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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동요를 찾아서 15]
가을밤
작시 이태선·작곡 박태준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뒷산 길 어두워질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가을밤 고요한 밤 잠 안 오는 밤
기러기 울음소리 높고 낮을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한 곡에 세가지 제목, 세 편의 다른 가사가 있는 노래가 있다.
‘기러기’, ‘가을밤’, ‘찔레꽃’으로 알려진 동요이다.
노래에도 운명이 있다면, 이 곡만큼 기구한 생애를 산 노래도 드물 것이다. 동요 한 곡에 한국 근현대사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 동요 ‘가을밤’의 곡조가 불려지는데는 파란만장을 겪어 온 대한민국의 근현대 역사를 잘 보여주는 곡이다.
이 곡조가 처음 붙여진 가사는 윤복진의 1920년에 쓴 시에 붙여진 <기러기>이다.
우리 옛 동요 ‘기러기’를 작사한 윤복진(1907-1991)은 대구 출신으로 1928년 같은 동향인 작곡가 박태준(1900-1986)에게 가사를 맡겨 동요 <기러기>가 탄생한 것이다.
이 동요의 시(詩)는 우리나라 동요의 효시라고 알려진 <반달, 1926년>보다 6년 전에 발표된 시(詩)이다.
기러기
작시 윤복진·작곡 박태준
울 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길을 잃은 기러기 날아갑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넓은 하늘로
엄마엄마 찾으며 흘러갑니다
돌담에 단풍잎이 붉게 물들어
기럭기럭 기러기 날아갑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저 먼 나라로
엄마엄마 부르며 날아갑니다.
오동 잎이 우수수 지는 달밤에
아들 찾는 기러기 울며 갑니다
엄마 엄마 울고 간 잠든 하늘로
기럭기럭 부르며 찾아갑니다.
동시 ‘기러기’는 1920년에 나왔다.
윤복진은 이 시를 지은 9년 후인 192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에 당선했다.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던 이 천재 시인은 6·25전쟁 때 월북(越北)했다.
그러고 북으로 가서 다수의 선전문학 작품을 발표했다.
이 때문에 교과서에 실린 ‘기러기’의 제목과 가사가 바뀌었다.
1950~1960년대까지는 윤복진 가사본으로 교과서에 실려 있었는데 이후 ‘기러기’는 ‘가을밤’으로 제목이 바뀌어 교과서에 실렸다.
곡은 동일하게 박태준의 곡에 작시자는 이태선(1914~2002년)이었다.
가사 내용은 첫 부분에 있는 이태선 작사의 ‘가을밤’이다.
오동나무의 잎이 지는 쓸쓸한 가을 하늘에 날아가는 기러기를 아들과 엄마로 설정해서 서로 애타게 부르는 작가의 착상이 놀라울 뿐이다.
그때는 섬돌 밑에 귀뚜라미 우는 소리 들으면서 가을이 깊어지는 것을 알았던 시대이기도 했기에 기러기가 날아오고, 귀뚜라미 소리를 통해 계절이 바뀐 것을 아는 때였기에 가을이 오면 이 동요를 많이 불렀던 것 같다.
이 곡이 세상에 나오자 끊임없이 사랑을 받아 온 이 노래가 1950년 6.25.전쟁 중 시를 쓴 윤복진의 월북으로 그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대한민국 최초의 동요 ‘기러기’는 금지곡이 된다.
그후 윤복진의 노랫말을 빼고 시인 이태선 개사(改詞)하여 <가을밤>의 동요가 되어 널리 불리게 된 것이다.
그 후 포크송 가수로 ‘새색시 시집가네’, ‘목로주점’ 등을 히트한 이연실(1950~ )이 이원수(李元壽)가 1930년 11월 <신소년> 잡지에 발표한 ‘찔레꽃’을 개사하여 1972년에 <찔레꽃>으로 재탄생 시켰다.
여기서 이원수의 시 ‘찔레꽃’과 이연실이 개사한 <찔레꽃>을 소개한다.
