛강이 만들어낸 여의도를 연결해 주는 원효대교..
샛강다리에서 본 여의못... 내가 한강이 아닌 샛강을 걷고자 했던 것은 여의도를 지나면서 차창으로 보였던
이 샛강의 밀림 같은 숲을 보고 싶어서 였는데.. 샛강을 걸을 때는 몰랐는데 여기서 보는 숲이 더 환상적이다
방학호진 나루터가 있었던 곳에 있는 귀신바위와 느티나무는 현재 올림픽 대로가 지나고 있어 접근 불가..
안내판(화살표)이 도로가 생기기전 접근했던 것을 말해주는데.. 그나마 일부라도 남아 있어 감사할 뿐..
당겨본 귀신바위와 느티나무.. 방학호진 나루터가 있을 때에는 여기까지가 샛강으로 느티나무에 학이 놀았다는..
도로 건설로 상단만 남아 있는 귀신바위는 절경에 취한 많은 사람들을 귀신으로 만들었다는무서운 바위인데..
한국 근대사에서 중요한 산업시설과 건축물이 남아있는 영남, 영동 등 마을이름의 유래가 됐던 영등포永登浦
영등포역 뒤 공원에 남아 있는 OB맥주 담금솥 견본, 영등포 시장의 대선제분, 타임스퀘어 뒤에 남겨진 구 경성방직 사무동京城紡織事務棟
영등포 공원 광장에 오비맥주 공장터 시설물이 있다.. 담금 솥이라고.. 맥아와 홉을 끓이는데 사용하는 대형 솥이라고..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구 영등포 공장 모습.. 공장이 떠난 자리에는 시민의 공원이 되었고.. 영등포 역도 보이고..
영등포 시장 가는 길에는 근대산업유산중의 하나였던 대선제분은 근린공원으로 다시 테어나기 위해 흔적은 사라지고..
또 다른 근대산업 유산 중 하나인 타임스퀘어 뒤에 경성방직 사무동이 지금까지 다행이 남아 있다
해당화 나무가 많아 늦은 봄에 많이 피었다하여 당산동堂山洞.. 당산은행나무가 지금까지 모진 풍파를 견디고 있고
새 교회를 지으면서 관리 소흘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는 양평동 둥근잎 느티나무를 볼 수 없어 아쉽고..
일대에 버드나무가 많아 붙여졌다는 양화楊花 한강공원은 계속되고..
선유도를 이어주는 인도교인 듯.. 선유도를 개방했는지 많은 사람들이 건너가고 있다.
안양천과 한강의 합수점을 지나면 강서구가 기다리고 있고.. 한강을 따라 올라온 소금을 잠시 보관했던 염창동이 시작된다.
한강 우성 103봉 경비실 옆에 염창터 표석.
도성이 한강 북쪽에 있는데 왜 여기에 보관했다가 어렵게 다시 한강을 건너 소금을 전했을까?
염창동의 주산인 염창산.. 세곡선의 흘린 곡식을 줍고자 모여살았던 유래가 담긴 증미산(拯米山)이라 부르기도..
소금창고를 지나니 약초 향내가 진동하는 허준의 흔적을 만날 시간... 가양동..
허준 근린공원의 광주바위.. 여기까지가 강이였는데 올림픽 도로 건설로 육지가 된 것..
허준 선생
허준 근린공원 옆 작은 구릉인 탑산에도 많은 사연들을 남겼는데..
공암바위(허가바위).. 광주바위와 마찬가지로 여기까지 한강물이 들어왔다고..
탑산을 지나면서 이제 궁산을 주위로 양천 현감으로 재직하시면서 많은 작품을 남기신 겸재 정선의 시간이 시작되고..
양천 향교
눈 크게 뜨고 찾지 않으면 도저히 찾을 수 없는 망동산
소악루
옛날에는 소악루 바로 앞까지 한강이 흘렀다고 한다. 개화산 전망대에 있던 소악루 소개 안내판
겸재의 그림이 없었다면 지금의 소악루 위치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올림픽 대로 건설로 지형이 바뀌어 이마져도..
그럼 이제 서울의 마지막 답사지인 개화산이다..
조선 중종 때 정승 심정이 심은 나무로 나이가 400이 넘었다는데.. 방화동 느티공원
방금 느티나무의 주인공 심정묘
개화산 봉수대.. 이 봉수대(火로) 인해 개화산開火山이 되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개화산에서 상사마을로 내려오면... 행주나루터 표석을 답사 후 행주 나들목을 통과한다. 개화동 205-42
잠시 행주나들목으로 들어가면 도 경계를 만나면서 서울 한강 걷기는 끝을 알린다.
한반도의 척추인 백두대간과 한북정맥 그리고 한남정맥 그 사이로 한강기맥이 만들어낸 북한강과 남한강이 분기되고
두 강이 부지런히 날라다 준 물을 알뜰살뜰 모아 양수리에서 화합한 뒤 막을 수 없는 거대한 물결이 되었고
삼국시대부터 계속 되어온 한반도 중앙을 흐르는 한강(큰 물)에 대한 열망은 열망이 큰 만큼 역사적으로 누구도 주인을 가리지 못하다가
조선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서울을 수도로 하면서 한강의 시대가 열렸고 그 흐름을 이어받아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지금까지 이어온 한강으로 들어오는 정맥과 지맥 그리고 수도권 55산 종주까지 하면서 딱 하나 남은 그림 하나..
바로 서울 한강 걷기였는데 드디어 강서구를 마지막으로 10차에 걸친 서울 한강걷기를 마치게 되었다.
세계가 놀란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한강을 지켜준 선조들의 예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선조들의 예지의 흔적을 찾아 보고 한강의 현재의 모습을 함께 공유하면서 걸었기에 더욱 행복 했음을...
초보산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