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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 날다
<소설>
1 조혜련
남편이 뒷모습을 보이고 탑승구로 속으로 사라진 공항 대합실은 많은 사람들이 오갔지만 김 백조의 눈에는 휑하고 쓸쓸하게만 보였다. 19시에 출발하는 다란행 105편을 이용하는 승객 여러분께서는 7번 게이트를 이용하라는 공항의 탑승 안내 멘트를 들으며 백조는 스카이라운지에서 긴 다리를 포개고 앉아 커피 맛을 음미하며 가볍게 커피잔을 감싸 쥐었다. 속된말로 말해서 이것도 짬밥 수에서 쌓인 여유로움인가보다.
처음으로 남편이 해외 근로 파견을 나갈 때 세상이 두 쪽 나는 것만 같았다. 과거 군인들 월남파병 때 부산항 제1 부두에서 직업군인 부부 이별하는 것처럼, 김 백조도 김포공항에서 혼자 눈두덩이가 부었었고 남편이 마치 죽으러 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눈물을 달고 다녔었다.
부산항 제1 부두에서 ‘삼천만의 자랑인 대한 해병대...’ 가 울려 퍼지면서 환송 나온 직업군인 부부의 가슴을 울렸던 것처럼, 김포공항에서 남편 보내고 오는 버스 안에서는 문주란의 <공항의 이별>이 흘러나와 마치 부산항에서 울려 퍼졌던 군가처럼 슬프게 들려 귀가길의 캄캄한 밤에 흘러내리는 눈물이 앞을 가려 집을 찾아온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싶을 정도였다.
“남편은 잘 떠났고?” 해가 골목을 훤하게 비칠 때쯤에서 타이루 형님이 들어서며 하는 소리였다. “남편 없이 보내는 밤이 어땠어?”
“....” “이 집은 애들이라도 다 컸지. 내 남편 보낼 때는 고만고만한 것 셋 남겨놓고 가는 것을 보니 꼭 버림받는 느낌이더구먼, 애들 자라는 것을 보니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맞아, 현숙이 부른 <타국에 계신 아빠에게>를 카세트에서 하도 되감아서 듣다 보니 테잎이 늘어져서 노래소리가 타령조로 들려 젓가락 끼워 돌려감기 하다 결국은 테잎하나 버려놔서 쏟아낸 테잎이 마치 짜장면 한 그릇 엎어놓은 것 같았을 적도 있었다니까”
남편의 거듭되는 해외 취업으로 공항에서 이별하고 돌아설 때 문주란의 <공항에 부는 바람>을 들어도 영화 <애수>를 보며 들었던 <올드랭 싸인>같은 감흥이 일지를 않고 눈을 찌푸리며 바람은 왜 불어 먼지 나는데, 정도의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남편 세 번째 출국장에서는 마음의 여유 때문인지 청사 내 스카이라운지에서 문주란의 공항씨리즈 3탄<공항대합실>을 홍보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앉아있는데, 문주란의 공항 씨리즈가 연속 히트하여 4탄으로 <공항 카바레> 라는 약간 퇴폐적인듯한 노래도 나올 것 같은 감도 들었다. 그랬다가는 공항에 부는 바람에 몸이 가벼워 카바레까지 휩쓸려 들어가 몸매 야리야리한 백조의 가슴에도 바람이들어 몸 가벼운 여자가 이 남자 저 남자의 가슴에 안기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디로 향하는 비행기인지 RPM 올리는 엔진소리를 듣고서야 김백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2
“저건 뭔 시츄에이션이야?” 소리에 착륙한 비행기 창을 통해 밖을 보니 기체 밖의 작업하는 요원들의 복장이 겨울 복장이라, 사막의 밤 기온이 내려간다는 것은 익히 들어서 예상은 했지만 우리 나라의 초가을 날씨 같은데 그 날씨가 춥다고 방한복을 걸친 것을 보노라니 앞으로의 닥칠 일이 순탄치 않음을 예고하는 것만 같았다. 회사 버스에서 짐가방을 내리고 배치받은 숙소에서 잠을 청하니 두 세 번 겪었던 일임에도 잠이 오지를 않았다. 백조는 잠을 잘 잤을까.
아침에 배치되는 부서에서 직종에 맞춰 각자 소속이 결정되고 임무가 부여되었다. 이미 서류에 작성된 대로 편 가르고 배치하는 관리자의 뒤를 따르는데 토목부서였다. “형틀 목공을 하셨다는데 잘 맞춰 오셨습니다. 앞으로 이 현장 끝날 때까지 함께할 토목부서의 김성환 대리입니다. 오늘부터 형틀목공 4조의 반장에 임명되었으니 내국인 다섯 명 포함 외국인 열 명 합해서 열다섯 명이 토목부 형틀목공 4조이며 나의 지시를 받고 일을 한다는 것을 상기하십시오” “아참! 이상도씨라 하셨나요?” “예, 그렇습니다” “앞으로 이반장이라 부를 것이며 이곳 현장에서는 포맨이라 부르지요, 반장이라는 직책은 이 현장에서 임의로 임명하는 것이 아닌 서울 본사에서 인원 채용할 때 이미 결정해서 뽑았다는 것을 명심 하십쇼” 명심? 명심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구속력 있게 느껴졌고, 인원채용 할 때 반장으로 채용하였다는 말에는 일반 기능공과는 다르다는 암묵적인 책임감이 얹힌 채로 들렸다.
김 대리는 푸릇한 면도 자국이 드러난 턱을 더운 날씨에 필요 이상으로 안전모 턱 끈을 당겨 맨, 조금도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는 모습에서 육사를 갓 졸업한 신임소위의 사명감 같은 것이 엿보였다. 앞으로의 일이 융통성 없이 돌아갈 것만 같은 예감마저 들었다. 신참 소위와 같은 소대에 배속된 늙은 하사관 같은 기분이다.
공기에 맞추느라 오버타임 작업을 마치고 밤에 숙소로 들어오니 옆의 콘셋트 막사에서 캐리어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리며 소란스러운 것이, 새로이 파송되는 근로자들이 바로 도착한 것만 같다.
작업 도구 챙기고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윗옷은 이미 습했다. 오전 참(간식) 시간에 맞춰 간식거리를 가져온 사람의 등 짝도 이미 젖어있어 마르기를 반복하며 지도의 등고선을 나타낸 표시처럼 보였다. 하늘에는 태양이 이글거리며 엷은 안개 같이 떠돌던 습기를 빨아들였다. 바다는 수묵화같이 보였던 수평선이 선명해지며 어제 일몰과 함께 잃었던 검 푸른색을 빠르게 되찾았고 아침에 누축했던 상의옷은 등 짝에 소금기를 남기며 빠르게 말라 갔다.
크고 작은 키가 뒤섞인 인도인 기능공 한 무리 들이 군인들의 집총자세로 삽을 들고 오는 것을 본 홍사정씨가 “짜식들 군기 바짝 들었네”라는 소리에 이어 메인 공사현장사무실 직원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열 명은 여기!“ 라는 말과 손가락 수기에 따라 인도인 열 명이 토목 4조에 편성되었고, 나머지 다수의 인원은 적재함에 붉은색으로 토요타라고 표기된 트럭에 올라탄 채로 먼지를 일으키며 아파트 현장의 오피스 쪽으로 향했다.
현장 근처 나대지에는 공사 진척에 따라 투입될 건설 중장비들이 줄지어서 때를 기다리는 뒤쪽 너머로 거대한 BP<배차프랜트>가 걸프만을 배경으로 버티고 서서 시끄러운 인공적인 소리를 냈으며, 그 밑으로 레미콘 차량 들이 분주히 들락거렸다.
이글거리던 태양도 서남쪽으로 기울어 태양 아래의 푸르던 바닷물은 연한 황금빛의 눈부신 윤슬을 만들었으나 날씨는 여전히 습하고 더워 한낮에 잠시 말랐던 등이 다시 젖어 들기 시작했다. 오후 참 거리를 현장을 순회하며 배분하는 차에서 작달막하고 다부진 홍종수씨가 받아오는 것을 보고는 망치 소리가 멎고 각자 사용하던 삽과 연장이 나뒹굴고, 작업자들은 그늘도 없이 간식거리를 빙 둘러앉아 먹는데, 먹는 모양새들이 마뜩치가 않아 보이는 것이 잠시 쉬기 위해서 먹는 것일 뿐임을 알 수 있었다. 병에 담긴 음료수는 미지근했고 빵은 푸석거렸다. 대신 파리 떼만 신나서 달려들었다. 음료를 마시던 병 꼭지는 손으로 막거나 움켜쥐었고 한입 베어 문 빵은 파리가 앉지 못하게 연신 흔들어 댔다. 인도인이 큰 검은 눈을 껌벅이며 ”파리 노 굿!“ 이라는 국적이 불분명한 퓨전 언어를 구사했다. 빵을 씹던 성남훈씨가 빵을 담아온 비닐봉투 입구를 벌리고 그 안에 먹던 빵을 콜라에 섞어 던져 놓자 봉지 속으로 몰려 들어간 파리들이 비닐봉투 속에서 문풍지 소리를 냈다. 성남훈씨가 비닐봉투 입구를 붙들어 매며 ”너희들 이제는 다 뒈졌다“ 소리에 ”성씨가 언제 귀국하는지 몰라도 그때까지는 아마 그 안에서 한 마리도 안 죽을걸요“ 라는 홍사정씨의 말을 받아 성남훈씨가 ”귀국이 한 달 남았는데 그동안에 굶어서라기보다 더위 속에서 질식해 죽겠지“ 이 더운 날씨에 비닐봉투에 갇혔으니 암만 파리라고 해도 죽어서 바짝 말라 가루가 되었겠다. 일개 분대 정도넘는 인원에 공명심에 사로잡힌 신뺑이 쏘위와 말년병장 틈바구니에서 하사관(작업반장)이 겪어야 할 일에 벌써부터 마찰음이 들리는 것 같다.
작업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오니 일찍 들어온 한 방의 동료들은 한 뭉치의 소포와 편지를 뜯어보고 있었다. 이반장의 자리에도 항공우편 봉투가 있는 것을 힐끗 보고 상도는 수건과 칫솔을 빼 들고 샤워실로 향했다. 편지를 읽어본 일명 곽 집사로 통하는 곽신영씨가 팔을 괴고 드러누워 천정을 응시하는 것을 목에 수건을 걸친 채로 세면장에서 돌아오던 이반장이 물었다. ”표정이 왜 그래, 안 좋은 소식이라도 왔어?“ ”아니야“ 곽신영씨가 돌아누우며 말했다. ”내가 언젠가 말했지? 어린 딸 하나 있는데 피아노 한 대 사주기 위해서 사우디로 돈 벌러 왔다고, 그 딸이 노래를 부르는데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뻑꾹새 숲에서 울 때 우리 아빠 비행기 타고 중동 가시면, 검은 피아노 사 가지고 오신다 더라’ 두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부르는 모양이 예뻐 죽겠다는 내용이야, 잠시 머릿속으로 딸 생각 중이었어“ 건너편 침상의 박재옥씨가 뜯지도 않은 편지봉투를 그대로 구겨서 베개 밑으로 쑤셔 넣는 것이 설핏 눈에 띄었다.
머리에 물기를 닦아내고 다리를 뻗으면서 자세를 잡고 편지를 뜯어보았다.
‘타국에 계신 사랑하는 상도씨에게’
사랑하는? 젊어서도 사용 않던 말을 나이 육십을 넘어서 읽어보니 이상한 마음이 일면서 귓구멍이 아닌 읽는 눈동자가 다 간질거렸다.
‘당신이 세 번째로 떠난지 어언 오 개월이 되어가는데 바쁜 관계로 이제야 펜을 들었습니다. 아들은 대학 졸업하여 종합무역 상사 잘 다니고 딸은... 딸이 문제를 일으키더니 결국 이대를 못 들어가고 연대에 들어가서 제 에미 가슴에 못 질을 쳐대서 내가 한동안 식음을 전폐했었지. 고것이 중학교 사춘기 때부터 이름 때문에 어미 속을 긁어 대던 거 당신도 알잖아, 미순이라는 이름이 퀄리티가 떨어진다나 어떻테나 하면서 지랄을 하는데, 지 이름은 내가 지었어? 지 할매가 당신이 준 용돈 꼬붙여 두었다가 작명소 영감한테 담배값 쥐어 주고 얻어온 종잇장에 적힌 이름인데. 당신이 거역 할거요! 내가 거역하겠소? 그것이 대학 들어갈 때 결국 사고를 쳐 이대를 포기하고 연대를 가! 제 복을 제가 차 버렸지. 애가 대학 들어간 것을 이제야 얘기하네, 사람이 성질나니까 편지 내용도 순서가 뒤 바뀌고’ 미안해 더운 날씨에 당신 건강은 어때? 이상 있으면 편지해 내가 보약이라도 한 재 지어서 보낼께,
그리고 말끝인데 당신 귀국도 얼추 육 개월 남아 가잖아 고생한 당신에게 무슨 귀국선물을 바라겠어, 귀국 보따리에 이것 사 갖고 들어오면 돈이 될 것 같아서 적어 보내는데 국내에서 뒤 팔면 이윤을 남길 물건 몇 가지 적어보낼게.
일렉트릭상표의 전기다리미, 우황청심환 한 케이스 일제 삼단양산(가능한 여러개) 니베아 상표의 손크림(이것도 개수 많으면 좋음) 저가의 화장품 (케이스 훼손되지 않을 것) 쏘니 워크맨 그리고 ...‘
안부와 소식을 전하는 편지가 아니라 아예 쇼핑을 봐오라고 목록서를 적어 보낸 것이다. 그 목록에 자동차 비행기가 빠져있길 그나마 다행이다. 여보, 사랑해 다음까지 안녕. - 당신이 사랑하는 백조가-
추신: 내가 앞으로는 당신을 부를 때 일섭이라 안 부르고 꼭 상도씨라 부를께.
귀국 때마다 귀국선물이랍시고 두어 번 사봤던 물건들인데 이제는 아예 나를 장삿꾼으로 양말을 갈아신기려나 보다, 아들은 종합무역상사. 아비는 국제 오퍼상을 마음속으로 되뇌면서 벌러덩 자리에 누우며 잠자리를 잡았다.