찔레꽃 (이원수 시)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언니 일 가는 광산길에 피었다오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배고픈 날 따먹는 꽃이라오
광산에서 돌 깨는 언니 맞으러
해가 저문 산길에 나왔다가
찔레꽃 한 잎 두 잎 따 먹었다오
저녁 굶고 찔레꽃을 따 먹었다오.
찔레꽃
이연실 개사·박태준 작곡
엄마 일 가는 길엔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보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광산에서 돌 깨는 누나 맞으러
저무는 산길에 나왔다가
하얀 찔래꽃 따 먹었다오
우리 누나 기다리며 따 먹었다오
엄마 엄마 나 죽거든 앞산에 묻지 말고
뒷산에도 묻지 말고 양지 좋은 곳 묻어주
비 오면 덮어주고 눈 오면 쓸어주
내 친구가 나 찾으면 엄마 엄마 울지마
이렇듯 결국 이 동요는 1곡 3가사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기러기, 가을밤, 찔레꽃은 가사만 다를 뿐 결국 같은 노래인 것이다.
작시자·윤복진(尹福鎭·1907~1991)
‘월북 작가’로만 알려진 윤복진(1907~1991)은 한국아동문학사에서는 낯선 이름이다.
윤복진은 대구(大邱) 출신으로 1927년 윤석중(尹石重) 중심의 기쁨사 회원으로 활동했다.
대구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윤복진은 일제강점기 소파 방정환이 창간한 잡지 <어린이>를 통해 등단했다.
1936년 일본대학 전문부 문과를 거쳐 일본 법정대학(法政大學)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계성학교 재학시절 교회성가대로 활동했고 이때 계성학교 교사이자 교회를 함께 다닌 박태준과 교류를 이어갔다.
작곡가 박태준과 함께 동요작곡집으로 '중중떼떼중', '양양범버궁', 그리고 이 두 동요작곡집에 실린 작품을 발췌하여 '돌아오는 배'를 간행했다.
윤복진은 어린이들의 교육에 관심을 가졌고, 해방 후 여전히 일본말로 노래를 부르는 어린이들을 보고 우리말과 우리글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초등용가요곡집', '중등용가요곡집'을 1946년에 발간했다.
홍난파 등 작곡가와 함께 활동하며 신문·강연을 통해 동시와 동요를 보급해 모르는 아이들이 없을 정도로 인기였다.
어린이 인권과 민족정신 함양을 위해 윤석중·서덕출 등 아동문학가나 박태준·
그는 개인 동요선집 ‘꽃초롱 별초롱’(1949)을 발간한 후 1950년 홀연히 사라졌다.
윤복진이 조선문학가동맹 소속 문학인들과 월북하면서부터 북한의 대표적인 아동문학작가로 자리잡았지만 남한에서는 ‘잊힌 아동문학작가’가 됐다.
그의 자취와 작품을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처럼 전쟁기에 월북을 하면서 오랜 세월 잊혀져 있다가 1990년대 월북작가의 해금 이후로 다시 노래나 문학 세계가 재조명되어 오고 있다.
그의 동요 작품으로는 박태준(朴泰俊)의 동요곡집 <물새발자욱>에 실린 전곡의 가사와 홍난파(洪蘭坡)의 <조선동요백곡집> 상편(1929)과 하편(1933)에 수록된 10편의 동요 가사를 비롯해 수십 편이 있다.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뒷산 길 어두워질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로 시작하는 동요 <기러기, 1927년>는 한국 최초의 창작 동요로 알려진 윤복진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작사자·이태선(李泰善, 1914~2002)
이태선(李泰善)은 1914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나 45년 감리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황해도 벽성군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해방 뒤 월남, 충청도와 경기도를 중심으로 목회활동을 했다.
이천 양정여자중학교 교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아동문학가로 활동하며 주옥같은 작품들을 다수 남겼다.
