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종』
이해조
<줄거리>
1908년, 네 여성이 모여 토론을 벌이고 있다.
먼저 한 부인이 사회격으로 토론회를 제의한 다음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그녀는 구세대의 유습인 여성의 인종과 예속이 타파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뒤, 여성 역시 새 시대의 의미, 국가와 민족의 앞날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제 토론은 열기를 더해간다. 여권 신장 문제와 교육을 통한 개화· 계몽, 국가 사회의 부강·자주책, 미신 및 계급·지방색 타파 등으로 토론의 불길은 번진다.
여권 문제에 대해서는 남자가 절대 지배권을 행사하는 우리 사회의 폐습이 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된다. 조상 숭배나 윤리· 도덕 정신의 앙양에 그 목적이 있는 관혼상제 등이 지나치게 형식에 치우치고 있는 폐단도 시정되어야 한다고 지적된다.
그리고 교육과 계몽이 부국 강병과 새 사회 건설의 필수 요건이라고 이야기된다. 교육 부문에서는 우선 지난날의 부모 우선주의가 철폐되어야 할 과제로 부각되며, 그 대안으로 '자녀 공물론'이 제시된다.
또, 사회 개혁과 부국 강병의 실현을 위해서는 신분 간 . 계층 간의 문제점부터 해결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적서에 대한 그릇된 차별부터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된다. 이어 지역 차별 없는 인재 등용의 필수성도 제기된다.
소설은 한 토론자가 자신의 꿈 이야기를 빌어 우리 사회의 이상적 건설 상태를 피력하는 것으로 끝난다.
<읽기>
『자유종』에서 '지역 차별 없는 인재 등용'을 주장하는 대목을 발견하면서 우리는 자못 놀라움을 금하지 못한다. 지역감정을 바탕으로 한 인재 불평등 기용 관행이 그 시절에도 있었던가 싶은 안타까움 때문이다. 하기야 홍경래나 묘청의 반란 명분에도 진작에 그러한 불만이 강도높게 내재해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련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두껑 보고도 놀란다'고, 갈수록 심각해지는 지역감정의 굴레 속에서 허덕이다 보니 신소설을 읽으면서까지 그 걱정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러나 '망국병'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지역감정에 관한 논의는 80년대까지만 해도 자유로운 토론의 대상이 아니었다. 권위주의적 폭압정치 속에서 지역감정이나 지역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다는 것은 곧바로 체제 비판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1980년의 대사건이 왜 '광주'라고 하는 특정 지역에서 발생했는가에 관한 질문조차도 학문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사실 호남인의 지역감정은 현실적 차별에 근거를 둔 반면 영남인의 지역감정은 호남인에 대한 편견에 기초한다(1988, 김진국). 또 지역감정이 강한 것도 영남사람이고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도 영남사람인 만큼, 누가 지역감정 해소에 앞장서야 하는가 하는 당위성과, 누가 그렇게 하는 좋은가 하는 효율성에도 반문의 여지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각종 선거는 지역감정을 오히려 증폭시키는 형태로 계속 나타났다. 그런 점에서, 다가오는 1997년 말의 대통령선거에서도 지역감정이 투표 결과의 가장 핵심적인 결정 요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과연 언제면 우리가 망국적 지역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출신지역보다는 사람을 보고 투표할 수 있을 만큼 민도가 높아질 때, 비로소 망국적 지역감정은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출 것인가. 아니면 남북통일이라는 민족사적 과업이 완성되는 그 날일까.
☆ 이해조 : 신소설 작가. 『화의 혈』,『옥중화』,『자유종』,『빈상설』등이 주요 작품.