해외 취업 근무를 세 번째 중인데 귀국 때마다 선물이랍시고 한 보따리를 안겨줬어도 집안에는 아이들 장난감 몇 개만 굴러다녔고 바다 건너온 물건은 눈에 띄지를 않았다 차액을 남기고 물건을 뒤 팔은것이다. 그 돈은 살림살이에 보태어졌음을 안 보고도 뻔히 알 수 있었다. 백조는 돈에 관한 일 만큼은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항시 사용할 돈과 지출은 명확했고, 이번 편지에서도 남편의 급여를 축내지 않고 살림을 하기 위한 나름대로 방편을 짜고서 적어 보낸 것이다.
현장은 날짜가 지나면서 구획이 설정되고 구간에 따라 도로 위치가 윤곽을 드러냈다. 굴삭기가 하수라인 표시를 따라 흙을 퍼 올리는 뒤를 따라 토목 기능공들이 절차에 따라서 바닥 콘크리트 위로 하수관을 설치하며 따랐다. 멀리 보이는 지상 위로 건물이 하나둘 올라오는 것이 눈에 띄었으며, 펌프카는 코를 높이 치켜들고 콘크리트를 쏟아냈다. 현장의 인부와 장비들은 더운온도 속에서도 저마다 분주했고 바빴다. 급기야 오버 타임제가 시행되었다. 기본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작업시간을 오버해서 일을 할 때 맞춰 지급되는 초과시간의 임금이 여간 쏠쏠하지가 않았다. 국내 노동현장에서도 시행하지 않던 제도가 해외 현장에서는 시행하고 있었다. 근로자들은 오버타임 제도를 해외 현장의 꽃이라고 말했다. 초과시간의 일이나 늘어난 생산량의 제품이 오버타임 시간으로 적용되었고 돈으로 환산되는 금액이 국내 일반 공무원의 한 달 월급의 세배 정도나 되다 보니 외국 나가면 돈 번다는 말이 국내에서 회자 되고는 했다. 현장에서 일을하는 3국인들도 작업지시를 내리면 먼저 ”야리끼리?“를 물을 정도였다. 노가다 현장에서 통용되는 말 중에 한국인들 야리끼리주면 죽는 사람 나올까 봐 겁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공사의 속도는 빨랐고, 상상을 초월하는 공사속도에 외국인 감독관의 눈 또한 의심스러움이 담겼으며 매섭고 날카로웠다.
차 한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데,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게 보였다. 차에서 내린 사람이 누구인 줄도 모르고 일하던 사람들은 차를 보고 웃었고 차에서 내린 사람도 왜 웃었는지 그 상황에 이미 익숙해졌는지 웃었다. 화물차는 앞 유리가 없었고 조수석 쪽은 펼쳐놓은 박스 쪼가리를 철사로 찍어 매어놓은 것이 달려오느라 바람에 ’빠다다닥‘ 소리를 내는데 웃지 않을래야 웃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권춘영“ 씨 없어?” 그는 차에서 뛰어내리며 통성명도 없이 다짜고짜 권춘영을 찾는 것을 홍사정씨가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저쪽 아파트건물 올라가는 현장 뒤쪽에서 수중 모터로 물 뿜어 올리는 거 할 거야”라는 소리를 듣기가 무섭게 ’빠다다닥‘ 소리를 자동차 엔진소리와 섞어 내면서 아파트를 향해 달렸다.
중동지역은 더웁기는 해도 습기가 없어서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하다고 말들을 했는데, 이곳은 해안지대라 습기가 떠다니다시피 했고 오후로 기울면서부터 한낮에 잠시 말랐던 등은 흐르는 땀에 다시 젖어 들기 시작했다. 해안 동쪽 끝으로 현대 주베일 현장의 외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으며, 이곳 현장 야간 작업자들이 작업등의 스탠드의 위치를 정하면서 전깃줄을 늘여놓으며 발전기를 가동 시켰다.
낮에 박스 쪼가리로 차 앞 유리를 가렸던 사내가 권춘영씨를 숙소로 찾아와 한참 동안 낮은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돌아갔다. 그는 권춘영씨와는 구면이었고 집으로 편지를 보내야 하는데 한글을 몰라 불러주는 대로 권춘영씨가 대필을 한 것이다. “저러면서 사우디는 어떻게 왔데요”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더라” “앞 유리도 없는 고물차에 골판지 꿰매서 타고 다니는 것 오늘 봤으면서도 그 소리야, 내일 봐봐 내일은 골판지 붙들어 매어놓은 채 날아다니는 헬리콥터를 보게 될 줄도 모를거야.
엎드려서 책을 보고 있던 박춘광씨가 책을 밀어내며 얘기에 동참하고자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서 하는 얘긴데, 인원이 들락거려 여벌로 숙소 지어놓은 것이 몇 동 있잖아, 먼저번에 이만복씨가 하도 코를 곯아 미안하니까 따로 잠자기 위해서 자기 스스로 그곳 한 칸을 찾아서 갔잖아, 오버타임도 없이 일이 일찍 끝나서 초저녁에 장기라도 한판 두려고 갔더니, 다른 노인네하고 둘이 초저녁부터 골아 떨어졌더구먼, 문손잡이 잡고 문을 열려고 할 때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으면 알아들었어야 했는데 문을 여니 코 고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야. “드르릉 콰르릉, 퓨아 흐-으아” “코를 곤다고 해서 코로만 고는지 알았더니, 입으로도 골더구먼 그 상황을 입을 곤다고 해야되나? 그것도 한 사람만 그러지 않고 두 사람이 골아 대는데 완전히 사운드 트랙이더구먼, 건물도 임시사용 건물이라 현장투입 대기자들의 성의 없는 망치질이어서 못이 드문드문 박힌 채 한쪽이 늘어지는 베니어판이 푸우! 하고 숨을 내 쉬면 놀라 천장 덴조로 밀려 올라가 붙고, 다시 늘어지면 옆의 노인네 커르릉하는 콧바람에 놀라 철퍼덕하며 덴조를 때리고 초저녁부터 숙소에서 내는 소리가, 내가 월남파병 중 베트콩 구정 대공세 때 사이공 탄손누트공항에서 밤새 뜨고 내리던 양놈들 치누크 소리하고 똑같더구먼, 늘어진 베니어판이 두 노인네 콧김과 입으로 드러내는 바람에 연신 덴조를 때리며 쌍 프로펠라 돌아가는 소리를 냈고, 밑에는 잠자는 두 노인네들의 코와 입으로 내는 소리가 치누크 엔진소리보다 더 크면 컷지 작지는 않았어,
그 후로 현장에서는 두 노인네들의 이름이 <쌍 쁘로뻴라>로 불렸다.
해안가라지만 바다하고는 멀리 떨어졌는데도 지질이 모래라 바닷물이 미세하게 스며들어서 고인 것을 수중 모터로 물을 퍼내며 성남훈씨와 권춘영씨가 대화를 나누었다. ”금 년 근로자의날 어떻게 보낸데?“ ”글쎄요, 먼저 쉬었던 공휴일하고 쉬는 날 간격이 어중띠네요. 눈치가 공사 진척도 빠르게 돌아갔으면 하는 눈치 같던 데요“ ”그래도 노동절인데“
저녁 무렵 식당앞 게시판을 비롯하여 현장 내의 각 파트의 오피스 앞 게시판에 공고가 붙었다.
’금년 근로자의날에 현장 체육대회를 개최합니다.
자세한 사항이나 추후 문의는 각 파트에 문의 요함‘ -현장소장 -
현장의 술렁거림속에 노동절을 보름정도 앞두고 2차 게시물이 붙었다.
알리는 글
근로자의날을 맞아 근로자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하면서 체육대회를 개최코저 합니다. 근로자분들께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하시어 뜻깊은 자리를 함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일시 : 근로자의날
장소 : 대 운동장
경기종목 : 축구. 배구
대상 :서림건설에 소속되어 현장 내에서 작업하는 근로자들이 소속된 전 파트.
아파트 파트, 토목파트, 유틸리티파트,
범진설비(설비협력업체)파트, 빌라파트,
신화전기(전기협력업체)파트, 외인부대(인디아.파키스탄.타일랜드)혼성파트,
추가사항 ;각 파트의 선수들은 미리 예선을 걸쳐 당일날은(노동절)결승에 오른 두 팀만 출전한다. 각 파트의 장은(부장) 이번 행사가 무사히 치뤄지도록 원만한 협조를 한다.
작업을 하는 중에도 반장이나 인부들은 나름대로 선수들을 추천 선발했고, 선수로 뽑힌 작업자들은 일과가 끝난 후 공터와 해변가를 찾아 간이 골대나 네트를 설치하고 저마다의 기량을 점검하고 확인했다.
권춘영씨는 자기와 연배가 맞는 젊은 두세 사람들과 작업이 끝나면 모여 무슨 일을 꾸미는 모양새다. 축구와 배구에서 예선 탈락한 파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암만 쌩쌩한 젊은 층의 선수들로 골랐다지만 환갑 지난 노인네들을 위시하여 사오십대가 주를 이루는 경노당 팀이 개네들을 당하겠냐고?“ 범진설비 파트에게 깨진 토목파트의 김성환 대리의 힘 빠진 목소리였다.
박정희대통령의 중공업과 중화학공업 육성을 우선시하여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펴느라 군대 갈 나이의 젊은 공고생들을 병역 대체복무 요원으로 발탁하여, 그 인원들이 산업체 회사 근무로 일정 기간을 채우면 군 복무로 인정을 받는데, 그 인원들이 범진 설비파트에 다수가 포진되어있었다. 범진파트와 토목파트의 축구게임은 그야말로 브라질팀과 아시아 약팀과의 월드컵 경기를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고, 불쌍하다고까지 말했다. 해변가에서 배구 연습하는 외인부대 파트는 발목이 모래에 빠지는 것이 마치 비치 발리볼 연습하는 것 같았다.
D-데이가 삼 일 앞으로 다가오자 결승 진출할 팀의 윤곽이 가려졌다.
축구에서는 아파트 파트와 범진설비 파트, 배구에서는 외인구단 파트와 아파트 파트가 준결승에 진출한 것이다. 권춘영씨 패들은 모종의 계획으로 조용히 바쁜 가운데 은근히 걱정들을 얘기했다. ”확신은 섰고? 사무실에는 얘기하였고 확답은 받았나?“ 는우려의 소리에 권춘영씨는 ”행사할 때의 스태프는 따로 없고 우리가 스텝이고 음악과 음향을 담당할 요원은 현장의 측량사로 일하는 일명 베토벤이 담당하기로 했으며, 현대건설 이라크 바수라 현장에서 일했을 때도 한번 했었던 일이었고 그때 현지인이 찍었던 사진이 바수라 시내 상가에도 붙어 있었다“ 며 패들의 걱정을 일축 시켰다. ”사무실에서도 이미 확답을 받았고, 걱정은 힘이 들어간 상태로 태권도 기본형 동작을 마치고 나면 기운이 소진되어 다음 진행이 힘들어진다“고말했다. 그 말을 받아 함께 있던 김재영이 나서며 ”그 잠깐의 시간은 내가 나서서 땜빵으로 막을 수는 있다“ 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제는 우리가맡아서 해야 할 일을 숙지하고,준비한 연장과 도구만 확인하고 기다리기만 하면 끝“ 이라는 말로 리허설을 대신했다.
D데이(노동절)
현장소장의 인사 겸 축사가 이어지고, 우수직원 및 유공자 표창과 우수 파트 시상의 뒤를 이어 대회선포. 축구는 전 후반 20분씩 합해서 40분. 배구는 3세트를 마친 후 승부를 가른다. 대 운동장과 그 옆 소운동장에서는 호각소리와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아파트 파트의 본부장은 축구 경기장과 배구 경기장을 번갈아 다니며 바쁘고, 선수구성도 과장 대리급들도 선수로 포진하여 기능공들과 섞여서 혼연일체로 뛰었다. 배구 경기장 쪽에서는 어느 팀에서 내는 소린지도 모르는 소리가 공격포인트가 쌓일 때마다 터져 나왔다. 시간이 흐르고 배구의 매 세트가 끝나면서 경기가 끝났다. 축구경기의 우승은 아파트 파트가 차지하였고, 배구의 우승은 외인부대 혼성팀이 거머쥐면서 최우수 선수가 선정되어 대회의 시상식이 거행되었다. 한쪽에서는 오늘의 무술시범팀이 조용하면서도 빠르게 운동기구들을 순서에 맞게 세팅했다.
관중석과 본부석 VIP석이 갖춰졌으며 스피커는 외쳤다.
”국내에서는 송재철 관장이 자동차를 손으로 당겼지만, 싸우디에서는 권춘영 사범이 인력으로 자동차를 당기는 인간의 능력과 극한의 한계를 보여주는 시범이 잠시 후에 시연되겠습니다“ 는 멘트와 함께 강약이 적절히 어우러진 음향 소리와 함께 반바지 차림으로 등장한 권춘영씨는 막대 끝에 달린 불을 돌리고 겨드랑이 사이로 활활 타오르는 불을 돌리면서 입안으로 집어넣어 급기야 불을 꺼 댔다. 소리치던 관중들은 입을 다물었으며 스태프는 방수포를 깔고 그 위에 병 깨진 것을 담은 자루를 세 자루나 메고 나와 쏟아내어 갈퀴로 고루 펴면서 관중의 눈길을 모았다. 의도된 연출이 엿보였다. 갑자기 벼락 치는 듯한 소리로 <운명 교향곡>이 귓 청을 때렸다. 방금전에 눈이 놀랐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귀가 놀랐다. 권춘영씨는 콜라병과 맥주병 깨진 것이 뒤섞인 위에 드러누워 등을 비비고 춤을 췄으며 음악은 어느새 도나서머의 <핫 스탑>으로 흐르고 있었다. 박수 소리를 받으며 일어난 권춘영씨의 등 짝에 붙어 있는 병 부스러기들을 스태프 한 명이 빗자루로 털어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를 쳐 댔다. 이어 쌓아놓은 기왓장을 주먹으로 내려치고, 튀어 올랐다가 내리박으며 이마로 기왓장을 부쉈다. 부수는 끝에 다 부숴버리듯 배 위에다 커다란 도로 경계석을 얹어놓고 내리쳐 해머로 깨뜨리는데, 깨는 역을 담당한 스태프는 해머를 치켜들고 망나니처럼 춤을 추었고 긴장감을 고조키 위한 북소리는 가슴을 조였다. 제대로 겨냥을 위한 해머의 경계석 울리는 소리는 경계석의 튼튼함을 알렸다. 자디잘게 울리는 북소리가 멎으며 꽝! 소리와 함께 해머는 떨어졌고 배 위에 있던 경계석도 두 토막이 나서 양옆으로 벌어졌다.