이태선 목사는 1972년 수원제일감리교회를 개척해 감리교단의 중견교회로 성장시키고 1987년 43년간의 목회를 마치고 정년은퇴했다.
은퇴 후에도 창작과 저술활동을 활발히 해왔다.
세상을 떠나기 3년 전부터는 더이상의 창작이 힘든 상황이었으나 끝까지 펜을 놓지 못하고 성경을 직접 손으로 옮겨 기록하여 이를 유품으로 남겼다.
작곡자·박태준(朴泰俊, 1900~1986)
작곡자는 박태준은 대구 출생으로 기독교계 계성학교를 거쳐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숭실전문학교 재학 시절 서양 선교사들에게서 성악과 작곡의 기초를 배웠다.
‘뜸북뜸북 뜸북새’로 시작하는 최순애 작사의 ‘오빠 생각’,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의 첫 선율이 감미로운 이은상 작사의 ‘동무 생각’ 등이 박태준의 작품이다.
박태준은 대구 계성과 평양 숭실 동창인 친구 윤복진 시인의 가사에 곡을 붙여 50여 곡을 만들었다.
배경은 1920년대 중반부터 30년대까지, 소년문예운동(少年文藝運動)이 전 조선반도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다.
미래 세대를 근대인으로 육성한다는 민족운동의 일환이었다.
당시 10대 중반부터 20대 초반까지 분포한 소년소녀 문사(文士)들은 개화기 신문물과 근대적 신교육을 접한 첫 세대였다.
그들의 글에는 신선하고 감각적이었으며 구태(舊態)와는 확연히 다른 근대적 감성이 깃들어 있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그리고 <어린이>, <신소년>, <별나라> 같은 잡지들이 이들 소년소녀 문사들의 활동 무대였다.
윤석중, 이원수, 신고송, 최순애 등이 당시 전 조선에서 문명(文名)을 떨치던 소년 작가다.
문맹률이 높던 시절, 읽을 수는 없어도 들을 수는 있었기에, 수 많은 작곡가들은 소년 문사들의 시(詩)에 곡을 붙여 수많은 동요를 지었다.
동요 보급은 근대정신의 보급과 동의어였다.
그들은 여러 단체를 만들어 전국 방방곡곡에 노래를 보급했다.
동요의 귀환
일제 강점기, 동요의 씨를 뿌린사람들의 발자취
아동문학가이자 동요시인인 윤복진의 작품과 삶을 소개하는 의미있는 전시가 지난해 대구근대역사관에서 열렸다.
대구시가 2024년 1월 30일부터 3월 31일까지 대구근대역사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하는 대규모 기획전 ‘동요의 귀환(歸還), 윤복진 기증 유물 특별전’이었다.
이 전시에서는 윤복진의 유족들이 보관하고 있던 1930~1950년대 윤 작가의 작품과 습작노트, 음반 등 유물과 자료 중 일제강점기 문화예술 활동의 단면을 볼 수 있는 60여 점을 선보였다.
윤복진의 유족들로부터 기증받은 자료를 정리하고 연구·분석한 내용을 소개한 것이다.
이 전시에 대하여 조경선 대구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근대 한반도 3대 도시 중 하나였던 대구에는 전국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문화예술인들이 있었다”며 “서울 중심의 예술인들만 부각되고 기억된 상황에서 이번 전시를 통해 지역 출신 문화예술인들의 활동이 재조명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기증자에 대한 감사와 함께 근대 문화예술 자료의 기증 문화가 선순환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았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전시 제목 ‘동요의 귀환’은 동요가 다시 위상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윤복진이 필명인 ‘귀환’을 따서 이중적 의미를 담았다.
이 전시는 윤복진이 성장하고 활동한 시대의 연표와 함께 주요 인물과 예술활동을 펼친 공간에 대한 이미지 등으로 구성한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근대 대구로 시간 이동을 유도한 것으로 평가된다.
1930년 중중때때중 출판 기념, 무영당에서 (이근무, 박태준, 윤복진),
동요의 귀환
글|남지민
일제강점기 이 땅의 어른들은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어린이들을 생각했다.
