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은 겨울, 따뜻한 하루하루가 흘러 가는 중, 무언가가 변하고 있었다.
햇볕이 좋은 오후면 땅꼬는 서향 뒷 베란다 창을 통해 해바라기를 하며 뒷산 보기를 즐겼다. 나는 뒷산을 보는 땅꼬의 뒷 모습을 눈으로 쓰다듬기를 즐겼다. 뒷 베란다로 통하는 부엌문 앞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는 땅꼬의 요청하는 시선에도, 햇살 가득 역광 속에서 오도커니 뒷산 풍경에 빠져든 반짝이는 솜뭉치 같은 뒷모습에도 내 심장은 몽글몽글해졌다.
어쩌면 말 한마디 없이 조용한 기다림으로, 시선만으로 거절할 수 없게 요청할 수 있을까? 그 비결은 호의다. 상대에 대한 일말의 의심도 없는 호의에 가득찬 눈빛. 아이의 눈빛. 그 호의 앞에서 나는 무장해제 당하고 만다. 땅꼬 앞에서면 지금까지 내가 누군가에게 요청한 방식을 되돌아보게 된다. 언제나 거칠고 무례하면서도 불안했었구나.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믿음이 부족해서 방어적이 되는 요청. 거절당할 두려움에 지레 고압적이 되는 ... 저렇게 요청하는 법을 진작 배웠다면... 친절을 이끌어 내는 법을 배웠다면... 아니... 아주 먼 옛날 분명 나도 저런 눈빛을 가지고 있었을테지. 어디서 잃어버렸을까? 언제부터 잃어버렸을까?
그렇게 따뜻한 햇살과 더불어 평온하게 흘러가던 어느날... 조용한 기다림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너무 자주, 빈번하게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용이 시작됐다. 그저 나를 귀찮게 하는 게 목적이된 듯 나갔다가도 금새 들어오겠다고 울어대고 들어오면 또 나가겠다고 울어대고... 집요하게 울면서 떼를 쓰기 시작했다. 냐옹~~ 냐옹~~냐용~~~~. 안돼!!! 안돼!!! 거절해도 포기하지 않았다.
밥을 달라고 울어대다가다 밥을 주면 먹질 않았다. 그리고 현관 앞에서 울어대기 시작했다. 소리 높여 필사적으로 낮이나 밤이나 울어댔다. 그 울음의 강도는 점점 더 사나워졌다. 방음이 시원찮은 오래된 아파트, 필사적인 울음 소리에 나는 피가 마르기 시작했다. 땅꼬는 밥을, 잠을 잊었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한낮에도 한밤에도 계속 현관 앞에서 울어댔다. 그러다 갑자기 울음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똥그랗게 뜨고 완전히 집중해서 뒷산 을 바라본다. 어떤 소리를 듣는 듯 했다.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땅꼬를 이끄는 간절한 부름. 그 절대적 기미가 이끄는 간절한 끌림.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에 완전히 몰두하는 잠시의 침묵 후에 땅꼬는 더 크게 더 간절하게 울어댔다. 나를 내보내줘. 나를 나가게 해줘, 나를 놓아줘. 나를 부르는 저 소리를 놓칠 순 없어.
이러다 큰 일 나겠다 싶어 밥을 가져다주고 물을 가져다 주고 츄르를 가져다줘도 안중에도 없다. 나를 보내줘, 나는 가야만 해. 문을 열어줘~~~
아!!! 발정인가 보다.
검색해보았다. 6개월 정도부터 시작되고, 길냥이가 집안으로 들어와 환경이 좋아지게 되면 빨리 올 수도 있다고....그러니 땅꼬는 첫 발정일 것이다.
중성화 수술을 해야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어떻게...
나의 청춘의 시절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난다. 머리를 감다가도,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다가도 전화벨 소리가 들려... 멈춘다. 하지만 환청. 오로지 그 벨 소리 너머 누군가의 목소리만이 진실한 생으로 통하는 복음인줄 알았던 시절. 그 소리에 포박당했던 시절. 저항할 자유는 없었다. 그 간절한 부름과 이끌림, 생명의 당연한 권리. 어떻게 외면하고 짖밟을 수 있겠는가? 내가 무슨 권리로... 저 아이의 저 처절한 생의 욕구와 그 결과 창조될 저 아이의 세계, 저 아이의 관계를 박탈할 수 있겠는가???
갈등의 날들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