이때 누군가 한 명이 튀어들어 자기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옆에 있던 스태프가 시커먼 칼을 치켜들고 쫓았다. 권춘영씨는 들고 있던 시커먼 칼을 빼앗아 쥔 채로 방금전에 두 토막 낸 경계석 위로 내치며 동시에 오른손으로 내리쳐 화물자동차 스프링을 격파한 것이다. 시커먼 것은 칼이 아니었고 화물자동차의 스프링이었으며, 중간에 훼방꾼은 뛰어든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무술에 스토리를 덧 입히기 위한 스탭의 연출이었다.
권춘영씨는 어느새 도복으로 갈아입고 태권도 품새를 위한 몸풀기로 쌍절곤을 흔들어댔다. 우리네가 태권도를 할 때는 팔만 내지르며 무용을 하는지 운동을 하는지 분간도 안 섰는데, 권사범의 관자놀이에는 힘줄이 그어졌고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다음 바통을 김재영이 이어 받았다.
”장이면 장마다 나오는 꼴뚜기도 아니요! 흙 파서 이윤 남기는 장사꾼도 아닙니다. 오늘의 장사를 위해 지리산에서 뱀잡이 삼년, 계룡산에서 이년, 하다하다 이제는 싸우디 오아시스까지 와서 뱀을 잡았는데, 이름하야 인터내셔날 뱜이 바로 요 통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 이겁니다“
김재영은 발로 뱀 통을 툭툭 건드리며 말을 하는데 목소리 톤까지도 장마당에서 듣는 뱀 장수 목소리 그대로였다.
”싸모님들 손바닥 펴서 손가락 틈으로 보시지 마시고 눈은 보라고 있는 눈이니만치 손 내리고 훤하게 보시고, 애시 당초 없었던 애들인데 애들은 가라 라는 말은 생략하고 백문이 불여일견, 오랜만에 쉬는 날 생각하여, 시간관계상 현품 먼저 보여드리도록 하면서 현품은 경매로 입찰 보겠습니다“
김재영은 조심스럽게 뱀 통에 손을 넣었는데 뱀이 덤비는 모양새다. 손을 뱀 통에서 뺏다 넣다 하더니 급기야 ”이야야아악“ 하면서 뒤로 자빠졌다. 손은 뻘겋게 피투성이가 되었다. 뱀에게 물린 것이다. 사람들은 놀래서 의무실을 외쳤다. 김재영은 돈 생각에 피범벅이 된 손을 뱀 통에 다시 집어넣어 뱀을 움켜잡아 멀리 던져버렸다. 굵은 갈색 뱀은 구불거리면서 피를 떨구며 하필 VIP석으로 떨어졌다. 두 세 명의 보호를 받으며 김재영은 의무실로 뛰었고, 혼란스러움이 정리되면서 안내 멘트가 울렸다.
“아! 아! 진행상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음에도 이 순간만을 기다린 근로자 여러분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권춘영 사범님의 인력 자동차 견인 시범이 있겠습니다” 권춘영씨는 뾰족하게 갈아서 소독한 용접봉으로 오른팔의 살가죽을 뚫고 로프를걸며 자동차 견인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호각소리와 함께 꿰뚫은 팔의 손으로 로프를 움켜잡으며 자동차를 끌어당겼다. 자동차가 조금씩 움직이자 로프를 움켜쥐었던 손을 스르르르 풀고 팔에 박힌 용접봉에 걸린 로프에 의지해서, 완전히 살가죽 힘에의하여 자동차는 움직이고 있었고, <라데츠키행진곡>이 울리며 힘을 북돋았다. “서울역에서 왕십리 가는데도 버스삯을 내는데, 이 기회에 무개 화물차에 승차하실 분 요금은 일천 리알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면 후회합니다” 이 광경을 사람들은 연신 쫓아가며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고, 한 사나이가 지폐를 흔들며 스태프의 부축을 받으면서 끌려가는 자동차에조심스레 승차했으며 머리를 둘렀던 두건과 안경을 벗으면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현장소장은 흡족하게 웃으며 권사범에게 금일봉을 전하는 것을 끝으로 노동절의 행사는 막을 내렸다.
당일 저녁 샤워를 마친 무술시범팀 일행은 숙소에서 권사범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뒤풀이가 한창이다. 나이 많은 이만복씨가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무술시범을 보인다는 말을 듣고 반신반의 했는데, 권사범과 재영이는 이참에 귀국하여 장마당 찾아다니며 아예 장돌뱅이로 나서라고 말했다. “유틸리티의 김과장 마누라가 없었길 망정이지 언젠가 보니까 배가 불렀던데 날아오는 뱀 보고 놀라서 애 떨어졌을 뻔 했을거야” 라고 말해 모두 웃었다. ”그래 이 사람들아 그렇게 사기를 치냐?“
뱀 장사 김재영은 뱀에 물리지도 않았으며 뱀은 통 안에 있지도 않았다. 뱀 통 안에는 뱀 대신에 누런 가죽 허리띠가 있었고, 그 옆에는 뻘건 물감을 담은 비닐 한 봉지가 있었다. 뱀을 잡는 것처럼 제스처를 쓰면서 비닐을 찢어 가죽띠와 손을 뻘건 물감 범벅을 만들었고 비명을 질러 대며 가죽띠를 뱀 통 안에서 건져 내며 던졌으니 누가 보더라도 의심의 여지 없는 뱀이었고 뱀에 물린 것이다. 일제히 웃는 소리가 들렸고 그렇게 노동절의 밤은 깊어만 갔다.
3
백조는 오늘도 하늘을 나는 대신 편물 틀을 껴안고 씨름을 하고 있었다. 타이루 형님이 플라스틱 슬리퍼를 딱딱소리를 내며 끌고 와서 ”이 돈 독오른 여편네야 선풍기나 틀어놓고 일해“ ”쓰미 마누라 도망간 것 들었어?“ ”집안에 틀어박혀 편물기와 씨름하느라 밖의 구경을 해봤어야 듣고 말고 하지요, 형님, 근데 쓰미네 형님은 왜 갔데?“ ”뻔하지 뭐 제비한테 물려서 돈 다 거덜 내고 남편 귀국 때는 다가오고 튄 거지 뭐 별수 있어“ 이 동네만 해도 남편들 해외 취업으로 중동 과부가 된 집도 몇 집 있었지만, 이러한 일은 처음이다.
”남편 해외에서 돈 잘 버는 집에서 커피 한잔 얻어 마시자며 두 여인네가 너스레를 떠는데, 오버로크 박이 돈다발을 들고 들어섰다. “백조 마담 마침 집에 있었구먼 먼저 빌려간 돈 일 백만원 세어봐!” 라는 말을듣고 타이루 마누라가 말을 이었다. “박씨도 참 대단한 사람일세 놀부 마누라한테도 돈을 다 빌리고” “고맙기는 했지만 이자 한 푼 못 얹어서 미안해유 대신 빠닥빠닥한 신권으로만 백장, 빠다라시로만 백장 채우기로 신경 좀 썼시다. 그것을 이자로 생각허시유” 타이루 마누라가 말했다.“대체 빠다라시가 뭔 말이래?” “그 말뜻을 정말 몰라서 묻나요? 여자 한번 접해보지 못한 숫총각을 아다라시라고 하듯 남의 손 한 번도 걸치지 않은 빠닥빠닥 소리가 나는 신권을 가르켜서 빠다라시라고 말한다오” “나는 헌다라시라도 많이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타이루 마누라가 말했다. 세 사람은 둘러앉아 백조가 받아온 냉 막걸리로 목을 축이며 “김백조 여사의 돈을 떼어먹는 것보다 남대문 시장에서 사채놀이하는 과부 딸라돈 떼어먹는 것이 더 쉬울거야” 라고 말하며 오버로크박은 자리를 떳다. “이번에 선영엄마가 계꾼을 모집하는데 거기 한 몫 들지” “선영엄마라면 목에 금목걸이 늘어진 것이 춘향이 목에 칼 걸린 것처럼 하고 다니는 여자?” “응 맞아! 우리처럼 쓰레빠 끄는 소리나 탁탁 내면서 빈티가 줄줄 흐르면 어떤 계원이 들겠어? 남편 해외에서 돈 잘 벌겠다 이 참에 싸게 말 번 쪽으로 두 몫 들어 남편 귀국에 맞춰서 계 타면 그야말로 떡 그릇에 빵 얹어 놓는 격이야” “남편 돈 버는 것은 남편 거라 손 안 대고 나는 편물기로 번 먼지 묻은 적은 돈 몇 푼 있는데, 마마 전자자 보온밥통 계나 한 머리 들거야” “어휴 지독하기는, 쥐꼬리 잘라 풀 먹여 말려서 송곳으로 쓸 여편네 같으니”라는 말을 남기고 타이루 마누라도 갔다.
남편이 떠난 지도 어언 칠 개월이 지났다. 암만 미운 남편이라도 옆에 없으니 더운 날씨에도 허전하기만 했다. 친정엄마가 아버지 미워하듯이 백조도 괜히 남편이 미웠다. 친정엄마가 아빠의 인물에 혹해서 쫓아다니다 결혼을 하고 보니 천하의 난봉꾼이 따로 없었다. 어린 백조 때문에 이혼도 못 하고 속끓이고 몇 년을 살면서 덩달아 백조도 엄마인 전 여사에게 구박깨나 받았다. 백조가 자라서 대학 들어갈 때가 되어서야 아빠는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 말로는 “다리에 힘이 빠져 기운 없어서 쫓겨나니까 집 찾아 기어 들어왔지”라고 말하면서도 아빠를 받아들였다. 백조도 내심 아빠를 반겼다. 아빠가 돌아왔으니 대학을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이화여대를 들어갈 것이고 입학만 하면 이 인물에 ’메이퀸‘자리만큼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아빠가 돌아오면서 이름으로서 백조가 아니라 현실의 백조가 부화할 것이라고생각했다 아빠 엄마의DNA를 그대로 물려받아 키도 컸으며 이목구비도 제자리에 박혀서 미인이라 불리는 데에서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며 살결 또한 비단을 두른 듯 부드럽고 희어서 골목을 걸으면 골목길이 환했고. 사람들 또한 한번 봤던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뒤돌아보기까지 하였다.
아빠 김성두는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바람기는 다 빠져있었고 가끔 듣도 보도 못했던 함바집 소리를 헛소리처럼 중얼거리기도 했다, 하루는 엄마 전진혜 여사가 무릎을 맞대고 물어보니, 남편 김성두는 누가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머지않아 강남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건데 그 아파트 현장에도 함바집이 생길 것이며, 공사 끝날 때까지 함바집만 끌고 나가면 아파트 한 채는 그냥 떨어질 것이란말이야” 백조 엄마 전진혜는 아파트 한 채라는 말밖에 귀에 남지 않았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 내가 미는 사람이 당선만 되면 함바집 운영권은 확실하게 보장한다고 말을 했단 말이야 되기만 하면 이제야말로 신림동 산동네를 떠날 것 같단 말이야” 결의에 찬 남편의 얼굴을 보아서는 함바집만 하면 남편의 바람기를 잡을 것만 같았다.
김성두가 미는 전갑제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국회의원 전갑제보다도 먼저김성두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강남땅 일부가 구획으로 나누어졌으며 건설현장 한 귀퉁이에도 임시 가 건물이 지어졌고, 김성두도 들어 앉힌 첩에게 살림 내어주듯 건설현장 귀퉁이에 함바집을 차렸다. 이모라 불리는 아줌마 서너 명을 고용하며 함바집은 문을 열었다. 현장은 분주히 돌아갔으며 그 속도에 맞추어 함바집도 바쁘게 돌아갔다. 백조에게는 밖으로 나돌지 않는 아빠가 좋았고 엄마의 푸념조의 신세 한탄을 안 들어서 좋았다. 그 백조에게 함바집에 구원투수로 등판 좀 하란다. “나와서 음식 재료 구입 할 때의 지출계산과 현장 인부들의 식사 외상거래 치부책 작성하는 일 좀 거들어라” 일을 도와달라는 부탁이 아니라 아예 지시였다. 이러다가 백조 일생일대의 숙원이기도 한 ’이대 메이퀸‘이 허물어질 판이다. 오랜만에 뿌리내린 집안의 안정과 평화가 허물어질까 봐서 말도 못 하고 계획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대가 아닌 함바집이라니, 이런 경우를 두고 삼천포로 빠졌다고들 말을 하는가 보다. 백조의 마음도 아랑곳 하지않고 식사하러 오는 인부들은 줄을 이었다. 밥을 먹으러 오는 것인지 얼굴을 보러 오는 것인지? 인부들은 밥그릇보다도 백조의 얼굴을 먼저 할끗거리며 보았다. 급기야는 함바집의 미스코리아로 통했고, 함바집의 양귀비로도 불렸다. 이대 메이퀸은 못 했을지언정 함바집이기는 해도 이대 메이퀸보다 급이 다른 함바집의 미스코리아가 된 것이다.