일본 말을 배우고 자라는 어린이들이 우리말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동요를 만들어 부르게 했다.
3.1운동 이후 일제의 문화정책에 대항해 어린이 운동이 확산되었고 방정환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어린이 잡지를 통해 동요가 소개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동요는 아동잡지와 신문에 ‘시’ 형태로 먼저 발표되고, 이후 작곡가의 곡을 붙여 ‘노래’ 형태의 ‘동요’로 노래집, 아동잡지 등에 다시 소개되고 보급되었다.
문예운동, 노래 운동은 양악의 수용이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이루어진 기독교계 사립학교, 주일학교의 현장에서 먼저 펼쳐졌다.
당시 독립운동과 같았던 소년문예운동, 동요운동의 씨앗은 2000년대 초까지 창작동요제 등으로 이어지면서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전시 제목 ‘동요의 귀환’에는 동요의 원류에서 시작해 동요를 부르던 시대의 낭만과 어린이의 가슴에 다시금 동요를 심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다.
더불어 당시 어린이 잡지와 주요 일간지에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며 서울, 평양, 일본 등에서 활발히 동요 작사가, 민요시인으로 활동한 지역 출신 윤복진(필명 김수향, 김귀환)의 전성기 활동 자료를 통해 당시 그의 전방위적 활동을 다시금 재조명하고자 한다.
또한 당시 ‘동요, 아동문학계 권위자’로 불렸던 그의 위상도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바람을 제목에 얹었다.
윤복진, 박태준 동요곡집 <돌아오는 배> 최초 공개
윤석중 곡으로 알려진 동요 ‘슬픈 밤’은 윤복진 유족의 기증 자료를 통해 1929년 8월 9일 비오는 밤 장애를 가진 울산의 아동문학가 서덕출의 집에서 언양의 신고송, 대구의 윤복진, 서울의 윤석중 등 네 명 모여 함께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전시는 당시 동요운동 가운데 전국을 오가며 가장 활발한 운동을 펼쳤던 대구의 ‘윤복진’이라는 인물과 그의 활동을 조명하고자 한다.
한국동요사는 여전히 서울 중심이거나 특정 인물 중심으로 기록되고 기억된 현실 속에서 윤복진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동문학, 동요 연구자로 한정된다.
그마저도 자료의 부재로 연구에도 제한이 됐다.
이 전시는 윤복진 유족이 2022년 대구광역시에 유품 350여 점을 기증하면서 준비가 시작됐다.
2002년 8월 자료 운송되기 전까지 자료는 유족의 자택 오래된 반닫이에 보관되어 있었다.
유족이 기증한 자료들은 100년의 시간을 지나 방정환, 윤석중 중심으로 기울어진 한국동요사가 박태준, 윤복진 등 주요 인물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 정도로 풍성한 근거들을 보여준다.
전시는 4부로 구성
이번 전시는 1부 ‘시, 노래가 되다’, 2부 ‘노래에 담은 근대의 꿈’, 3부 ‘초월, 경계를 넘다’, 4부 ‘무영당, 예술과 사람’으로 구성됐다.
또 프롤로그에서는 근대기 새로운 학교 체제와 문물을 받아들인 문화예술인, 지식인 전형으로서 윤복진의 생애와 그가 펼친 활동, 교류한 단체와 인물을 살펴볼 수 있는 연표와 근대 대구문화예술 약사를 선보인다.
1부 ‘시, 노래가 되다’에서는 진급증서, 졸업증서, 소년회 활동 자료와 이를 통해 아동문학가 작사가로 성장하는 윤복진의 모습을 살펴본다.
또 습작, 시작노트, 동요곡집 <꽃초롱 별초롱> 등을 전시한다.
2부 ‘노래에 담은 근대의 꿈’에서는 윤복진 작시 박태준 작곡의 음악 노트와 1920~1930년대 발표된 동요의 악보, 악보집으로 구성한다.