스포트라이트는 못 받고 드레스 대신에 앞치마를 둘렀지만, 현장에서만큼은 군계일학이었다. 수저와 젓갈을 닦기 위해 소쿠리에 담은 채로 들고 가면 식사하러 온 누군가가 거들어주었고, 일과 마친 어떤 이는 트럭으로 쌀을 사 오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때 자주 식당에서 필요 이상으로 눈에 띄는 이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이상도였다. 그는 덩치답게 믿음직했으며 싹싹했다 이상도가 싹싹 할수록 백조는 쌀쌀했다 그 모습을 보는 전여사는 속으로 안 스러워서 말했다 “덩치 좋아서 사람부터 믿음직스러운 데다 싹싹하며 붙임성이 좋은 것이 꼭 텔런트 백일섭보는 것 같더라” 그때부터 백조는 이상도를 백일섭이라고 불렀다. 그 후로도 강남의 아파트는 우후죽순 솟아났고 올라갔으며 선거는 또다시 돌아와서 전갑제는 낙선했고 김성두도 더 이상의 함바집 일거리도 맡지를 못하였다. 현장공사가 완료되어 아파트 한 채 받기로 한 것이 한 채가 줄어들어 겨우 빌라 한 채 챙긴 것 세 주고, 신림동 산동네로 이사를 온 것이다.
이사를 한 후로도 이상도는 고향 집 찾아오듯 신림동 집을 찾았고 전여사는 백조를 잡고 넌지시 운을 떠보기도 했다. “사람 저 정도면 나무랄 데 없다 인물 뜯어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너의 아버지 봤잖냐? 인물보고 결혼했더니 팔도 난봉꾼이 따로 없더라 엄마 말 잘 들어 봐라, 겉 모습이 아닌 마음이 신성일 같은 남자가 걸릴 터이니”
아버지는 기침이 잦아지면서 쇠약해 갔고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구박 섞인 잔소리만 늘어갔다, “저놈의 인간은 젊어서는 한데로 돌아다니며 엉뚱한 계집년들에게만 싸대더니 집에 기어들어 와서는 풍악 소리를 내도 시원찮은 판에 기침 소리만 풍년일세” 집안의 분위기는 함바집 할 때와는 달리 음울하기까지 하였다. 그나마 어머니 진여사의 얼굴에 꽃이 필 때는 이상도가 집에 왔을 때였지만, 백조 눈에는 백일섭으로밖에 보이지를 않았다. 전여사는 이상도를 사위 맞듯 하였는데, 어머니의 명을 거역했다가는 어머니의 목소리 곤장을 쳐 맞을 것은 보지 않아도 보는듯했다. 어머니가 지금은 중전 자리에 머물고 있지만, 어머니 말을 거역했다가는 아버지와 같이 싸잡혀서 언젠가는 대왕대비가 된 어머니의 불호령에 델 일만 남았다. 백조가 기껏 보복이랍시고 할 일이란 이상도를 어머니가 생각했던 것처럼 백일섭이라고 부르는 것이 전부였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서 함바집이 있던 현장 바로 옆의 다른 현장마저도 ’경축!입주‘ 현수막이 펄럭이며 입주민들의 입주가 시작되면서 강남은 새로운 주거와교육의 메카로 등극했다 그 후 어느 날 백조의 아버지 김상두가 기침 소리도 안 남기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전여사는 영정사진을 들고 앞장선 사위 이상도의 어깨가 그렇게도 듬직해 보일수가 없었다. 여자만 둘이 살았더라면 영정사진은 어떡하고? 남매로 둔 외 손자 손녀가 있지만 아직은 덜 여문 아이들이라 사위 이상도라는 기둥이 그렇게 든든해 보일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의식주 비용보다 교육비 비중이 크게 느껴졌으며 앞으로의 대학 등록금의 걱정으로 머리가 흔들릴 때, 같이 일을 하던 정씨의 제안으로 중동 취업을 하게 된 것이다.
4
내일은 현장에서의 휴일이다. 시내 쇼핑과 오아시스를 비롯한 바닷가로의 야유회계획이나 부족한 수면을 채우려고 저마다 들뜬 기분인데 홍종수만 유독 불평이다. 휴일이면 작업을 쉬는 관계로 아침 식사시간이 한 시간 늦다 그 시간을 못 기다리고 배가 고파서 잠이 깨어 달걀을 삶아 먹고 다시 잠이 들어 남들보다 늦은 아침을 먹는다. 새벽 잠결에 커피포트 끓는 물에 달걀이 굴러다니며 익는 소리는 한 숙소를 공용하는 사람들은 누구나가 한 번쯤 들어봤던 소리였다.
두 대의 노란색 ’블루버드‘버스에 근로자들이 만원이다. 시내 ’할라스‘ 광장에서 참수형이 있단다. 회교권의 나라에서나 어쩌다 한 번 있을수 있는 일이니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 동안 구경을 못 할 수도 있단다. 부족 간의 카사스제도에 뿌리를 둔 이슬람 법에 의해서 지은 죄에 합당한 처벌이 이뤄지는데, 국가에 대한 중대한 죄를 범한 정치범이나 흉포한 살인자가 참수형에 해당된다고 말들을 했다. 모스크의 높은 탑에서는 코란 외는 소리가 끊어질 듯하면서도 끊어지지 않고 흘러나왔고 넓은 광장에는 현지인과 외국인이 구분되어 광장을 빙 둘러 쌓다. 광장 가운데는 붉은 초승달(적신월사)이 그려진 엠블런스 한 대가 있을 뿐이었고 광장은 예상외로 조용했다. 잠시 후 차에서 두 사람이 내렸는데 그중 한 사람의 머리는 검은 두건으로 덮혀 있었으며 차에서 내리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앞으로 떨구었다. 아랍 전통 복장을 한 사나이가 아랍어로 무언가를 낭송했고 뒤를 이어 검은 빛이 도는 거구의 사나이가 램프에서 등장한 하인처럼 칼을 쥔 채로 나타났다. 망나니처럼 칼춤을 추다가 막걸리를 칼날에 뿜으며 무지개를 만들 줄 알았는데, 우리 동양인의 예상과는 달리 그는 칼을 높이 치켜들고 나뭇가지 내리치듯 목을 쳤으며 그와 동시에 목이 앞으로 걲이며 고꾸라졌다. 급히 천으로 시신을 감싸며 차에 얹었고 바닥에는 허연 가루를 뿌려댔다. 문제는 후에 일어났다. 절도죄로 손목이 잘릴 사람이 목 치는 것을 보고는 졸도를 한 것이다. 물을 끼얹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사람에게 주사를 놓고 형틀 같은 탁자에 손목을 얹어서 묶었다. 눈을 가리고 나서야 작은 칼로 손목의 연결 부분을 도렸다. 비명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봐서 방금전의 주사가 마취제였을 거라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손목이 잘려진 부분에 지혈가루를 입히고 붕대로 손목을 감싸면서 바닥에 허연 가루 흔적을 남기고 차는 떠났고 모스크에서의 외우는 코란 소리만 광장 위에서 흐느끼는 듯했다. 형법 민법도 필요 없이 관습법을 행하는 효과로 사회가 지탱되고 질서가 유지되는 세상을 이곳 사우디에서 목격한 것이다. “전과7~8범이란 존재가 있을 수가 있냐고, 배웠다는 판사 변호사가 밥 처먹고 살려고 저희들 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판 같은 좆 같은 한국법이야” 한번쯤 법에 밟혀 봤음직한 민초의 외침이 뒤에서 들렸다.
코란 외우는 소리가 멎는 것으로 기도시간이 끝났음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삼삼오오 시장으로 스며 들었다.
“반장님”을 부르며 누군가 이상도를 아는 체를 했다. 해외출국 비행기에서 봤던, 첫 번의 해외 근무라며 그동안 산업체 현장에서 근무했다던 김범수였다. 귀국을 다섯 달이나 앞두고 귀국선물을 준비할 겸 겸사겸사 나왔다는 김범수와 함께 전자상가로 들어섰다. 눈치 빠른 아라비아 상인은 한눈에 한국인임을 알아채고서 이은하의 ’밤차‘ 테잎을 틀어대고서 아랍 의상의 헐렁한 소매를 펄렁이며 이은하의 찔러춤을 추면서 싱긋 웃어 보였다. 국내에서 외 스피커 카세트에 익숙해 있던 김범수가 일제 쌍 스피커 카세트에 눈이 혼란을 일으켰다, 상가 안의 전자제품이 온통 일제로 도배가 되었다. 우리나라 제품이라고 찾아보니 쌍 스피커 카세트를 흉내 낸 삼성의 카세트 제품이 눈길도 자주 안 가는 진열대 위에서 먼지에 덮혀있었다. 히다찌 소니 샤프 파나소닉 도시바 등 완전히 일제 제품 속에 갇혀서 꼼짝도 못하는 우리나라 삼성이 불쌍하게 보였다. 씁쓸한 마음으로 노변에서 케밥을 먹으며 둘러보니 쌀자루에는 이미 ’메이드인 챠이나‘ 표기가 찍혀있었으며. 단순 작업할 때 사용하는 연장 자루에도 ’메이드인 타이완‘이 새겨져 있었다. 길거리에서는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인도인 방글라데시인과 뒤섞인 메이드인 코리아 사람들만 거리에 넘쳐흘렀다. 경제가 빈약한 나라일수록 수출품은 사람뿐이었다 “아직도 귀국 날이 많이 남았으니 시간의 여유를 두고 더 고르다 보면 좋은 물건도 볼 수 있을 것이고, 나중엔 똑같은 물건을 반값으로라도 살 수 있을 경우도 있을지 모르니 숙소 동호수나 한 장 적어줘”
토목의 매설공사가 거의 마무리되면서 아파트와 빌라 현장은 외장을 마무리 짓고 내부공사가 한창이다. 유틸리티 또한 모스크와 슈퍼마켓 등의 공공건물을 지으며 주변의 건물 진척되는 상황에 맞춰서 분주했다. 토목에서의 남아나는 인력을 추려서 PC팀을 급조하여 보도블록과 콘크리트 구조물을 찍어냈다. 기계 2틀로 2개 조로 편성하여 보도블록을 찍어내는데 나름대로 양호한 장수로 찍어냈다. 토목에서 이학원 반장이 같이 일하던 인부 한 명을 따로 떨어뜨려 공사 진척상황에 맞춰 급조된 PC팀으(precast concrcte)로 보낸 것이 마음에 걸려서 냉수를 한 병 들고 와서 물을 나눠마시며 보도블록 찍는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무슨 말을 하려는 듯 하다가 돌아갔다.
보도블록 찍는 쪽에서 쇳덩이 던지는 소리가 나며 인부들이 작업을 중지하고 둘러앉아 있었다. 작업시간에 앉아있던 사연은 보도블록을 찍는 기계 한 틀 당 네 명의 인원이 하루 사십 장을 찍어낼 것으로 예상을 했는데, 50장을 넘겨 생산했다. 암만 야리끼리제 라고 하지만 주위의 다른 파트 하고의 형평성을 고려해서 그렇게는 할 수 없고, 요번 주 만큼은 작업한 양대로 계산하고 다음 주부터는 하루 생산해야 할 양을 50장으로 조절해 맞춘단다, 작업량 정산서 받을 때만 해도 내일부터 당장 일 때려치울 것 같더니만, 어제 일은 잊은 것처럼 아침부터 분주하다. 일주일을 일하는 동안에도 작업자들이 걸핏하면 PC사무실을 출입하더니 라성식씨가 보도블로 찍는 팀에서 퇴출되어 외로이, 도로귀퉁이의 생긴 모양에 따라 보도블록 커팅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보도블록 내 던지며 언성은 높아지며 삿대질하는 것으로 보아 벌써 일주일이 지나서 정산서가 나온 모양이다. 작업자들은 더운 날씨에 보도블록을 껴안고 바지 가랑이에서 비파소리가 나도록 뛰어다녔다. 옆에서 혼자 철제로 제작된 형틀에서 콘크리트 몰딩을 찍어내던 홍사정씨가 물을 먹으러 와서 “현장의 돈은 보도블록 조에서 휩쓸어 담는다”라는 비아냥 소리에 땀 범벅이 된 인도인이 땀을 닦으며 말했다. “코리안 피플 노굿!”
저녁 숙소에서 홍사정씨가 옆에서 작업하며 보고 들은 대로 말했다. 보도블록 하루 생산량 계획에는 50장으로 예상했는데 PC팀이 창설되면서 팀장으로 합류한 김성환대리의 작품으로 보도블록 생산하는 조를 의도적으로 나누어 급료에 영향을 미치는 야리끼리제와 서로의 경쟁심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교묘하게 조종한다는 것이다. 김대리가 PC팀을 맡아서 올 때 귀국이 석달 여나 남은 김용순도 데리고 와서 보도블록 찍는 팀에 미리 박아 놓았단다. 보도블록 찍는 옆에서 홀로 PC 몰딩 작업을 하는 홍사정씨가 말했다. “토목에서 일을 할 때 김용순에 대해서 알아봤지만 자기 하나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수의 손해도 아랑곳 않을 사람이라고, 그 김용순을 나름대로 이용가치가 있어 도구로 사용키 위해 김대리가 데리고 왔어”이반장이 벽에 기대어서 얘기를 들어보니 처음 현장에 배치받아서 처음으로 인사를 나눴을 때 느꼈던 신뻬쏘위를 말하고 있었다. 언젠가 작업하며 보니 얼굴에는 살이 붙은채로 검어서 신뻬쏘위 티는 벗었는데, 안전모의 그늘에 가려진 금테 안경속의 눈매는 매의 눈초리였다. “김대리와 김용순이 만났으니 그 작업장도 알아볼 짜다“ 듣고 있던 박춘광씨가 혼자 소리로 말했다, 귀국 석 달여를 앞두고 퇴직금 정산을 뽑는데, 계산방식이 귀국일을 석 달 앞둔 시점부터 석 달 동안의 노임 계산한 것을 모아 평균 계산한 것이 퇴직금으로 정산된다. 이 기간 동안에 해당되는 작업자들은 작업의 피치를 올리는데, 김용순이 이에 해당된다. 근로자의날에 사우디대사의 유공직원 표창장을 받은 김대리와 욕심으로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김용순이 뭉쳤으니 오죽하겠냐면서 숙소의 사람들은 잠이 들었다.
공사 중의 건물들 주위에는 내장공사용 제품이 즐비했으며 매설작업을 끝낸 도로에는 중장비 그레이더가 몸을 길게 뻗은 채로 땅의 수평을 잡으며 화이널을 잡아나갔다. 측량사들이 표시한 선을 따라 도로변에 경계석이 깔렸다. 살수차가 바닷물을 도로를 표시한 위로 뿌려 나가는데, 예쁜 아줌마가 살수차에 탄 채로 미소지으며 지나갔다. 살수차의 둥그런 뒷면에 만화가 이현세 그림체로 가족이 그려져 있었으며 그림 밑으로 ‘아빠! 오늘도 무사히’라고 새겨져 있었다. 로울러는 있는대로 나와서 조는듯하며 땅을 다져나갔다. 넓은 바닥을 차지하였던 파렛트에 실린 보도블록은 현장으로 실려 갔으며 지게차는 뿔을 앞으로 뻗은 모양으로 바쁘게 쫓아다니며 파렛트를 하역했다. 마치 상륙을 마친 군대에 보급품을 하역한듯한 질서 없는 광경을 보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우리나라 삼부요인도 못 탈 정도의 고급 캐딜락이 현장을 누비고 다니는데 사람들은 사우디 왕족이 타고 온 것 같은 자동차의 위세에 눌려 아무 소리도 못 했다. 자동차에서 내린 사람은 사우디 왕족이 아닌 권춘영씨와 토목 2조의 반장이었으며, 도로의 낮은 지역을 그레이더가 오기 전에 더 성토키 위해 급히 왔고 워키토키로 통화를 마치자마자 현지에서 고용된 덤프 3대가 흙을 가득 실은 채로 나타났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몰려가는데, 식당 앞 계시판에 공고가 붙었다.
‘공고
계속되는 작업에 노고가 많습니다.
여러분들의 노고를 위로코저 저의 현장에서 사교춤을 가르치려 하오니
일과 마친 여가시간에 춤에 관심있으신 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바랍니다
교습장소: 입국자 및 출국자 대기숙소
연락처: 21동3호 홍길동
공고문 밑에는 이미 누군가가 노동자의 정서적 안정을 위하고 작업의 능률을
극대화 하기위하여 노무담당은 ,
‘딴쓰 홀을 허 하라’ 라고 붉은글씨로 써 놨다
앞으로는 자유부인이 아니라 자유남편이 쏟아지게 생겼다.
저녁을 마친 후 숙소에서는 사교춤으로 설왕설래했다,
”자칭 춤 선생이 전직 제비였다며?“ ”다리 부러졌으면 바람 꾼이었을 게고 안 부러졌으면 교습소 출신이 맞을거야“ 춤추는 것 본 사람이 얘기로는 춤추는 모습이 완전 물차는 제비 모습이래” “그 말 듣고 보니 남의 마누라 껴안는 제비가 아니고 순수한 제비 같네” “전기 줄에 앉은 제비 봐봐 온통 검은 놈들뿐이지, 카바레 들락거리는 놈들치고 온전한 놈들 있간디” “춤도 종류가 많은데 그 춤은 다 가르칠 수 있데?” “그건 문제도안 돼, 산동네 짱께집 개업하는 셈 치고 시작만 하면 돼, 한쪽 벽면이 그득하도록 메뉴판 적혔어도 다른 것은 몰라도 되고 할 줄 아는 것은 짜장과 짬뽕만 제대로 익히면 되는 것이고 하나 더 추가한다면 탕수육 정도, 산동네에서 그 이상으로 시킬 사람도 없을 것이고 먼저 주인 밑에서 10년을 배웠어도 그 이상은 가르쳐주지도 않아서 알고 보니 싸부도 세 가지 음식만 할 줄 알고 그 이상은 모르고 짱께집을 끌고 왔다던데, 해외현장교습소에서도 산동네 짱께집처럼 부르스와 지루박 두 가지면 돼. 두 가지나 제대로 배우라고만 해!”
모래바람은 겨울에 싸락눈 내리듯이 날리는 중에서도 공사는 이어져 나갔으며, 공사 중인 기능공들의 틈을 비집고 북한을 추종하는 지하세력이 이 현장에도 잠입했단다. 중앙정보부요원이 현장에서 암약하는 지하세력을 체포하기 위하여 현장에 투입되었다. 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킬 말이 공사하는 사람들의 입과 귀로 옮겨 다니며 물 위에 기름방울 퍼지듯 퍼져나갔다. 바덴바덴의 기적으로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개최하게 되자 이를 방해하기 위한 북한의 지령을 받은 공작조라는 출처 불 분명한 말이 현장 기능공들의 마음을 억누르는 가운데 실내에 설치됐던 비쌌을 법한 문짝이 날카로운 무엇으로 긁힌채 떼어져 밖에 버려져 있는것과 크레치가 심하게 생긴 설치물건이 내 동댕이 쳐 있는 것이 보였다. 간첩들의 소행이라고 인부들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PC 보도블록 작업팀처럼 공명심에 사로잡혀 작업실적을 과하게 요구하는 관리직의 부당한 요구와 기능공들의 반발이 충돌하여 빚어낸, 노동자들이 벌인 일종의 사보타지였다.
큰 덤프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미친 듯이 달려오더니 운전자가 사무실로 뛰어들었다.
현장은 조용히 하루를 마치고 식당에서 저녁 식사 중에 작은 놀람이 일어났다. 홍종수씨가 식판에 밥을 퍼 담아 들고 오는 것을 처음 본 사람의 눈이 놀라서 커졌고 입에 물고 있던 반찬을 떨어트리기까지 하였다. 이 현장에 오래 근무한 사람들에게는 홍종수씨는 낯선 사람이 아닌 밥 많이 먹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과장이 조금 보태진 말로 ‘식판 들고 다니느라 팔에 근육이 늘었고’ ‘국그릇에서는 풍랑이 일기도 하여 거룻배를 타고 다니며 국그릇을 젓다 배가 전복되어서 이 시간 현재 찾지도 못했다“ 며 귀국한 사람의 이름을 끌어다 붙이기도 했다. 더 가관인 것은 홍종수씨가 식사 후 내는 트림 소리에 울려서 식당 천장의 먼지가 다 떨어졌다는 둥 홍종수씨의 먹는 것에 대한 루머는 계속 양산되어 전설로 남게 될 판이 현장에서는 이미 전설로 기록된 사람이 권춘영씨 였으며 권춘영이란 이름 대신에 권사범으로 불렸다. 남보다 늦게 숙소로 들어온 권사범이 주머니에서 정리 안 된 돈을 한 움큼 꺼내놓으며 자리가 사람 만든다더니 내가 그 짝 났다고 말했다. 현장 사정에 따라서 용역으로 현지인들의 차량을 차입해서 사용하는데, 그들이 아랍계통의 민족이라는 것을 앞세워 작업 중에도 가끔 속을 썩이는 것이 만만치가 않았다. 현장의 관리자는 그들을 통제할 양으로 그 자리에 권사범을 팀장으로 앉힌 것이다. 권사범이 운동하는 것을 보고 들었던 현지인들에게 권사범은 거의 신적인 존재였다. 현지인들의 출퇴근 차량이 우리가 생각하기에 왕족 차량을 방불케 할 정도의 캐딜락 등 그 이상의 차량 들이라 아침이면 서로 자기 차량을 이용하라며 키를 주머니에 넣어주거나 아예 키를 앞에다 던지기까지 하더란다, 그들은 권사범이 자기 차를 이용한다면 그보다 더 큰영광이 없었다. ”아까 작업중에 보니까 이제는 캐딜락도 지루했는지 미친 벤츠 덤프차량 본네트에 올라 앉았더구먼“ ”아! 그거요 작업 차량에게 작업지시하고 시간이 남았기에 작업장을 돌며 오전 간식을 나눠주며 외따로 작업하는 팀을 찾아서 빵과 과일을 전하며 한몫은 네 옆의 동료와 나눠 먹으라는 것을 알아듣고서도 혼자 쳐 먹을 양으로 과일 마다에 이빨 자국을 내고 내 의향을 알아볼 양으로 빤히 얼굴을 쳐다보는 것을 성질이 나서 머리 귀퉁이를 한 대 때리니, 덤프로 깔아 죽이겠다고 덤프로 달려드는데 덤프 본넷트로 뛰어올라 와이퍼를 잡고 죽인다며 주먹으로 차 유리를 깨부술 듯 때려대니 눈을 화등잔 만하게 뜨고 겁에 질린채로 나를 떨어트리기 위해 운동장에서 지그재그로 미친 듯이 달리다가 노무과 오피스로 뛰어들 때 그때 보셨나 보네요“ ”저녁에 노무과장이 불러서 말하기를 그 녀석이 어떻게나 놀랐는지 바지 가랑이에 똥을 다 쌌다고 말하며 웃더라고요“ 그 말을 들은 이만복씨가 말하기를 ”언제 기회 있으면 홍씨를 한 번 크게 놀래켜 줘, 먹는게 많으니까 똥을 싸도 자배기만큼은 쌀 거야“
AP프랜트가 가동되면서 트럭들이 아스콘을 도로 따라가면서 쏟아냈고 그 뒤를 따르는 그레이더가 아스콘을 밀며 화이널을 잡아가는 것을 롤러가 아스콘을 눌러가면서 다졌다. 수퍼마켓 근처의 축구장은 인조잔디로나마 푸른색으로 덮혔으며 빌라와 아파트가 들어선 주택가 공터에도 푸른 잔디가 심어져 모래색에 피로해진 눈에 청량제 역할을 했다.
오전 간식시간에 이 반장을 위시한 몇몇이 둘러앉아 앞으로의 남은 진로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다. ”앞으로의 공사도 몇 달이 안 남아서 계약만료 기간이 많이남은 사람이나 연장계약 할 사람은 신청을 받는데, 직종에 따라서 리야드하우징 현장이나 하일PP(power plant) 현장으로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부터 현장에 이상하리만치 사람이 줄어든 느낌이 들었었는데, 신규 채용된 인원은 아예 다른 현장으로 배치되고 현장에서 얼추 공사가 끝나는 팀의 인원들은 다른 현장으로 보내는 장비와 함께 벌써들 떠났다.
저녁 무렵에 휴지를 움켜쥐고 현장의 철조망 주위를 서성이던 사람이 현장 경비에게 야외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어보는 것을, 남자들의 야외화장실이란 아무 데서나 엉덩이 까면 화장실이지 뭘 찾냐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설사 나오는 사람 뛰듯이 금새 시야에서 사라졌다. 작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초상이 났단다. 전화가 아닌 편지로 초상을 알렸으니 망자가 사망 한지 얼추 보름을 넘겼겠지만, 노무과의 영선반에서는 벌써 대기자와 출국자가 사용하던 숙소를 정리하였고 빈소를 마련했다. 영선반 근무자는 애도를 표하며 상중에 사용할 물건을 알아서 지원했다. 병풍 앞에는 촛불이 날름댔고 향 내음은 하얀 실낱같은 연기와 함께 천장으로 피어올랐다. 투명한 생수병에 은어로 ’싸대기‘라 불리는 무색의 고량주 다섯 병을 알콜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싸우디 맥주 몇 박스가 에어싸고 있었다. 영선반 직원은 안심이 안 되는지 문상객들에게 고량주를 종이컵에 빙초산 따르듯 하며 말했다. “조금씩만 드시고” “요 정도의 양이면 독약이라도 안 죽겠다” 검은 양복에 격식을 갖춘 문상객이 점잖게 예를 올렸다.“타국에서 망자를 외롭게 보내서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그는 마련된 술과 육개장도 점잖게 마다하고 화투판에 끼어들었다.
이상도반장도 같은 숙소에 거하는 사람이 상을 당하여서 검은 넥타이를 어렵게 마련하여 남방 위로나마 붙들어 매니 영 격이 안 섰다. 먼저 박재열이가 편지를 받아 뜯어보지도 않고 베개 밑으로 쑤셔 넣던 것이 생각났다.
상가에 문상을 온 것인지 노름을 하러 온 것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했다. 문상을 마치고 무 알콜 맥주로, 목구멍에서 올라오려는 슬픔을 억누르는데 순간 집에 외롭게 있을 백조가 생각나서 상주에게 인사를 나누고 발길을 돌렸다.
경비가 교대 근무를 마치고 문상을 와서 보니 저녁 무렵에 잠깐 봤던 사람이 보였다. “초 저녁에 배가 아픈 것 같던데 지금은 괜찮으세요” “예, 그때 갑자기 배가 끊어질 듯 아프니까 사람이 머릿속이 하얘지며 생각이 멈춰버리더구먼요, 아까는 정말 고마웠습니다” 잠시 후 그는 늦게 온 사람에게 미리 와서 선점하고 있던 자리를 적지 않은 금액을 받고 넘겨 주었다. 일종의 자릿세라고 할까? 권리금이랄까, 이러한 요령도 다년간의 해외 생활에서 얻은 노하우 일 것이다.
새벽 세시 쯤 이반장은 동 호수가 적힌 메모장을 들고 김범수를 찾았다, “혹시 살만한 물건이 더 나왔을지 모르니 두 번 걸음 안 하려거든 돈은 넉넉히 가져가는 것이 좋을 거야” 마련된 빈소 옆 칸에는 노름판에서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 내놓은 물건들이 할인된 물건값을 붙힌 채로 진열되어있었으며 옆에는 ’물건은 눈으로만 보고, 만지지는 마시오!‘ 라고 쓴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그 바로 옆에는 ’급전 필요한 분‘을 써 붙인 사채업자(?)가 전자상가(?)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이반장과 김범수는 물건에 손도 안 댄다는 알리바이를 확립하려는 듯이 아예 뒷짐을 지고 물건들을 둘러봤다. 둘은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하더니 사채업자의 연락을 받은 물건 주인이 나와서 매수 매도자가 물건값을 조율하여 김범수가 돈을 지불 하고는 내쇼날 파나소닉의 주인이 되었다. 노름꾼은 내일 아침 해만 뜨면 여기 진열된 물건이 모두 자기 것이 될 것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노름방으로 들어갔고. 김범수는 매물로 나온 니콘카메라에 자꾸 미련이 갔다. “삼 분의 이 값으로 물건을 구매했으면 물건은 잘 산 거야, 귀국선물로 준비했다가 매물로 나온 것이니만치 물건에 하자는 없을 거야” 이반장의 말이었다.