또 윤복진이 소장했던 또 홍난파의 <조선동요 100곡집> 중 상권(1929)과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이 소장한 1930년 <조선동요백곡집>(1930년) 동판 악보(국가등록유산 제479호) 2점과 홍난파 작곡의 동요 유성기 음반을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정순철의 동요곡집 <갈닢피리>, <현제명 작곡집>, <조선동요유희집> 등을 전시한다.
특히, 1934년 윤복진 요, 박태준 곡으로 함께 출간한 <돌아오는 배>가 최초로 공개된다.
3부 ‘초월, 경계를 넘다’에는 일제강점기 지역 문화예술의 상황과 음악, 영화 평론가로 활동한 윤복진의 폭 넓은 활동을 증거할 수 있는 자료로 채운다.
4부 ‘무영당, 예술과 사람’에서는 대구 최초 민족 자본 무영당백화점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의 교류와 당시 백화점 풍경을 재현한다.
한편, 대구시민 주간을 맞아 이번 전시와 연계한 특별 강연 시리즈 ‘문화예술, 대구를 열다’(표 참고)가 2월 15일부터 3월 14일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 2시 대구근대역사관 2층 문화강좌실에서 열린다.
현재를 살아가기 바빴던 까닭에 묻어두고 살았던 빛나던 시대와 사람들의 순간이 유족의 기증 덕분에 되살아 나게 되었다. ‘동요의 귀환, 윤복진 기증유물 특별전’을 통해 유족의 품격이 ‘기증문화’라는 향기가 되어 널리 퍼져 나가길 바란다. 더불어 오랜 세월 고이 간직한 아버지의 유품을 조건 없이 기증해 주신 유족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https://youtu.be/m6hixAXvbic
전시실 내부
첫댓글 김양규: 와우
대박입니다
몰랐는데
감사합니다
최성찬:
가을밤
전문적인 해설과 함께
잘 묵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서은경: 오늘도 평안하셨는지요?
정말 다양하게
해설하시는 찬송가,
가곡, 동요, 등등
특히 보내주시는 곡이
제가 그리워 하던
동요, 가곡이라
마음이 더...ㅎ
.
참 많은 재능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 같습니다.
그걸 다 활용하지 못함이 참 아쉽습니다.
.
여튼
남은 날들도
하나님의 대사!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좋은 복음의 전달자로
계시옵소서 ^~^
감사합니다 🌱
박윤: 깊~이 고맙고 감사합니다!!
진실하고 진정한 참한 노래 ㅇ ㅇ ㅇ
배YS: 휴게시간에 듣는 가을밤과 찔레꽃
산들바람처럼 내 마음 속에는
어릴적 꺾어 먹었던 찔레순이 생각나면서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고맙습니다
태Kyungsung: 더 없이 청아한 음색이
이제 봄을 맞이하는 계절이지만
그 시절 맑고 높은 가을 하늘을 연상시켜 줍니다.
조각달 창공에 울려 퍼지던 기러기 소리도 환청되고요.
해설과 함께 잘 들었습니다.
yeohaesook: 아 내가 좋아 하는 동요 해설이
여기 다 있네요!
나이가 먹고 자식이 있고 손주가 있어도
항상 그리운건 엄마인 것 같아요!
하나씩 모두 읽고 들어볼게요!
주안애: 가슴이 뭉클 ㅠ.
요즘 아이들도 이런 예쁜 동요를 알까요?
그렇지 못함이 먼저 생각나니
애들 어릴적 많이 불러주던 그때가 그립네요.
잘 읽고 잘 들었습니다.
won kh : 너무좋아서 가슴이 먹먹하네요
몇번이고 반복해서 듣노라니 어린시절 추억이 스쳐갑니다
엄마엄마 엄마품이 그리워 눈물나오면 마루끝에 나와앉아 별만 셉니다~~
생각만해도 그리움이 사무칩니다
20년전 돌아가신 엄마가 60이 되어가도 그립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