계약 종료된 사람들은 귀국을 서둘렀고, 리야드 현장으로 떠날 일부의 사람들은 항공편을 이용해 떠난 현장에는 다수의 사람들이 나름대로 바쁘다. 조경팀은 도로에 따라 대추야자 나무를 가로수로 심으며 단지의 면모를 낭만적으로 변모시켰고, 도심에는 가로등이 하나둘씩 세워졌다. 수퍼마켓 옆의 공터는 축구장으로 탈바꿈하여 파란 인조잔디를 입힌 모습이 마치 목초지처럼 보였다. 바닷가에 새로운 씨티가 형성된 것이다.
저녁에 권사범이 주머니에서 구겨진 돈뭉치를 꺼내 나무통에 넣으며 말했다, 얘네 들이 수월한 일자리를 은근히 바라며 뒤로 와서 찔러 준 돈이 싸이카 타는 교통경찰의 장화 속에서 나오는 돈 같단다. 힘들이지 않고 번 돈은 숙소 내에서 공금처럼 사용되기도 했다. 말없이 편지를 읽던 곽신영씨가 읽던 편지지를 흘리며 혼잣소리를 했다. “애 엄마가 피아노를 결국 샀구먼” “남편은 더운데서 이 고생을 하며 돈을 버는데 그 돈으로 피아노를 사? 정신 나간 여편네 아냐?” 이만복씨가 외치며 떨어진 편지지를 집어 들고 읽어 내려갔다.
“여보 더운데 고생 많지, 이곳에서는 당신의 고생과 노력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 딸 영미도 학교 잘 다니고 있는데, 얼마 전에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이가 학교가 끝났는데도 집에를 안 와서 애를 찾아다니느라 밤중이 되었는 줄도 모르고 신발이 뒤집어 졌는지 벗겨졌는지도 모르고 애를 찾아다녔어. 남편 더운데 보내놓고 애나 잃어버리는 여자라고 할까 봐 앞이 깜깜했어, 컴컴한 밤에 앞도 깜깜했으니 아예 앞이 안 보이는 거야 애는 보이지 않고 납치를 당했나? 별별 생각이 다 드는데, 그때 갑자기 생각이 나는 거야. 얼마 전에 들었던 말 중에 피아노를 얻어 치기 위해 같은 반 학생의 가방을 들어준다는 말. 그 집을 알고 있었기에 그 집을 가보니 어른도 없는 집에서 애들 둘이 피아노를 두드리는데, 눈이확 뒤 집어지는 거야 머리통이 깨졌는지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허연 천으로 둘러친 것이 엉겨 붙은 채로 피아노를 치던 딸이 싱긋 웃으며 ”엄마! 나 피아노쳐“ 하는 소리를 듣고 딸을 찾았다는 안도감과 머리에 피가 엉긴 딸의 모습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을 보고 내가 현기증을 내고 쓰러질 뻔했어. 아이를 잡아 집으로 끌고 와서 아이의 등 짝을 쳐대는데 맞는 아이도 울고 때리는 나도 울었어 설움이 복받쳤다고 할까? 피아노를 서로 먼저 치려고 밀치는 바람에 피아노 귀퉁이에 머리가 부딫쳤단다. 해가 뜨자마자 피아노가게로 달려가서 외쳤지 ’이 집에서 제일 좋다는 피아노 달라고, 쉼멜인지 영창인지 피아노 달라‘고 주인에게 싸움을 하려고 달려드는 것처럼, 주인은 아침부터 웬 정신 나간 여자가 왔나? 했을거야. 집에 온 피아노를 보고 어린 딸은 겁에 질린 채로 ’엄마 나 이제 피아노 안 쳐도 돼‘ 하는 소리를 듣고는 또 눈물이 나는 거야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오는데 애 아침도 안 먹였고 병원부터 먼저 갔어야 했는데” 곽신영은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고, 이만복씨는 자기가 너무 경솔했음을 미안해하며 “남의 피아노를 보니까 위에 뻘건 우단 같은 것이 덮혀 있던데 그거라도 하나사서 덮어”라며 일 백 리알을 주머니에서 꺼내 곽신영 손에 쥐어 주었다, 그때 갑자기 김준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으며 “마누라고 뭐고 다 죽인다” 면서 그동안 선물용으로 하나하나 마련했던 물건을 꺼내 부수며 패닉 증세를 보였다. 맞은편 자리의 박재열 마누라는 얼마 전에 자살해서 죽었다고 연락이 와서 장례를 치뤘고 곽신영의 딸은 피아노에 부디딫쳐 머리가 깨졌다고 편지가 왔는데, 이놈의 집구석은 몇 달째 편지도 없었다는 말을 듣고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이만복씨가 나서며 말했다. “이 망할 놈의 꼰대야 쭈구렁텡이 할망구는 누가 쳐다보지도 않을 거라며 김준수씨를 탓했다, 권사범은 돈통의 돈을 움켜쥐고 밖으로 나갔다가 얼마 후에 도수도 없는 사우디 맥주 세 박스를 지고 들어오면서 ”오늘 언짢은 기분 업 그레드 하자며 사람들을 모아 앉혔다. 김준수를 억지로 끓어다 앉히며 “형수님 조카들 뒷바라지하며 공장 다니느라 바빠서 편지를 못 했는데, 만료 귀국 두 달 남기고 이 무슨 추태냐”며, 김준수를 달랬다. ”자! 우리모두 형님을 위한 박수!”
이 북새통 속에서도 종수는 되비져 자냐고 박춘광씨는 옆에 앉은 종수를 못 알아보고 불러서 숙소 안의 사람들이 일제히 웃었다. 이제는 종수라는 이름만 들려도 웃을판이다. 아파트 현장에서 작업하던 사람이 식당 안에서 밥을 먹는 중에 홍종수의 식판 위에 잔뜩 쌓인 밥에서 굴러떨어진 밥 덩이에 맞고 발등이 깨졌다는 소리는 전설처럼 들릴 판이다. 그 홍종수가 말하기를 받아만 준다면 세 번이라도 연장근무를 하겠단다. 박춘광씨가“ 그따위로 굴었다가는 마누라를 안아주지 않아서 마누라 도망간다” 라고 말하자“ 집에 있을 때도 관계를 안 했단다. ”봄 가을에는 일에 치여 피곤해서 못하고, 여름에는 더워서 그 짓 못 하고 겨울밤에는 사리마다 벗기 귀찮아서 그냥 잤다”라고 말을 해서 사람들을 다시 한번 웃겼다. 이만복씨가 말하기를 초창기 토목에서 상수도 파이프라인을 매설할 때 감독관 눈을 피해서 체인블록을 걸지 않고 나팔 모양의 주둥이에 미리 고무링을 끼워서 잘 들어가기 위해 샴프칠을 한 후에 이어질 파이프의 꽁무니를 정확히 대고 신호에 따라 지렛대의 힘을 이용해 밀면 텅! 하는 상쾌한 소리를 내며 결합이 되는 것이다. 정확한 위치에 겨냥했는가를 보고 신호를 보내는 역을 홍종수가 맡았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신호가 없자, 홍사정씨가 가서 보니 그새를 못 참고 조는 것이 아닌 코를 떨어뜨리고 아예 잠이 들었더란다. 그때 이만복씨가 한소리가 “빨개 벗고 벌거벗은 마누라 배 위에서 잠이 들 위인일세”라는 웃지도 못할 말을 남겼다. 그러한 홍씨가 세 번 이라도 연장근무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사연을 맥주 뚜껑을 따며 풀어냈다. 삼남 지방의 촌 동네에서 동네 머슴처럼 일을 하면서 살았단다. 여름날에는 남들보다 더 더웠고, 겨울은 더 춥게 살았단다. 아는 것이 별로 없던 그는 지식이란 말이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였다. 상황이 그러니 입은 항시 흉년이요 대신 귓구멍은 언제나 풍년이었음에도 머리속은 텅 비어 있었다. 농한기 때 읍내 공사판에 일을 나갔다가 우연찮게 해외 취업 브로커의 얘기를 듣고 빚을 얻어 커미션을 주고 해외 취업을 나와 보니 괜찮은 노임에 먹는 것이 지천이며 때맞춰 간식까지 나오니 이러한 세상을 만난 내가 세 번이라도 연장근무라도 하겠다는 말이 나온 것이란다. 조용함 속에서 홍종수의 말은 사람들 심금을 파고들었고 사람들은 조용했으며 에어컨 소리는 털털거림을 멈췄다.
홍종수를 비롯한 연장근무자들과 일 년의 계약 기간을 반이나 남긴 사람들이 미완된 공사와 하자처리를 위한 소수의 인원만을 남긴 채 비행기 편으로 리야드 하우징 현장으로 떠났고, 이상도반장도 우편물과 함께 섞여 밴 두 대에 나눠탄채로 카라반 행렬처럼 하일PP를 향해 사막길로 나섰다. 가까이에 지방공항도 있었으나 견문도 넓힐 겸 며칠에 한 번씩 현장을 순회하며 서울 본사에서 하달하는 공문이나 가족들의 소식을 전달하는 코시카스의 우편마차 역을 하는 자동차에 분산 편승하였다. 사막에 놓인 하이웨이는 달려도 달려도 같은 자리였고 전면으로 보이는 고속도로는 물속에 잠긴 것처럼 신기루 속으로 뻗어있었다. 중동 근무를 세 번이나 했어도 현장에 갇혀서 반복되는 작업에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중동의 한 부분이나마 보고 견문을 넓히려 한 것이다. 다카르 랠리에 도전한 자동차처럼, 두 대의 자동차는 뒤로 뿌연 모래 먼지를 남기며 달려서 고속도로를 벗어났는가 싶으면 또 고속도로 위를 달리기도 해서 사우디 땅이 넓음을 실감했다. 시간이 멈춘 중에도 자동차는 계속 쉬지도 않고 달렸다, 계속 반복되던 밖의 풍경이 바뀌었다. 황토흙인지 돌 인지 분간도 안 되는 지역에 들어선 것이다. 흙 먼지를 뒤집어쓴 대추야자 나무가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형물처럼 드문드문 보였고 두껍게 흙으로 쌓아 만든 집이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렸다. 오아시스라고 말하는데 전에 근무하던 바닷가에 위치한 오아시스에는 바닥에 물도 흥건했고, 현장에서 사용키 위해 모래를 채취한 큰 웅덩이에는 인근의 바닷물이 스며들어 계속되는 증발로 염기가 많은 탓에, 사람이 들어가 가만히 누워있어도 뜨는 기현상도 일어났다. 그 기대를 하고 둘러봐도 발하나 닦을 물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늘이기는 하지만 더웁기는 매일반 속에서 출발할 때 꾸려준 샌드위치와 음료수로 점심을 해결하고 급히 자리를 떴다. 저녁에 기거할 기착지가 있는 현장까지 가려면 시간이 촉박하단다. 그랬기 때문에 자동차 두 대가 미친 듯이 달린 것이다. 사람들은 지쳐갔으며 말이 없어졌고 고개를 떨구더니 운전사 제외하고는 모두 잠이 들었다.
현장에 도착해서 잠에서 깨어 밖을 보니 날은 이미 어두워졌다. 식당에 별도로 마련된 음식을 눈으로만 먹고 샤워는 생략한 채로 물만 한번 뒤집어쓰고 잠자리에 들어섰다. 다음날 새벽 일찍 까칠한 아침밥을 먹고 꾸려준 점심을 차에 싣고서 구부러지지도 않는 다리를 끌고 차에 올랐다. 국으로 말없이 비행기만 탔어도 이 고생은 안 했을 터인데 제대로 굴러오는 복을 걷어찬 것이다. 이제는 견문이고 나발이고 사람 죽게 생겼다. 도로의 생긴 형태대로 자동차는 미친 듯이 달리는가 싶다가도 겅둥겅둥 뛰기도 했다. 저 멀리 낙타의 무리가 신기루의 끓는 물에 샤워하는 것처럼 보였으며 우리 일행이 탄 자동차는 앞으로 가는데 종려나무군락지는 뒤로 빠르게 달렸다.
“점심 먹을 시간은 얼마나 남았소?“
”배고프쇼? 밥맛이 없더라도 아침에 배를 더 채울 것을 그랬나 보오, 아침 먹은지 이제 한 시간 지났다오“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벌써부터 엉덩이가 박이고 구부린 다리의 오금이 결려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펴보려고 점심시간을 물어본 것이다. 이놈의 차는 냉각수보충도 않는지 냉각수도 보충않는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점심은 뒷전이고 머리 어깨 무릎을 돌리고 두드리기도 하며, 뜨거운 모래위에 드러눕기까지도 했다
한참을 졸아가며 달리었을 즈음에 자동차의 경적에 잠들이 깼다. 낙타의 무리가 길을 횡단하는 중이었고 낙타의 무리를 쫓기 위함이 아닌 우리의 잠을 쫓기 위 한 경적이란다. 운전을 담당하던 이가 방독면을 누가 실었냐고 묻는다. 방독면은무엇이며? 싣지도 않았다고 말하자 큰일 났단다. 아주 오랜 예전에 사우디 한 골짜기에서 이유도 없이 사람이 죽었는데, 몇 년 동안을 이유도 모른 채 사람이 죽어가다가 훗날 실체가 밝혀졌는데 지하에 매장된 가스가 스며 나오는 것에 중독되어 죽었다는 것이다. 그 후로 불리어진 마을 이름이’‘우수마니아’라는데, 사우디 정부에서는 지하에 묻힌 것이 석유와 가스라 지역을 개발 않고 도로를 만들어 덮음으로서 길로 사용하는데 우리가 앞으로 지나가야 할 곳인데, 지금도 그 길을 지나가려면 방독면을 뒤집어쓴다고 말했다.
<칼텍스>입간판이 세워진 곳을 지나자 해가 떨어지고도 한참을 더 달려서야<HAILPOWER PLANT> 라고 새겨진 안내판을 보고서야 현장에 도착했음을 알아차렸다.
몸은 굳다시피 하여 자동차에서 굴러 떨어지다 시피 하며 내렸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했으며 그 별들마저도 굳은 채로 하늘에 붙어 있었다. 붉은 가로등이 어둠 속으로 끝도 없이 이어졌다. 우리 일행이 차량에 갇혀 이틀 동안 달려온 궤적을 생각하니 풀리던 온몸이 다시 조여 왔다. ”아까 말했던‘우수마니아’...“를 묻자, 시간에 쫓기어 달리는 것에 아랑곳도 않고 졸고 있는 승객(?)분들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려고 픽션으로 만들어낸 얘기란다.
칠흙 같은 어두움 멀리<하일>씨티의 붉은불이 불야성을이뤘다
식당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잠을 잤는지 쓰러졌는지도 몰랐는데 어제 운전했던 운전사가 다른 현장으로 출발한다며 깨워서 보니 벌써 아침이 되었다. 운전사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여독이 풀리지 않은 몸으로 노무 담당과 대면을 하니 딱히 배치할 곳이 마땅하지가 않은 모양이다. ”알코바 토목현장에서 반장 하셨던 분이니 이 현장의 콘크리트 팀에서 같이 일을 하고. 일을 하다보면 계약기간 삼 개월은 금방 지날 것입니다“ 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홍사정씨는 PC에서 일을 하셨는데 어찌 두 분 다 리야드하우징 현장으로 안 가시고 화력발전소 현장으로 오시게 되었을까?“”귀국 석 달 앞둔 사람들 데려다가 끓어오르는 현장 분위도 감안해서 이 현장으로 보냈겠지요“ 이상도씨의 말이었다. PC공 홍사정은 이왕 왔으니 측량팀에 혹 떼어 붙이는 격으로 측량팀에 배속 되었다.
현장은 알코바 복합단지하고는 판이하게 달랐다. 화력발전소라 그런지 집 몇 채가 들어설 정도의 넓이로 들어앉은 철판으로 용접된 기름보관용 원형 기름통 건축물 여러 동은 처음으로 보는 사람을 압도했고, 나무 및 시멘트 자재 대신에 굵고 가는 파이프라인이 바닥을 덮었다. 기능공들이라고는 용접공과 배관공 제관공들이 주를 이루었다. 하루는 주위환경을 익히고서 저녁 숙소에서 오랜만에 아내 백조에게 편지를 썼다. 너무 오랫동안 편지가 없었으니 아라비아 공주 하고 바람이 난 줄 알겠다.
’사랑하는 백조에게, 워낙 문교부 장관이랑 사이가 멀었던 사람이라 이제야 펜을 들었네, 아라비아 공주하고 썸씽타느라고 편지도 없다고 지레짐작하지 말게나 장모님 말씀에 인물에 혹해서 결혼을 했더니 세상 난봉꾼이 따로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곳은 장인어른이 오셔도 별수 없을거야 세상 여자를 볼 수 있어야지 어쩌다 한번 눈에 띄어도 온몸을 꺼먼 천으로 두르고 얼굴마저도 검은 천으로 가리웠으니 말이야.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제는 기운도 떨어져서 막내 대학 졸업 때까지만 하려했는데 현장 사정상 석 달 연장을 끝으로 해외 근무를 이만 마치려고 하네, 자네도 그동안 힘들었을 거야. 긴 이야기는 귀국해서 나누기로 하고, 그리고 자네는 나를 백일섭이라 불렀지. 당신이 사랑 않는 백일섭이가.
추신: 귀국하면 앞으로 이름만큼은 이상도라고 불러주게나.
5
남편 백일섭이 해외 기능공으로 떠난 후 얼마 만에 미장이 여편네가 돈만 믿지 말고 구원을 믿으라며 막무가내로 교회로 잡아 끌어당겼다. 마지못해 끌려가서 듣고 보니 목사는 열을 내며 설교를 했지만 흥미도 없어 졸음만 쏟아졌다. 성경 말씀이라는데 주인이 머슴에게 돈을 맡기며 돈을 관리하다가 돌려달라고 했는데 머슴 하나는 돈을 잃을까 봐서 땅에다 묻고 지켰고, 다른 머슴 하나는 그 돈을 활용해서 주인에게 받은 돈보다도 더 늘려서 주인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말이, 다른 말은 귓바퀴 밖에서 겉돌았지만 그 말 만큼은 귀에 쏙 들어왔다.
남편은 더운 나라로 돈 벌러 갔는데, 한 푼이라도 살림에보탬이 되고자 산동네 여편네들에 섞여 비닐하우스 일을 나서는 무리를 따라나섰다. 하루 일을 마치고 품 삯을 받는데 힘든것에 비해서 노임이 헐했다. 영감이 미안했던지 땅에 물기도 많아서 작물도 안된다며 땅을 팔아야겠다고 말했다. 백조는 암만 아이들이 자라서 손이 덜 간다고는 하지만 한창 공부할 때는 엄마가 곁에 있어야겠기에 한동안 밀어놨던 편물기를 다시 찾았다. 남편으로부터 급여가 몇 번 송금이 되고 보니 전에 없던 걱정이 생겼다. 누가 돈이라도 빌리러 온다면 어떻게 거절해야 하나? 걱정을 미리 당겨서까지 했다. 애들이 학교를 쉬는 일요일이라 하루 정도 쉬어도 되련만 하루라도 쉬면 큰일 날 일이다. 적은 노임이기는 하지만 학용품 벌이라도 하려고 먼저 하루 일했던 비닐하우스를 찾았다. 땅이 습하여서인지 폐농하다 싶은 비닐하우스에서 나오던 영감이 한눈에 백조를 알아봤다. ”젊은 댁 하루 일해보니 힘들지? 하루 일하고 안 나오길래 몸살 났는지 알았어“ ”......“ ”오늘은 어인 일로 왔나?“ 백조는 일하러 왔다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움찔 놀라며, 본심을 감추고서 ”농사는 안 짓나 봐요?“ ”땅이 습해서 농사도 안되고 별 소득도 없어서 땅을 팔려고 해도 땅도 안 나가고 그래“ 일 좀 할 수 있나 해서 일을 찾아 왔던 백조는 더 이상 할 말도 없어서 인사를 하고 발길을 돌리는 등 뒤에서 ”젊은 댁 고운 얼굴로 햇볕 쐬며 이런 일 하다가는 고운 얼굴 다 버려“
백조는 그날 밤부터 머리가 바빴다. 그 영감이 과연 땅을 팔기나 할까? 판다면 남편하고 상의를해야 하나. 얼마 후에 백조는 밭 영감을 다시 찾았다, 백조는 본심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먼저 왔을 때는 솔직히 말해서 일을 할 수 있을까 해서 찾았고, 이번에는 땅을 보러왔다고 말했다. “남편의 퇴직을 앞두고 가게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남편하고 농사를 지어볼까 생각도 들어 김포 쪽에 땅이 싸게 매물로 나온 것이 있어서 구입하려는 생각 중에 먼저 하루 일을 했던 밭이 생각나서 들렀을 때 땅을 파신다는 말이 떠올라 김포 땅을 구입하기 전에 할아버지 의향을 알아보려고 한번 들러봤어요”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눈치를 살폈다. “땅을 사서 농사를 지으면 무슨 농사를 지으려고?” “동네 아저씨가 그러는데 물이 많고 습한 땅이면 미나리꽝을 만들어 미나리 농사를 지으면 좋을 거라고요” 백조는 일부러 어눌하게 말을 마치고는 어떻게 이러한 거짓말이 술술 나오는지 자기 스스로도 놀랐다. 집으로 귀가 한 후로 며칠 만에 기별을 받았다. 영감님으로부터 진짜 땅을 살 의향이 있느냐며 땅을 사려면 가격을 타진하고, 나도 이왕이면 농사지을 사람에게 팔았으면 좋겠단다.
한번 결정하기가 힘들지. 계획을 세우고 나니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함바집 운영해서 빌라 한 채 마련한 것 처분하고 남편이 해외에서 송금한 돈을 합해서 시골 동네 변두리 대서소에서 계약을 체결하고 땅문서를 이전하여 가슴에 안으니 신혼 첫날밤 이상도를 안았을 때보다도 더 가슴이 짜릿했다. 이상도는 백조의 미나리꽝 얘기를 귓 등으로 흘리고 기능공으로 세 번째 해외 취업을 나간 것이다.
영감님으로부터 실로 오랜만에 전화가 걸려왔다. 남편의 해외 취업과 애들이 자라면서 전화의 필요성을 느껴 전화를 한틀 들여놨는데, 찾아가지 않고도 앉아서 목소리로만 만나니 편리했다.
영감님이 한번 만나잖다. 헐렁한 세타에 월남치마를 걸치고 영감님을 만나니 한동안 못 본 사이에 많이 노쇠해져 있었다.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들이 사업에 급전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때 젊은 댁에 땅을 팔아 급전으로 돌려줬다네. 사업이란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될 것 같으면 누구나 다 사업하지. 돈은 돈대로 날리고 자식은 부모에 대한 죄책감으로 스스로 저세상으로 갔다네. 그래서 한동안 연락도 끊고 살았다네,” “고마우이 고맙네, 땅은 이미 남의 땅이 됐지만, 미나리꽝 만들어 농사를 지을 것이라 말했지? 내 아들이 농사를 짓는 기분으로 쳐다보며 살겠네, 앞으로 얼마를 살지는 모르지만”
백조는 간 만에 만나는 일이라 준비해서 꾸려간 안주를 농막에 펼쳐 놓고 막걸리를 공손히 잔에 채웠다. 마치 며느리처럼.
6
이곳에서의 콘크리트 타설이란 것이 파이프라인을 받히는 구조물이 고작이라 주택현장같이 바쁘지가 않았다. 한번은 콘크리트를 타설한 거푸집을 뜯어내고 보니 콘크리트 받침대의 위치가 조금 이상했다. 급히 측량팀이 투입되어 확인 측량을 한 결과 시작점에서 약간의 오차가 생긴 것이다. 약간의 오차는 앞으로 나아갈수록 간 극이 벌어지며 결국에는 어마어마한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 이유는 모래바람에 측량기기가 미세하게 틀어졌던 것이다. 그 후로 측량작업 시작전에 기준점 재차 확인은 필수였고 측량기와 함께 붙어서 하루종일을 서 있어야 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가 아닌 멀쩡히 서 있는 측량기도 다시 보자’ 가 측량팀의 슬로건이 되었다. 국내에서의 측량은 뽈 대를 세우거나 거리를 산출하기 위해 줄을 당기며 땀을 흘렸지만, 사우디 현장에서 EDM을 보고 놀랐다. 거리를 측정하기 위해 측량기인 EDM (Electronic Distance Meurementas)을 설치하고 거리에 관계없이 측량기인 EDM에서 쏜 마이크로파를 맞은쪽의 프리즘에서 되받아치며 오는 시간을 계간하여 거리가 자동으로 산출되고는 했다. 국내에서 차원이 다른 세상에서 측량을 한다고나 할까. 현장에 배치된 사람들부터가 공고생 출신들이 많았다.
홍사정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측량팀의 사수가 “형님 이 현장에서 측량 기술 배워서 귀국하여 앞으로 국내에서 취업하쇼, 나이 먹고 언제까지 모래땅의 더운 나라에서 이 고생 할거요? 측량하는 방법도 알고 보면 쉬워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삼각측량 하는 방법부터 가르쳐주겠소, 삼각측량을 하려면 먼저 수학의 피타고라스의정리를 알아야겠기에 앞으로 시간도 있고 해서 가르쳐 주겠소” 뭔 정리? 정리되었던 머리가 사수의 말을 들으면서 다시 얽히기 시작했다. 벌써 부터 머리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땅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실제 땅도 흔들리고 있었다. 산악지대였고 암반층이라 땅을 판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오일 파이프라인은 지상으로 설치되는 것이 관례였고, 일반 생활 파이프라인은 지하에 매설을 위해 암반층을 <캐터필러> 상표가 각인된 굴삭기가 뿌레카로 돌을 깨느라 땅이 흔들리는 중이었다. 북부지역이었고 사막의 밤 기온이 내려가 아침에는 베니어 판 위에 서리가 허옇게 깔리기도 했다.
귀국을 한 달여 남겨두고 휴일을 택해 인근 오아시스로 추억여행을 가기로 했다. 사우디는 사막지대라 모래땅만 생각하지만, 이곳은 산악지대라 황토색의 산들이 솟아올라 사막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연출했다. 바위산을 오를 때 미끌어 질 것을 예상했으나 예상과는 다르게 발바닥이 암반에 붙는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멀리 산밑으로 와디를 따라 가시나무가 듬성듬성 자라는 것이 내려다보였다. 뭉게구름도 없이 파란 하늘로 땅에서 솟듯이 비행기가 솟아올랐다. 근처 어디쯤엔가 비행장이 있는 것 같다. 비행기 소리에 놀란 검은 새 한 마리가 사막이 깨어있음을 알렸으며, 시멘트의 거대한 구조물이 산과 산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이 저수지라는데 저수지에는 물이 한 방울도 없었다. 동행한 사람의 말로는 한번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무섭기까지 하단다. 그 비로 저수지를 가득 채우는데,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 지하의 파이프라인을 통해서 농산물을 재배한다고 말했다. 낙타 두 마리를 쫓다 보니 낙타의 무리가 보이고 이어 종려나무가 군락을 이룬 것과는 떨어져 열매를 잔뜩 떨군 대추 야자나무도 꽤나 보였다. 곶감 건조할 때 보다 더 진한 달콤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데 벌떼 덤비는 소리가 들렸다. 땅에 떨어진 대추야자 열매가 냄새를 풍기며 말라가는데 구더기는 보이지 않은 채 파리 떼만 잔치를 벌였다. 낙타 뒷다리 쪽에도 파리가 뭉쳐서쫓아 날았다. 이름도 모를 태어나서 처음 보는 꽃들과 연초록 풀들이 우거진 것을 보고서 오아시스라는 말에 후한 점수를 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하일 시내의 전자 체인스토어를 들러 귀국선물로 빠졌거나 미비 된 물건을 쇼핑하며 귀국 준비를 마쳤다.
7
땅을 백조에게 매도한 영감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은 백조가 문상을 갔다. 영감님뵐 때 한번봤던 조카가 상주로서 문상객을 맞았다. 외삼촌은 혈혈단신으로 상경하여 겅기도 변두리에서 어렵사리 엉덩이 붙이고 농사짓고 살면서 외숙모를 만나 아들하나 두고 땅 장만하여 사시는 듯이 사는 중에 외숙모님이 먼저 돌아가시고 장성한 아들의 사업자금을 대주느라 여사님한테 땅을 팔고, 자식마저 생을 마감하자 삶의 의욕을 잃고 결국 돌아가셨다며, 비다시피한 빈소를 홀로지키는 조카가 말했다.
공문 형식을 띤 우편물 하나가 도착했다,
‘서림건설 가족 이상도 댁 귀하
서림건설 가족으로서 책무를 무사히 마치고 귀국하심을 축하드립니다.
귀국일시: 0000년 0월 0일 0시
대한항공 000기편 김포공항 도착.
가족은 따뜻한 마음으로 맞이합시다.
서림건설
비행기가 땅을 박차는 듯하며 솟아올랐다. 활주로가 산으로 둘러싸여 길이가 짧은 탓으로 이 착륙에 난항을 겪는다. 항공기가 착륙할 때는 기체의 앞부분이 들린듯한 자세로 기체가 툭 툭 떨어지는 듯이 보였는데, 산맥 속에서 순식간에 하늘로 솟아 오른듯한 비행기는 하늘을 선회하며 숨 고르기를 하는가 싶더니 이내 고도를 잡고 제 갈 길로 접어들었다. 국내선 전용 비행기라 작아서 불안정하게 날았다. 비행기 기내는 두 칸으로 나누어진 앞부분 쪽을 차지하는 삼분의 이 칸은 남성 칸이었고 후미의 삼 분의 일부분은 여성 전용 칸으로 커튼으로 가리어져 있었으며 스튜어디스가 담당했고, 남성 칸은 남성인 스튜어드가 기내서비스를 담당했다.
하일 현장을 찾아올 때는 자동차에 갇혀서 이틀을 먹고 자고 왔는데, 기내식도 없이 과자와 사탕이 섞인 한 주먹 치의 양이 먹을 것의 전부였다. 여성 칸에 근무하던 스튜어디스가 여성 칸의 물건을 찾으러 남성 칸으로 잠깐 왔을 때 기내가 환해지는 느낌이다. 노란색의 머리에 긴 속눈썹과 그에 어울리는 큰 눈 키는 왜 그리 긴지, 일행 중의 누군가가 영화배우 같다고 말했다. 알코바현장이 완공됨에 따라 출국자와 입국자의 터미널 노릇을 하던 대기자 숙소도 공항 근처로 옮기어 출입국자들이 한데 섞이어 어수선했다. 다란 국제공항은 변함 없었지만 입국 때의 긴장감과는 달리 출국 때의 감정은 들떠 있었다. 오후에 탑승한 비행기는 밤 속을 날았고, 기내식도 제공되어 낭만으로 여겼던 비행기에서의 식사도 즐겼다. 식곤증이 밀려오더니만 비행기는 내려앉지 않고 대신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주위의 술렁거림 속에 잠이 깨니 입국카드를 작성 중이었다. 우리나라 영공에 진입했단다, 비행기 탑승할 때의 느낌을 즐길 때는 이륙할 때와 착륙할 때 라는데, 그러한 느낌도 못 느끼고 비행기는 멎어있었다. 회사의 로고가 새겨진 자루같이 큰가방을 끌면서 한 손에는 카세트를 군인들 집총자세처럼 누구나가 들고 있었다. 해외 근로자들에게 베푸는 공인된 밀수였다. 세관 검색대를 통과할 때 여자세관원과 안경착용한 사람은 피하라는 속설이 기능공들에게 미신처럼 전해져서 이어지고 있었다. 유난히 길다 싶은 줄은 세관원이 나이가 들어 보이는 곳이다. 이상도는 오랜 해외 근무에서 얻은 지혜로 속설은 속설로 그친다는 것을 알고 짧은 줄의 끝으로 가서 섰다, 홍사정은 해외 생활에 경험이 많은 이반장만 따라가면 뭔가 있을 것 같아 이반장 뒤에 붙어섰다. 세관의 검색대를 통과한 수하물이 수하물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나오는 것을 찾아서 홍사정과 같이 나오는데, “히햐! 색깔좋다”소리가 들렸다. “운 나쁜 년은 결혼 날짜 받아놓고 등창 터진다더니 내가 그짝 났어, 홍사정씨 내 전화번호 갖고 있지 화장실이 급해서”
아내 백조가 편지에 적어준 이사한 주소가 적힌 쪽지를 들고 집을 찾아들은 것은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아내 백조는 솟아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어디 숨겨둔 마누라 먼저 찾아 인사드리고 오느라”고 늦었냐며, 반가움을 뒤로 미루고 입으로 먼저 총을 쏴댔다. 이상도는 마누라가 한껏 모양내고 공항으로 마중 나갔다 허탕 치고 돌아와서 벗어놓은 안경을 집어 흔들며 언성을 높였다. “흐이그 이 인간아 뭐가 보인다고 이걸 뒤집어쓰고 나왔냐?”며 용접공이 전기용접 할 때 눈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보호 안경을 흔들며 “이용복이나 썼어야 할 안경을... 그나마 머리 위에다 얹었길래 공항까지 기어왔지” “이건 어디 뒀다가 끄집어내서 끼고 왔는지” 튀는 불꽃으로부터 손과 팔을 보호할 때 끼는 두껍고 긴 용접용 가죽장갑을 내던지며. 고루고루 갖췄다며 “네가PLO의장 아라파트 마누라 라도 되었냐”며 체크 무늬형으로 직조된 보자기를 흔들어댔다. 현장에서 작업할 때 모래바람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목과 머리에 둘렀던 천 보자기로, 중동지역의 회교권 국가 민족들과 아라파트가 착용한다. 언젠가 귀국선물을 꾸리며 쌌던 보자기를 용케도 찾아내어 머플러로 뒤집어쓰고 왔다며 발에 걸리는 단화를 걷어차며 외치다시피 했다. “이건 중국산이지만 질기고 튼튼해서 현장근로자들이 애용하다시피 해서 국내에서도 필요할 것 같아 하나사서 갖다둔 것도 끄집어내 신었으니, 아예 골고루 갖췄군” 백조는 조금 전까지 성질로 기세등등했던 퍼런색은 사라지고 움츠러든 채로 “그래도 바다 건너온 ’쩨‘인데 어쨌던 꾸미고 나가니 오드리헵번 같지 않아?” “오드리헵번 같은 소리하고 있네, 오드리헵번 때려치우고 대신 오뚜기햇반이라도 있으면 갖고 와! 배고파 죽겠다” “싸우디에서 먹는 것은 잘 먹는다고 편지 한지가 언젠데,뱃속에 거지라도 키우나“
이상도는 집에 들어앉았어도 예전의 집 같음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해외 취업했을 동안에 다정다감했던 장모님도 돌아가셨고 집도 아파트로 바뀌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집에 들어앉아 있으면서 그 동안에 커진 아내의 능력을 집 안팍에서 느낄수가 있었다. 우선 집부터 그랬다. 여의도에 마련한 아파트도 그랬고 돈 한 푼 보고 십 리를 간다고 말했던 백조의행동도 폭이 넓어졌다.
장모의 말로는 세상에 둘도 없을 바람 꾼으로 일세를 풍미하던 장인이 한번은 여자와의 바람이 아닌 엉뚱한 바람인 함바 바람이 불어 장모님에게는 아파트 바람을 불어넣어서 장모님과 백조도 고생깨나 했고, 그 와중에 이상도를 만난 것이다. 종국에는 아파트 한 채가 결국 빌라 한 채로 줄어든 것에 만족하고서 물러났다. 인물과 몸매만 믿고 꿈꿨던 이대 메이퀸의 꿈을 그때 포기해야만 했던 백조는 그때부터 돈의 헌터가 된 것처럼 사람이 달라졌다. 돈이 생기는 일이면 밑의 구멍만 안 벌렸다 뿐이었지 하찮고 작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서울시가 확장된다는 근거도 없는 말은 사람들 입과 입을 떠돌며 부유한지 십여 년 만에 제3한강교가 한남대교로 불리고 강남구가 신설되었는데도 서울의 인구는 팽창했다. 그 시기에 백조는 버스도 닿지 않던 할아버지 땅을 구입한 것이다. 그 후 시간이 흐르면서 서초,송파구가 신설되었고, 백조가 구입한 시골 촌구석을 방불케 했던 땅은 서울시와 경기도 사이에서 구분 짓기가 애매한 땅이 되었다. 인구의 유입은 늘어나면서 그에 비례해서 땅값도 덩달아 올랐고 땅은 이미 농사지을 기능을 상실했다. 백조는 미나리 농사는 한 번도 지어보지 못하고 땅을 처분하여 아파트를 마련한 것이다. 그래서 상도 본인이 스스로 생각해도 지금 들어앉은 아파트도 남의 집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장모님과 장인어른 그리고 백조가 함바집을 운영하여서 빌라 한 채 마련한 것을 팔아 백조가 땅을 마련했던 것이 값이 올라 그 땅을 매도한 돈으로 아파트를 샀으니 결국 함바집 운영하여 장인어른 호언대로 아파트 한 채가 떨어진 격이다.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돌려치나 메치기나 였다. 그리고 세 번이나 해외를 들락거리며 돈을 벌었어도 아파트는커녕 애들 겨우 가르친 것뿐이다. 백조의 인물유세에 밀려 말도못하고 웃는 것으로 말을 대신했었다. 그랬던 이상도를 장모께서는 백일섭같이 인물 좋고 사람 좋다며 점찍었던 것인데, 그 후로 백조는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거나 기분이 나쁠 때마다 이상도를 백일섭이라고 불렀던 것이었다. 이제는 백조가 아파트도 장만했겠다 더구나 자기는 실직되다시피 하여 들어앉았으니 더욱더 말이 없었다.
백조가 보기에도 남편이상도가 안스러웠다.
상도가 베란다 창밖을 바라보는데 눈앞에 허연 무엇이 가리는 것 같았으며 앞이 보이지를 않았다. 눈을 비비며 자세히 보니 홍종수의 식판 위에 산처럼 쌓인 밥이 허옇게 보였다. 아파트 파트에서 작업을하던 기능공이 점심 먹으러 왔다가 홍종수 식판 위에서 굴러떨어지는 밥 덩이에 눌려 발등이 깨졌다는 그 밥덩이가 창틀 위에 얹혀 있었다. 당시 전설로 남을 이러한 말도 많이 돌았다 ’홍종수 국 그릇은 거룻배로 젓는다‘고,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때의 기억이 꼬리를 물었다. 뱀 장수 녀석은 뱀 통속에 뻘건 물감을 담은 비닐봉지와 가죽 허리띠를 감춰놓았다가 뱀에 물린 척 능청을 떨다가 통속의 비닐봉지를 터뜨려 물감 범벅이 된 가죽띠를 VIP석으로 던져 혼비백산시켰던 생각이 떠오르며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 나왔다. 아무래도 남편이 말도 없으며 혼자 웃고 앉았는 것이 이상해 보였다. 남편이 이상해진 것이다 여태껏 떨어져 살아서 몰랐을 뿐이지 한 집에서 부딪히며 살아보니 어깨도내려앉았고 쳐진어깨위에도 서리가 내려앉은것이 남들눈에는 안보여도 백조의눈에는 보였다. 김수희의노랫말처럼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그대 등뒤에 서면 내눈은 젖어드는데‘가있는데 여태껏 이상도앞에서는 작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커졌고 등 뒤에는 아예 서보지를 않았었다. 어머니가 아버지 돌아가신 운구대열에서는 얼마나 의탁하고 싶었으며 믿음이 갔던 등이었고 우리 가정을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썼던 등인데, ’그동안 미안했다. 그동안 미안했어 여보‘ 그대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 드는 것이 아닌 아예 무너지고 말았다.
아이들은 성장하여 제 갈 길을 걷느라 바뻣고, 걸음마를 바로 떼었을 때의 유아처럼 어데론가 걷기만 하려는 아이들처럼 붙잡을 수만도 없었다. 어쩌다 애들에게 하소연처럼 얘기라도 할라치면
”이제는 옛날처럼 억척을 떨며 살 때는 지났잖아요, 아버지하고 두 분이서 여행이나 다니세요“ 더 심하게는
”어머니 이건 집착이세요, 우리는 학교 다닐때의 청소년이 아니란 말예요“
남편의 등 뒤에 한번 서 보고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듯이, 애들의 말을 듣고는 영혼이 가출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두분이서 여행? 남편이상도는 세 번의 해외 취업으로 해외여행에 넌더리를 냈고, 현장 찾아가는 차 안에서 짐짝 취급당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경기 걸린 아이처럼 손을 흔들어댔다.
과거 신림동 산동네에서 살 때는 집안에 화목과 정이 감싸고 돌았는데, 지금 삶은 윤택했을지언정 집안 분위기가 습기 한 점 없이 메말라 있었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 그렇게 그 악을 떨고 살았는지 스스로에게 반문하고 싶었다.
’이렇게사는게 아닌데, 이렇게 살자고 한 것이 아니었는데!‘
그래! 내 삶은 내가 알아서 나 스스로 챙기는 것이다..머리에 빗질도 하며 장롱의 옷도 꺼내서 모양도 내고 못해 밨던 여행도 가보는 것이다, 이참에 마음로만 품고 있던 고향도 한번 찾아가는 거다. 우아하게 날개를 펴고 날아서 가보는 거다. 산동네에서 종종거리며 날지도 못하는 키위 새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겠다. 놀라서 보리밭 고랑에서 튀어올라 자지러지게 날개짓을 해대는 종달새들과는 급이 다른 새라는 것을 이참에 보여주겠다.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에서 토슈즈를 착용하고 바들바들 떠는 백조가 아닌 우아하게 날아서 침엽수림이 우거진 북쪽의 아무르강 어디쯤에 있을 고향을 찾아서 날아가련다. 고니로 상징되는 대한항공의 로고송 ’웰컴 투 마이 월드‘ 를 연상하며, 백조 생애 첫 번째이자 마지막 비상을 고향을 향해서 날아 가는것이다. 힘들지 않고 참 아늑하고 편안하구나..
신문 사회면 한 귀퉁이에 짧은 기사 한 토막이 실렸다.
’여의도 아파트 단지내에서 여성투신‘
경찰은 우울증으로 인한 투신자살로 잠정결론.
조혜련 정신여자상업 고등학교 졸업
현: 통진문학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